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90
정도마신 89화
“지존을 뵙습니다!”
사완악의 앞에는 사령문의 제일귀령 만사무, 제이귀령 묵영, 제삼귀령 천화, 제사귀령 가종후까지 네 사람이 모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정유문을 지키고 있어야 할 네 사람이 갑자기 사완악이 있는 객잔에 나타난 것은 실로 신기한 일이었지만, 사완악은 기다렸다는 듯 그들을 맞이했다.
만사무가 말했다.
“지존의 소문을 듣고 말씀대로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것입니까?”
사완악과 네 사람이 이곳에서 만나게 된 이유.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바로 사완악이 보낸 서찰 때문이었다.
때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사완악이 설린과 함께 견정대원으로서 맹주 양천상과 함께 태산으로 향하던 중, 맹주 양천상이 한 객잔에서 후기지수들에게 무공에 대한 가르침을 주며 사완악에게 갑작스럽게 기습을 가했던 날이었다.
사완악은 그날 맹주 양천상의 행동에서 미묘한 기류를 감지했다.
아니, 어쩌면 양천상의 시험을 위해 정도맹을 떠나면서부터 사완악은 의심쩍은 마음을 품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 이유는 양천상의 지나친 털털함과 호방함 때문이었다.
양천상은 여정 내내 견정대의 후기지수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어떤 대화든 스스럼없이 나누며 급속도로 친밀함과 호감을 얻었다.
또한 그는 후기지수들을 위해 아낌없이 가르침을 주었고, 태산에 준비되어 있다는 시험 역시 오직 후기지수들의 발전을 위하여 그가 스스로 준비한 것이었다.
이때 사완악은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이토록 후기지수들을 생각하는 자가 어째서 지금까지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을까?’
높은 신분과 어울리지 않게 털털하면서 호탕한 무림맹주.
정도무림을 위한 그의 뜨거운 열정.
이런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왜 가만히 있었을까?
양천상이 정도맹주의 자리에 오른 것은 팔 년 전이었다.
그가 정도맹주에 올랐을 때도 강호는 평화로웠고, 그에게 특별히 해결해야 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팔 년 동안 후기지수들의 양성을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변한 것이었다.
다른 후기지수들은 정도맹주라는 이름값, 그리고 젊은 나이에 사천회주 마양과 겨루었던 천재 무인과 함께한다는 영광에 이런 의심을 품지 못했지만.
신천마뇌 사마소를 통해 사람을 의심하는 습관을 몸에 익힌 사완악은 양천상의 갑작스러운 행보가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한 양천상의 기습은 마치 자신을 시험해 보는 것 같았고, 그때의 순간적인 눈빛은 사완악에게 어떤 위화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 순간 사완악은 홀로 생각했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어떤 함정이라면?’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느낌에 조금 더 의존하는 추론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혹이 생긴 이상, 만약을 준비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물론 사완악이라고 해서, 양천상의 시험이 어떤 함정이라는 것까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실제로 태산의 그 진법 속에서 사완악으로 하여금 후기지수들을 죽이게 만들려고 했던 음모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또한 그들이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사완악의 정체를 폭로할 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즉, 사완악은 어떤 함정이든 자신이 쉽게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만약 저 수상한 맹주 양천상이 적이라면, 그래서 그와 큰 싸움을 벌이게 된다면, 혹시나 자신이 맹주 양천상을 죽이게 된다면? 혹은 그 정도의 큰 사건이 생긴다면?
‘강호에는 필시 큰 소문이 퍼지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사완악은 객잔 주인에게 부탁해 정유문으로 서찰 하나를 보냈다.
그 서찰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가종후에게. 만약 나에 대해 어떤 안 좋은 소문이 퍼진다면, 너와 내가 처음 만났던 곳으로 모두 함께 오라.
이것은 사완악의 깊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이었다.
맹주 양천상과 싸우게 되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적이 될지도 모를 터.
그때 자신의 유일한 아군이 될 자들은 바로 사령문의 수하들이었는데, 그들을 만나러 갈 수 있는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완악의 이런 ‘만약을 위한 안배’는 귀신같이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모두 일어나 앉아라. 나에게 있었던 일은 차차 말해 줄 것이다. 정유문에서는 별일이 없었나?”
“예,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테니 알겠지만, 나는 이제 무림공적이 되었다.”
만사무가 눈에서 빛을 내며 물었다.
“그럼 이제 그들과 싸우게 되는 것입니까?”
하지만 사완악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불가능하다.”
“그 말씀은?”
“나는 아직 영겁사령존으로서의 진정한 힘을 다 얻지 못했다.”
사령문의 귀령들은 그것을 이미 알고는 있었다.
애초에 사완악을 처음 만났을 당시, 사완악은 자신이 영겁사령존이라는 것과 사령문의 신물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완악은 이어서 말했다.
“나는 이번에 정도맹의 많은 고수들과 싸웠다. 화산파나 무당파, 소림사의 고수들도 있었고, 맹주 양천상을 어쩔 수 없이 죽이게 됐다.”
가종후가 돌연 흥분하여 외쳤다.
“정도맹주 양천상이라면 천하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이 아닙니까? 과연 영겁사령존이십니다. 만세, 만세, 만만…….”
“닥쳐라, 가종후.”
“…….”
사완악은 가종후의 시무룩한 표정을 무시하며 말했다.
“내가 그들과 싸우며 깨달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재 정도무림에서 나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는 것. 하지만 다른 하나는 지금 나와 너희들의 힘으로는 정도맹과 사천회 중 정도맹 하나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령문의 수하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만사무, 묵영, 천화, 가종후의 얼굴에는 실망보다 오히려 기대의 빛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완악의 입에서 그들이 예상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너희에게 말했던 대로 내 힘의 부족함을 느꼈으니…… 그곳으로 나를 안내해라.”
그들은 사완악이 말한 그곳이 어디인지를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네 사람이 함께 고개를 숙였다.
“예, 지존.”
* * *
사완악과 귀령들은 북쪽으로 이동했다.
중원의 땅을 넘어 계속해서 올라가다 보니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이 거산의 형태와 분위기는 중원의 산들과는 사뭇 달랐다.
‘태산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용이군.’
태산은 중원에서 오악 중 으뜸이라 불리는 산이었으나, 눈앞의 거산은 그보다 더 웅장한 대자연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산의 정상 끝은 구름에 걸려 있었고, 그 아래로는 새하얀 만년설이 보였으며, 태고의 자연을 품고 있는 듯 깎아지른 절벽과 그 절벽마저 뚫고 나온 나무들이 무성했다.
산길은 물론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대자연의 거산이었지만, 사완악은 자세히 보니 일정한 간격으로 나뭇가지에 잎사귀와 비슷한 색깔의 녹색 매듭이 매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령문의 수하들은 그 매듭을 확인하며 익숙한 듯 산을 올랐다.
그들은 산의 정상으로 향하지 않았고, 산 중턱에서 방향을 꺾어 산의 반대편으로 돌아가듯 이동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한 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 나타났다.
휘이이이잉-! 휘이이이잉-!
이곳에 다다르자 돌연 강풍이 귀곡성(鬼哭聲)을 내며 불어왔고, 그 좁은 길의 바로 옆은 천 길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사령문의 수하들은 내공을 끌어올려 몸을 무겁게 하고서도 아주 천천히 그 길을 걸어갔다.
이때 뒤에서 따라오던 사완악은 뒷짐을 진 채 휘파람을 불며 웃음을 지었다.
“이야, 경치 한번 끝내주는군.”
사령문의 네 사람은 그런 사완악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 길에 불어오는 바람은 일반 사람이라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날아갈 만큼 강했고, 내공을 일으켜도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게다가 한 걸음이라도 잘못 디뎠다가는 끝을 알 수 없는 절벽 밑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절정의 고수라면 벽을 타고 다시 올라올 수 있겠으나, 이러한 환경이 주는 본능적인 공포심은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령문의 네 사람도 마찬가지라, 이 길을 지날 때는 언제나 조심, 또 조심했다.
하지만 사완악은 아무렇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고개를 내밀어 절벽 아래를 바라보거나 경공을 이용해 잠깐 절벽을 타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면서 정말 끝이 안 보인다고 해맑게 장난을 치고 있으니, 이건 단순히 무공의 고하(高下)를 떠나서 두려움이라는 감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굼벵이처럼 가지 말고 빨리빨리들 가라. 뒤에서 밀어 버리기 전에.”
네 사람은 사완악의 말에 이를 악물고 걸음을 빨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벼랑길이 끝나는 순간.
이번에는 사완악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니, 왜 이런 곳에 궁전(宮殿)이 있지?”
그건 정말 뜻밖의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사람의 침입을 불허하는 듯한 대자연의 산속에서 그 중턱의 벼랑길을 지나 왔더니, 갑자기 황제가 거주하는 듯한 거대한 궁전이 나타난 것이었다.
만사무가 사완악에게 말했다.
“지존, 이곳이 바로 북해빙궁(北海氷宮)입니다.”
사완악은 그 엉뚱한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만사무를 쳐다봤다.
“북해빙궁? 이게 북해빙궁이라고?”
북해빙궁은 아주 오래전, 중원 밖에 존재했다는 전설의 새외 문파(塞外門派)였다.
하지만 북해빙궁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존재했는지는 천기자의 강호역사서에서도 알 수 없다고 했고, 몇 개의 오래된 기록은 있으나 과연 실재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는 문파였다.
또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북쪽 바다 어딘가에 존재하고, 사시사철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는 극한(劇寒)의 땅에 있는 얼음 궁전이 바로 북해빙궁이었다.
하지만 강호역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중원의 북쪽에는 어떤 바다도 없고, 하나의 큰 호수가 있으나 눈과 얼음은 없다고 나와 있었다. 따라서 근래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무림인들이 북해빙궁은 누군가 만들어 낸 허구의 문파라고 믿고 있었다.
만사무가 말했다.
“북해빙궁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의 해석과는 조금 다릅니다. 북해라는 이름은 이 산의 이름인 북해산에서 따 온 것이고, 빙궁이라는 이름은 이 궁전 안에 얼음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장소가 있기 때문이지요.”
사완악은 팔짱을 끼고 만사무의 말을 듣다가 말했다.
“뭐, 일단 그렇다 치고. 사령문으로 안내하라고 했더니 왜 이곳으로 온 거야?”
“이곳이 바로 사령문입니다.”
만사무는 덧붙여 말했다.
“정확히는 과거 영겁사령존께서 북해빙궁을 멸하시고 사령문으로 만드신 것이지요.”
“호오?”
사완악은 흥미롭다는 듯 그 신비로운 궁전을 바라봤다.
“좋아. 일단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