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91
정도마신 90화
보통 궁전이라 하면 큰 울타리 안에 여러 개의 전각과 시설들이 존재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북해빙궁은 오로지 하나의 거대한 건물이었다.
궁전 안에는 굉장히 많은 방들이 있었고, 그 용도가 세분화되어 있었다.
사완악은 대충 소개를 받으며 궁전 내부를 살펴보았다.
“뭐야, 너무 별것 없는데?”
전설의 새외 문파 북해빙궁의 궁전이자, 영겁사령존이 사령문의 거처로 빼앗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내부.
굳이 이렇게 아무도 모를 신비로운 산곡에 존재할 이유조차 없는 건물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마지막 방에 이르러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대단하군. 도대체 몇 권이야?”
마지막 방은 다른 방들보다 열 배가량 넓었는데, 방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서재였다.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은 그 숫자가 짐작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가종후가 말했다.
“모두 십만 권입니다.”
“십만 권? 이게 다 사령문의 무공 비급인가?”
“아닙니다. 이곳에는 사령문의 무공은 한 권도 없습니다.”
“뭐?”
사완악이 의아한 얼굴로 가종후를 쳐다봤다.
“이곳에 있는 비급들은 모두 정파와 사파의 삼류 무공부터 상승의 무공, 천축의 무공과 북해빙궁의 절학들, 의서(醫書)와 진법, 그 외의 잡다한 서적들입니다.”
사완악은 감탄한 듯 말했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정파와 사파의 상승무공이라면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무공들도 있는 거야?”
가종후는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과거 영겁사령존께서는 천하일통을 거의 다 이루셨습니다. 당시 수많은 문파의 비급들을 탈취하셨지요. 물론 모든 무공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그들이 목숨과도 바꾸지 않을 비급들도 존재합니다.”
사완악은 조소를 머금고서 말했다.
“그런 엄청난 무공들이 있다면 네 무공은 왜 그 수준인 것이냐?”
가종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중에서 뛰어난 상승의 무공 비급들은 제가 읽어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혹은 사령문의 내공심법이 아니라 그들 문파의 내공심법을 익혀야 하는 무공들도 있었지요. 그리고 저는 무공보다는 술법에 더 관심이 많은지라…… 이 중에서 모산파의 술법이나 제갈세가의 진법들은 조금 공부했습니다.”
“그건 일리 있군.”
사완악은 가종후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상승무공은 비급만으로는 익힐 수가 없다. 훌륭한 스승도 없는 이곳에서, 뛰어난 무공이라고 비급만 붙잡고 있어 봐야 오히려 독이 될 뿐이었다.
“만사무 대형은 정파의 검법을 조사하기 위해 이곳의 비급들을 많이 봤던 것으로 압니다.”
사완악이 만사무에게 물었다.
“무적검천 때문인가?”
“예. 감사합니다, 기억해 주셔서.”
“내 수하의 원수를 기억하는 건 당연하지.”
만사무는 감동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천하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인 무적검천에게 반드시 갚아야 할 원한이 있다고 했다.
그것이 사령문의 무공을 익힌 이유였는데, 무공을 익힐수록 자신의 능력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리하여 사완악에게 그 원한을 대신 갚아 주기를 부탁했다.
일종의 충성을 바치는 대가였다.
하지만 만사무는 영겁사령존인 사완악이 훗날 그런 약속을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사완악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사령문의 무공은 어디 있지?”
가종후가 말했다.
“그것은 지하 공실(空室)에 있습니다.”
“지하도 있었어?”
“예. 지하는 삼 층까지 있습니다.”
사완악은 네 사람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한 가지 기이한 것은 계단을 한 층 내려가자마자 마치 겨울의 날씨처럼 차가운 한기가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지하 일 층은 무공을 연마할 수 있는 연무장이었고, 지상의 서책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약 백 권 정도의 서책들도 있었다.
“이곳은 사령문의 기초 무공과 술법들이 있는 장소입니다. 저는 이곳에 있는 비급들로 무공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이 층에는 사령문의 상승무공들이 있습니다. 만사무 대형과 묵영, 천화는 이 층에서 수련을 했습니다.”
이 층으로 내려가자 차가운 기운은 조금 더 심해졌다.
“구조는 지하 일 층과 같군.”
“예.”
사완악은 이 층의 비급들을 잠시 살폈다.
그중에는 만사무가 익힌 음살진공(陰殺眞功)과 백팔절혼쾌검(百八絶魂快劍), 묵영이 익힌 유유마령보(幽幽魔靈步)와 개암천살기(開暗千殺器), 천화가 익힌 일소수심공(一笑囚心功)을 포함하여 몇 가지의 무공들이 더 있었다.
사완악이 물었다.
“삼 층에는 영겁사령존의 무공이 있나?”
“맞습니다. 오직 지존만이 익히실 수 있는 무공들이 삼 층에 있습니다.”
“내려가 보지.”
하지만 네 사람은 모두 움직이지 않았다.
“뭐 해?”
“저희는 갈 수 없습니다.”
“왜?”
“지하 삼 층은 영겁사령존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 내려가면 목숨을 잃습니다.”
사완악은 그 말을 듣고는 웃으며 물었다.
“영겁사령존의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알지? 이 팔찌의 반응인가?”
천화가 말했다.
“아니요. 그 팔찌는 본래 저 삼 층에서 영겁사령존의 무공을 익혀야만 반응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 전에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어요.”
“누가?”
“저희를 강호에서 데려와 사령문의 문도로 받아 주신 사부님들이요.”
“아, 그랬었지.”
사완악은 예전에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천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그들이 죽은 이유가?”
“예. 그분들은 이 층의 무공만으로는 사령문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시고 힘을 합쳐 삼 층으로 내려가셨어요.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못하셨죠.”
“호오.”
사완악은 삼 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럼 올라가 있어. 다녀올 테니.”
천화가 다급히 사완악을 불렀다.
“지, 지존!”
“왜?”
“바로 내려가시는 건가요?”
“그럼 언제 내려가?”
“아, 아니, 제 말은…….”
천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하세요.”
사완악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흔들고는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계단을 내려갔다.
* * *
“이게 무슨 삼 층이야?”
지하 삼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몇십 층을 내려간다고 해야 할 만큼 길고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내려갈수록 지상 입구에서부터 내려오는 빛은 점점 사라졌고, 나중에는 완전한 어둠이 되어 한 치 앞의 사물도 구별할 수 없었다.
뚜벅, 뚜벅.
사완악은 그 어둠 속에서도 일정한 속도로 계단을 내려갔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오직 사완악의 발자국 소리만이 좁고 어두운 통로에서 울려 퍼졌다.
한 가지 기이한 것은 사완악이 한 번의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냉기(冷氣)가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냉기는 일반적인 냉기와는 다르게 뼈를 찌르는 듯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사완악은 처음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나중에는 염화신공을 한 차례 끌어올려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야 했다.
‘추위라…… 오랜만이군.’
내공에는 단계가 있다.
일 갑자의 내공은 보통 사람이 육십 년을 수련에 매진하여 얻을 수 있는 정도.
그것을 기준으로 백 년의 내공을 쌓은 후, 흔히 절정의 수준이라고 했다.
내공이 절정에 이르면 몸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노화가 늦춰지고, 수면과 식사를 줄여도 문제가 없으며, 뼈와 근육이 강해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현상 중 하나가 수화불침(水火不侵)이었다.
날씨와 사물의 온도를 구분할 수는 있지만, 추위와 더위를 느끼지는 않는 것이다.
사완악은 절정이 아니라 이 갑자를 넘은 초절정의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수화불침의 경지는 이미 예전에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계단을 내려갈수록 으슬으슬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까?
사완악의 눈앞에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그 문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마치 하나의 벽면을 보는 듯한 크기의 철문이었는데, 그 전체에 요괴(妖怪)와 마수(魔獸), 귀신이 가득한 귀신도(鬼神圖)가 양각되어 있었다. 사완악은 당장에라도 벽면을 뚫고 튀어나올 것 같은 귀신들의 조각상을 보며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꽤 요란스러운데?”
가까이 다가간 사완악은 문 중앙에 새겨져 있는 하나의 짧은 글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혼지관(邪魂之關). 사령(邪靈)을 지닌 자, 영원불멸의 사존(邪尊)이 되리라.]‘관(關)이라?’
관은 관문을 뜻했다.
사완악은 이 문 너머에 사령문의 진정한 힘을 얻기 위한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밌어지는군.”
사완악은 글귀 아래에 있는 귀문의 문고리를 바라봤다.
이 한 쌍의 문고리는 특이하게도 문에 양각되어 있는 한 귀신의 입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을 본 사완악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 문을 만든 사람은 매우 친절하군. 밀어서 여는 것이 아니라 잡아당겨서 여는 것이라고 알려 주는 건가?”
사완악은 거침없이 한 쌍의 문고리를 양손으로 잡아 힘껏 당겼다.
그것은 마치 귀신의 혓바닥을 뽑는 듯한 느낌이었다.
쿠구궁!
어떤 울림이 철문 전체에서 진동하고, 귀신의 비명처럼 끼이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사완악은 크게 내공을 사용하지 않아도 이 거대한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속으로 한 가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관문은 결코 무공을 시험하는 곳은 아니다.’
그렇다면 의아한 일이었다.
무공과 상관없다면 어째서 이전에 들어왔던 사령문의 전대 고수들은 이곳을 방문하고 나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 것일까?
그때였다.
“……!”
철문이 열리고 나타난 방은 위층과 마찬가지로 평범했다.
하지만 사완악이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철문이 ‘꽝!’ 하고 저절로 닫히더니, 갑자기 방 안 전체에 자욱한 안개가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사완악은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사이(邪異)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기운은 매우 음산하고 습한 것이었는데 곧장 귀가 멍멍해지고 가슴이 빨리 뛰면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악마의 숨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또한 사완악은 자신의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와 해골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체 중에는 서로가 서로를 죽인 자들도 있었고, 검을 들어 스스로 자신의 가슴을 찌른 자도 있었으며, 한쪽 벽에 이마가 터질 때까지 머리를 박다가 죽은 것처럼 보이는 자도 있었다.
안목이 뛰어난 사완악은 그 시체들의 의미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괴이한 기운은 사람의 정신을 망가뜨릴 만한 힘이 있다. 이들은 이 기운을 이겨 내지 못하고 상잔(相殘)과 자해(自害)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였다.
“참으로 재미있는 녀석이로군.”
갑자기 들려온 음성.
방 안 전체에 웅웅 울리는 그것은 결코 인간의 음성이 아니었다.
사완악은 조금 놀란 눈으로 정면을 바라봤다.
하지만 방 안에는 오직 안개만 가득할 뿐, 음성의 주인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어떤 형체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음성이 다시 한번 울렸다.
“구천살심공에 탈정미혼술…… 음? 사령녹리완천(邪靈綠彲腕釧)? 약간 이상하긴 하지만 이건 분명히 사령녹리완천의 힘이구나. 어떻게 네가…… 잠깐. 어째서 너에게 그 녀석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지? 그리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기운까지. 도대체 네 정체가 무엇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