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92
정도마신 91화
“나는 사완악이다.”
“사완악…… 사완악…… 이상한 일이도다. 너는 분명히 예언의 후손이 아닐진대.”
사완악은 신기한 표정으로 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당신은 어디서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귀신인가? 아무리 봐도 사람 목소리 같지는 않은데.”
“크핫핫…… 귀신이라. 재밌는 녀석이군. 좋다, 우리는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많은 것 같구나. 하지만 네가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 이야기는 들을 필요도 없다.”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떻게 통과하는 건데?”
“후후후, 겪어 보면 알 것이다.”
그 음성이 떨어지는 순간, 사완악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 * *
사완악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사완악은 하나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길의 주변은 온통 암흑이었고, 그가 걷고 있는 길만이 회색빛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완악은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이 회색빛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그 귀신의 음성이 다시 울렸다.
“네가 사혼지관에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강해지고 싶다. 나는 더 강해져야 한다.”
사완악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사완악이 의식적으로 내뱉은 대답이 아니라, 마음에서 떠오르는 대답이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어쨌든 그 대답은 사완악의 진심이었다.
사완악은 태산에서의 싸움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만약 현종이 없었다면 사완악은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을까?
설령 그곳을 빠져나온다 해도, 천기자의 계획을 거부하며 아무도 죽이지 않을 수 있었을까?
또한 태산에서 벗어난 이후, 끝없이 추격해 올 무림인들을 모두 상대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모두 ‘아니오’였다.
또한 사완악은 현종의 말이 신경 쓰였다.
그의 놀라운 무위를 보며 감탄하고, 그와 진심 어린 우정으로 난관을 헤쳐 나온 것에 큰 기쁨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현종과 헤어지고 사령문의 수하들을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 사완악의 마음속에서는 왠지 모르게 현종이 처음 했던 말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가 다음에 만날 때는…… 적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현종은 그 말을 스스로 부정하듯, 사완악을 위해 소림사의 무인들과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정말 만에 하나, 그 말대로 현종과 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염라대사 영환이 창안한 파신마장을 그저 몇 번 보는 것만으로 자신의 무공으로 다시 만들어 내는 그 괴물 같은 천재와 겨루게 된다면?
그 순간을 상상했을 때, 사완악은 입안이 바짝 마르고 가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건 사완악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완악은 자신보다 강한 네 명의 사부를 상대할 때도 두려운 마음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힘든 싸움이 있으면 더 투지가 솟아오르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현종과 싸운다고 생각하면 그런 자신감이 생겨나지 않았다.
심지어 아직 천기자와 그 제자들이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
사완악은 자신의 인생이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강해져야만 했다.
그 강해지는 방법으로 사완악은 영겁사령존의 진정한 힘이 숨겨져 있다는 사령문의 본거지를 찾아온 것이었다.
“강함이라…….”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존재의 음성이 다시 울렸다.
“네게 가장 소중한 것과 네가 가장 얻고 싶은 것을 바꿀 수 있는가?”
“가장 소중한 것?”
“대답하라. 바꿀 수 있는가?”
“물론 바꿀 수 있지.”
사완악은 그다지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리 소중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 존재의 음성이 말했다.
“조금 전의 네 선택으로 너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구나.”
“내게 그런 게 있었나?”
“후후, 네 눈으로 확인하라.”
그 순간, 사완악의 눈앞에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곳은 정유문…….’
그곳은 정유문의 장원이었다.
그리고 사완악은 그 장원의 마당에 쓰러져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사완악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안 돼!”
기이한 일이었다.
사완악은 이것이 환상이라거나 허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그녀의 죽음이 ‘진짜’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는 사완악의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존재의 음성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저 여인이었군. 그리고 너의 선택이 그녀를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그, 그럴 수가…….”
“그녀는 누구지? 너는 누구를 잃은 것이냐?”
“그녀는…….”
사완악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최고의 고기 요리를 해 주시는 분이었다.”
“크하하! 너는 너에게 최고의 고기 요리를 해 주는 여인을 잃었구나…… 음? 뭐라고?”
사완악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저분이 해 주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요리를 먹기 위해서는 유명한 객잔을 찾아가야만 하는데…… 상당히 귀찮아져 버렸군. 안타까운 일이다.”
“자, 잠깐. 지금 설마 단순히 고기 요리를 해 주는 사람이 너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인가?”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존재의 음성이 어딘지 모르게 당황한 듯한 기색으로 물었다.
“다시 기회를 주겠다. 네게 가장 소중한 것과 네가 가장 얻고 싶은 것을 바꿀 수 있는가?”
사완악은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 혀를 차며 고민에 잠겼다가 말했다.
“쯧…… 입맛에 맞는 고기 요리를 찾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그리고 어차피 나는 정유문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나는 강함을 택하겠다. 시험은 이게 끝인가?”
“…….”
그 존재의 음성이 잠시 침묵했다.
본래 이것은 사혼지관의 첫 번째 시험인 독심(毒心)이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것이 존재했다.
자신의 선택으로 그것을 잃었을 때 오는 죄책감.
그 죄책감을 외면하며 다시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면 합격이었다.
하지만 그 소중한 것이 사랑하는 여인이나 가족, 돈, 사부, 친구, 추억 따위가 아니라 고기 요리를 해 주는 하인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좋다. 넌 실로…… 독심을 지닌 자로구나. 합격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사완악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환상이었다고?’
신기한 일이었다.
다른 것들은 모두 똑같이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환상만큼은 실제 상황인 것처럼 인식되었다.
언제나 냉정하고 상황 파악이 뛰어난 사완악조차 실재와 환상의 부조화를 느끼지 못했다.
그 존재의 음성이 다시 울렸다.
“시험은 총 세 가지다. 두 번째 시험, 인내를 시작하마.”
그 음성과 함께 사완악의 앞에 이번에는 한 명의 악사(樂士)가 나타났다.
악사는 퉁소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퉁소에는 악마의 형상을 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악사는 사완악을 보고 기괴한 미소를 짓더니, 곧 퉁소를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끼이잉! 끼야아아아앙!
괴이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가 퉁소에서 흘러나왔다.
그 퉁소 소리는 점점 커지면서 귀청이 찢어질 듯 날카로워졌고, 온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소름 끼치는 음향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시끄럽군.’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퉁소 소리는 계속해서 커져 갔고,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치 수천 개의 바늘이 전신의 모공(毛孔)을 쑤시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큭……!”
사완악의 눈이 부릅뜨이며 처음으로 괴로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엄청난 고통이었다.
퉁소 소리는 귓가를 파고들어 오장육부를 헤집는 것 같았고, 온몸을 찔렀던 바늘은 이제 통증 대신 가려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수천 마리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가려움이었고, 뼛속까지 긁어 파내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다.
“으으-!”
사완악은 창백해진 얼굴로 온몸을 세차게 떨었다.
이때 그 존재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만두고 싶다면 저 악사의 퉁소를 빼앗으면 되느니라.”
사완악은 그것이 곧 시험의 실패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사완악은 이런 고통에 굴복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퉁소의 곡조(曲調)가 격렬해지자 생각이 달라졌다.
“커어어억!”
사완악은 태어나서 이런 고통을 처음 느껴 봤다.
스쳐 가는 공기마저 온몸의 피부를 갈기갈기 찢어 놓고, 몸 안의 모든 혈관들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통증에 허리가 꺾이고 발작이 일어났다.
사완악은 사부 사마소에게 군림혼혈공을 배우며 어떤 고통에도 태연할 수 있는 훈련을 해 왔지만, 지금의 고통은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사완악의 입가에 돌연 미소가 맺혔다.
“다…… 행…….”
그의 입에서는 놀랍게도 다행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무엇이 다행이지?”
그 존재의 음성마저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사완악은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퉁소의 곡조가 점점 잔잔해지더니 악사는 연주가 끝났다는 듯 한 차례 고개를 숙이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완악은 쓰러진 채로 잠시 꿈틀거리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이 다행이라는 것이었는가?”
다시 한번 묻는 음성에 사완악은 안도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곡조가 격렬해질수록 고통이 심해져서 다행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것은 곧 언젠가는 연주가 끝나게 된다는 말이기 때문이지. 기약 없는 고통이었다면 마음이 꺾였을지도 모를 뻔했다.”
“너는…… 참 특이한 놈이군.”
두 번째 시험은 인내(忍耐).
시험은 간단하지만, 그 고통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독한 사람도 이지(理智)를 상실하고 영혼이 파괴될 정도의 극심한 고통이었다.
사완악은 그 와중에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사완악이 문득 물었다.
“지금까지 이 관문을 통과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지?”
“도전한 사람은 백 명. 첫 번째 시험은 일흔아홉 명. 두 번째 시험은 열세 명이 있었다.”
“마지막 시험은?”
“한 명이 있었다.”
사완악은 내심 놀라웠다.
애초에 사혼지관의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이곳의 냉기를 버틸 만한 내공과 사이한 기운에 정신을 잃지 않는 냉정함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런 자격을 갖춘 사람이 지금까지 백 명이나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이 고통스러운 두 번째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열세 명이나 된다는 것은 더욱 놀라웠다.
사완악은 새삼 세상은 넓다는 말을 실감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마지막 시험에서는 단 한 명만 통과했다는 것은…….
어떤 시험일지 쉽게 짐작하기도 어려었다.
“그 한 사람은 삼백 년 전의 영겁사령존이었나?”
“그렇다.”
“그렇군. 그럼 시작하지.”
“클클. 정말 두려움을 모르는 놈이군. 하지만 마지막 시험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완악은 솔직히 끄덕였다.
“그럴 것 같네.”
“좋다. 마지막 시험은 마성(魔性)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