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datory Soul RAW novel - Chapter 150 (6)
“응, 레아.”
어느새 꺼떡거리며 솟아오른 성기를 손으로 슥슥 문지르던 이샤칸은 굵직한 귀두를 음부에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계속 이름 불러줘…….”
짐짓 애틋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흉흉한 기세로 달려드는 성기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굵은 성기가 좁은 틈을 벌리며 안으로 끝없이 들어왔다. 이미 수없이 받아본 성기이건만, 레아는 놀라서 파드득 발버둥 쳤다.
너무 뜨거웠다. 그의 체온이 거의 끓는 듯이 올라가 있는 탓이었다. 배 안에 불덩이를 집어넣은 것만 같았다.
“아윽, 아, 이샤칸, 너, 너무, 흐으……, 이거, 뜨거워……!”
성기와 맞닿아있는 점막이 홧홧하게 달아올라서 근지러운 감각마저 들었다. 어쩔 줄을 모르는 레아의 귓불을 빨며 이샤칸은 뿌리 끝까지 성기를 밀어 넣었다.
고환과 음모가 닿을 정도로 깊게 꾹 누르듯 삽입한 다음, 너른 가슴을 부풀렸다가 줄이길 반복하며 숨을 골랐다. 얼마간 그러고 있다가, 갈라진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레아…….”
레아는 팔을 한껏 벌려 등을 끌어안아주었다. 땀에 젖은 피부를 손으로 쓸어주자, 미끈한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때부터 이샤칸은 날뛰기 시작했다. 그는 레아의 머리 양옆에 손을 짚고서, 위에서 아래로 허리를 내리찍었다. 귀두가 걸릴 만큼 길게 빼냈다가, 퍽 소리가 날 만큼 끝까지 박아 넣는 행동을 빠르게 반복했다.
격렬하게 찍어 올리는 탓에 상반신이 엉망으로 뒤흔들렸다. 가슴도 따라서 들썩였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게 민망해서 손으로 붙잡으려다가, 이샤칸이 먼저 덥석 움켜쥐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젖꼭지를 함부로 쥐어뜯었다.
“하앙, 하, 읏……! 아앙……!”
젖은 살갗이 부닥치는 소리가 질척했다. 박는 힘은 갈수록 강해져서, 그가 쑤실 때마다 속절없이 신음을 내질렀다.
뜨거운 성기를 마구잡이로 쑤셔대니 눈앞이 핑 돌았다. 불꽃 안에 갇혀서 타들어 가는 듯했다. 온통 뜨거워서, 몸속의 피가 빨리 도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레아는 평소보다 이르게 절정에 올랐다. 다리로 이샤칸의 허리를 꽉 휘감았다. 아래가 꽉 조여들며 발작처럼 경련이 일었다. 바르르 진동하는 내벽을 느꼈을 텐데도, 이샤칸은 멈추지 않았다.
불로 만든 몽둥이가 절정에 달한 안쪽을 계속해서 쑤셨다. 쾌감이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끝을 모르고 높아지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깨닫기도 전에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하으악……!”
밑에서 팍 터지는 느낌이 났다. 물 같은 애액이 쏟아졌다. 소파가 다 젖도록 흘러내리는 애액에서 지독하게 야한 냄새가 올라왔다. 흠뻑 젖은 덕분에 성기가 음부를 쑤실 때마다 물장난 치듯 축축한 소리가 났다.
잠깐만 멈춰 달라고, 그만 하라고 흐느꼈으나 이샤칸은 들어주지 않았다. 짧고 빠르게 드나들던 성기가 가장 깊은 곳에 쿡 틀어박혔다. 이샤칸이 한껏 눈매를 찌푸렸다. 그의 목에 핏줄이 올라왔다.
“큿, 아아…….”
성기가 꿀럭 정액을 토해냈다. 레아는 벌벌 떨면서 쏟아지는 액을 받아냈다. 뜨겁게 달아오른 몸만큼 정액도 뜨거워져 있어서, 더운 목욕물을 안에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하아, 하…….”
사정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거칠게 신음하던 이샤칸은 사정하는 동안 성기로 몇 번 더 안을 쑤셨다. 그때마다 레아의 몸이 파득파득 튀었다.
죽을 것 같았다…….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눈꼬리를 타고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바들거리는데, 기가 막힌 말이 들려왔다.
“벌써 울어……?”
눈매에 발갛게 열이 오른 이샤칸이 레아의 눈물을 핥아먹으며 야릇하게 속삭였다.
“어쩌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다 죽어가는 레아는 믿기지 않겠지만, 이샤칸은 지금 굉장한 자제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가 마신 가짜 사랑의 묘약은 강력한 미약이었다. 짐승용 발정제와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여서, 육욕만큼은 확실히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평소 이런 약물이 잘 듣지 않아서 조금 방심했다. 이번에도 적당히 괜찮을 것이라 여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약효가 강해졌다.
사실 여관에서 왕궁까지 어떻게 온 것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저 본능적으로 반려를 찾아 헤맸고, 정신 차려보니 왕궁에 도착해있었다. 가장 먼저 침실로 갔으나 레아가 없어서, 그때부터는 짐승처럼 냄새와 기척을 쫓았다.
조급하게 반려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혹시 그녀가 도망가더라도 금방 찾아내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기어코 서재에서 레아를 찾아낸 이샤칸은 그즈음 단단히 결심하고 있었다. 얼굴만 보고 가겠다고 말이다.
점점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감각이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정기 때 느꼈던 열기보다 더 심했다. 말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이성의 끈은 빠르게 가늘어져 갔고, 레아가 작은 숨결만 내쉬어도 툭 끊어질 듯했다.
이런 상태로 레아와 몸을 섞었다간 제멋대로 굴어버릴 것이 뻔했다. 이샤칸은 쿠르칸이었고, 레아는 인간이었다. 평소 성교할 때 그녀에게 상처 입히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는데, 지금은 뇌가 흐물흐물해져서 제어가 되질 않았다. 밑바닥을 드러내버릴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제 반려는 겁이 없었다.
남들이면 죄다 도망갔을 상황이건만, 레아는 이샤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희고 가느다란 손을 낚아채는 것은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었다. 오래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샤칸은 항상 레아가 저에게 내민 손을 잡고 싶었다.
“흐, 아응, 그, 그만……. 아흑…….”
우는 레아를 어르고 달래가며 계속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레아는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배 위에 올려놓고 기승위로 쳐올리자 레아가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하고 휘청거렸다. 그러다 이샤칸의 가슴팍 위에 엎어져서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서 제발 천천히 해달라고, 이제 그만 싸달라고 애원했다.
반려의 요구를 하나도 들어줄 수가 없는지라, 이샤칸은 미안함을 가득 담아 그녀의 밑을 정성껏 쑤셔주었다.
레아가 좋아하는 젖꼭지를 만져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통통하게 올라온 젖꼭지는 아이를 낳고 나서 좀 더 커지고 색이 붉어졌다. 잡기 좋아진 젖꼭지를 손으로 주무르고 있자니 입에 침이 돌아서, 결국 잘근잘근 씹고 빨아주기도 했다.
높은 목소리로 교성을 지르던 레아가 쾌감을 견디지 못하고 몸부림쳤다. 이샤칸의 체온이 올라가면서 성기가 뜨거워진 탓에, 오늘따라 더 잘 느끼고 잘 우는 것 같았다.
너무 과하게 느낀 것인지 레아가 커다랗게 몸을 비틀었다. 죽을힘을 다해 이샤칸을 밀어내다가 기어코 성기를 뽑아내곤, 소파에서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흑, 으흑…….”
카펫 위에 떨어진 레아는 엉금엉금 기었다. 어떻게든 도망가려는 반려를 보며 이샤칸은 사납게 웃었다.
엉덩이를 높이 치들고 살랑거리면서 기어가는데 역효과만 날 뿐이었다. 하얀 엉덩이는 하도 쳐올린 탓에 붉게 물들어있었다. 허벅지에는 레아와 이샤칸이 싸질러놓은 액체가 허옇고 찐득하게 뒤섞여서 엉망으로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레아.”
개처럼 올라타 성기를 쑥 밀어 넣었다.
“아흐윽……!”
레아가 우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자르르 떨리는 등줄기를 쓸어주며 달뜬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직도 아래가 터질 것 같아.”
촉촉한 점막 안에 파묻힌 성기가 진탕 녹아내렸다. 아찔한 쾌감에 이성을 놓지 않으려 애쓰며 그녀의 뒷목을 덥석 깨물었다. 레아의 몸이 펄쩍 튈 정도로 아프게 깨물어서, 잇자국을 선명하게 남겼다.
여리고 흰 피부는 이미 엉망이었다. 붉은 점과 잇자국, 그리고 손자국 따위가 난잡하게 찍혀있었다. 자신의 흔적을 가득 달고 있는 모습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흥분감이 올라왔다. 자꾸만 더 나쁜 짓을 하고 싶어졌다.
밀려드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손으로 가는 팔목을 붙잡았다. 다리로는 날씬한 종아리를 짓눌러서 레아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결박했다. 온통 이샤칸에게 뒤덮인 레아는 뜨겁다고 흐느꼈다.
“너무 뜨거워……. 아아, 흑, 아픈 거 같…….”
“하아, 왜, 아파? 어디, 응?”
“아, 아윽, 배, 배가, 안쪽, 너무 간지러워, 이샤칸, 흐으…….”
“간지러우면, 후으, 더 긁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웃음 섞인 말에 레아가 몸을 바둥거렸다. 그러나 사지가 짓눌려있어 고작해야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조금 꼼질거린 게 전부였다.
발그레하게 물든 손끝으로 카펫을 애타게 긁는 모양을 보며 아래를 거세게 들쑤셨다. 결국 레아는 더 이상 아프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끊어진 신음만 흘렸다.
“으, 으우, 아앙, 힉…….”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반듯한 선의 어깨가 움찔움찔 떨렸다. 흐트러진 은색 머리카락을 헤집고 욕심껏 핥고 깨물었다.
어깨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조용히 걷는 레아를 볼 때마다, 덥석 물고 싶어서 안달 내던 곳이었다. 당분간 목깃이 턱선까지 올라오는 드레스만 입어야 할 수준으로 자근자근 씹어놓고서야 겨우 성이 찼다.
흐느끼는 반려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산 채로 집어삼키고 싶었다. 짐승의 본성에 가까워질수록 위험한 생각들이 자꾸만 번뜩 머릿속을 지배하려 했다.
이렇게 괴롭힐 것 같아서 하지 않으려 한 것인데.
착한 반려 앞에 아픈 제 모습을 내보이며 동정을 구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척하며, 이샤칸은 비죽비죽 웃었다.
몸에 힘이 다 빠졌는지, 레아는 다리를 세우지 못했다. 허벅지를 벌린 채로 바닥에 엎어졌다. 개구리처럼 활짝 벌어져 엎어진 자세는 그녀가 가장 수치스러워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배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아랫배를 꾹 눌러보았다. 납작한 배 위로 드러난 성기의 윤곽을 더듬으며 웃었다가, 손을 좀 더 아래로 내렸다.
손가락 끝에 조그만 음핵이 걸려들었다. 피가 몰린 음핵은 안쓰러울 정도로 꼿꼿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자위를 시켜주듯 세게 문질렀다.
예민한 부위를 아플 정도로 짓이기는 손길에 레아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고통스러워 내지르는 비명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이샤칸을 불렀다.
“이, 이샤칸, 하으, 잠깐, 잠시만…….”
뺨을 깨무는 이샤칸에게 레아가 간절히 말했다.
“아……. 싸, 쌀 것 같아……. 물, 나와…….”
이제 레아는 극도로 흥분했을 때 아래에서 쏟아내는 게 소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걸 물을 쌀 것 같다고 헐떡이며 말하다니. 단정한 입술이 하는 음탕한 말에 이샤칸은 더욱 흥분해버렸다.
“나도, 흣, 쌀 것 같아, 레아…….”
부끄럽지 않게 같이 싸자고, 귓불을 깨물고 귀 속에 혀를 밀어 넣어 핥으며 연신 속삭였다. 레아는 마구 고개를 내저었으나, 쾌감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음핵을 손으로 꼬집었다가 세차게 문지르는 순간, 총명하던 눈에서 동공이 풀리며 빛이 사라졌다. 헤 벌어진 입술에서 타액이 흐르고, 힉힉거리는 새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경련하는 몸이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했으나, 이샤칸은 놓아주지 않았다. 꽉 끌어안고서 끝까지 성기를 처박았다. 레아는 소리도 못 내지르고 폭력적인 절정에 달했다.
“……!”
터져 나오는 물줄기에 손이 흥건하게 젖었다. 젖은 손으로 부어오른 음핵을 만져주며 정액을 쏟았다.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는지, 결합부 사이로 정액이 비어져 나왔다.
조륵, 하고 남은 물을 흘린 레아는 가엾을 정도로 떨어대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잠깐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힘없이 흔들리는 몸을 끌어안고 안을 살살 들쑤시며 애타게 속삭였다.
“레아, 일어나……. 응……?”
아직도 몸 안의 열기는 빠질 줄을 몰랐다. 세 번 정도 싸질렀으면 조금은 제정신이 될 줄 알았는데,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언제 사정했냐는 듯, 성기는 금세 단단해졌다. 딱딱하게 치솟아 레아의 안을 쿡쿡 쑤셔댔다.
본능이 속삭였다. 이걸로는 부족하다고. 더 심한 짓을 해야 한다고. 반려의 배가 부풀어 오를 때까지 씨물을 잔뜩 싸질러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 냄새로 적셔 놓아야 한다고.
아래가 지끈하게 저려왔다. 성기에 느껴지는 짜릿한 감각에 이샤칸은 이를 악물었다. 평소에는 참아낼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애써도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으응…….”
겨우 정신을 차린 레아가 움찔거리며 신음했다. 이샤칸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옆으로 몸을 뉘었다. 은색 머리카락에 얼굴을 부비며 용서를 구했다.
“하아, 미안, 미안해, 레아, 후우, 사랑해…….”
미안하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마구 뒤섞어서 뱉어냈다. 불길함을 느낀 레아가 뒤늦게 허우적거렸으나,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성기의 뿌리가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좁은 점막을 밀어내며 부푸는 감각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가진 씨물을 전부 뿌리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에서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었다. 쿠르칸에게 남겨진 짐승의 흔적이었다.
“아악, 잠깐, 안 돼……!”
놀란 레아가 몸을 뒤틀었다. 최근에는 성기를 부풀린 적이 없었다. 레아의 몸에 무리가 가는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이샤칸은 스스로를 잘 통제하는 편이었고, 레아가 임신한 이후로는 그의 기준으로 꽤 신사적인 성교만 해왔다.
그러다 갑자기 이렇게 격한 성교를 하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부푼 성기를 받으니 겁이 났는지, 레아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아아, 이샤, 이, 이샤…….”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이샤, 이샤, 하며 울었다. 이샤칸은 씨근덕거리며 레아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하아,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마…….”
그녀가 자신을 이샤라고 부를 때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아래를 조금 흔들었다가, 레아가 자지러지며 싫어하기에 겨우 멈췄다. 겁먹은 레아를 보듬어 달랬다.
“미안해……. 지금 빼면, 다치니까……. 큿, 밑에 조이지 말고…….”
얼른 싸겠다고, 그러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거짓말했다. 쿠르칸이라면 아무도 믿지 않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레아는 주먹을 쥐고서 이샤칸의 팔뚝을 내려쳤다. 힘이 다 빠진 손인지라 주먹질은 전혀 위협적이지 못했다. 레아의 배를 끌어안고 있던 이샤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더 흥분되는데…….”
열기가 스며있는 속삭임에 레아는 얌전히 손을 아래로 내렸다. 이샤칸은 슬쩍 웃으며 눈물로 촉촉한 뺨을 핥았다.
“이거 싫어…….”
레아가 서럽게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계속, 흣, 으윽……. 너무 뜨거워서…….”
오랫동안 성기를 품고 있어야 하는데, 미약 때문에 뜨거워진 것을 계속 넣고 있으려니 많이 힘든 듯했다. 이샤칸은 미안하다고 말하며 손으로 볼록해진 레아의 배를 쓸어주었다.
레아가 입술을 깨물었다가 손을 맞잡았다. 손가락을 서로 단단히 얽고서, 고개를 뒤로 돌려 이샤칸과 눈을 마주했다. 물기 젖은 제비꽃 눈동자가 순하게 이샤칸을 담아냈다.
“당신……. 이제 좀 괜찮아……?”
쏟아지는 정액이 뜨거워서 움찔대면서도, 레아는 이샤칸을 걱정했다.
“괜찮아질 때까지 내가 계속…… 같이 있어줄 테니까…….”
지금 저를 걱정해줄 때가 아닐 텐데.
순진한 말에 아랫배가 돌처럼 단단해졌다. 남의 속사정도 모르고, 레아는 끙끙거리며 어떻게든 이샤칸의 씨물을 받아내고 열기를 달래주려 애썼다.
더 심하고 나쁜 짓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제어가 느슨해진 몸이 또다시 본능대로 움직이기 전에, 눈을 질끈 감고서 쾌감을 죽이려 애썼다.
레아의 체향이 느껴졌다.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후각도 민감해진 모양이었다. 평소보다 훨씬 폐부 깊숙이 들어차는 향이 어지러웠다.
꿈을 꾸는 듯 기분이 몽롱했다. 녹진한 틈에 파묻힌 성기가 끝없이 정액을 뱉었다. 쾌감에 녹아버린 머리도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뱉어냈다.
“예뻐, 레아. 내 반려…….”
“…….”
“사랑해, 읏, 하아, 사랑해……. 괴롭혀서 미안해…….”
그녀가 저를 이샤라 불러서 그런 것인지, 미약에 정신 못 차리고 취해버려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한없이 나약해진 채, 혀가 풀어진 것처럼 마구 속삭였다.
부드럽게 뭉크러져 쏟아지는 밀어에 레아의 귀가 빨개졌다. 그게 너무 좋아서, 일부러 더 바짝 붙어서 속삭였다. 레아의 숨소리가 조금씩 흔들렸다. 그러다 이샤칸이 사랑해, 하고 속삭이며 안에 정액을 쏟아낸 순간.
“흑…….”
레아는 가느다란 신음을 흘리며 몸을 확 웅크렸다. 온몸을 바르르 떨면서 달콤한 소리를 몇 번이나 내었다. 점막이 성기를 잘라 먹을 듯 세게 조였다가 풀어지길 반복했다.
이샤칸은 꼼짝하지 못했다. 레아가 제 목줄을 쥐고 흔드는 것처럼 굳어버렸다가, 억눌린 신음을 터뜨렸다.
“하, 큿, 레아…….”
결국 간신히 자제하고 있던 욕구가 터져버렸다. 눈가로 열이 뜨끈하게 올랐다. 끓어오르는 열기에 마지막 남은 이성이 녹아 사라졌다.
“조금만 더 괴롭힐게.”
말을 하고 나서 움직였는지, 말을 하면서 움직였는지는 모호했다. 이샤칸은 퍽 소리가 나도록 성기를 처넣었고, 그때부터 지극히 본능에 충실하게 미친놈처럼 허리를 흔들었다. 부푼 성기가 안을 찢을 듯이 벌리며 마구잡이로 들쑤셨다.
버티지 못한 레아가 짧게 의식을 잃어도 멈추지 않았고, 부풀었던 성기가 마지막 정액을 뱉고 다시 줄어든 뒤에도 계속 쑤셔 박았다.
달이 지고 어둠이 물러나, 새벽 어스름이 밀려올 때까지도 정사는 이어졌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이르고 나서야, 이샤칸은 제정신을 차렸다.
***
“젠장, 서두르지 못하겠느냐! 다들 느려터졌군…….”
헤롯트는 벌컥 성질을 부렸다. 시종들이 불에 덴 것처럼 화드득 움직였다. 누가 봐도 급히 서두르는 모양새였으나, 헤롯트의 마음에는 차지 않았다.
그는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달려 나갔다. 기사들만을 데리고, 말에 올라 급하게 에스티아 왕궁을 빠져나갔다. 야반도주하듯 떠나는 꼴은 일국의 왕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했다.
하지만 자존심 따위를 챙길 때가 아니었다. 헤롯트는 잘게 경련하는 손으로 말에게 연신 채찍을 내려쳤다.
유디아가 죽었다.
야만족의 왕을 제 것으로 만들고 오겠다며 호기롭게 왕궁을 나섰던 그녀는 본래 오늘 밤 계획에 성공했어야 했다. 그러나 아름답게 치장하여 야만족의 왕을 찾아간 유디아는 예상보다 훨씬 일찍 귀궁했고……. 몸뚱어리만 돌아왔다.
유디아의 시체를 들고 온 이는 함께 출궁했던 시녀와 기사였다. 그들은 야만족이 있다는 여관 근처에서 유디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여관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기에 가까이 다가갔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커다란 덩어리가 쿵 하고 떨어지더라는 것이었다. 목이 잘려나간 유디아의 몸이었다.
시녀와 기사는 혼비백산하여 왕비의 시신을 수습해 헤롯트에게 달려왔다. 물론 간 크게 여관 안으로 들어가 머리를 찾아올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유디아의 시신을 보자마자 헤롯트는 일이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만찬장에서부터 느끼고 있었다.
어린 야만족이 제 아비와 똑같은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목에 칼을 들이대었을 때.
그때 레아가 만류하지 않았다면, 헤롯트는 이미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렸을 터였다. 유디아와 헤롯트의 차이가 있다면, 그녀에게는 야만족을 말려줄 레아가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야만족들이 헤롯트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그들이 추적해오기 전에 도망쳐야 했다. 기사들과 정신없이 말을 달리며 헤롯트는 생각했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유디아가 사용한 묘약이 먹히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미 유디아와 헤롯트는 바르칼트에서 여러 번 묘약을 사용해왔다.
가지고 싶은 자에게 묘약을 써서 망가뜨리고, 제 것으로 소유했다. 그런 만큼 누구보다 능숙하게 묘약을 다루었다. 유디아가 실수했을 리 없을 텐데…….
“……!!”
말이 갑자기 앞발을 번쩍 들어 올렸다. 흥분하여 날뛰는 말을 진정시키던 헤롯트는 바닥으로 낙마했다. 숨이 턱 막히는 고통이 들었다. 흙바닥에서 꿈틀거리던 그가 기묘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헤롯트는 혼자였다. 스산한 달빛이 드리운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함께 말을 내달리고 있던 기사들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헤롯트가 타고 왔던 말 또한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비현실적인 일에 고개만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길의 저편에서 탁탁 발소리를 내며 가볍게 달려왔다. 그의 손에는 둥그런 무언가가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었다.
날렵한 체구의 남자는 헤롯트 앞에 멈춰 섰다. 역광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헤롯트는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남자가 보조개가 쏙 파이도록 해죽 웃으며 손에 쥔 것을 내보였다.
“저기, 이거는 안 챙겨가십니까?”
유디아의 머리였다.
“흐어억……!”
헤롯트는 비명도 제대로 못 내지르고 허우적거렸다. 그와 동시에 기척을 숨기고 있던 쿠르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체격의 쿠르칸들은 헤롯트를 둘러싸고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사타구니가 축축해졌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소변을 지린 것이다. 자못 애처로운 모습이었으나, 그를 동정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뮤라가 날카로운 웃음을 터뜨리며 헤롯트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그리고 곧바로 바닥에 처박았다. 쿵쿵 소리가 연속하여 울렸다.
“끄어…….”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헤롯트가 벌벌거리며 신음했다. 뒷짐 지고 구경 중이던 모르가가 신경질을 냈다.
“적당히 하게나. 뒷쿠르칸 생각도 해야지.”
저놈 때문에 며칠간 왕궁에도 못 들어오고 바깥에서 새벽이슬 맞아가며 고생한 걸 생각하면 아주 이가 갈린다며, 모르가는 부들댔다. 뮤라는 배시시 웃으며 헤롯트를 흔들어 보였다.
“아이, 그래서 이마만 깼잖아요. 아직 안 죽었습니다.”
“맞습니다. 뮤라가 이놈 때문에 이마가 깨졌는데…….”
하반이 얼른 뮤라의 편을 들었다. 짜증 난 모르가가 한마디 더 하기 전에, 게닌이 사이에 끼어들어 중재했다.
“일단 왕궁으로 데려가는 게 좋겠습니다. 이샤칸 님께서도 손을 대고 싶어 하실 겁니다.”
“…….”
쿠르칸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가짜 묘약을 마신 이샤칸은 흉포한 기세로 사라졌었다. 뮤라는 근심 가득한 눈으로 저 멀리 보이는 에스티아 왕궁을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레아 님 괜찮으려나.”
뮤라의 중얼거림에 같이 있던 쿠르칸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했다.
안 괜찮을 것 같은데…….
***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들 즈음에야 의식을 차렸다. 레아는 한참 동안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었다. 지난밤의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이렇게까지 한 건 처음이었다. 이샤칸의 발정기에도 몸을 섞었지만, 그때보다 어젯밤이 더 심했던 것 같았다.
이제 변태스러운 짐승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했다. 더 심한 말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레아는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하루를 통째로 날렸으니 할 일도 잔뜩 밀려있었다. 슬슬 일어나서 움직여야 할 때였다. 레아는 느릿느릿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으로 내려섰다.
“……악!”
그리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발을 바닥에 딛는 순간 다리가 푹 꺾인 것이다. 러그 위에 주저앉은 레아에게 뒤늦은 고통이 밀려왔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돼서, 멍한 정신에 모르고 있던 고통들이었다.
레아는 손으로 허리를 부여잡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고, 아래도 퉁퉁 붓다 못해 욱신거렸다.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레아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대참사의 원인을 외쳤다.
“이샤칸……!”
그러자 정말로 이샤칸이 나타났다. 손에 작은 자루를 들고 침실에 들어선 그가 황급히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레아를 안아 올렸다.
“언제 일어났어. 누워있지 않고…….”
마음 같아서는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목이 너무 아팠다. 따끔거리는 목을 움켜쥐니 이샤칸이 얼른 물을 가져다주었다. 답지 않게 행동 하나하나에서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본인도 스스로의 잘못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미지근한 물로 바짝 마른 목을 적신 레아는 이런저런 말을 하는 대신 그냥 딱 하나만 물어보았다.
“이제 괜찮은 거지?”
이샤칸은 묘한 눈으로 레아를 바라보았다. 조금 쑥스러워서 시선을 피했다.
“많이 걱정했으니까……. 당신이 그런 적은 또 처음이기도 하고…….”
이샤칸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말없이 레아를 꽉 끌어안았다가, 나직이 말했다.
“씻으러 갈까.”
레아는 그에게 안겨서 욕실로 향했다. 이샤칸이 들고 온 자루에는 약초가 들어있었다. 이샤칸은 따뜻한 목욕물에 약초를 붓고, 레아의 옷을 벗겨주었다. 그제야 제 몸을 확인한 레아는 기겁했다.
잇자국과 손자국, 입술로 빨아들인 순흔으로 온몸이 난리였다. 빈 곳을 찾기가 어려울 만큼 얼룩덜룩해진 몸은 유두와 음부가 특히 퉁퉁 부어있었다.
“…….”
충격받은 레아가 말을 잃어버리자, 이샤칸은 조용히 레아를 욕조에 넣어주었다.
“상태가 이러해서……. 약욕을 하고 심한 곳에는 연고를 바를 거야.”
당신이 이러고도 사람이야, 하고 말하려던 레아는 관두었다. 그는 쿠르칸이기 때문이었다.
살다 살다 성교 때문에 약욕을 하게 되다니. 믿기지 않는 경험이었다. 레아는 욕조 턱에 팔을 걸치고 멍하니 늘어졌다.
이샤칸은 약초 향이 솔솔 올라오는 물로 어깨를 적셔주고, 머리도 감겨주었다. 그에게 시중을 받다가 슬쩍 물어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왜 당신이 미약을 먹었어.”
“사랑의 묘약인지 확인하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꺼낸 말에 레아는 눈을 크게 떴다. 이샤칸은 레아를 씻기며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바르칼트가 사랑의 묘약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을 때, 이샤칸은 신중하게 접근했다.
사랑의 묘약은 결코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르가조차도 만들기 어려워하는 묘약이었다. 그들이 가진 묘약은 가짜라는 것이 쿠르칸들의 중론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만에 하나 진짜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그래서 근래 계속 쿠르칸들 데리고 출궁한 거야? 이거 조사하느라고?”
“맞아. 확실하게 하려 했지.”
바르칼트에게 거짓 묘약을 넘긴 도마리를 수색했다. 그런데 조사 시간이 길어지자, 이샤칸은 그냥 직접 맛봐서 확인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먹어보니 역시 거짓이었다. 하지만 가짜 묘약은 사람의 마음을 훔치진 못해도, 강력한 미약의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바르칼트의 왕과 왕비는 아름답고 정사도 능숙하니……. 미약을 먹고 황홀한 하룻밤을 보낸 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마음을 주게 되었겠지.”
육욕으로 벌어진 일을 사랑의 묘약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착각한 것이다. 하여 용감하게 에스티아로 들고 와선 레아와 이샤칸에게 쓰려 했다가 처참히 실패한 것이다.
“사랑의 묘약…….”
설명을 들은 레아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이샤칸이 흘긋 얼굴을 살피는 게 느껴졌다. 그가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레아가 잔인한 일을 겪도록 만든 원흉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불안해할 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상황이 되고 나서야 말해주고 싶었을 터였다. 혹여나 레아가 원치 않는 과거의 기억에 시달릴지도 모르니까.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사람 마음을 가지고 놀면서 저와 이샤칸을 갈라놓으려 했다니. 용서할 수 없는 짓거리였다.
“왕이고 왕비고 뺨을 한 대씩 갈겨줘야 했는데.”
뒤늦게 후회하며 바들거리자 이샤칸이 눈매를 찡그리며 웃었다.
“음, 고백할 게 있는데.”
설마 하는데, 역시나 예상했던 말이 돌아왔다.
“이미 죽였어.”
“…….”
하긴, 그가 어련히 알아서 처리했으리라. 최소한 뺨 한 대보다는 더 괴롭히고 죽였을 것이다. 레아는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뜨끈한 물에 피로를 녹여내고 있자니 잠이 쏟아졌다. 레아는 꾸벅꾸벅 졸면서 이샤칸의 목욕 시중을 받았다. 그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흩어졌다.
“선물이 있어, 레아. 묘약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 수도를 뒤엎게 되어서……. 우연히 위폐범들도 잡아들였는데…….”
뭐라고 대꾸한 것 같은데, 이샤칸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손이 레아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어찌할까, 목을 자를까? 광장에 걸어놓으면 적당하겠지…….”
레아는 으응 하고 웅얼웅얼 대답하다가 툭 끊어지듯 잠들었다. 깊은 수면이 안락했다.
그 뒤로 레아는 며칠간 몸살로 앓아누웠다. 지은 죄가 많은 이샤칸은 직접 레아의 곁에 붙어서 병수발을 들어주었다.
기운 없는 레아 대신 뮤라가 사흘 밤낮 동안 이샤칸을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퍼부었다. 다른 쿠르칸들 또한 아무도 이샤칸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함께 맹비난을 퍼부어서, 레아는 조금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며칠 호되게 앓아누운 뒤 정신을 차려보니, 모든 일이 해결되어 있었다.
바르칼트의 왕, 헤롯트와 유디아는 목이 잘려서 바르칼트 왕궁 성문에 높이 걸렸다. 뮤라가 일러주기를, 죄질에 따라서 죽이는 방법도 나름 차별을 두었다고 했다. 유디아는 그래도 제법 깔끔하게 죽었고, 헤롯트는 약간의 시간을 들여 지저분하게 죽였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쿠르칸들은 이샤칸보다 레아에게 해를 입히는 자들에게 더욱 분노했다.
더불어 레아가 골머리를 썩였던 위폐범들도 에스티아 수도 광장에서 공개처형을 당하고, 그 목이 며칠간 전시되었다.
그리고 레아는…….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
모르가에게 레샤의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예지몽 같은 건지, 아니면 우연히 한 번 맞아떨어진 건지 궁금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모르가는 말 그대로 기절할 듯이 놀랐다. 레아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격렬하게 반응하며 소리쳤다.
“왕자님에게 주술사의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말하면서도 믿기지 않아 했다. 모르가의 설명에 따르자면, 주술사는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중에서도 미래 예지는 주술사가 가질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귀한 재능이었다.
모르가도 점성술을 다루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주술의 힘을 빌려 미래를 점치는 것에 불과했다.
“예지 능력을 타고나는 것은…… 이루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입니다.”
자신도 예지 능력을 타고난 주술사를 처음 본다며, 모르가는 연신 레샤를 살폈다. 그래봤자 아무것도 모르는 레샤는 꺄륵꺄륵 웃기만 했다.
“모모, 우껴!”
모르가는 저도 모르게 헤벌쭉 웃었다가 얼른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직 재능의 크기는 알 수 없지만, 이샤칸 님의 피를 이었으니 분명 대단하겠지요.”
레샤가 언어에 능숙해지면 그때부터 주술 교육을 시작하기로 논의를 끝냈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재능을 알게 된 레아는 조금 얼떨떨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미이…….”
이샤칸과 정원에서 차를 마시기로 했다. 약속해둔 장소로 걸어가는데, 레샤가 찡얼찡얼하며 양손을 위로 번쩍 들었다.
“나 손! 마미 손! 안 잡아쏘.”
“여기 엄마 손. 미안해. 엄마가 다른 생각 한다고.”
“이잉…….”
레샤가 귀엽게 칭얼거렸다. 다음부터는 꼭꼭 손을 잡겠다고 약속을 받아낸 후에야 레샤는 다시 신이 났다. 레아와 손을 잡고 앞뒤로 힘차게 휘두르며 걷던 레샤가 앗 하고 소리를 냈다.
“마미!”
그러더니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나는 형아야.”
뜻 모를 말에 레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놀이라도 하자는 것일까? 레샤가 방긋 웃더니, 손가락으로 레아의 배를 가리키며 천진하게 말했다.
“빠리 만나고 시퍼.”
레아는 입술을 벌렸다. 순간적으로 짧은 추측이 떠올랐으나,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레샤.”
이샤칸이 때마침 마중을 나온 것이다.
“파파!”
레샤가 이샤칸을 향해 도도도 달려갔다.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며, 레아는 레샤가 해준 말을 곱씹었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남편도 모른 척하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이샤칸이 레아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의 품에 안긴 레샤가 나 형아야, 형아, 하고 계속 조잘댔다. 여전히 생각에 잠겨있던 레아는 느리게 입술을 열었다.
“이샤칸.”
“응, 레아.”
“우리 쿠르칸에 다녀올까? 레샤에게 사막도 보여줄 겸.”
이샤칸은 그간 정벌을 다니며 수시로 쿠르칸에 드나들었다. 하지만 레아는 한참 가질 못했다. 레샤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 가자고 막연히 약속해두었는데, 이제는 때가 된 것 같았다. 레아의 몸도 회복되었고, 레샤도 여행을 다닐 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러지.”
흔쾌히 그러자고 답한 이샤칸은 레샤를 어깨 위에 앉히며 물었다.
“그리고 나선?”
대답은 레샤가 대신 해주었다.
“파파, 우리 모험가자!”
오늘 레아가 읽어준 동화책이 바다에서 낚시하는 이야기였다. 그게 감명 깊었는지, 레샤는 진지하게 주장했다.
“바다에서 물꼬기 자바야대.”
하지만 물고기만 잡고 싶은 게 아닌 듯했다. 레샤는 그때부터 자신이 아는 건 죄다 말하기 시작했다. 산에서 열매 따기, 들판에서 꽃 꺾기, 강에서 물장구치기, 마을 여관에서 하룻밤 보내기, 시장에서 과일 사기……. 끝날 줄을 모르는 말에 이샤칸이 픽 웃었다.
“생각해보면 레샤가 계속 왕궁에만 있었지. 간만에 여행을 가는 것도 좋겠군.”
“그러게.”
레아도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해가 드러나며 살짝 어둑하던 하늘이 하얗게 밝아졌다.
눈이 부셔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이샤칸이 보였다. 레샤가 그의 어깨에 앉아서 까륵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햇빛을 가득 받은 두 남자는 빛을 머금은 것처럼 환했다.
아주 오래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 결심했던 마음은 철로 만든 성처럼 견고했었다. 이제는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희미해진 감정들이었다. 레아를 감싸고 있던 어둠은 사라졌기 때문에.
“내 부인은 어디를 가고 싶을까.”
이샤칸이 장난스레 물었다. 제 어둠을 모두 집어삼킨 눈부신 빛을 생각하며, 레아는 나직하게 말했다.
“난 어디든 좋아.”
정말로 어디든 상관없었다. 깊은 산속도, 외딴 섬도, 드넓은 바다와 강도, 그리고 금빛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사막도.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이 남자와 함께라면 언제나 모든 순간이 특별할 테니까.
아니, 이제는 셋이서 함께였다. 어쩌면…… 넷일지도 모르고.
레아는 배 위에 손을 얹으며 살짝 미소 지었다. 나른한 햇빛이 기분 좋게 피부를 간질였다.
약탈혼 외전2,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