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0)
10화
✠“……그래서 벌써 나흘째인데 계속 책만 읽는 중이에요. 누워서 책 읽는 것 말고 하는 게 없어서 너무 날로 먹는 것 아닌가 싶네요. 계속 이래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어요.”[ ‘새벽 기도’ 진행 중. 현재 진행률 65%.]“아참, 넬리와 하녀장은 어제 백작가를 떠났어요. 며칠 늦어진 이유가 그간 백작성에서 야무지게 해먹은 비리와 횡령이 밝혀져서라네요. 연루된 집사와 의사도 이참에 물갈이되었어요. 이 사람들은 새 일자리를 구하긴 무리일 거예요. 추천서를 받기는커녕 귀족가에 다 소문이 날 테니 업계에서 퇴출이라고 봐야겠죠.”
하녀장의 죄상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사이에도 진행률은 착실하게 올랐다.
그러다 할 말이 떠올라서 주제를 선회했다.
“다시 놀이 친구 얘기로 돌아와서……. 솔직히 계속 책만 읽는 게 나쁘지는 않아요. 이 세계에 대해 알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책은 귀족들의 전유물이니 읽을 기회가 있을 때 바짝 읽어놔야죠. 그래서 말인데 통합 서재의 기능이 좀 아쉽더라고요. 생전에 읽거나 산 책만 저장되던데, 빙의 후에 읽은 책도 저장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신의 응답이 들려왔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업데이트를 진지하게 고려해 보겠다고 대답합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신입 신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던져줍니다.]“와아,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한 즉시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새벽 기도’가 완료되었습니다.] [ 천 일 새벽 기도 (5/1,000). 22시간 36분 뒤 퀘스트 진행 가능.]오늘의 숙제가 끝났다. 이제 뒷정리를 하고 바로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요즘 나는 정말 바빴다. 힐러 전직 퀘스트, 요리 레벨 업, 연금술 레벨 업, 차 시중 공부,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작 영애와의 독서 모임까지.
내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점심까지의 일과를 끝내고 비안카의 방으로 갔다.
“어서 와, 아일렛 양.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래?”
“오늘도요?”
별 불만은 없었지만 한 번 물어는 보았다.
듣자 하니 전 놀이 친구들은 사흘째에 어김없이 도망쳤다던데 나는 벌써 나흘째가 아닌가.
“……혹시 책이 지겹니?”
“우음, 아가씨는요?”
“…….”
“…….”
비안카가 토끼같이 빨간 눈동자를 도르륵 옆으로 굴렸다.
자기주장이 확고하던 백작 영애가 눈치를 보며 고민하는 모습이 약간 신기했다.
아무래도 독서 말고 다른 게 하고 싶은 건 비안카인 것 같았다.
“다른 거 할까요?”
“그럼…… 나랑 인형 놀이 하지 않을래?”
“인형 놀이요? 좋죠.”
나는 진심으로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적 오빠와 함께했던 인형 놀이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둘의 취향을 절충하느라 인형과 로봇이 같이 등장하는 우주 스케일의 인형 놀이였지.
다시 생각해도 그리웠다.
내 의욕적인 모습에 비안카도 기쁜 듯했다.
항상 무심하던 애가 웬일인지 얼굴에 홍조까지 옅게 띄우며 눈을 빛내는 것 아닌가.
그러고는 나를 시키지도 않고 직접 곁방으로 가서 인형들을 바구니에 담아 왔다.
“우와!”
과연 백작 영애 클래스는 달랐다. 바구니에 든 것은 정교하고 예쁜 구체 관절 인형 넷과 각종 섬세한 소품들이었다.
보기만 해도 설렜다.
인형은 여자형 셋에 남자형 하나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안카가 그중에서 여자 인형 둘을 먼저 골랐다.
“나는 무서운 공작 부인과 충성스러운 시녀를 할게.”
그리고 나머지 남자 인형과 여자 인형 하나를 나에게 주며 역할을 지정했다.
“너는 바람피운 공작과 젊고 요망한 정부를 해.”
응? 설정이 뭔가 좀?
“시작하자.”
비안카가 공작 부인 인형을 들어 올렸다.
준엄한 호통이 울려 퍼졌다.
“내 남편과 놀아난 여우 같은 계집을 드디어 찾았구나! 내 오늘 물고를 낼 것이니 당장 지하 고문실로 끌고 가라!”
……인형 놀이의 장르가 이상했다.✠비안카는 딱히 친구를 두는 게 싫은 게 아니었다. 아니, 도리어 친구를 꼭 사귀고 싶었다.
책은 혼자 읽을 수 있지만 인형 놀이는 혼자 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비안카가 친구를 보는 기준은 데릴사위를 보는 기준에 비해서는 몹시 관대했다.
‘인성, 지성, 취향. 난 딱 셋만 봐.’
낮은 문턱에도 불구하고 기준을 만족하는 또래 여자아이가 하나도 없었다.
비안카의 나이가 벌써 열 살. 이대로는 인형 놀이의 추억 하나 가지지 못한 채 소중한 유년 시절이 다 지나갈 판국이었다.
급기야 인성과 지성 항목을 포기했음에도 소용없었다.
그때 운명처럼 아일렛 로델라인의 존재가 눈에 띄었다.
백작가 사용인들의 신상을 죄다 꿰고 있는 비안카였다. 주요 인적 자원인 연금술사의 딸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는 평범한 줄만 알았던 아이가 갑자기 두각을 드러내니 신기했다.
비안카는 의외로 행동파였다. 관심이 생긴 즉시 당장 백작 부인과 함께 아일렛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텃밭에서 보게 된 아일렛의 인성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하녀장 모녀를 한 번에 보내버리다니.’
순진하고 무해해 보이는 얼굴로 생글생글 웃어도 비안카의 눈을 속이지는 못했다.
아일렛의 비범함을 한눈에 알아본 비안카는 오랜만에 타인을 향한 큰 흥미를 느꼈다.
인성을 확인했으니 다음은 지성 차례였다.
아일렛이 놀이 친구로 온 첫날, 비안카는 아일렛이 평민인 점을 고려하여 나름대로 쉽고 재밌는 책을 골라주었다.
뛰어난 필력과 감동적인 서사로 칭송받는 고전 순문학을 얼마 못 읽고 바꿔 갔을 때는 살짝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아일렛이 다음으로 집은 책이 무려 성경이지 않겠는가.
고른 이유를 묻자 들려온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성경에 대한 이해 없이는 문학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신앙의 영역인 성경을 지식으로 취급하며 필요에 의해 관심을 가진다.
비안카는 그 무심한 지성에 순간이지만 설렐 뻔했다.
‘이런 애라면…….’
이미 수차례 실망했음에도 기대감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기준인 취향은 이제껏 누구도 통과하지 못한 항목이었다.
자신의 취향이 그렇게 이상한 건지, 놀이 친구들은 죄다 사흘 만에 울면서 방을 박차고 나갔다.
쓸쓸하고 아쉬운 마음에 배웅 인사라도 하려 하면 기겁을 하기까지 했다.
비안카는 솔직히 마음의 상처가 컸다.
역시 아무리 기준을 낮춰도 그런 아이들과는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친구라면 모름지기 서로의 취향을 품어줄 수 있어야 하는 법 아닌가.
아일렛 로델라인도 전 놀이 친구들처럼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나흘째 되는 날에서야 비장하게 마음을 먹고 인형을 꺼내 왔다.
그리고 아일렛은 비안카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아! 억울해요, 마님! 갓 수도에 올라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저를 꼬신 건 공작님이셨어요! 오히려 저야말로 혼인빙자 사기의 피해자인 것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와 공작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공작님은 안 섰거든요!”
“부, 부인, 거 보시오. 바람이라니 당치도 않소. 피우고 싶어도 못 피우는 몸이니 그만 채찍을 내려놓고 밧줄을 풀어주시오. 흑흑!”
왼손에 정부 인형, 오른손에 공작 인형을 들고서 아일렛은 열연했다.
한 편의 극을 코앞에서 지켜보는 비안카의 얼굴이 어쩐지 조금 멍했다.
그때 정부 인형이 공작 부인 인형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님! 제 죄를 뉘우치며 평생 마님을 섬기고 싶어요. 충심의 증거로 공작님을 제가 직접 고문하고 싶은데요!”
급기야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고문 도구의 지식을 뽐내며 인형 놀이를 클라이맥스로 이끄는 것이 아닌가.
이토록 풍부한 설정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묘사라니, 비안카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실감나고 찰진 공작의 비명이 멎었다.
“휴우. 공작님이 기절했네요. 마님, 마음에 드시나요?”
“…….”
“마님?”
툭.
비안카의 양손에서 인형이 추락했다.
열연하던 아일렛이 살짝 당황하여 그녀를 살피려던 그 순간이었다.
비안카가 아일렛의 손을 덥석 붙잡고 얼굴을 들이댔다.
토끼같이 붉은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태어나서 이렇게 재미있는 인형 놀이는 처음이었다.
“아이라고 불러도 되지?”
“네?”
“응, 아이. 너도 나 비아라고 불러. 둘만 있을 때는 반말을 써도 좋아.”
실로 파격적인 특혜였다.
아일렛이 얼떨떨해하는 동안 비안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있잖아. 아까 그 고문 도구들, 좀 더 자세히 알려주지 않을래……?”
수줍은 요청에 아일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통합 서재에 있는 ‘중세 고문의 역사’를 쭉 읽어주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아, 네. 아가씨.”
“비아라고 부르래도. 응?”
그렇게 아일렛은 백작가의 숨은 실세와 친구가 되었다.
4장. 신의 총애와 편애를 받으면 생기는 일
비안카와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내게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이대로라면 길레트 가문은 검술 명가라는 명성에 부끄럽게도 2대째 오러 마스터를 배출하지 못할 거야. 지금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가문을 살리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야. 내가 가주가 되어 실력 있는 기사를 데릴사위로 들여야만 해.”
“와아.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아가씨.”
“이름. 반말.”
“응, 비아. 아주 완벽한 계획이야.”
“아이, 역시 너라면 그렇게 생각해 줄 줄 알았어.”
이렇게 똑똑한 영애가 있는데 길레트 가문은 원작에서 왜 그 꼴이 났을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난이도 A급 던전 ‘길레트 백작성 밑에 파묻힌 공동묘지’에 입장했습니다.]비안카 길레트는 아일렛 로델라인과 함께 죽을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