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성황청은 유죄추정의 원칙을 몹시 좋아했다!
아그네스가 버럭 화를 내주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
테실리드의 침묵에 수비대들이 긴장했다.
저들도 성검의 주인에게 이런 대접을 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자각은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
날 부르는 미성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응, 테리.”
나는 이 순간 테실리드가 다 때려치우고 싶어졌으니 도와달라고 하면 온 힘을 다해 깽판쳐 줄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고개 돌려줄래?”
“…….”
옆으로 돌아섰다. 철그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얌전히 손을 내밀어 결박당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단장이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크흠, 테실리드 경이라면 공정을 기하기 위한 결정을 양해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원칙에 따라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그럼 가시죠.”
“잠시. 단장님께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예. 말씀하십시오.”
“제 동행인을 부탁드립니다. 신성력을 각성해서 사제 서품을 받으러 온 사람입니다.”
“그렇군요. 제게 맡기십시오.”
뒤통수에서 들려오는 단장의 목소리에 반색하는 기색이 짙다.
부탁을 마친 테실리드는 곧장 얌전히 연행당해 사라졌다.
내가 돌아보는 게 싫었는지 인사는 없었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여러모로 적폐투성이라며 ‘엄격한 질서와 선’ 교단을 헐뜯습니다.]그러게요. 청산해 버리고 싶은 적폐네.
“사제 서품을 받으러 오셨다고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일렛 로델라인이에요.”
내가 듣기에도 싸늘한 음성이 튀어 나갔다. 그제야 내 기분이 지금 상당히 저조함을 깨달았다.
수비대 단장은 예비 사제들이 지내는 곳으로 안내해 주겠다며 나를 이끌었다.
잠자코 따라가는 동안 그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외부에서 신성력을 각성하신 분께서는 간단한 시험을 거친 뒤 예비 사제 자격을 부여받습니다. 입회자의 감독 아래 치유, 축성, 정화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죠. 신성력을 각성하자마자 쓸 수 있는 능력들이니 시험은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다만 시험을 치르기 위해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흘간 독방에서 빵과 포도주와 물만 드시면서 심신을 경건히 한 뒤에야 비로소 시험을 치를 자격이 주어집니다.”
뭐? 빵과 포도주와 물? 누구 마음대로 내 식단을 조절해?
그 부분이 가장 빡치긴 했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다른 데 있었다.
그래, 이건 나를 격리시켜 놓으려는 누군가의 수작이다.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가라앉았지만 표정은 착실하게 무구함을 꾸며냈다.
“설명 감사합니다. 절차에 충실히 따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도착했으니 방으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말단 사제가 쓸 법한 작고 허름한 방을 배정받았다.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바깥에 나오지 말라는 당부를 마지막으로 단장은 사라졌다.
낡은 나무 침대, 나무 스툴 의자, 기도를 위한 작은 예배 단상이 전부인 방.
이를 둘러본 아그네스가 불쾌함을 드러냈다.
빡침을 강화시키는 정보가 추가되었다.
그래, 알고 당하는 게 낫지. 모르고 당하는 것보단.
나는 나무 스툴에 털썩 앉았다. 일단 좀 쉬면서 기분을 다스리려던 때였다.
저벅저벅저벅.
벽 너머에서 빠르고 신경질적인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명백히 내가 있는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똑똑똑! 벌컥!
웬 젊은 성기사가 내 방에 난입했다.
2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금발의 남자였는데 왠지 인상이 낯익었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자니 그가 묵직한 바구니를 탁 소리 나게 단상에 내려놓았다.
“오늘치 배식이다.”
검고 딱딱한 빵과 시큼한 포도주를 보고 있자니 역시 또 기분이 나빠진다.
그때 상대가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봤다. 품평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가 입매를 한쪽만 당겨 웃더니 말했다.
“테실리드 아르젠트가 데려온 여자라기에 와봤더니, 뭐 별거 없군. 시간만 낭비했어.”
이쯤 되니 이름 정도는 기억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누구시죠?”
“헬시온 오드렉. 사흘 뒤 네가 시험을 받을 때 입회할 사람 중 하나다.”
“아아, 헬시온 오드렉 경.”
오드렉. 가문명 하나로 나를 향한 모든 적대감이 단박에 이해되었다.
나는 적아 구분이 확실한 것을 선호했으므로 빙긋 웃었다.
근데 이 헬시온이라는 놈의 반응이 이상했다.
별안간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더니 나를 준엄히 꾸짖는 것이 아닌가.
“품행을 단정히 해라.”
“…….”
“그 숙맥 애송이는 그런 식으로 꿰어냈을지 몰라도 나는 어림도 없다.”
순간 보수적인 교단 사람들에게 편견이 생길 뻔했으나.
실소하는 아그네스 덕분에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누구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냐며 버럭 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잡캐의 자의식 과잉을 비웃습니다.]헬시온이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사흘 뒤 신성력 확인이 끝나면 한 달간 교리 교육을 받는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달간 교단에 봉사를 해야 서품을 받을 수 있다. 이 봉사 기간 동안 너는 내가 속한 은총 기사단을 따라다니며 잡일을 맡아 하게 될 거다.”
“은총 기사단의 부단장으로서 미리 말해두지. 나는 무능한 힐러를 몹시 싫어한다. 특히 별것도 아닌 치유력으로 거들먹거리면서 힐러랍시고 대접을 바라는 것들은 경멸하지.”
급기야 아그네스의 입에서 욕이 나왔다.
“그깟 힐, 할 줄 아는 사람은 성기사들 중에서도 쌔고 쌨다. 내 밑으로 들어오면 처신 똑바로 하도록. 그럼 난 이만.”
쾅! 나는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힐밑딜이 분명할 새끼가 나대는 것에 분개합니다.] [‘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답답함에 가슴을 칩니다.] [‘천기누설 감찰관’이 뒷목을 주무릅니다.] [‘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한 당신에게 실망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말없이 당신을 지켜봅니다.]나는 바구니 안으로 손을 뻗었다.
“좋은 질문이에요, 아그네스.”
내 손이 포도주병을 집어 들고 뚜껑을 깠다.
꿀꺽꿀꺽.
“하!”
병나발을 분 뒤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본래 두 가지 계획을 고민 중이었어요. 첫 번째 계획은 얌전히 사제 서품을 받고 힐러 자격으로 테실리드가 토벌하러 가는 던전을 따라다니는 것이었죠.”[‘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적폐 교단에 눌러앉는 계획에 불만을 품습니다.]
“온건하다고 해주실래요?”
“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화끈한 사이다를 기대합니다.]내 눈빛이 가라앉았다.“사실 제가 오늘 기분이 좀 나빠서요.”
나는 오늘 세 시간이나 기다렸고, 테실리드가 부당한 취급을 받는 고구마 실사판을 눈앞에서 목격했고, 웬 힐밑딜 놈한테 시비도 털렸다.
무엇보다 빵과 포도주와 물. 이건 진짜 교단이 선을 넘었다.
이 시간과 경험은 내 온건했던 계획을 급진적으로 틀기에 충분했다.
빙긋,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당신의 다 조져 버리겠다는 듯한 미소를 좋아합니다.] [‘만상의 혼돈을 감시하는 눈동자’가 당신의 형형한 눈빛을 좋아합니다.]
“간단해요.”
말단 신분으로 체제와 규율에 순응하다간 속 터져 죽겠다. 권력이 있어야만 뭘 좀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성녀가 되어야겠는데요.”
[‘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전대미문의 이단 성녀를 기대합니다.] [‘천기누설 감찰관’이 성녀 히로인 자리를 꿰차려 하냐며 원작 파괴 조짐에 혀를 내두릅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19금 역하렘 로판 최적화 직업으로의 전직을 몹시 환영합니다.] [‘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자고로 탑과 지위는 높을수록 좋은 것이라며 당신의 계획을 찬성합니다.]신님들은 언제나처럼 각자의 개성을 살려서 나를 격려했다. 단, 가장 중요한 한 분은 제외하고.[‘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딱딱하게 굳습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본신의 사도가 집 나간 신의 성녀가 되려고 하는 것이냐며 충격을 먹습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이것은 배교 행위라며 마음의 상처를 입고 달려 나갑니다.]“아앗, 언령님!”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