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파직.
“응?”
의아한 감각. 시선이 이끌려 간 곳은 내 허리춤이었다.
파지지직! 푸른 스파크가 사첼백에서 작게 튀었다.
이게 왜 이러지?
정말 내구도 문제라면 곤란한데. VIP샵 포인트는 플로피디스크와 제례의 성배를 사느라 다 털어서 써버렸으니까.
심각한 얼굴로 사첼백을 들어 올리고 살폈다.
다시금 정전기라기에는 묘한 스파크가 일어났다.
손끝에 스쳐도 별 느낌이 없었지만, 뭔가 더듬듯이 가방의 표면에 흐르는 모양새가 수상했다.
‘보관 중인 물건에 문제가 생겼나?’
그러고 보니 인벤토리 정리를 안 한 지 오래되긴 했다. 잠금쇠를 풀어서 안을 확인하려 했을 때였다.[‘지고한 만물상’이 당신에게 멈추라고 말합니다.]어? 새로운 신이 등장했다.[‘지고한 만물상’이 곰방대로 당신의 사첼백을 조준합니다.]파스슷!
사첼백에 서려 있던 전류가 사라졌다. 그저 거슬리는 날벌레를 하나 잡은 듯한 신속한 해결이었다.
곰방대라는 말로 새로운 신이 누구인지 감이 왔다.
‘혹시 VIP 포인트샵 할머니세요?’[‘지고한 만물상’이 약초 향을 음미하며 긍정합니다.]역시.[‘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방금 막 달려와 ‘지고한 만물상’에게 여긴 어쩐 일이냐고 묻습니다.] [‘지고한 만물상’이 빙의자에게 판매했던 상품에 사소한 문제가 생겨서 방문했다고 말합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자세한 설명을 요청합니다.] [‘지고한 만물상’이 웬 수상한 존재가 빙의자에게 수작을 부리려고 했다고 말합니다.]헉? 수상한 존재?[‘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깜짝 놀라 어떤 새끼였냐며 분개합니다.] [‘지고한 만물상’이 아까 곰방대로 흠씬 두들겨 패줬으니 더는 허튼짓을 못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표정을 편안하게 풉니다.]그럼 이제 문제없는 건가?[‘지고한 만물상’이 당신에게 시간 날 때 포인트샵에 한번 들르라고 당부합니다.] [‘지고한 만물상’이 서둘러 영업장으로 돌아갑니다.]약간 얼떨떨한 기분 속에서 머릿속을 정리했다.
내가 포인트샵에서 샀던 물건이 문제가 되어, 수상한 존재가 내 사첼백을 스파크로 더듬었다고?
바로 뇌리를 관통하는 기억이 있었다.
‘플로피디스크를 가지러 갔던 던전. 그곳의 주인.’
강박적으로 떴던 탐색 메시지를 떠올리자니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리고 불현듯 억울해졌다.
‘플로피디스크, 역시 장물이었던 거 아니야?’
세이브 포인트라서 선물용으로 큰맘 먹고 샀는데, 이래서야 원주인의 추적이 두려워서 함부로 꺼내지도 못하게 생겼다.
“에휴…….”
“이따 이야기해 드릴게요…….”
새삼 아그네스가 내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그네스 아니면 누구한테 하소연을 할 수 있겠는가.
그때였다.
스르르륵.
밤이 내린 듯 어두웠던 통유리창이 투명함을 되찾았다. 보스룸에서 전투가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현상이었다.
나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보스룸 출입구 쪽을 향했다.
곧 문이 열리고 테실리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테….”
내가 반가움을 숨기지 않으며 고생했다고 말하려는데.
“아……일렛…….”
문틀을 짚고 간신히 선 테실리드. 그의 입가와 가슴팍이 온통 붉었다.
“쿨럭!”
“……!”
토혈의 반동을 이기지 못한 그의 몸이 균형을 잃었다.
뭔가를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서 그를 받쳐 안고 있었다.
“테실리드!”
“테실리드 경!”
기사단원들이 당황하는 동안 나는 테실리드를 안은 채로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내 무릎을 베도록 한 뒤 힐을 퍼부었다.
내상이 심해서 출혈도 많았다. 혈액 보충을 위해 포션을 입가에 대주었다.
“내가 할게.”
그가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스스로 포션을 마셨다.
“어떻게 된 거야? 전투가 그렇게 치열했던 거야? 9써클 스크롤은? 설마 쓸모없는 마법이었어?”
말을 마치고 아차 했다. 애타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질문을 연속으로 쏟아내 버렸다.
테실리드가 한참 동안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나답지 않은 모습에 놀랐나 보다. 민망해지려는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
“9써클이라 반동이 조금 있었어. 어쨌건 보스는 잡았고, 네가 치료해 줘서 이제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는 기운을 끌어모아 선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아래 깔린 어두운 기색을 보았다.
이유는 짐작이 되었다.
진리의 바이블이 들려준 해답은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왜 회귀를 하는지에 대해 물었더니, 세상을 구하기 위한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답을 받았을 테니까.
필연적으로 또다른 질문이 파생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상은 어떻게 구하는데? 라고 말이다.
실제로 첫 질답권을 사용한 이후 그는 다음 회귀만을 기다린다. 두 번째 질문을 묻기 위해서.
잠깐 자살을 생각했다가 교리 때문에 단념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그 회차를 정말 대충 살아냈다.
……지금도 그런 상태일까.
혹시라도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어떡하지?
안색이 나쁜 테실리드를 지켜보고 있자니 목구멍까지 충동이 치밀어오른다.
빙의자인 나는 그가 궁금해하는 질문의 모든 해답을 아니까.
하지만…….[‘천기누설 감찰관’이 아직 겪지 않은 미래를 주인공에게 발설하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고 준엄히 경고합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충동에 휩쓸리지 말고 감찰관의 경고를 따를 것을 당부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당신을 걱정스레 지켜봅니다.]천기누설 페널티는 아직까지 제대로 겪어본 적 없다. 아슬아슬하게 경고 수준으로만 선을 넘어왔다.
언령님이 말리고, 천칭님이 걱정할 정도면 분명 엄청나겠지. 말을 잘 듣는 빙의자가 되는 것이 옳다.
손아귀에 힘을 주고 충동을 참아낼 때였다.
“아이……?”
당혹한 듯 조금 흔들리는 음성이 귓전을 쳤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테실리드의 한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아, 미안.”
“…아니야.”
조심히 손을 뗐다.
“크흠.”
“크흐흠.”
우렁찬 헛기침 소리가 분위기를 환기했다.
렉스와 클로비스였다.
나와 테실리드에게 집중된 이목을 느끼고 적잖이 민망해졌다.[‘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방금 분위기 좋았다며 아쉬워합니다.]천칭님의 장난스러운 말 덕분에 나도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잡념을 떨치고 나니 아까 미처 보지 못한 것이 보였다.
나는 테실리드의 반대편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을 발견했다.
“그건 뭐야?”
“아, 이건…….”
그가 커다란 손바닥을 펼쳐 보여준 것은 고풍스러운 열쇠였다. 엘란티아가 가지고 있던 것과는 형태가 약간 달랐다.
보스룸에서 가져온 건가?
이 던전은 질문답권 이외의 아이템이나 스킬북은 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도서관에 가보라는군.”
“……?”
놀랄 일이었다.
‘원작에 없는 일인데?’[‘천기누설 감찰관’이 원작 파괴자 주제에 그런 말을 하냐며 원작무새로서의 동질감을 애써 부정합니다.] [‘창조경제 관리자’가 확장팩을 또 구매도 안 하고 사용할 생각이냐며 불만을 토로합니다.]테실리드가 말간 얼굴로 물었다.
“뭔가 문제라도 있어, 아이?”
“음, 아니야.”
의문을 풀어놓자니 내 쪽에서 설명해야 할 게 더 많아질 것이 뻔했다.
그때 조금 독특한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던전의 비정규적 주인, 도서관장이 퇴임하여 난이도 S급 던전 ‘만상의 도서관’이 폐관합니다.]엘란티아는 비정규직 보스였고 이곳은 마왕령이었다. 보스가 사라진 이상 던전은 실소유주인 인페리노스에게로 돌아간다.
우리 입장에서는 천년 얼음성에서 겪었던 강제 클로징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벽의 장식물인 줄 알았던 청동 부조가 입을 뻐끔거렸다.
전음기를 통해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진 직후였다.
드득…… 드드득…!
천장에서 일정 간격마다 두꺼운 벽이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화재시 작동되는 방화벽처럼.
“예, 예하! 벼, 벽이! 벽이 내려옵니다!”
“이러다 갇히겠습니다!”
나는 테실리드를 일으켜 세워주며 말했다.
“당황하지 마세요. 천년 얼음성에서처럼만 하면 됩니다.”
“네, 넵!”
“자, 달리세요! 출발!”
우리는 복도 끝에 생성된 출구 게이트를 향해 힘차게 바닥을 박찼다.✠만상의 도서관은 현실과 시간 흐름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우리가 던전을 빠져나왔을 때 현실은 엘펜하임 교국 시간으로 점심 무렵이었다.
나는 지친 기사단원들 틈에서 렉스와 클로비스를 돌아보았다.
두 기사단장들은 언제 죽기 살기로 뛰었냐는 듯, 근엄한 얼굴로 제복 매무새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단장님들, 토벌 보고하고 밥 먹으러 가죠.”
“네, 예하.”
금서 창고에서 빠져나와 긴 지하 복도를 거슬러 돌아갔다.
“예하, 이제 던전 하나만 남았군요.”
“곧 기사단을 인정받으시겠습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클로비스와 렉스가 마치 자신들의 일인 양 기뻐해 줬다. 사회 생활의 일환이었다.
“혹시 인원 확충이 필요하시면 꼭 저희 복음성부 쪽에 말씀 부탁드립니다.”
“검사성부에는 테실리드와 같은 성흔양 출신의 인재가 많습니다. 예하를 위해서라면 바로 차출해 드릴 것입니다.”
“네, 생각해 볼게요.”
지하 복도의 끝에 다다라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클로비스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다음 던전은 어디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다음은…….”
마지막 계단을 밟고 1층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하려던 말을 멈춰야 했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