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불씨 중첩이 적은 초반에 최대한 많은 공격을 박아넣어야 한다.
신체의 한계까지 세르펜스를 휘둘렀다. 헬카이온은 덩치에 걸맞은 무시무시한 힘과 걸맞지 않은 속도를 가진 보스였다.
정면에서 보스의 이빨이나 발톱을 받아내면 자칫 팔뼈가 으스러질 수도 있다.
보스의 공격은 무조건 흘려내야 한다.
검신과 발톱이 스치듯 서로를 긁고 가는 짧은 대치 시간. 그사이에도 집중을 다해서 스킬을 욱여넣었다.
“신벌.”
먹구름을 뚫고 벼락 한 줄기가 헬카이온의 등에 꽂힌다.
콰과과광!
공기 중의 불티는 화약과 같아서 넓은 지역에 폭발이나 다름 없는 발화를 일으켰다.
전격과 화염에는 내성이 있는 보스였다. 다만 신성력만은 확실하게 타격을 입혔다.
마침 내가 가진 유용한 스킬이 발동했다.[ 패시브 스킬 ‘포식의 역전’으로 인해 적에게 치명상을 가할 확률이 증가합니다.]지금부터 헬카이온은 내게 사냥당하는 피식자다.
촤르르륵!
길게 펼쳐진 사복검 세르펜스가 헬카이온의 왼쪽 앞다리를 난자했다.
발을 굴러 나를 짓뭉개려는 것을 피하기 무섭게 길고 두꺼운 꼬리가 가로로 후려쳐 온다.
뒤로 멀찍이 물러나자 다음에 나를 공격해 오는 것은 크게 벌린 주둥이였다.
딱!
헬카이온의 이빨이 맞물리며 부싯돌처럼 불꽃을 만들어낸다. 나는 이미 높이 도약한 상태였다.
나를 물려고 시도하느라 땅바닥에 처박아준 헬카이온의 머리.
그 콧잔등 위로 착지하여 콧날에서부터 미간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이마 중앙에 세르펜스를 찔러 넣었다.
오러가 가죽을 뚫고 두개골을 부순 후 뇌에 닿는다.
비지능형 괴수라고 해도 두뇌는 취약한 법. 유효한 일격에 헬카이온이 머리를 쳐들고 격하게 몸부림쳤다.
나는 꽂힌 검을 붙잡고 최대한 버텼다. 내 평형 감각을 믿고 스킬 시전에 집중했다.
“심판 예고. 절대 집행.”
대상을 무방비하게 만들고 내성을 낮추는 보조 스킬을 쌓은 뒤.
“단악!”
파직!
검을 꽂은 이마에 수복 불가능한 균열이 생긴다. 성공적으로 약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만만찮았다.
“네!”
헬카이온의 털은 불티의 온상이다. 초근접전을 한 대가로 짧은 시간 동안 내 몸에는 육체 약화 디버프가 빠르게 쌓였다.[ ‘지옥 불씨(7중첩)’]콧잔등으로 슬라이딩하여 뒤로 뛰어내렸다.
과연 SS급 보스가 만들어내는 유리 몸 디버프다. 착지의 순간 발목을 타고 짜르르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
자세를 가다듬을 겨를도 없이 헬카이온의 앞발이 나를 후려쳤다.
“윽!”
털 끝에 어깨를 살짝 스쳤다.
그러나 직격타를 맞은 듯한 고통과 함께 살이 타는 느낌이 엄습했다.
아씨, 되게 아프다.
보스의 위협 수치를 나누지 않기 위해 일찍이 테실리드한테 귀속의 수호를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해 둔 상태였다.
부상과 고통은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눈물 찔끔 났어요.
애석하게도 대답할 겨를은 없다.
곧장 날아오는 꼬리를 피했다. 쉬익 하는 긴 파공음이 지척에서 울려 퍼진 순간, 내 오른쪽 뺨이 길게 베이며 피가 튀었다.
이제 보스의 공격에 수반되는 바람에만 스쳐도 다치는 연약한 몸이 된 모양이다.[ ‘지옥 불씨(8중첩)’]한 자릿수까지는 버틸 만하다. 나는 세르펜스에 오러를 주입했다.
촤라라락!
길게 늘어난 검신이 포식뱀처럼 날뛰며 헬카이온의 안면부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동시에 바쁘게 스텝을 밟아 헬카이온의 발과 주둥이와 꼬리를 피해냈다.
스쳐도 부상, 닿으면 중상. 목숨을 걸고 최소한의 회피 운동만 하며 공격을 쏟아냈다.
난도질당하는 헬카이온의 가죽과 마찬가지로 내 몸에 자상이 늘어간다.
하얀 성기사 제복 곳곳이 붉게 물들었다.[ ‘지옥 불씨(9중첩)’]
치유는 시전 시간이 길다. SS급 보스를 두고 전위에서 힐을 쓸 타이밍을 만드는 게 쉽진 않았다.
헬카이온이 긴 날숨을 들이켜는 것이 보였다. 브레스를 직감하고 곧장 땅을 박찼다.
콰과과광!
범위 사각으로 깊이 파고들어서 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지옥 불씨(10중첩)’]디버프가 두 자릿수를 돌파했다. 이제 뜨거운 공기조차 견디기 힘들어졌다.
자상과 화상이 가득한 몸으로 열기가 침투하는 기분. 이러다 몸속부터 숯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당신을 걱정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당신을 걱정합니다.]
“알고 있어요.”
정말 힐을 해야 해.
그때였다.
눈앞에서 길게 울부짖은 헬카이온이 이족보행을 하듯 앞발을 들어 올렸다.
‘내려찍는다!’
내 몸은 지금 바람에만 스쳐도 피가 터지는 상태였다.
지진을 일으킬 정도의 충격파를 맞는다면 오장육부가 진탕이 될 거다.
“…….”
그러나 나는 검을 내리고 가만히 기다렸다. 보스를 올려다보며 숨을 고르고 섰다.
“예하?”
“성녀님?”
당황한 기사들의 음성이 들려온다.
“……아이?”
그리고 유난히 귀에 선명히 꽂혀오는 누군가의 음성도.
쉬이이익!
거친 파공음이 정수리로 떨어졌다. 두 앞발이 사정없는 속도로 덮쳐온다.
쿠우웅!
지축이 흔들린 그 순간.
“아일렛 로델라인!”
평정을 잃은 외침이 먼지구름을 찢고 귀에 닿는다.
잠시 전장에 숙연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앞발로 땅을 다지던 헬카이온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발바닥의 촉감이 이상함을 드디어 눈치챈 모양이었다.
시야를 가리던 먼지구름이 가라앉았다.
“발때 묻는다. 치워.”
헬카이온이 포효하며 양쪽 앞발로 나를 쉴 새 없이 후려치려 했다.
그러나 단단한 은색 결계에 막혀 헛발질이 될 뿐이었다.
그동안 치유의 빛이 내 몸을 휘감았다. 멀쩡해진 나는 여유롭게 고개를 돌렸다.
“뭘 또 놀라고 그래?”
“…….”
달려 나가려다 만 자세로 굳어버린 테실리드.
그는 숨은 쉬나 의심스러울 만큼 미동이 없었다.
먼 거리를 가로질러 내게 고정된 시선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정말 많이 놀란 모양이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극단적인 연출을 싫어합니다.] [‘만상의 혼돈을 감시하는 눈동자’가 꾹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뜹니다.]나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제 수성의 방벽을 안전하게 거둘 타이밍을 봐야 할 차례다.
보스는 앞발로 땅을 파듯 결계를 쾅쾅 후려치며 포효했다. 분해 죽겠다는 듯, 핏발 선 눈을 내 얼굴로 가까이 들이밀었다.
살기 가득한 SS급 보스의 눈동자를 코앞에서 보는 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하지만 나는 웃었다.
이러면 일이 쉬워지지.
나는 왼손을 들어 올려 결계에 댔다. 정확히 헬카이온의 눈알이 있는 위치다.
“소제하라.”
쇄연의 순광이 작렬했다.
강력한 궁극 스킬이 헬카이온의 망막에 직격했다. 고작 섬광탄으로 쓰기엔 아깝지만 효과는 훌륭했다.
쿠구궁!
헬카이온이 뒷걸음질치다 옆으로 쓰러졌다. 초반에 뼈가 드러나게끔 난자해 놓은 왼쪽 앞다리가 빛을 본 순간이었다.
나는 수성의 방벽을 거두고 폐가 꽉 차도록 숨을 들이켰다.
이만하면 딜량은 충분했다. 보란 듯이 몸의 부상을 단숨에 치료하여 헬카이온을 극도로 분노하게 했다.
현재 나에 대한 보스의 위협 수치는 폭발 상태.
날숨과 함께 외쳤다.
“전원, 공격하세요!”
딜러들은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즉시 마법과 신성력과 오러가 헬카이온에게로 쏟아졌다.
무지막지한 화력 지원의 시작이었다.
나는 아군의 스킬에 피격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다시금 탱커의 본분을 다했다.
보스의 광역 공격을 아군이 없는 쪽으로 뺐다.[ ‘지옥 불씨(12중첩)’]아까와 달리 방어에 치중하긴 했지만, 유리 몸 상태는 가속화되어만 간다.
그런데 아픔만 있고 상처는 나지 않았다.
아까라는 건, 헬카이온이 이족보행 자세로 앞발을 들어서 나를 뭉개려던 때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때였다.
채애애앵!
누군가가 나보다 앞에서 헬카이온의 앞발 후려치기 공격을 검으로 흘려냈다.
장신에 곧은 등, 그리고 바람결에 흐트러지는 은발에 내 눈이 커졌다.
“테리?”
하라는 딜은 안 하고 탱커 옆으로 왜 온단 말인가.
“이쪽으로 오면 어떡해. 공격당하는데.”
“……아이.”
음성이 바닥에 가라앉을 듯 낮았다. 나를 돌아보는 얼굴은 여러 가지 감정을 가까스로 억누르는 듯한 무표정이었다.
헬카이온의 반대편 앞발이 바닥을 쓸었다. 우리는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착지 위치는 약속한 듯 지척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살짝 목이 멘 음성으로.
“무사해서 다행이야. 순간 네가…… 죽는 줄 알았어.”
“죽는 줄 알았다고?”
채애애앵!
이번에는 내가 보스의 공격을 흘리며 되물었다.
“내가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귀속의 수호를 썼단 말이야?”
“…….”
그의 액티브 스킬은 극도로 자기희생적이다.
파트너인 나의 상처를 그가 모조리 가져가서 홀로 감당해야 한다.
그럼 내가 만약 즉사에 이르는 부상을 입는다면?
대신 죽거나 같이 죽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그걸 알면서 썼다고?
나는 침묵으로 추궁하며 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가 마침내 무거운 입술을 뗐다.
그러나 그 사이로 흘러나온 것은, 내가 기대했던 해명이나 변명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다치지 마.”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