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같은 시각, 빈체스터 왕국.
왕도(王都) 빌헬론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화려하고 웅장한 왕궁의 후문으로 한 상단의 짐마차가 다녀갔다.
해당 상단은 대외적으로는 사치가 심한 1왕녀의 기호품을 대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암암리에 대륙 각지의 소식을 물어다 주는 역할을 했다.
이를 관리하는 사람은 1왕녀의 최측근이라 불리는 귀족 영애, 비안카 길레트였다.
정보통과의 접선을 마친 비안카가 어두운 왕궁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녀의 오른손 안에는 토벌 완료, 신성 강림, 자원 분쟁 등의 단어들이 적힌 종이가 꽉 쥐어져 있었다.
그중에 단연 비안카를 신경 쓰게 하는 단어는 신성 강림이었다.
“아이…….”
저도 모르게 친우의 애칭을 읊조린 음성에 걱정이 한가득 묻어났다.
비안카는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가 모시는 이에게 교국과 공화국의 국경에 흐르는 위험한 기류를 보고해야 했다.
그때였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나, 길레트 백작 영애.”
복도의 코너에서 스르륵 빠져나온 인물이 비안카를 불러 세웠다.
상대는 옅은 백금발과 시리도록 새파란 눈동자를 가진 10대 후반의 소년이었다.
입꼬리를 늘여 웃는 모습은 근사하고 귀족적이었으나 눈동자에 담긴 지독한 서늘함은 감춰지지 않았다.
소년의 이름은 리가레스 에젠텔 빈체스터.
그는 바로…….
“3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비안카는 후드를 벗고 나붓이 허리를 숙였다.
한 치의 결점도 없는 왕궁 예법으로 예를 갖추는 동안 푸른빛 도는 흑발이 길게 쏟아졌다.
“누님께 가나 보지?”
“예. 그렇습니다, 전하.”
리가레스는 일전에 아일렛이 브라더 콤플렉스니까 자극하지 말라고 충고해 주었던 막내 왕자였다.
현재 왕궁에 3왕자 리가레스를 제외한 왕자는 맏이인 1왕자뿐이다.
그러나 리가레스가 집착하는 형은 따로 있었다.
아주 어릴 적에 리가레스와 함께 납치 사고에 휘말려 실종된 동복형.
왕실에서 거의 사망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2왕자였다.
리가레스는 그 비극적인 사고의 배후에 엘펜하임 교국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하나뿐인 형에 대한 그리움만큼이나 교국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왔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소식은 들었겠지? 키릴스 지방에서 일어난 던전 버스트가 금방 수습되었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야. 보스가 좀 더 교국 쪽으로 남하했으면 좋았을 텐데.”
“전하의 반어법은 여전하십니다.”
“그대가 의뭉을 떠는 실력도 여전하고.”
순도 높은 악의를 감출 생각도 없는 호전적인 왕족.
이런 자가 집권하면 대륙에 피바람이 불 것은 자명했다.
‘절대 왕이 되어선 안 되는 인물이다.’
그때 드물게 즐거움을 실은 리가레스의 음성이 비안카의 귓전을 울렸다.
“아, 맞아.”
“…….”
“듣자 하니 토벌전에서 성녀가 활약했다지. 성녀라……. 이것 참 흥미가 동하는걸. 어서 빨리 왕실에 방문해 달라고 해야겠어.”
“…….”
교국에 대한 증오심에 바탕을 둔 가학적인 관심. 그것이 성녀에게 집중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바닥을 향해 내리깔린 비안카의 적안에 깊은 적개심이 서렸다.✠그로부터 사흘 뒤 길레트 백작성.
편지를 읽던 엘테아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편지의 발신인은 그녀의 부친인 히스펜릴 공왕이었으며, 안에는 대륙의 최신 소식들이 담겨 있었다.
덕분에 던전 버스트 사건을 상세히 접하게 된 엘테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우리 딸은 여행을 간다더니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건지…….”
“엘테아?”
사랑스러운 아내의 얼굴에 수심이 어려 있다.
레오날드가 그녀의 입에 마카롱을 넣어주며 물었다.
“장인어른이 뭐라셔? 우리 아이가 큰 사고라도 쳤대?”
“그건 아닌데…….”
엘테아는 뒷말을 생각했다.
‘사실 우리 딸이 신성 강림을 쓸 줄 아는 성녀거든? 그걸로 교국에서 한자리 꿰찬 것도 모자라 SS급 보스를 때려잡았다나 봐!’
그러나 차마 딸의 의사도 묻지 않고 함부로 밝힐 수는 없었다.
그것은 엄마가 히스펜릴 공녀라는 사실을 함구해 주고 있는 딸에 대한 배신이었다.
그리하여 엘테아는 말을 골랐다.
“그냥 교국에서 좀 유명해졌나 봐. 아이 얘도 정말, 큰일을 벌일 거면 엄마 아빠한테 미리 상의까지는 아니어도 말이나 좀 해주지. 할아버지 통해서 뒤늦게 듣게 하기나 하고. 엄마 아빠 서운하게 이게 뭐야.”
말을 할수록 하소연이 기색이 짙어졌다.
평생 품에 끼고 살 줄 알았던 자식이 어느덧 훌쩍 커서 부모 없이도 제 앞가림을 척척 해내고 있다.
기특하지만 섭섭한 양가적인 감정이 들 수밖에 없는 게 부모의 마음이었다.
“엘테아, 당신도 참…….”
레오날드는 아내를 부드럽게 달랬다.
“아직 남자를 데리고 온 것도 아닌데, 뭘.”
그때였다.
“엘테아 경! 레오날드 선생님!”
멀리서 하녀장 멜다가 숨넘어갈 듯이 달려오며 부부를 불렀다.
엘테아와 레오날드는 본능적으로 저택에 심각한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멜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부부 앞에 도착한 멜다는 티테이블에 있던 물을 원샷 하고는 외쳤다.
“큰일이에요, 엘테아 경! 아일렛이 돌아왔어요!”
“침착해요, 멜다. 그건 기쁜 일이지 큰일이 아니잖아요.”
“기쁘고 큰일 맞아요! 웬 허우대 좋은 청년이랑 같이 왔으니까요!”
“……!”
순간 부부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지금 아일렛이 그 청년한테 중정을 구경시켜 주고 있…… 헉! 엘테아 경! 레오날드 선생님! 같이 가요!”
엘테아와 레오날드는 귀가한 딸내미를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소드 마스터인 엘테아가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달린 탓에 학자 체질인 레오날드는 반쯤 죽을 뻔했다.
아무튼 그렇게 멜다가 말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였다.
녹음으로 우거진 나무 아래, 푸르고 청초한 수국이 가득 핀 중정.
그곳에서 부부는 웬 은발의 미청년을 발견했다.
성결하고 잘생긴 얼굴, 몸에 밴 절도와 매너, 다정하고 참한 분위기.
모든 것을 갖춘 듯한 청년이 곧 부부를 발견하고 미소 지었다.
“아이의 어머님과 아버님이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테실리드 아르젠트라고 합니다.”
“…….”
“…….”
심지어 목소리마저 완벽하다.
잠시 넋을 놓았던 엘테아와 레오날드가 동시에 정중한 맞이 인사를 건넸다.
“사위, 어서 오시게.”
“아니에요, 그런 거!”
당황한 아일렛의 외침이 중정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흠, 그래요. 성검의 주인이라고요?”
“예, 아버님.”
아빠는 기어코 거위를 잡아서 구우셨다.
그뿐일까. 눈앞에 차려진 점심상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였다.[‘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상견례 자리 같다며 흐뭇하게 웃습니다.] [‘만상의 혼돈을 감시하는 눈동자’가 야근을 하다 말고 울상을 짓습니다.]엄마가 예리한 눈으로 테실리드를 쓱 훑어보며 물었다.
“자네, 그러면 검 좀 쓰겠군?”
“익스퍼트 최상급입니다.”
“합격!”
“엄마, 뭘 합격시키시는 건데요…….”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거위 구이를 잘라서 테실리드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그가 칠죄종 중 식탐을 범하지 않도록 하려면 음식을 내가 건네주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또 조용히 눈웃음쳤다. 우리 엄마지만 참 예쁘고 얄미웠다.
한편 조금 전의 대화 때문인지 아빠는 시무룩하게 눈꼬리를 내렸다.
“기왕이면 학자 스타일이었으면 했는데. 연금술사나, 마법사 같은…….”
“…….”
그러고 보니 우리 집안에서 아빠 빼고 다들 소드 마스터네.
나는 이쯤에서 한 번 더 못을 박았다.
“놀리지 마세요. 테리가 불편해하잖아요.”
“알았어.”
그제야 부모님은 장난기를 거두셨다. 아빠가 의아함을 잔뜩 담아서 테실리드를 보며 물었다.
“테실리드 경이라 부르면 될까요?”
“테실리드로 충분합니다.”
“흠흠, 아직 그럴 수는 없지요. 경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보다, 성검의 주인이면 성황청에서 꽤 높은 분이지 않나요? 그런 분이 무슨 일로 우리 딸과 함께 다니는 건지요?”
여기선 내가 나섰다.
“아빠, 안 그래도 그거 말씀드리려고 찾아왔어요.”
“응?”
“제가 신성력을 각성해서 성녀가 되었거든요.”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