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마치 기다렸던 듯, 수많은 스켈레톤들이 모든 방향에서 우리를 포위하고 있었다.
눈두덩에서 쌍으로 번뜩이는 붉은 빛이 무수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는 듯했다.
그야말로 언데드 대군.
이에 우리 기사단원들이 황급히 원진을 갖추며 당황을 드러냈다.
“아니, 뭐가 이렇게 많은 겁니까? 토벌대가 두 번이나 지나간 곳이라면서요?”
“흐음, 그러게. 혹시 그새 번식한 건가?”
“야, 이페일. 스켈레톤이 그런 걸 어떻게 해?”
그래, 던전팜의 아스터와 벨로도 애가 없다고!
다행히 진지한 사람이 있었다. 테실리드가 땅바닥의 흙을 한 줌 쥐어서 살피더니 말했다.
“뼛가루가 섞여 있군. 아무래도 마도군이 지나가면서 방해 공작을 한 모양인데.”
“아, 그러고 보니…….”
눈앞의 스켈레톤들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몸이 뼈가 아니라 모래로 만들어진 듯 자꾸만 부스스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빈약해 보이는 언데드들의 모습 덕분에 알아챘다.
“뼛가루를 포대째로 뿌려서 언데드의 수를 불려놨구나.”
이 공동묘지는 일종의 언데드 인큐베이터였으니, 뿌려진 뼛가루는 사령술의 힘을 듬뿍 흡수하여 스켈레톤으로 태어나기 좋았다.
“내구성은 약해 보입니다, 형님 누님.”
“그래도 숫자가 너무 많아. 소모전은 피할 수 없겠는데.”
“그래, 이페일. 알았으면 전위로 나가라. 막내랑 나는 뒤에 있을게.”
모두가 교전을 준비했다. 이페일이 검에 오러를 실으며 내게 물었다.
“단장, 어느 방향으로 뚫고 가야 해?”
“저기, 북동쪽.”
“알았어. 여기선 센 거 한 방 날리고 전력 질주로 돌파를…… 어라?”
이페일이 말을 뚝 멈췄다. 포위하고 덮쳐들 줄 알았던 언데드들이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진에서 벗어나 걸어 나가자 언데드들은 그만큼 물러났다. 내가 가진 패시브 스킬, ‘언데드 세계에 울려 퍼지는 악명’ 효과 때문이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돌파하자. 걸어서.”
“……어, 응, 그래, 단장님.”
내가 앞장서자 언데드들은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터주었다. 성서에 나오는 기적의 한 장면과 같은 모습에 단원들은 감격했다.
“괜히 성녀님이 아니었네.”
“날로 먹는 느낌인데. 진짜 편하다.”
“누님, 멋지십니다.”
나는 이 와중에 혼자만 별말 없는 테실리드를 향해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옛날 생각난다.”
“옛날 생각?”
“기억 안 나? 장난감의 저택에서 술래잡기 할 때 말이야. 피에로 인형이 공격해 오니까 네가 나를 인간 방패로 썼잖아.”
“…….”
의외로 그는 아득한 옛날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민망해하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우리는 어느덧 공동묘지를 지나 골짜기에 다다랐다. 이곳은 다음 영역인 괴수의 늪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양쪽에 절벽이 세워진 좁은 길을 따라 쭉 걷던 중, 우리는 마도군의 수작질을 또 마주해야 했다.
“이야, 이거 보세요. 이번에는 얼음으로 길을 막아놨네요.”
“이 정도 마법이면 모리피스의 짓 같군.”
“오, 테실리드 형님. 이제 저한테 말씀 편하게 하시는 겁니까?”
“너한테 한 말 아닙니다.”
어째 테실리드의 존댓말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가볍게 골짜기를 돌파했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테실리드가 푸른 성화로 얼음을 녹이자 길이 만들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괴수의 늪에서도 우리는 모리피스의 방해 공작인 듯한 장애물을 몇 번이나 만났다.
“우와, 치졸하다. 여기 원래 늪지 건너는 다리 있던 자린데 폭파시켜 놨잖아? 돌아서 가야겠다. 다들 이리 와.”
“얼씨구, 환영 마법까지? 서큐버스도 쟤보다는 잘 입고 다니겠다. 요즘 누가 이런 같잖은 미인계에 걸리…… 야, 이페일! 정신 안 차려?!”
“애쉬, 느낌이 좋지 않다. 앞쪽 골짜기에 함정 설치되어 있나 살펴보고 와.”
이런 식이었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하여간 탑에 처박혀 연구만 하는 것들은 인성에 문제가 많다고 헐뜯습니다.] [‘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탑은 죄가 없다고 작게 구시렁거립니다.]이페일이 짜증스럽게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잘생긴 이마를 까자 아까 내게 처맞아 생긴 혹이 드러났다.
“하, 이거 우군이 아니라 적군이 따로 없네.”
“마법사들이 그렇죠, 이페일 형님.”
“그건 그래. 근데 마도군은 그렇다 치고, 왕국군은 안 말리고 뭐 한 거지?”
“모리피스를 누가 어떻게 말리겠습니까, 형님? 통칭 미치광이 마법산데.”
“뭐? 그렇게 미친놈이야?”
“네.”
이쯤에서 애쉬는 의외의 박학다식함을 자랑했다.
“200살 넘게 살면서 연구만 한 놈이 제정신이긴 힘들죠. 듣자 하니 인체 실험을 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아참, 형님들은 성흔양이니 실험체로 탐낼지 모릅니다. 조심하세요.”
“그렇대, 헤스티오. 네가 제일 약하니까 너 잡아가겠네. 조심해라.”
“야, 임마.”
티격태격하는 동안 목걸이에서 호기심 가득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그네스를 위해서 테실리드가 입을 열었다.
“모리피스는 수명을 연장하는 금단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황청에 발각되면 이단 심판을 당하고도 남을 인물이지만, 가문의 위세와 마법 실력이 받쳐주는지라 건드리기 어렵습니다.”
“모리피스의 가문은 마르셀리온입니다. 지난번 헬카이온 토벌전에서 제1마도군을 이끌던 오델리트 공녀와 같은 가문이지요.”
“인체 실험에 관한 건 뜬소문입니다. 모리피스가 인간 혐오증이 심한 자이긴 하지만 실험 대상은 동물과 마수만 쓰고 있습니다. 그나마도 동물은 사체만 사용합니다.”
테실리드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애쉬가 약간 감동한 얼굴로 열심히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저를 위한 설명 감사합니다, 테실리드 형님.”
“…….”
존댓말을 쓴 이상 이런 오해는 피할 수 없었다.
다음 지역으로 통하는 골짜기의 끝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돌연 짐승의 포효가 골짜기에 반향음을 만들어냈다.
“이건…….”
보통 때라면 우리는 그저 앞에 포악한 마수가 있나 보다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울림 속에 담긴 감정이 우리의 신경을 갉작였다.
종의 차이를 가로지르고 전달되어 오는 감정. 그건 분노와 슬픔이었다.
걸음을 옮긴 곳에는 마차만큼이나 거대한 늑대가 쇠목줄에 묶인 채 있었다.
반쯤 검게 물들었으나 청은빛으로 빛나는 털빛을 보고 정체를 짐작했다.
“타락한 숲의 정령 같네.”
목줄과 사슬을 보건대, 아낙시아에게 복속 당해서 파수꾼 역할을 하게 된 모양이다.
몸의 검은 부분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를 계기로 타락이 빠르게 진행되는 듯했다.
새빨갛게 변한 눈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살기를 흩뿌리는 늑대.
녀석은 목줄에서 벗어나고자 격하다 못해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중이었다.
우리는 늑대가 왜 이러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누님, 늑대의 앞에…….”
“…….”
쇠사슬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늑대의 앞발이 닿지 않는 위치.
그곳에는 도륙 당한 새끼 늑대 대여섯 마리가 쌓여 있었다.[‘만상의 혼돈을 감시하는 눈동자’가 잔혹함에 눈을 가립니다.]새끼 늑대들의 몸에 난 상처는 딱 봐도 검흔이었다.
테실리드가 낮은 음성으로 뇌까렸다.
“어미를 미치게 만들었군.”
기껏해야 강아지 크기인 작은 새끼들이었다. 이페일이 늘 웃던 얼굴을 굳히고, 헤스티오가 이를 갈았다.
“새끼들은 아직 타락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우릴 공격하게 만들기 위해 굳이 이딴 짓까지 했다고? 완전 개자식들이잖아.”
분노하는 일행들은 뒤로하고, 나는 새끼 숲의 정령들의 사체가 쌓인 곳으로 갔다. 그곳은 어미 늑대의 주둥이 바로 앞이기도 했다.
타락한 늑대가 다시금 포효하며 나를 향해 살기를 쏟아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세를 낮춰 새끼들의 사체에 손을 댔다.
내 손에서 하얀빛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어미 늑대는 더욱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발버둥 쳤다.
쿵!
육중한 몸체가 코앞에서 앞발을 구르자 머리가 띵할 정도로 지축이 흔들린다.
나는 묵묵히 하던 일을 마저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마리는 살았어.”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새끼 늑대 한 마리가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어미 품에 돌아갔다.
한 마리나마 살아 있는 새끼를 품게 된 어미 늑대의 눈에서 광기가 지워져 갔다.
어미 늑대의 상태가 조금 진정되는가 싶었으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별안간 어미 늑대가 앞발로 제 가슴을 긁으며 괴로워했다. 심장이 있을 법한 곳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너…… 아낙시아의 명령을 거부했구나.”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