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글쎄요.”
오델리트는 헬카이온 토벌과 검은 마검사와의 전투 당시 압도적인 강함을 보였던 신성경을 떠올렸다.
신성 강림은 확실히 경이로운 힘이었다. 다만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서 그런지 딱히 흥미나 관심이 일지는 않았다.
애초에 오델리트의 힘으로 신성경을 붙잡아서 실험체로 쓴다는 게 어불성설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적당히 만만하여 그녀로 하여금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쪽은…….
“아, 하긴, 네 졸업 논문 주제를 생각하면 연구 대상으로는 성흔양 쪽이 더 적당할 테지.”
“…….”
신성경과 합을 맞추던 은발의 성기사를 떠올린 참에 들은 말.
오델리트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졸업해야지 않겠느냐? 우리 가문에 스무 살이 훨씬 넘도록 마탑을 졸업 못 한 아이가 있다니. 쯔쯧.”
“…….”
오델리트는 유능한 마검사가 으레 그러하듯이, 오러를 먼저 각성했기에 마법 성취에는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법 한 우물만 파온 8대 조상의 입장에서는 감안할 사항이 아니었다.
“이러다 우리 가문의 대마법사 명맥이 끊길지도 모르겠구나. 모쪼록 조카 운손주는 너와 다르도록, 좋은 마나 회로를 가진 사내를 찾아서 혼인하도록 하여라.”
역시 웃어른과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고리타분하게 흘러가기 마련이었다.
레칸드로 후작이 두 사람의 영양가 없는 사담을 끊었다.
“이제 출발했으면 합니다.”
“그러려던 참이외다. 재촉하지 마시구려.”
그들은 세 번째 구역인 가시덤불 숲 앞에 섰다.
성인 허리통만큼이나 두꺼운 가시덤불이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군데군데에서는 거대한 튤립 모양의 식인꽃이 활짝 펴서 먹잇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 식인꽃 가시덤불은 재생력이 몹시 빠른 데다, 소드 마스터를 하도 먹어서 오러에 내성이 있었다.
토벌대 인원이 주로 오러 유저로 구성된 왕국군과는 상성이 몹시 나쁘다 하겠다.
레칸드로 후작이 경고했다.
“가까이 가면 잡아먹혀서 원기를 빨리게 됩니다.”
“마법사가 가까이 갈 리가.”
모리피스가 검지에 앉혀뒀던 뱁새를 날려 보냈다.
“태우려무나, 베아트리체.”
작고 오동통했던 뱁새의 실루엣이 점차 크기를 부풀리며 날카롭게 변했다.
키야아악!
곧 뱁새가, 아니 뱁새였던 괴조가 뜨거운 숨결을 쏟아냈다.
길게 쏟아지는 화염에 덤불숲이 불탔다.
괴조의 화염은 식인꽃 가시덤불의 미친 듯한 재생력을 상회했다.
그 탓에 식인화는 식물 주제에 비명을 지르며 스러졌다.
6계위 예닐곱 명은 있어야 만들어질 만한 화력.
모리피스가 부리는 키메라 한 마리가 어지간한 상급 능력자 여럿보다 강하다는 방증이었다.
“되었소이다, 레칸드로 후작.”
모리피스 덕분에 두 나라의 토벌대는 편하게 잿더미를 밟고 숲을 통과할 수 있었다.
결계의 영역을 다 지나왔을 때 모리피스가 멈춰 섰다.
“그럼 다들 물러나시게나.”
“하아…….”
레칸드로 후작이 한숨을 깊게 쉬었다.
모리피스가 또 교국군을 방해하기 위해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모양이었다.
‘이젠 아주 대놓고 하는군.’
애초에 말려도 들어먹지 않을 사이코인 데다, 교국군과의 합류는 글렀다고 판단한 레칸드로 후작은 포기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고 간 대화로 미루어 봐서는, 신성경과 키메라 연구가는 서로 마주치지 않는 게 대륙 평화를 위한 일 같기도 했다.
멀찍이서 모리피스의 음성이 들려 왔다.
“무럭무럭 자라나거라.”
모리피스는 대마법사답게 다양한 계열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고, 그중에는 식물의 생장을 돕는 분야, 클로로맨서(Chloro-Mancer)도 있었다.
땅속의 뿌리가 아직 살아 있던 식인꽃 가시덤불이 무섭도록 빠르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덤불은 원래 영역을 덮고도 훨씬 풍성하게 자라났다.
하마터면 아군이 있는 영역을 침범하여, 기사와 마검사를 고속 성장의 영양분으로 삼을 뻔했다.
할 일을 다 마친 모리피스가 뿌듯한 얼굴로 돌아섰다.
“이만하면 교국군에게 따라잡힐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소이다.”
“……알았으니 갑시다.”
레칸드로 후작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기사의 미덕인 침묵과 인내를 발휘했다.
빨리 왕족을 구하고 이 사이코와 헤어지려면 그렇게 해야 했다.
이제부터는 정보가 없는 새로운 환경이었다.
생울타리로 이루어진 미로를 향해 두 나라의 토벌대가 발걸음을 내디뎠다.✠“호오, 벌써 미로의 정원까지 왔네?”
아낙시아가 만든 거울 중에는 실용적이고 편리한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감시의 거울이라는 것이었다.
감시의 거울은 영지 곳곳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를 통해 용사들을 지켜보던 아낙시아가 흥미진진한 눈빛을 했다.
“선두에 선 인간들이 단악의 집행관을 따돌리고 있구나. 하여간, 인간들은 반목하고 분열하고 배신하길 참 좋아한다니까.”
“그러게요, 아낙시아님. 하앙.”
“뭐, 덕분에 관찰하는 재미는 있지만.”
아낙시아는 감시의 거울을 역소환한 뒤에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서큐버스 여왕에게 물었다.
“보스 룸 공사는?”
“잘 끝났답니다. 어서 가서 직접 확인해 보셔요.”
“그래.”
머지않아 두 악마의 걸음이 거대한 아치 철문 앞에 멈춰 섰다.
쿠구구궁!
일부러 묵직한 소음을 내도록 설계된 문이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드러난 보스 룸은, 웅장한 알현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피를 짜내서 물들인 듯 붉은 카펫이 깔린 길.
그 끝은 열세 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높은 단상까지 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 단상 위에는 황금과 보석을 입혀 만든 화려한 왕좌가 위엄을 뽐냈다.
공작인 아낙시아가 보스 룸을 왕의 알현실처럼 꾸민 이유는 뻔했다.
‘나는 마왕이 될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칭왕(稱王)할 생각이었다.
마계 전체에 대한 도발이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혼돈악을 뒷배로 삼았으니까.
서큐버스 여왕이 아낙시아를 부추겼다.
“어서 가서 앉아보세요, 아낙시아 님.”
“아직은, 때가 아니야.”
아낙시아는 숨을 들이켜며 욕망을 절제했다.
첫 착석은 의미가 깊은 법이다.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하고 싶었다.
바로, 단악의 집행관을 포함한 용사들이 이 방에 입장하는 그 순간 말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아낙시아의 눈에 광적인 흥분이 떠올랐다.
“세 마왕에게 보낸 거울 선물의 답신은?”
“선물을 들고 간 가신들의 목이 돌아왔답니다. 깨끗하게 잘려서요.”
“좋네.”
마계에서는 최고의 답례품이다.
그녀가 보낸 거울을 통해 마왕들도 곧 있을 ‘연회’를 지켜볼 터.
아주 좋은 마왕 데뷔전이 될 것이다.
“아낙시아 님~.”
그때 알현실 출입문에서 서큐버스 메이드들이 황홀한 소식을 전해 왔다.
“혼돈악께서 재차 광림하셨어요! 어서 가셔서 귀빈을 맞이해 주세요!”
29장. 변화하는 거울의 성
화르르륵!
울창한 가시덤불 숲이 푸른 성화에 의해 잿더미가 되었다.
나는 앞을 가리키며 멋지게 외쳤다.
“전군, 앞으로!”
“예! 군단장님!”
“군단장님을 따르라!”
“……고작 네 명 갖고 군단장은 무슨. 그러고 놀면 재밌냐?”
이페일과 애쉬는 장단을 맞춰줬으나 헤스티오는 초를 쳤다.[‘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사회생활 능력이 형편없는 친구라며 안타까워합니다.] [‘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바른 말을 못하게 하는 조직 문화에 반대합니다.]나는 헤스티오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앞장서서 걸음을 내디뎠다.
화전(火田)처럼 변해 버린 가시덤불 숲 곳곳에는 아직도 질기게 살아서 꿈틀거리는 식물 줄기가 있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사슬을 붕붕 돌리다가, 그런 것들이 발견될 때마다 오러를 실어서 잘라냈다.
퍼서서석!
사슬 끝에는 쇠고랑이 달려 있었기에 다절곤과 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참고로 나는 웨폰 마이스터 아그네스를 스승으로 둔 덕택에, 대부분의 무기를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었다.
“아이.”
“응? 왜?”
테실리드의 부름에 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내 멋진 다절곤 실력에 감탄했겠지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개 목걸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
“응?”
“계속 들고 다니기에.”
그제야 나는 별생각 없이 붕붕 돌리고 있었던 사슬 쇠고랑을 다시 보았다.
이건 아까 어미 늑대를 고통 없이 보내준 뒤에 얻게 된 아이템이었다.[ ‘복종의 개 목걸이’
아낙시아가 파수견을 길들이기 위해 제작한 특수한 개 목걸이. 착용한 시점부터 대상은 당신을 주인님으로 여기며 극진히 섬기게 된다.
참고: 착용 순간 대상의 목둘레에 딱 맞게 사이즈가 변화한다.][‘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눈을 빛내며 음흉하게 웃습니다.]천칭님의 반응 때문에 아이템의 용도가 새삼 망측하게 느껴졌다.
서둘러 인벤토리에 던져 넣고 손을 털었다.
“딱히 마음에 든 거 아니야.”
“그래.”
“정말이야.”
“알았어.”
왠지 모를 머쓱함을 감추며 걸음을 빨리했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