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
“…….”
그제야 레이윈이 화들짝 놀라서 손을 회수했다.
“미, 미안하네, 프린츠. 내가 잠시 흥분했어.”
“괜찮습니다. 그보다 이따 이야기 좀 하죠, 레이윈. 아까 그 거울에 비친 인물에 대해.”
“……아, 알았네.”
이때 프린츠는 평소의 순한 그답지 않게 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반면 매사에 당당해야 할 소공작님께서는 왠지 모르게 약점이라도 잡힌 듯 보였다.
뭐지. 둘이 친구가 된 거 아니었나.[‘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사실은 프린츠가 사관학교 일진이 아니었는지 의심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로판형 오빠는 이중성이 있기 마련이니까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말합니다.]‘에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우리 오빠가 얼마나 착한데, 절대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좀 걱정되니까.
“오빠, 소공작님께 잘해드려. 마음고생 많이 하신 분이야.”
“응? 어, 응.”
“소공작님, 저희 오빠 잘 부탁해요.”
“어? 아니, 나야말로.”
얼렁뚱땅 두 사람의 교우관계를 중재했다.
마음에 없는 대답을 할 사람들은 아니니까 앞으로 별문제 없겠거니 낙관했다.
그때 목걸이가 울렸다.
“……아.”
잠시 잊을 뻔했는데, 방에는 나와 프린츠와 레이윈 외에도 한 명이 더 있었다.
돌아본 곳에는 무릎을 감싸 안은 채 떨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괜찮아?”
“…….”
“얘?”
강한 마족을 코앞에서 맞닥뜨린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하물며 그 낫에 목이 베일 뻔했기도 하고 말이다.
“백마법사님, 이제 괜찮습니다.”
“힐데 양, 다 끝났어. 진정해.”
걱정스레 달래는 프린츠와 레이윈의 음성이 내게 정보를 주었다.
“백마법사 힐데 마르셀리온이 너구나.”
마르셀리온 가문에서 학대당하고, 오델리트 공녀에게 착취당하는 비운의 조연.
17회차 시간선의 그녀는 지난 헬카이온 토벌전 때 죽을 운명이었으나, 내 적극적인 원작 파괴 덕분에 살아남게 된 모양이었다.
나는 질문의 기저에 담긴 부정적인 의미를 짧게 반박했다.
“얘는 좀 달라요.”
주변 사람들에게 수상함을 심어주지 않도록 그 이상의 설명은 아꼈다.
아그네스는 편견을 버리기로 한 듯 힐데를 살피고는 말했다.
역시 아그네스. 전투력 측정기가 따로 없다.
참고로 백마법사는 진짜 마법사가 아니라 신성력을 각성한 마도 공화국민을 칭했다.
교단에 힐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한숨을 쉬며 고민에 잠겼다.
‘얘를 어쩌면 좋나.’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것 같은 상태다.
함께 이동하는 것은 무리니, 충분한 식량을 주고 중보스 방에 두고 가는 게 좋을까.
“응?”
소맷자락이 잡아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선을 내리자 힐데의 떨리는 손이 보였다.
“버, 버리고 가지 마세요.”
“…….”
“조, 조금만요.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정신 차릴게요……. 잘할게요…….”
……아차. 잠깐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힐데는 눈치가 빠르다.
특히 오델리트와 겹쳐볼 수 있는 나이대의 여성을 대상으로.
내가 그 범위에 아슬아슬하게 끼는 모양이다.
나는 아공간 인벤토리에 한 손을 쑥 집어넣었다.
다시 빠져나온 손에는 초콜릿, 사탕, 캐러멜 따위가 한가득 쥐어져 있었다. 그걸 힐데에게 내밀었다.
다 큰 소녀를 너무 아이 다루듯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선 다른 요령 좋은 방법을 못 찾겠다.
“먹어. 단거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 거야.”
“…….”
한참 동안 내 손을 얼떨하게 바라보던 힐데가 마침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가, 감사……합니다…….”
곱게 모은 두 손이 내게서 단것들을 조심히 받아 갔다.
그러는 동안 펑퍼짐한 로브 소매 사이로 깡마른 손목이 드러났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그네스. 보는 제가 다 화나네요.
그야 마르셀리온 가문에서 학대까지 당했으니까.
여기까지 아그네스의 말을 듣고 보니 뇌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얘, 데려갈까.’
동정심 때문만은 아니다.
나도 힐러지만 공격에 집중할 때는 힐 셔틀, 아니 소중한 동료 힐러가 있으면 좋긴 하니까.
하물며 전력으로서 힐데의 가치는 신성력이 7계위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무려 ‘위협 면제’ 체질을 가진 인재였다. 아무리 힐을 퍼부어도 어그로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군침이 도는 인재다.
“힐데.”
“네?”
“너 혹시 망명할 생각 없어?”
“네……에?”
“……아냐, 잊어.”
충동적으로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서 바로 철회했다.
힐데는 한 번도 제 인생에 대해 선택권을 가져본 적이 없다. 가볍게 언급할 만한 주제는 아니었다.
힐데가 상당히 평정을 되찾은 것 같으니 슬슬 움직일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
나는 모두를 향해 말했다.
“자자, 여러분. 주목해 주세요.”
“응.”
“음.”
“네.”
“중보스를 해치웠으니 이 방은 이제 안전할 거예요. 여러분은 이곳에 남아서 아낙시아가 토벌될 때까지 기다려도 돼요.”
“아이, 너는 어쩔 건데?”
프린츠와 레이윈이 심각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내 기사단원들과 보스를 잡으러 갈 거야, 오빠.”
“보스를 잡겠다고? 네 기사단원이 몇 명인데?”
“나 포함 다섯 명.”
“뭐? 무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가? 그렇게 적은 인원으로 어떻게! 너무 위험해!”
레이윈이 별안간 프린츠의 말까지 끊어가며 흥분해서 외쳤다.
깜짝 놀란 나와 프린츠가 양옆에서 지그시 시선을 보내자 그가 아차 하며 사과했다.
그러나 내용 자체에는 프린츠도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내 생각도 그래. 키메라 연구가는 꺼림칙하니까 배제하더라도, 레칸드로 후작님과는 합류해서 같이 보스를 치는 게 낫지 않겠어?”
“아니.”
나는 단호했다.
“내 기사단원들이 지금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 한시가 급해. 그리고 무엇보다 오빠의 제안대로 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문제? 뭔데?”
“키메라 연구가와 레칸드로 후작을 찾아서 합류하는 건 어려워. 두 사람은 지금쯤 빠져나오기 힘든 곳에 갇혀 있을 거거든.”
원작대로라면 현재 모리피스와 레칸드로 후작은 성의 지하에 있는 물거울 속에 갇혔을 것이다.
구하러 간다고 한들, 물거울에서는 그들이 자력으로 탈출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첫인사를 나눌 때쯤엔 내 일행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겠지.
애초에 나는 아낙시아 토벌에 있어서 레칸트로 후작과 키메라 연구가의 전력을 빌릴 생각이 없었다. 따라서 시간 낭비는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세 사람을 쭉 훑으며 입을 열었다.
“오빠, 소공작님, 힐데 양. 저는 지금부터 던전의 주인, 아낙시아 펠헴스테인을 치러 갑니다.”
여기저기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내 어조가 쓸데없이 근엄했던 모양인지라, 뒷말은 가벼운 웃음과 함께 이었다.
“자, 같이 가고 싶은 분 있으면 지금 빨리 손들어주세요. 특별히 껴드릴게요.”✠그 시각, 아일렛의 도플갱어와 함께 있는 기사단원들은 순조롭게 탑을 오르는 중이었다.
“다, 당신은……! 끄아아악!”
방을 지키던 악마 하나가 순식간에 찢어진다.
돌파는 편할 수밖에 없었다.
아일렛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존재는 다름 아닌 던전의 주인이었으니까.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종속된 가신들이 감히 그녀를 공격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현재 일행의 위치는 거울의 성 최상층인 7층. 곧 있으면 보스 룸이다.
앞장서는 아일렛의 도플갱어, 그러니까 아낙시아는 현재 히죽거리고 싶은 입꼬리를 눌러 참는 중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도착이다.’
새롭게 단장한 그녀의 보스 룸, 네 번째 마왕의 알현실.
그곳에 입장할 것을 생각하니 쾌감으로 전신이 오싹오싹했다.
지금 아낙시아와 함께하고 있는 네 명의 미천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녀가 단악의 집행관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터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이 보스 룸에 도착했을 때 보스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리고 그녀가 유유히 알현실을 가로질러 가서 왕좌에 멋있게 앉는다면?
그리고 또 오만하게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격을 드러내고 정체를 밝힌다면?
이 일련의 상황 속에서 충격을 받은 인간들은 과연 어떤 얼굴을 보여줄 것인가!
‘아아, 상상만으로 짜릿해!’
극도의 흥분으로 아낙시아의 동공이 세로로 쭉 찢어졌다.
단악의 집행관이 없는 네 인간 남자들은 아낙시아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얼굴은 봐줄 만하니, 장난감 인형처럼 가지고 노는 재미는 있겠다.
그중에서도 혼돈악을 살짝 닮은 듯한 은발의 성기사는 각별히 농락해 줄 심산이었다.
차마 혼돈악에게는 할 수 없는 불경한 짓을 잔뜩 해서 너덜너덜하게 만들어주자.
그러고 나서 단악의 집행관이 도착하면 보란 듯이 네 남자들의 시체를 하나씩 던져줘야지.
자고로 비탄과 절규는 마계에서 최고로 치는 노래인 법.
‘단악의 집행관, 네가 목놓아 부르는 절망의 아리아를 리드 님께 들려드릴 것이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