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이틀을 누워 있었더니 배 속에서 밥을 달라고 성화였다.
아래쪽에서 음습한 어둠의 의식이 집전되든 말든 나와 테실리드는 식사했다.
층고가 상당히 높은 데다, 마족들이 죄다 하급인지라 들킬 염려는 없는 듯했다.
인벤토리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짐에 따라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생겼다.
유사시 테실리드가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내가 잠든 지난 이틀간 그가 쫄쫄 굶었다고 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인벤토리 접근 권한을 타인에게 줄 수 없을까요?’
그제야 신님들이 메시지를 보내주었다.[‘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부부의 공동재산을 인정해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주인공을 믿을 수 없다며 신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탐탁잖아 하다가 이건 자신에게 맡기라고 호언장담합니다.]“금식은 자주 했으니 상관없어.”
테실리드는 담담했으나, 나는 도리어 그 말이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언령님, 우리 언령교는 절대 금식 기도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해요.’[‘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알겠다고 대답합니다.]냄새를 풍기지 않는 음식들로 요기를 하던 중 아그네스가 말을 걸었다.
“생명 유지 흑마법을 아는 놈이라 생각보다 타격은 없을 거예요.”
바퀴벌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한 달쯤 살아 있을지 모른다.
그때 테실리드가 씹는 걸 멈추더니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 녀석이 네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별로인데. 거울째로 땅에 묻어두고 가면 안 되나?”
“…….”
“농담이야.”
아냐. 방금 그거 진담이었어. 내가 알아.
나는 차분히 설득했다.
“모리피스는 마혈석 분쟁을 해결할 협상 카드로 쓸 거야. 그래야 양국 간의 분쟁을 막을 수 있지.”
“그렇군.”
“그보다 얼른 돌아갈 생각부터 해야겠다. 지금쯤 다들 우리 걱정하느라 난리 났겠어.”
리드가 나타나기 직전에 동료들은 출구 게이트를 통해 던전을 빠져나가서 다행이었다.
염려되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레칸드로 후작과 셀레스티드 왕녀는 괜찮을지 모르겠네.”
“그렇겠죠? 아, 나도 오러 마스터 되고 싶다.”
테실리드가 잠시 딴 길로 새려는 주제를 되돌려놨다.
“아이, 출구 게이트를 찾으려면 일단 이 신전을 빠져나가는 것이 좋겠어.”
“응. 근처에 숲이 있는 것 같으니까 거길 돌아다니면서 출구 게이트를 찾자.”
이곳은 마왕령 한복판.
난동을 부리거나 악마 대주교를 토벌하려 들었다간 자칫 마왕이 소환될 수도 있다.
테실리드도 이 점을 걱정했다.
“마족들에게 들키지 않고 잘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건 걱정하지 마. 마침 좋은 아이템이 있으니까.”
이 다락방은 창고로 사용 중인지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아래층의 마족 광신도들이 입은 것과 같은 검은 사제복도 있었다.
원피스와 수단은 이교도인 것치고 비교적 멀쩡했다.
금욕적인 검정 수단을 꺼내서 테실리드에게 넘기고, 옆트임 있는 검은 원피스는 내가 입기 위해 집어 들었다.
테실리드는 다소 회의적으로 말했다.
“아이, 이걸 입는다고 눈속임이 가능하진 않을 것 같아.”
“아, 이것도 입을 거긴 한데, 내가 말한 좋은 아이템은 다른 거야.”
“뭔데?”
이번에는 내 인벤토리를 뒤적였다.
손에 잡혀 나온 것은 지난번에 몽마 사용인들을 잡고 얻은 아이템이었다.
검은 가죽 벨트를 듬성듬성 엮어서 만든 듯한 조끼 두 벌. 이것들이 무엇이냐면…….[ ‘몽마의 가죽 하네스’
옷 아래 착용하면 몽마인 척 위장할 수 있는 의상 아이템이다.
참고: 착용시 매력이 200% 상승하지만 기품, 위엄, 카리스마가 100% 하락한다.]이것만 있으면 마계 밀입국도 문제없다.[‘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기대감에 눈을 번뜩입니다.]단, 다른 쪽으로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자, 테리. 이거면 몽마로 위장할 수 있어. 수단 아래 입어.”
“입는다고?”
“응.”
“어떻게?”
“…….”
……꽤 긴 고생 끝에, 우리는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든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
환복을 마치고 나와 테실리드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어때, 테리? 불편해?”
“괜찮아…….”
그는 대답과 표정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었다. 많이 어색하고 불편한 모양이다.
그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손으로 얼굴 쓸어내리는 척 입가를 가렸다.
그러다가 왜인지 알 수 없게도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나는 원피스의 옆트임을 정리하던 것을 멈추고 물었다.
“왜?”
“아니야…….”
이번에 테실리드는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기품, 위엄, 카리스마가 바닥을 치도록 줄어드는 효과 때문인가. 지금 테실리드의 대답은 유난히 매가리 없게 들린다.
이런 게 바로 자존감 낮은 미남인가. 나쁘지 않…….
‘아참, 이거 매력 3배였지.’
가장 치명적인 항목에서 보정이 들어감을 깨닫고 정신을 차렸다.
“빨리 신전에서 나가자.”
왠지 절실해 보이는 테실리드가 다락방의 문을 열고 앞장섰다.
처음 발을 내디딘 복도는 한적했다. 이대로 어떤 마족과도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지만 무리였다.
지도를 보면서 걸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테실리드는 한 마족 신도와 마주쳤다.
날카롭게 삐져나와 있는 송곳니를 보건대 뱀파이어였다.
“인간……?”
안경알 너머의 눈이 의심으로 가늘어진다.
나는 몽마답게 응수했다. 뱀파이어의 옆을 지나가면서 희롱하듯 손 키스를 날려주자, 녀석이 의심을 날려 보냈다.
“모, 몽마였군.”
매력 3배 효과는 악마한테도 통하는 모양이다. 얼굴을 슬쩍 붉히는 꼴이 우스웠다.
긴 복도를 지나 투박한 돌계단을 내려갔다.
도중에 다른 악마 신도들과도 마주쳤지만 별일은 없었다.
“벌써 1층이군.”
“곧 나갈 수 있겠다.”
지도를 보아하니 출입구가 멀지 않았다.
그러나 나와 테실리드의 발길을 멈춰 세우는 사건이 생겨났다.
세 명분의 인기척이 들리기에 반사적으로 사각지대에 몸을 숨겼을 때였다. 조용히 마족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어째 녀석들의 행태가 수상했다.
“대주교님의 보물이다. 조심히 들어.”
“쉿! 누가 엿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남들 보기 전에 어서 가져다 놓자.”
세 마족들은 주변을 굉장히 경계하며 지하실로 보석상자를 옮겼다.
나와 테실리드는 그들이 사라진 지하 계단 쪽을 들여다보며 한마디씩 했다.
“수상해 보이는걸?”
“수상해 보이는군.”
때맞춰 신의 계시가 내려왔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어서 따라가 보자며 눈을 빛냅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눈을 빛냅니다.]교세 확장에 진심인 언령님과 로맨스패스인 천칭님의 의견이 합치되는 상황이라니?
흥미가 돋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넵.”
나와 테실리드가 동시에 대답했다. 우리는 마족들이 돌아 나오길 기다렸다가 층계를 내려갔다.
지하실 끄트머리에 있는 것은 일견 평범하게 생긴 나무 문이었다.
“아까 대주교의 보물이라고 했지? 그런 걸 갖다 놓는 장소라면 뻔하겠네.”
“그래. 보물 창고겠지.”
“좋아, 모처럼 마계에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보스 토벌은 안 하더라도 기념품 하나 정도는 챙겨가자.”
“쓸 만한 게 있으면 좋겠군.”
“있을 거야. 그런데 이 문을 어떻게 열지?”
내 고민은 불필요하다는 것이 금세 밝혀졌다.
드르륵!
“……?”
“……?”
보물 창고가 저절로 개방되었다. 테실리드가 문 바로 앞에 선 순간 일어난 일이었다.
“그건…… 아닐걸요.”
이곳은 혼돈악의 신전이다. 미래의 혼돈악을 알아보고 테실리드에게 통행 허가를 내준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런 추측을 테실리드 앞에서 곧이곧대로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테실리드도 내심 짐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난처하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주제를 환기했다.
“어서 들어가 보자, 아이.”
“응.”
방 안쪽은 실망스러웠다. 보물이라고는 중앙의 단상 위에 곱게 모셔져 있는 보석상자밖에 없었다.
“악마 대주교 살림살이가 영 시원찮네.”
“조촐하긴 하군. 트랩은 없는 듯해. 내가 열게.”
상자 뚜껑을 연 순간, 나와 테실리드는 조금 전에 했던 생각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딱 하나 있는 보물이 제법 대단했다.
벨벳 위에 놓인 한 쌍의 장신구가 빛에 반짝였다.
그것은 검은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반지였는데, 머리 부분에 보석이 없는 대신 십자가 모양이 양각되어 있었다.
시스템이 반지를 감정해 주었다.[ ‘대주교의 묵주 반지’
당신이 귀의한 종교의 세력에 따라 마기를 증폭시켜 주는 아티팩트.
주교급 이상만 사용이 가능하며, 정화하면 마기를 신성력으로 호환할 수 있다.
참고: 한 사람당 한 개만 착용할 수 있다.]굉장했다.
무려 종교 호환이 가능한, 신성력 증폭 아티팩트라니![‘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얼른 들고 튀자고 부추깁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한 쌍이니 위장 커플링으로 완벽하다고 말합니다.]나는 테실리드에게 의견을 구했다.
“있잖아. 이거 훔치면 경보 울릴까?”
“이곳의 대주교가 금방 알아채긴 하겠지.”
“테리.”
“응.”
나는 한 쌍의 묵주 반지를 집어 들었다.
“뛰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지하 계단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심장을 짜릿하게 만드는 메시지가 떴다.[ 경고. 지역의 주인, ‘대주교 테즈리할’이 아티팩트의 도난 사실을 깨닫습니다.] [ 경고. ‘대주교 테즈리할’이 격노하여 신전의 출입구를 봉쇄하기 시작합니다.]일직선 복도 끝에서 출입문이 서서히 닫히는 것이 보인다.
뒤에서도 난리가 났다.
“아티팩트 도둑이다!”
“잡아라! 어서 잡아!”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