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힐끗 고개를 돌리자, 검은 사제복 차림의 악마들이 혈안이 되어 우리를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술래가 너무 많네. 신성 찬가!”
나와 테실리드의 몸에 보조 스킬을 걸고 더욱 빠르게 다리로 바닥을 박찼다.
그리하여 마침내.
콰아아앙!
신전의 거대한 출입문이 빈틈없이 맞물리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다행히 코앞이 아닌 등 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나와 테실리드는 멈춰서 숨을 고르는 대신 계속 달렸다. 신전에서 최대한 멀어질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근육이 파열될 듯 혹사시킨 다리를 쉬게 해준 것은, 인면목 숲 깊이 들어간 다음이었다.
“이제 안전한 것 같아, 아이.”
“헉헉……. 진짜?”
“응.”
상당한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려온 마당이다. 지친 나는 허리를 앞으로 꺾은 채로 무릎을 짚었다.
“고, 고생했어, 테리.”
“너야말로.”
그런데 어째 테실리드의 음성이 차분했다.
나는 숨을 고르던 것도 잊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왜 그렇게 봐, 아이?”
“넌 왜 멀쩡한가 싶어서.”
“……그러게, 이상한데.”
그제야 테실리드도 별로 지친 기색이 없는 제 몸 상태를 깨닫고 의아해했다.
대체 뭐지? 나와 테실리드의 체력 차이가 이렇게 심할 일인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신께서 주셨다.[‘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귀속의 치유에 포함된 특수 효과가 적용되었다고 말합니다.]귀속의 치유에 그런 게 있었나? 왜 난 기억이 안 나지?
그냥 테실리드 한정으로 치유 계열 스킬 5배 증가하는 것이라 알고 있었던 터라 의아했다.[‘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주요 스킬을 제대로 파악해두지 않은 당신을 향해 혀를 쯧쯧 찹니다.]확실히 이건 힐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심각해진 나는 당장 해당 스킬의 설명을 불러들였다.
참고 항목에 심상찮은 내용이 적혀 있긴 했다.-오르슈 백작이 미래의 피앙세에게 주려고 아껴놓았던 스킬북이다. 파트너의 스태미나 회복에도 유의미한 임상효과를 나타내므로 침대에서 유용…….나는 당장 설명창을 껐다.
“음, 그래. 이래서 기억 속에서 지웠구나.”
“아이?”
“아무것도 아니야, 테리.”
고맙게도 테실리드는 제 체력 회복의 원인을 깊게 궁금하지 않았다.
“잠깐 쉴 겸 해서 획득한 기념품이나 살펴볼까?”
“그래.”
나는 한 쌍의 묵주 반지를 신성력으로 정화하기 시작했다.
꽤 높은 등급의 아티팩트인 탓에 시간이 좀 걸렸다.
그사이 테실리드는 마족의 옷이 영 불편했는지 나무 뒤에서 성기사 제복으로 갈아입고 왔다.
“됐다.”
마침내 반지의 검은 부분이 푸른색으로 변하며 정화의 성공을 알렸다.
“자, 테리. 하나씩 끼자.”
하나는 테실리드에게 건네주고, 다른 하나는 내가 꼈다.[‘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직접 끼워주지 않은 것을 아쉬워합니다.]메시지를 못 들은 척하며 변화를 기다렸다.
잠시 후.
“오?”
과연 보통의 아이템을 장비하거나 사용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
아티팩트가 시스템과 연동되어, 내게만 보이는 특별한 상태창을 펼쳐준 것이다.[ ‘언령교’
주신: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
교주: 아일렛 로델라인
평가등급: D (▽상세 내역)
-점유율: 0.000004% (F)
-8계위급 신도수: 2인 (A)
-성인 명부 입적: 아그네스 아즐릿 1인 (C)
-교구수: 1개 (F)
참고: 점유율과 교구수를 보면 F급이나 다름없으나 아일렛 로델라인, 아론제이크 히스펜릴, 아그네스 아즐릿 셋 덕분에 D급으로 올랐다. 아직 상승할 여지가 많으니 포교를 열심히 해보자.]졸지에 언령교의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D급이라니, 참담한걸. 그래도 버프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D급 묵주의 반지 효과’
착용자의 신성력을 10% 증가시켜 준다.] [ 당신이 사용하는 신성력 스킬의 위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 당신의 신성력의 경지가 8계위 한계 상태에 이릅니다.]나는 변화를 만끽하며 양 주먹을 쥐었다 폈다.
“꽤 강해진 것 같아요.”
“고마워요. 아그네스 덕분이에요.”
존재 자체로 언령교의 등급을 올려줬다는 것은 나중에 테실리드가 없을 때 몰래 이야기해야겠다.
성적표를 받으면 옆 사람과 비교해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었다.
나는 경쟁 종교의 정보를 캐고자 몸을 테실리드 쪽으로 슬쩍 기울였다.
“너는 어때, 테리?”
사실 굳이 질문할 필요는 없었다.
빙의자 서포트 시스템은 테실리드의 아티팩트에도 접근이 가능했다. 덕분에 나는 맘껏 질서교의 상태를 염탐할 수 있었다.[ ‘질서교’
주신: 엄격한 질서와 선
교주: 세네딕트 델로어드
평가등급: B+ (▽상세 내역)
-점유율: 57.57% (A)
-8계위급 신도수: 없음 (F)
-성인 명부 입적: 발쿠스 오드렉 포함 11명 (S)
-교구수: 319개 (S)
참고: 세렌트라 대륙에서 신앙을 과반수로 점유한 유일신 종교. 그러나 신이 가출해서 신성력이 영락하는 바람에 8계위급 신도수 항목에서 점수를 대폭 깎아 먹었다. 앞으로도 내리막길뿐일 테니 서둘러 개종하는 것이 좋겠다.]과연 대륙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유일신 종교답게, 한 항목을 제외하면 성적표가 훌륭했다.
그에 따라 보상도 나와 차이가 났다.[ ‘B급 묵주의 반지 효과’
착용자의 신성력을 30% 증가시켜 준다.]헉. 무려 30%라니.
‘부, 부럽다!’
주먹 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테실리드에게 질시의 시선을 보낼 때였다.
“……아.”
“응? 왜 그래, 테리?”
나직한 탄성에 의아해하며 물었더니.
“나 방금 신성력의 경지가 한 단계 오른 것 같은데.”
“추기경급이 되었다고?”
“응.”
“우와, 정말 축하해!”
나는 조금 전의 질투 따위는 싹 잊고 진심을 다해 박수를 쳤다.
테실리드는 정말 기뻐 보였다.
“신성 오러에도 영향이 가겠군. 마스터가 되는 게 한결 수월해지겠어.”
원작에서는 40회차를 넘어서야 오러 마스터가 되었는데, 앞당길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었다.
그때 승부욕이 강한 아그네스가 반응했다.
“넵!”
“…….”
유용한 아티팩트를 얻게 되어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증폭 효과를 제외하더라도, 언령교와 질서교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 셈이니까 말이다.
나와 그의 손가락에 하나씩 끼워진 묵주 반지를 보며 뿌듯해하던 중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나는 심각한 얼굴로 테실리드에게 부탁했다.
“교단에는 네가 잘 말해줘. 이거 묵주 반지라고.”
“알았어.”
휴식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이제 숲을 돌아다니면서 출구 게이트를 찾아보자. 마족들이 쫓아오기 전에 도망쳐야지.”
“그래, 아이.”
밤의 숲길을 밝히기 위해 야명석을 꺼내 들었다. 그때 범상찮은 기상현상이 발생했다.[ 경고. 인면목의 숲에 ‘원혼 환영의 비’가 내립니다.]또도독. 또독.
솨아아아…….
빗방울 몇 개가 정수리와 콧잔등을 건드리기 무섭게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이.”
테실리드는 재빠르게 자신의 제복 겉옷을 벗어서 내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
그러고는, 정작 본인이 비를 맞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 듯 선하게 웃기만 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그를 끌어당겨 제복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자연히 어깨가 바짝 붙고 고개가 서로를 향해 가까이 기울어졌다.
“…….”
“…….”
……아그네스, 조용히 해줘요.
한편 마계의 폭우는 초현실적인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빗물이 땅에 스며들자 반투명한 하얀 것들이 꾸물꾸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점차 크기를 부풀리며 머리와 사지의 형태를 잡아나갔다.
온 사방에서 흐느적거리는 하얀 인영들이 탄생하는 모습에 아그네스가 불쾌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렇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죽은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낸 환상에 불과해요. 지금 내리는 비 때문에 생겨난 거고요.”
“제 생각도 그래요.”
말을 마친 나는 테실리드를 힐끔 살폈다.
사실 내 설명 중 ‘죽은 사람’의 환상을 보여준다는 말은 잘못된 구석이 있다.
정확히는 ‘죽인 사람’의 환상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므로.
그리고 지금 나타나는 원혼의 환영들은 대부분 테실리드가 죽인 인간들의 형태를 하고 있을 것이다.
다행히 테실리드는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정면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지랑이처럼 흐물거리던 것들이 제법 단단한 부피감을 가진 듯이 진화했다.
뭉개진 진흙 인형 정도쯤 되는 환영들을 보며 나는 설명을 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목구비가 생겨나니까 안 그러도록 주의해야 해요. 정신계 공격이라서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들거든요.”
말을 마친 나는 한 손으로 테실리드의 눈을 가렸다.
그가 이단자의 골짜기에서 숨을 거둬야만 했던 산제물들의 얼굴을 이 원혼들에게서 발견하지 않기를 바랐으므로.
다소 내외 없는 손길이었지만 테실리드는 잠자코 받아들여 주었다.
원혼의 환영들은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이따금씩 테실리드를 지그시 바라볼 뿐, 딱히 공격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몇 분 정도 지나면 알아서 사그라들 것이다.
그래서 이대로 기다리려고 했는데…….
“네, 아그네스.”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전방위에서 환영들이 발 디딜 틈조차 없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었다. 시야에 안개가 낀 듯한 엄청난 밀도였다.
나는 살짝 당황했다.
“그러게요? 왜 이렇게 많지? 공동묘지도 이렇진 않을 것 같은데?”
테실리드가 죽인 사람이 이렇게 많진 않을 텐데?
숲에는 우리밖에 없는데?
그런데 왜 환영이 끝도 없이 생성되는 거지……?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