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마왕을 조금만 더 떠보자.
“펠헴스테인 공작령에서 마왕들끼리 삼파전을 벌인 것으로 아는데? 누가 이겼는지는 차치하고, 세력이 많이 약해지지 않았어? 그런데 수하들을 낭비해도 되나?”
“아아, 그래. 카르페이오스 그 자식 탓에 전력에 큰 손실이 있었지.”
교양 있고 차분하던 규칙 제정자의 얼굴에 처음으로 노여움이 깃들었다.
마왕끼리 사이가 좋은 것도 이상하지만, 서열 2위와 서열 3위는 특히나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앙숙 관계였다.
인페리노스는 카르페이오스를 ‘변변한 성채도 없이 노숙이나 하는 야만적인 마족’이라 낮잡았으며, 카르페이오스는 인페리노스를 ‘땅굴 속에 처박혀 달빛도 안 보고 사는 음습한 사기꾼’이라 폄하했다.
지난 삼파전에서도 치열하게 서로의 전력을 갉아먹는 소모전을 치렀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아무리 혼돈악에게 바칠 공물이라지만, 없는 형편에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안 그래도 3위잖아?”
놀랍게도 인페리노스는 내 도발에 개의치 않았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
“우리는 존재의 근간을 이루는 그분의 큰 뜻에 따를 뿐이니.”
담백한 것 이상으로 경건하게까지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인페리노스는 도리어 정보를 캐려는 내 의도를 간파한 듯, 여유롭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조금 전 내 말로 그대는 두 가지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 맞아. 이 고독의 구덩이는 그분, ‘갓 태어난 혼돈악’의 계시를 받잡아 만들어진 것이다. 상당한 권능이 불가역적으로 소모되었지.”
혼돈악의 계시.
그 말이 뇌리에 깊게 박힌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조금 전 ‘우리’라고 말했던 데서 짐작했겠지만, 다른 두 마왕들도 저마다의 계시를 받아 대업에 착수 중이다.”[‘천기누설 감찰관’이 원작에 없는 전개에 집중합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불길한 조짐을 느낍니다.]인페리노스의 말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확실했다.
리드가, 세 마왕을 움직여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세상을 확실하게 파멸시킬 무언가를.
“단악의 집행관, 너도 궁금하지 않은가? 그분께서 무엇을 획책하시는지.”
“그 말은 인페리노스 당신도 모른다는 뜻이네.”
“자꾸 그렇게 떠볼 필요 없다. 나는 질문에 관대해. 진리의 바이블이 누구의 소유인지 기억해 줬으면 하는군.”
“그래서?”
“서로 터놓고 대화하지 않겠나?”
아아, 그래.
마족답지 않게 나를 의자에 앉혀두고 잠시 기다리라는 매너를 발휘할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했었다.
인페리노스는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
“당신이 하고 싶은 건 대화가 아니라 거래겠지.”
“옳은 말이다. 과연, 선대 레반트 후작이 갖고 싶어했던 인재답군.”
나는 잠시 눈동자만 굴려 현 레반트 후작을 힐끗 보았다. 가면 뒤의 얼굴이 대충 예상이 갔다.
그 무렵 인페리노스가 시선을 아득한 구덩이 밑바닥으로 던지며 말했다.
“사실 그대에게 인간들의 목숨을 걸고 거래를 제안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
“굳이 인질을 수백 명씩이나 잡고 있을 필요가 없더군. 은색 성흔양이 희생하겠다는 소리에 눈빛이 달라지는 걸 보니.”
그녀의 말이 내 통점을 효과적으로 찔러왔다. 거두절미가 필요해 보인다.
“내게 원하는 걸 말해, 규칙 제정자.”
“바로 본론, 좋지.”
청금석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마왕이 만면에 기꺼운 미소를 걸었다.
그녀가 내 눈앞에 제 오른손을 들이밀었다.
에스코트라도 바라듯 손등이 위를 향한 모양새였다.
“손을 다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지배자의 손을 받쳐 들듯 오른손을 내밀었다.
닿지도 않았건만 불쾌한 감각이 피부에 스며들었다.
스르륵.
내 손바닥에 이지러진 푸른 반달의 인장이 새겨졌다.
늘 그렇듯 마족의 계약은 퀘스트의 형식으로 내게 주어졌다.[ 사법 거래 (난이도: SSS)
규칙, 격식, 지식에 집착하는 마왕, 인페리노스. 그녀는 현재 ‘갓 태어난 혼돈악’이 다른 마왕들에게 어떤 계시를 내렸는지 몹시 궁금해하고 있다.
어빅시니스에 대해서는 알아냈으나, 숙적인 카르페이오스는 ‘알 수 없는 건축물’을 축조 중이라는 것 이외에 알아낸 것이 없다.
이제껏 기암절벽에서 노숙하며 살던 미개한 카르페이오스가 갑자기 문명에 눈을 뜨다니, 인페리노스는 몹시 신경 쓰이는 상태다.
따라서 당신의 임무는 인페리노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
카르페이오스의 마왕령인 사나락에 잠입하여 ‘알 수 없는 건축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자.
성공 보상: 테실리드 아르젠트의 생존
실패 페널티: 테실리드 아르젠트의 사망][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내용을 쭉 읽고 나니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잠입 방법 정도는 마련해 놓고 이런 일을 맡기는 거겠지?”
“물론이다.”
인페리노스가 오른손을 거둠과 동시에 허공에 작은 무언가가 생겨났다.
그것은 곧장 내 손바닥 위에 톡 소리를 내며 안착했다.
“그대는 검보라색이 잘 어울릴 듯하군.”
나는 주어진 물건의 정체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사인화의 씨앗이었다.✠교국의 수도 판엘을 뒤덮었던 무작위 던전 싱크가 멎었다. 검은 소용돌이 바다 같았던 지상이 다시 원래의 단단함을 되찾았다.
대속의 규칙에 의해 석방된 교국민들은 판엘 근교의 리트니엘 평원으로 빠져나온 상태였다.
그들 중에는 헤스티오, 애쉬, 힐데는 물론이고, 머리털을 가까스로 지켜낸 이페일도 있었다.
네 사람은 교국민들로부터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성검의 주인이 혼자 벌을 받겠다고 했다고요?! 그게 사실입니까?!”
“테실리드 이 미친놈이! 자기가 무슨 성인인 줄 알아!”
“네? 방금 아주머니, 뭐라고요? 형님이 악인? 나 참, 저울이 고장난 거겠죠. 형님이 악인이었으면 성검의 주인이 아니라 마검의 주인이라고 불렸을 겁니다.”
“언니는, 신성경 예하는요? 보신 분 없으세요?”
마음은 황망했으나 당장 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미 던전 싱크는 종료되었다. 마왕령 던전과 인세는 차단되어버려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무엇보다, 그들은 아일렛과 테실리드의 발목을 붙잡을 뿐일 것이다.
“이, 일단 성황청으로 가자. 상황 보고하면서 대책을…….”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페일 형님.”
애쉬가 힐끗 위쪽을 눈짓했다.
재앙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별 하나 없는 밤하늘에는 여전히 삼중월이 걸려 있었다.✠요사스러운 마계의 달빛이 드리워진 수도 판엘.
당연히 성황청에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제아무리 바깥이 잠잠해졌어도 성황청을 요새화하는 성스러운 결계는 걷힐 낌새가 없었다.
그 모습을 근방의 시계탑에서 주시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금색 바이어스로 장식된 검은 의복을 꽉 갖춰 입고, 금사로 별자리를 수놓은 검은 망토를 두른 남자.
바람에 흩날리도록 둔 흑장발 아래로 드러난 이목구비는 천사조차 욕망할 만치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우아한 신사인 듯, 오만한 마법사인 듯, 매력적인 악마인 듯. 여러 가지 강렬한 분위기를 동시에 몸에 두른 미남자.
그가 목을 울려 나른한 중저음에 뇌까림을 실었다.
“공성전을 해야겠군.”
구둣발이 시계탑 너머의 허공을 망설임 없이 내디뎠다.
남자의 몸이 수직 낙하한다. 그러나 지상에 도달했을 때의 착지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리드의 절도 있는 걸음이 폐허가 된 시가지를 느긋이 가로질렀다.
목적지는 성황청이었다.
정면에 보이는 성황청의 거대한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양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스스스슷!
정문이 열 걸음 앞까지 가까워졌을 때 그의 주변에 수십 자루의 오러 블레이드가 생성되었다.
비검들은 한데 모여 뭉쳤다.
“가라.”
오러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성추가 성문을 찍었다.
쿠우웅!
본래 철문 따위는 관통하고도 남았을 위력을 결계가 받아냈다. 8계위 신성력으로 전개된 성지 구축 덕분이었다.
“제법 쓸 만한 아티팩트야.”
무심한 칭찬을 흘리며 리드는 연거푸 막강한 파괴력을 성문에 처박았다.
그렇게 십여 번.
콰르르르르!
무도한 노크의 끝에 결국 성황청은 불청객의 침입을 허락하고 말았다.
회색 먼지구름이 가라앉자 넓은 중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성추에 관통당한 탓에 정문 주변은 불길이 타오르는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근방에 있던 교국민들이 같이 휩쓸린 듯 사상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마, 맙소사…….”
“힉, 히끅!”
난민처럼 중정에 모여 있던 군중들의 얼굴에 공포와 경악이 드리워졌다.
저벅, 저벅.
리드는 참상에 아무런 감흥이 없는 얼굴로 걸음을 내디뎠다.
뒤늦게 성기사단이 몰려들었다.
“웬 놈이냐!”
“아, 악마인가?!”
“마, 마족이 여기 들어올 수 있을 리 없는데……!”
“정체를 밝혀라!”
성지 구축 탓에 성황청에 발이 묶여 있던 히스펜릴 공왕과 레칸드로 후작도 응전할 생각으로 경계의 날을 세웠다.
물론 리드는 그들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했다.
그가 관심 가지는 것은 오로지 정면에 있는 뮤리엘 필리제뿐.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발치에 꽂혀 있는 깃발 형태의 아티팩트, 성지 구축이라 하겠다.
“대체 누구…….”
자리에 못 박힌 성녀 뮤리엘이 식은땀을 흘리며 리드를 탐색했다.
그사이에도 우아하고 절도 있는 발걸음 소리는 계속해서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중한 성녀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정체 모를 자의 접근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었다.
“침입자를 처단하라!”
뮤리엘의 호위를 맡은 성전 기사단의 단장, 클로비스의 외침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다.
휘이이익!
리드를 중심으로 원형 충격파가 일대를 휩쓸었다.
그 순간 보이지 않는 손이 기사들의 어깨를 강하게 내리눌렀다.
“커흑, 몸이……!”
“무, 무거워……!”
강력해진 중력이 혼돈악을 배알하는 이들에게 포복할 것을 명했다.
성기사들은 죄다 볼썽사납게 엎드려 이마를 땅에 박았다.
추기경들마저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은 상황.
그나마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은 오러 마스터와 8계위 신성력 각성자 정도였다.
“무도한 마검사여, 어찌 이런 짓을 벌이는가!”
히스펜릴 공왕과 레칸드로 후작이 사력을 다해 돌진했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