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
털썩, 남자의 몸이 덧없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지옥에서 온 망령의 손들이 아일렛의 눈치를 보느라 그의 몸뚱이를 바로 끌고 가지 못하고 망설였다.
한동안 아일렛은 미동 없이 제자리에 못 박혀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자극을 준 것은 등 뒤에서 들려온 음성이었다.
“무슨 시답잖은 촌극을.”
“…….”
“아일렛, 내게로.”
“…….”
“아일렛?”
리브릴리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일렛이 천천히 뒤를 돌았다.
리드와 정면을 마주하며 그녀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걷어냈다.
“내가.”
다시 드러난 눈에는 초점이 명확했다. 그녀가 씹어뱉듯 뒷말을 이었다.
“너희 때문에 미치겠어, 테실리드 아르젠트.”✠어둠 속을 부유하던 의식이 수면 위로 차츰차츰 떠올랐다. 차단되었던 몸의 감각이 조금씩 기능을 되찾을 태동을 보였다.
리드가 부숴놓은 정신 방벽이 드디어 복구된 건가.
부디 내 몸뚱이가 주인의 의지에 반하여 사고를 치지 않았길.
몽롱한 머리로도 간절히 바랄 때였다.
마침내 오감 중 하나가 이어 붙여졌다.
조금 이상했다. 보통 의식을 되찾고 깨어났을 때 처음으로 돌려받는 감각은 시각이나 청각이지 않던가.
그런데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단맛?’
미각이었다.
혀 위로 작고 동그란 무언가가 굴러갔다.[ ‘신경 안정제 알사탕’ 아이템의 효과로 정신 방벽이 일시적으로 복구되었습니다.]어디서 본 적 있는 아이템 이름인데 뭐였더라.
몽롱한 머리를 위해 시스템이 정보를 떠먹여주었다.[ ‘신경 안정제 알사탕’
노래를 부르다가 흥에 취하면 정신줄을 놓고 관객들을 몰살해 버리기로 유명한 카발렌샤.
그녀가 악명을 지우기 위해 무대에 오를 때마다 몰래 먹는 알사탕이다. 광란에 빠졌을 때 복용하면 일시적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다.]사탕의 정체는 폭렬의 가왕, 카발렌샤를 잡고 얻은 소비성 아이템이었다.
광란 진정 효과가 마왕화에도 유효하여 내 의식을 일깨워 준 모양이었다.
일시적이지만.
현재 내 상태에 딱 맞는 처방이었다. 문제는 이 사탕을 내가 직접 먹은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사탕이 저절로 내 입에 들어오지는 않았을 터. 의문을 떠올리는데 시각과 청각이 한꺼번에 되돌아왔다.
그리하여 내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마주하게 된 장면은…….
“아이, 내게로 와줘서 고마워…….”
“……!”
내 리브릴리에 꿰뚫린 채 바닥에 쓰러지는 테실리드의 모습이었다.
털썩, 하는 소리가 굉음보다 더 내 귀를 먹먹하게 했다. 몽롱함이 한순간에 휘발되어 날아갔지만 정신은 도리어 아득해지는 기분.
기껏 복구한 정신 방벽이 흔들린다.[‘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아직 살아 있다고 외칩니다!] [‘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조속한 응급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마왕 상태에서 신성력 스킬을 쓰면 당신의 몸이 폭사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당신의 상태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알립니다.]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그러나 평정을 되찾을 틈은 없었다.
곧장 내 불안정한 정신을 자극하는 존재가 있었다.
“무슨 시답잖은 촌극을.”
“…….”
“아일렛, 내게로.”
“…….”
“아일렛?”
또 다른 테실리드의 음성에 이를 악물었다. 어금니보다 연약한 사탕이 와작 깨져 나갔다.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 리드의 눈을 직시했다.
“내가 너희 때문에 미치겠어, 테실리드 아르젠트.”
놀라는 리드의 시선을 붙잡아 놓은 채 등 뒤의 테실리드에게 손을 뻗었다.
망설임 없이 바로 신성력을 일으켰다. 기본적인 치유 스킬을 발동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순간 신성력을 허락할 수 없다는 듯이 마기가 내 온몸을 뒤틀고 휘저었다. 내장이 순식간에 진탕이 되었다.[‘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무슨 짓이냐고 소리를 지릅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충분하니까 이제 그만하라며 당신을 말립니다.]목구멍으로 치미는 핏물을 억지로 삼키며 신성력을 거두었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낮게 가라앉은 남자의 음성에 의문이 담겼다. 나는 대답해 주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쉬이이익!
리브릴리를 양손에 움켜쥐고 리드를 향해 돌진했다. 간발의 차이로 낫날이 그가 있던 자리를 찍었다.[ 궁극 스킬 ‘여왕의 괴력’이 발동됩니다.]양팔의 근육이 맥동했다. 나는 압도적인 힘으로 관성을 제어하여 리브릴리를 위로 들어올렸다.
낫날이 목표에게로 유도되듯 리드를 쫓아 올려 벴다.
긴 흑발 끄트머리가 잘려 전장의 바람을 타고 잿가루처럼 흩어졌다.
“…….”
그제야 리드가 오른손을 내뻗었다. 검은 마검이 그의 손끝에서 형상을 맺었다.
투우웅!
마검과 마겸이 맞부딪치며 둔중한 쇠울음을 퍼뜨렸다. 그 진동이 잦아들기도 전에 수 차례 합을 주고받았다.
리드가 짐짓 감탄한 척했다.
“고독을 준비한 보람이 있군. 확실히 강해졌어, 아일렛.”
“그러게. 너무 강해져서 널 해치울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의욕이 과한걸. 괜찮아. 내가 책임지고 진정시켜 줄 테니.”
신성력 스킬은 봉인해야 했기에 신성 불가침이나 신성 찬가는 쓸 수 없었다.
반발 없는 중립 오러 스킬만으로 그를 상대할 때였다.[ ‘망령의 군세’가 당신의 명령을 기다립니다.]내 의지가 꺼진 사이 웬 망령들이 내 그림자에서 태어나 있었다.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것들이 근원적인 불쾌감을 자극했다. 그러나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야 했다.
“왕명이다. 공격해.”[ 초월 스킬 ‘마왕언’이 발동됩니다.]악의 군세가 해방된 듯 뛰쳐나와 리드에게로 쇄도한다.
그때 리드의 양어깨에서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이런, 아일렛. 잊었어? 내가 누군지.”
그는 혼돈악. 마기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는 게 당연했다.
그의 육체에서부터 멸세의 힘이 쏟아져 내 군세를 단숨에 죽여 버렸다.
어차피 내 의지와 관계없이 발동되어 버린 기분 나쁜 스킬이었다.
처치가 곤란하던 차에 없애주니 도리어 속이 후련해졌다.
보답은 역시 말보다 행동으로 전하기로 했다.
리브릴리가 둥근 궤도를 그리며 정면을 화려하게 쓸어버린다.
리드가 훌쩍 피하는 순간에 맞춰 리브릴리를 직각만큼 회전시켰다. 종축이 주무기가 되게 잡고 그를 찔러 들어갔다.
순간 리드는 마검을 간격 안에 집어넣고 공격점을 비틀어 흘렸다. 그리고 검신을 횡으로 눕혀 역공해 왔다.
나는 다시 낫을 주무기로 잡고 그의 공격을 걷어냈다.
채애앵-!
“…….”
“…….”
심장과 공명할 듯한 쇠울음 소리 속.
각자의 흑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시선이 교차했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했다.
감각의 왜곡은 길지 않았다. 다시금 악마의 검과 악마의 낫이 쉴 새 없이 얽혔다.
쉽사리 끝나지 않을 듯한 공방을 이어가던 어느 때였다.
“아.”
“…….”
“이거 즐거운데.”
“…….”
이제야 좀 싸울 만해졌다는 말로 들리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나는 문득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에 이를 악물고 말았다.
그의 검은 그를 닮았다. 기사도를 걸어온 지난 세월이 너무도 길어, 타락한 지금조차 기사다운 격식과 기품이 검술이 깃들어 있다.
심지어 그에게는 전의도 살의도 없었다. 신사이자 기사의 모습을 하고서 승패보다 합을 주고받는 데에 집중한다.
이건 검투라기보다는 검무에 가깝다.
이 감상은 정확히 그의 심리를 꿰뚫었다.
“이대로 심장이 터질 때까지 함께 춤추는 것도 좋겠어.”
“그러든가.”
나는 그의 뜻대로 해주기로 했다.[ 초월 스킬 ‘천외천의 무도’가 발동됩니다.] [ 초월 스킬 ‘일찰나의 미래시’가 발동됩니다.]내 모든 기량이 폭증에 가깝게 상승하며 기교가 극에 닿았다.
발을 내디딘 곳마다 땅이 파이고, 오러가 스친 허공마다 가공할 열기가 흩뿌려졌다.
절대적 무위를 과시하며, 그가 터뜨리고 싶다고 말한 심장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이에 맞춰 리드도 여유를 버리고 임전했다. 흐트러짐 없는 검이 내 기세를 막아냈다.
혀 위에 굴러가던 사탕은 어느덧 뾰족한 결정만 남았다.
여유 없이 새 사탕을 입안에 넣는 순간 리드가 나를 매섭게 몰아붙여 왔다.
대치를 지속하며 그가 뇌까렸다.
“카발렌샤 토벌 전리품인가.”
“눈치채는 게 늦네.”
“그거 얼마 없지 않나. 몇 개 남았어? 네 개? 세 개?”
“…….”
“승부를 끝맺기엔 부족하겠는데. 유감이야.”
그랬다. 신경 안정제 알사탕의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남은 세 개를 다 먹고 나면 나는 다시 이지를 잃고 인페리노스의 힘에 잠식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믿을 건 하나뿐이다.
‘언령님!’[‘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신도의 타락을 막을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아직인 모양이다.
그때 간교한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어차피 넌 내게 오게 되어 있어.”
“…….”
“마왕이 된 너를 받아줄 수 있는 건 나뿐이야.”
“…….”
“응? 아일렛.”
다른 놈이면 무시할 소리였지만 리드라서 대꾸해 줬다.
“반대겠지. 받아줘도 내가 널 받아주는 거라고!”
나는 감정을 담아 그를 후려치듯 리브릴리를 휘둘렀다.
그때 찰나간 마비를 일으키는 저릿함이 전신에 스쳤다.
또 내 몸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경고. ‘마왕화’에 의해 ‘신열병’이 비정상적으로 유예되고 있습니다. 자체적인 휴식을 권장합니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