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저, 저자는……!”
“허억!”
신계의 문에서 비틀거리며 홀로 빠져나온 남자, 그는 바로 리드였다.
쿠우웅.
“…….”
다시 닫히는 문을 등진 채로 리드가 느릿하게 세 발자국을 뗐다. 평소와 다르게 터벅거리는 걸음이었다.
물론 절도를 잠시 잊은 모습이라 할지라도 존재가 가지는 위엄과 격은 조금도 퇴색되지 않았다.
“이럴, 이럴 수가.”
“저, 저 안에서, 살아 나왔다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 경악과 공포가 서렸다.
만신전 안에 들어갔다 나왔음에도 육체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악이라니.
그러나 리드라고 해서 완전히 멀쩡하지는 않았다.
“쿨럭, 쿨럭……!”
고작 네 걸음 만에 그의 몸이 무너졌다.
격조 높은 악이 무릎과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검붉은 피를 쏟아냈다.
그의 육체는 부서지지 않기 위해 수명과 오러와 마기를 불사르며 기능을 극한까지 끌어내는 중이었다.
온몸 여기저기에서 힘줄이 불거져 꿈틀거렸고, 혈관이 터질 듯 부풀어 피를 정신없이 몸 안에 돌렸다.
검은 마검사는 현재 전투 불능의 상태다.
상황을 깨달은 로미나 레칸드로가 가장 먼저 외쳤다.
“전군, 공격하라!”
그러나 대응은 간발의 차이로 늦었다.
별안간 불어온 메마른 모래 바람이 리드의 몸을 감쌌다.
카르페이오스가 자신의 마왕령으로 리드를 극진히 모셔갔다.
조금 전까지 리드가 있었던 자리에는 검붉은 피웅덩이만이 남았다.
목표를 잃은 마왕 토벌군이 움직임을 일제히 멈추었다. 다시금 전장의 분위기가 소강되었다.
그 무렵 일련의 상황을 지켜본 테실리드가 동료들에게 물었다.
“설마 아이가…….”
“…….”
“저 안에 들어갔어……?”
저 안.
전장 중앙에 위치한 순백의 개선문.
저것이 현세의 것이 아닌 이계, 정확히는 신계의 것이라는 건 처음 보자마자 알았다.
마왕화된 상태에서 저 안에 들어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117회차나 살아온 그가 모를 턱이 없었다.
깜빡임조차 잊은 바다색 눈은 깨지기 직전의 유리처럼 잘게 떨리고 있었다.
힐데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입을 열었으나, 흡 하고 들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것만으로 테실리드에게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테, 테실리드!”
“형님!”
테실리드는 즉시 자리를 박차고 만신전의 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굳게 닫힌 문은 더 이상 출입구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손잡이조차 없는 그것은 거대하고도 견고한 벽이나 다름없었다.
결코 넘거나 뚫을 수 없는 벽 앞에 선 미욱한 인간.
테실리드는 이 기분을 아주 잘 알았다.
오래전부터 그의 신이 친히 학습시킨 무력감과 절망감이 그의 영혼을 새하얗게 태울 듯했다.
테실리드는 비참하게 문을 두드렸다.
“아이! 아일렛 로델라인! 대답해!”
파츳! 파츠즈즛!
주먹이 닿을 때마다 신성이 스파크를 일으켰다.
돌아오는 대답이 아무것도 없자 테실리드는 점차 미쳐갔다. 주먹에 신성 오러를 실어 문을 부술 듯이 쾅쾅 치기 시작했다.
“아이, 제발! 대답해 줘! 아이!”
공성추와 비견될 만한 위력의 주먹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존재는 만신전의 문. 즉, 신계의 문이다.
신성 오러는 무효화되어 보잘것없는 육신의 힘만이 남을 뿐이었다.
꿈쩍도 하지 않는 문에 그의 눈빛이 변했다. 그가 문을, 아니 문 너머를 노려보았다.
대리석처럼 새하얀 문에 핏자국이 찍히기 시작할 무렵, 테실리드가 애원을 외치는 대상이 바뀌었다.
“내놔! 아일렛 로델라인을, 다시 내놔!”
문 너머에 있을 지고하고 전능한 존재를 향해, 감히 무엄하게도 울부짖었다.
“내놓으라고!”
여전히 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변함없이 신은 그를 외면했다.
“왜야…….”
목이 메어 견딜 수 없었다.
뱃속이 뜨거워 죽을 것만 같았다.
오랜 세월, 신에게 켜켜이 쌓인 울분이 터지고 말았다.
“왜……! 왜 항상 이런 식이야……!”
쾅!
“왜 항상 내게서 이런 식으로 빼앗아가는 건데! 왜 배신 아니면 상실로 끝나는 건데!”
쾅, 쾅!
“하나쯤은 예외를 줘도 되잖아! 단 하나쯤은……! 그리 큰 욕심 아니잖아! 그런데 왜 당신은……!”
쾅!
“왜 단 하나마저도 내게 허락해 주지 않아……!”
콰아앙!
둔중한 울림 속에서 비참한 절규가 끝에 가서 갈라졌다.
피 칠갑이 된 주먹이 문 위에서 미끄러졌다. 표면에 아름답게 양각된 천사가 피눈물을 줄줄 흘렸다.
“날 제발…… 제발 가엾게 여겨, 빌어먹을 신아……. 빌어먹을 엄격한 질서와 선아……!”
세상에 절망한 남자의 신성모독이 극에 이른 그때였다.
‘그의 신’답지 않은 자비가 기적처럼 내려졌다.
끼이이이익.
“……!”
만신전의 문이 다시 열렸다. 리드를 뱉어낼 때와 다르게 활짝 열려 신성한 순광을 길게 쏟아냈다.
필사적인 명순응 끝에 그의 눈이 빛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역광에 잠식되어 실루엣이 뭉개진 인영이 그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툭.
문턱을 넘은 인영이 천천히 앞으로 기울어졌다.
테실리드는 머리로 뭔가를 판단하기도 전에 두 팔을 벌려 그 몸을 안았다.
끼익, 콰아앙.
만신전의 문이 다시 닫히고 사라졌다.
망막을 아리게 하던 빛이 걷히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제 품에 안긴 이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분홍색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채 눈 감고 있는 사람.
놀랍게도, 아일렛 로델라인이었다.
“……!”
테실리드는 즉시 그녀의 호흡을 확인하고 심장에 귀를 가져갔다. 살아 있었다.
“아아…….”
생애 최초로 신에게 받은 자비였다.
“아이……. 아일렛…….”
테실리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곧 제 품에 꽉 끌어안았다.
절대 다시는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처럼.
“예, 예하다!”
“예하께서 돌아오셨다!”
“신께서 신성경을 돌려주셨어!”
“아아!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곧 사람들이 신성경의 용태를 살피기 위해 다가왔다.
테실리드는 이 순간 그녀를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일렛의 얼굴을 제 품에 더 파묻히도록 하며 히스펜릴 공왕에게 먼저 이야기했다.
“공왕성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밀착해 있기에 그녀의 몸에서 신열이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신성 강림과 마왕화의 후유증은 클 터. 안전하게 휴식을 취하려면 그곳이 적격이었다.
성녀 뮤리엘이 뭔가 반대를 하고 싶어하는 기색을 보였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침묵 속에서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부탁하겠네. 먼저 가 있게, 손녀사위.”
“예.”
전이석의 파편이 만들어낸 빛 무리가 테실리드와 아일렛을 휘감고 사라졌다.
어느덧 동쪽 지평선에서 동이 트고 있었다. 삭월뿐만 아니라 밤이 완전히 걷혀 나갔다.
재앙의 끝이었다.
42장. 페널티 기간
발푸르기스의 밤에서 격상된 대재앙, 둠스데이가 마침내 종료되었다.
세렌트라 대륙의 각국은 피해 복구에 총력을 다했다. 파괴된 수도의 건물과 시설을 정비하고, 고혼이 되어버린 사망자들을 기렸다.
던전에서 유출된 독에 당한 환자들이 계속해서 유명을 달리하고 있었기에, 각 도시에 울려 퍼지는 장송곡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던전 버스트를 일찍 제압한 공국의 수도 페론사와 왕국의 수도 빌헬론의 사정은 괜찮은 편이었다.
악마 대군에 짓밟힌 교국의 수도 판엘과 마도 공화국의 수도 게헤니드는 전란 뒤의 폐허 상태나 다름없었다.
수도의 민심은 흉흉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곧 치안의 악화로 이어졌다.
특히 교국의 수도 판엘의 상황이 가장 심각했다.
‘성지 구축’ 아티팩트를 이용해 농성하겠다는 성황청의 전략은 당연하게도 후폭풍을 일으켰다.
당시 성황청의 수용 한계로 다수의 교국민들이 안전 지역에 입성하지 못하고 버림받았다.
교단에 큰 불신과 불만을 품은 이들이 생긴 이상, 민심에 극도의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성황청은 그들을 방치했다.
검은 마검사의 습격으로 수뇌부가 교체되어 여유가 없기도 했고, 교단에 대한 불신은 전통적으로 신앙 부족으로 폄훼되는 경향이 있기도 했다.
때맞춰 성황청은 민심 달래기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역할을 짊어지게 되었다.
바로 폐병 환자의 구제였다.
던전 드레인에 의해 폐가 괴사하는 병에 걸린 이들은 일반적인 사제의 치유술이나 힐링 포션으로는 고칠 수 없었다.
오로지 8계위 신성력을 각성한 자의 치유만이 효력이 있었다.
현재 신성경 아일렛 로델라인을 제외하고 8계위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성녀 뮤리엘 필리제뿐이었다.
뮤리엘은 성녀답게 각국의 수도에서 병자 성사를 행하며 추앙받았다.
그녀의 위상이 드높아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그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병자들이 너무도 많았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이 성황청은 우선순위를 두기로 결정했다.
신에게 큰 신앙심을 보이는 환자부터 치료하기로 한 것인데, 그 신앙심을 측정하는 기준이 몹시 세속적이었다.
그리하여 헌금의 양으로 목숨에 줄이 세워지는 가혹한 일이 발생하려던 찰나였다.
다행스럽게도 성황청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로델 포션 상회에서 치료제 개발을 완료한 것이다.
치료제의 주재료는 이제껏 약초 취급도 안 하던 엘리판티페스라고 했다.
그런데 로델 상회는 미리 준비라도 한 듯이 이 약초를 다량으로 확보해서 빠르게 대량 생산에 착수하였다.
덕분에 치료제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급되었고, 성녀 뮤리엘은 역할의 부담을 더는 한편 더 이상 독점적인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둠스데이가 발생한 날로부터 어느덧 열흘째.
세렌트라 대륙은 재앙의 상흔을 착실하게 지워 나가고 있었다.
신성경이 잠든 사이에도.✠맑은 하늘 아래 잘 개간된 약초밭이 지평선까지 늘어서 있다.
이곳은 길레트 백작성 아래 숨겨져 있는 던전 팜.
폐병 치료제를 제작하는 데 쓰이는 엘리판티페스 약초 중 9할 이상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몹시 중요한 장소였다.
약초를 가꾸는 것은 윤기 나는 백골을 가진 일곱 구의 스켈레톤들이었다.
그들은 막 오늘치 노동을 마치고 쉬는 중이었는데, 그 모습이 평소와 퍽 달랐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