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27)
27화
✠던전 싱크에 휘말린 성흔양은 총 열한 명으로, 그들은 현재 동서남북 별관으로 흩어진 상태였다.
각 별관마다 배정된 숫자는 동쪽 5명, 서쪽 1명, 남쪽 2명, 북쪽 3명이었다.
남쪽 별관의 두 명은 이페일과 헤스티오였다. 그들은 게임의 룰에 따라 만찬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헤스티오, 점심 먹으려는 순간 던전에 끌려와서 배 많이 고프지? 자, 아~.”
“저리 안 치우냐?”
핫핑크색 케이크를 떠먹여 주려는 이페일의 친절을 헤스티오가 나이프로 쳐냈다.
케이크는 바닥으로 철퍼덕 떨어졌다.
“아니, 헤스티오! 음식을 땅바닥에 내버리다니, 너 그러다 ‘엄격한 질서와 선’께 벌 받는다?”
“너나 처먹고 상 받든가.”
“에이, 먹으면 어떻게 되나 궁금했는데.”
“적아 식별 안 되는 놈. 이런 놈이랑 무슨 던전 토벌을 한다고. 역시 내가 이 파티를 나가야지…….”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제외하면 만찬회장은 고요했다.
반 시간 전에 인형들이 디저트를 서빙해 놓고 간 뒤로 아무 일도 없었다. 방정맞은 집사 마족도 나타나지 않았다.
덕분에 아이들만 만찬 식탁 앞에 멀뚱멀뚱 앉아 있는 중이었다.
아이들은 대체로 음식을 경계했다. 하지만 배고픈 아이들은 군침을 흘리며 울상을 짓기도 했다.
이페일이 포크와 나이프를 살피고는 평했다.
“날카롭네. 대충 뭘 꾸미는지 견적이 나오는걸.”
“다른 애들이 먹지 못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긴 한데…….”
“그랬다간 이 만찬회장에서 영원히 못 벗어나겠지.”
비열한 악마 놈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아이들을 이곳에 가둬놓고 내보내주지 않을 테니까.
헤스티오와 이페일은 성격은 달라도 생각은 비슷했다.
마침 인내심이 바닥난 아이들이 있었다.
“더, 더는 못 참겠어!”
“나도! 나도 먹을래!”
아이들이 과자를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욕망은 전염이 쉬웠다. 잘 참고 있던 아이들도 눈치를 보다가 디저트에 손을 가져갔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의 모습이 식탐을 넘어서 걸신들린 것처럼 변했다.
팔뚝까지 생크림이 다 묻도록 케익을 손으로 파서 먹는가 하면,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허겁지겁 쿠키를 삼켰다.
급기야 음식을 사이에 두고 싸움도 붙었다.
“내놔! 이건 내가 먼저 찜했어……!”
아이들이 초점이 풀린 눈을 하고서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기 시작했다.
“음식에 손대지 마……. 다 내 거야…….”
“소, 소시지……. 케익 말고 소시지를 먹고 싶어……. 소시지는 어디 있어……?”
이런 기괴한 광기의 분위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는 사람, 아니 악마가 있었다.
“오호! 남쪽 별관은 이제 막 게임이 시작되려는 모양이군요!”
집사 로드리고가 등장했다. 갓 목욕을 마친 그는 열에 상기된 촉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왠지 변태 같았다.
“자, 세 번째 게임은 바로 ‘환각의 소꿉놀이’입니다! 포크, 나이프, 접시, 은촛대 등등! 소꿉놀이 세트는 잔뜩 있으니 이걸로 또래 친구들과 정답게 살육을 벌여보아요!”
이페일과 헤스티오가 서로 등을 맞대고 섰다.
이페일은 아까 케이크를 찍은 포크를 냅킨으로 닦고서 얼굴 앞에서 세로로 세워 들었다.
헤스티오는 양손에 나이프를 하나씩 들고 교차시켰다.
“헤스티오, 가호 좀.”
“애들 상대하는데 인간적으로 신성력은 떼고 하자.”
아이들이 이페일과 헤스티오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덤빌 것을 생각하며 긴장하던 그때였다.
퍼어엉!
벽난로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만찬회장이 순식간에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찼다.
“켈룩켈룩! 뭐야! 굴뚝 청소 제대로 안 해?!”
로드리고는 방금 씻은 게 무색하게 재투성이가 되었다. 벽난로 구석에서 헬베로스가 그의 눈치를 봤다.
독한 연기와 기침 소리가 가라앉았을 때 만찬회장의 상황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으으으, 머리 아파…….”
“뭐야……? 나 왜 식탁에 올라가서 나이프를 거꾸로 쥐고 있어……?”
“흐앙, 누가 내 팔 포크로 찍었어! 피 나!”
“미, 미안해! 소, 소시진 줄 알고 그만……. 내가 왜 그랬지…….”
아이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렸다.
“싸울 필요 없나 본데?”
“그러게?”
헤스티오와 이페일이 얼떨떨하게 나이프와 포크를 내렸다.
오직 로드리고만 길길이 날뛰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왜 환각 효과가 떨어진 건데! 야, 지옥염화! 너 이리 나와 봐!”
“야야! 네가 달고 온 아까 그 연기 뭐야? 너 뭐 처먹었어! 어?!”
헬베로스가 제 크기를 촛불만큼이나 조그맣게 줄였다.
묵비권을 행사해 보지만 불꽃이 일렁일 때마다 검은 연기가 풀풀 흩날렸다.
“해독 약초잖아!”
화가 머리끝까지 난 로드리고가 헬베로스를 마구 밟았다.
“이 쓸모없는 화톳불 새끼! 죽어! 이대로 그냥 사라져 버려!”
푸시시식!
로드리고는 상당한 고위 마족이었다.
그의 발 구르기 몇 번에 마계의 대표 명물 중 하나인 지옥염화가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자리에는 핵으로 추정되는 까만 숯덩이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퍼석!
로드리고는 그것마저 밟아서 으스러뜨렸다. 좀 화가 풀린 듯 상큼하게 웃으며 앞머리를 쓸어 넘기려던 차였다.
저택 다른 곳에서 심상찮은 일이 일어났는지 다시 그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잠깐, 서쪽 별관 상황이 왜 저래?! 환각 디저트가 서빙되지도 않았잖아! 주방, 주방! 뭐 하고 있……. 아니, 주방 꼴은 또 왜 이런데!”
뿌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헤스티오와 이페일이 낮게 속닥였다.
“서쪽 별관이면 테실리드가 있는 곳이잖아. 혹시 해독된 것도 그 녀석이 뭘 한 건가?”
“에이, 설마. 걔가 이렇게 요령 좋게 남을 엿 먹일 수 있는 녀석은 아니지.”
“역시 그렇지?”
“그럼.”
그들은 일찍이 테실리드와 사이다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규정지었다.
그 무렵 로드리고에게 이변이 일어났다.
“감히…… 날 화나게 하다니!”
흰자위가 시뻘게지며 백발이 위로 흩날렸다. 마족으로서의 진면목이었다.
“……하아, 저도 모르게 잠시 흥분을. 그나저나 안 되겠습니다. 어린이 여러분의 수준에 맞춰 게임의 난이도를 확 올려야 할 것 같군요.”
히죽, 드러난 잇몸과 송곳니가 맹수처럼 위협적이었다.
“네 번째부터 아홉 번째 게임까지는 싹 건너뛰고 바로 열 번째 게임으로 가도록 하지요. 이번 게임은 이름하여, ‘사인화 꽃이 피었습니다’!”
아이들이 그건 또 뭐냐는 얼굴을 했으나 친절한 설명은 없었다.
“유서 깊은 마계의 전통 놀이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게임은 원래 하면서 배우는 겁니다.”
로드리고가 손가락을 퉁기자 천장에서 검은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아이들이 기겁을 하며 머리를 털어냈다.
그사이 로드리고의 손가락이 다시금 딱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만찬회장이 진동하더니 거대한 두더지 인형이 바닥을 뚫고 등장했다.
멜빵 청바지와 체크 찐빵 모자를 쓴 것으로 보아 정원사인 듯했다.
“술래는 여기 이 두더지 정원사! 휴식 시간 없이 바로 갑시다. 게임 시-작!”
두더지 인형이 벽에 대고 어눌하게 게임명을 읊다가 휙 뒤를 돌아보았다.
“대체 이게 무슨……. 어어, 잠깐! 너, 너 너 머리가……!”
“내 머리? 내 머리가 뭐……. 어어억? 뭐가 만져져!”
“머, 머리에서 싹이 난다!”
두더지는 계속 술래 역할에 충실했다.
“계, 계속 자라나! 으아앙!”
“이게 뭐야! 시, 싫어! 엄마아아!”
검은 가루는 씨앗이었다.
아이들의 머리 표면에서 순식간에 뿌리를 내린 마계 식물이 싹을 틔우고 꽃봉오리까지 피워내고 있었다. 생장 속도는 저마다 달랐다.
머리에 귀여운 초록 새싹을 단 헤스티오가 이페일을 돌아보았다.
“이페일, 네 머리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
“응. 머릿속이 꽃밭이라서 다발로 필 줄 알았더니 의외네.”
“칭찬 고마워. 아무튼 진짜네. 내 머리에는 아무것도……. 응? 잠깐…… 지금 뭐가 작은 게 만져지는데?”
“오? 자란다, 자란다. 손 흔들수록 커지는데? 계속 흔들고 있어 봐.”
그 상태로 두 사람은 두더지 인형을 살폈다.
두더지 인형이 벽을 보고 술래 전용 주문을 외우는 동안은 식물의 성장이 멈추고.
뒤돌아보는 순간 다시 쑥쑥 자라났다. 하지만 손의 움직임을 멈추자 또 성장이 멈췄다.
헤스티오가 주변을 향해 외쳤다.
“움직이지 마! 인형이 뒤돌아볼 때 움직이면 자라는 거야!”
“호오, 굉장한데요? 벌써 룰을 간파하다니! 애새끼, 아니 양새끼 주제에 제법이에요!”
새싹과 꽃봉오리를 머리에 단 아이들이 움직임을 뚝 멈췄다. 만찬회장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경직된 공기를 울리는 건 신이 난 로드리고의 목소리뿐이었다.
“지금 여러분의 머리에 사인화 씨앗이 침투한 상태랍니다. 술래에게 움직임이 포착될 때마다 무럭무럭 자라나서 뿌리도 내리고 꽃도 활짝 피울 거예요. 머리에서 예쁜 꽃이 핀다니 너무나 기대되지요?”
“히, 히익……!”
“시, 싫어…….”
“사인화는 마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꽃이랍니다. 다양한 색의 꽃이 피는데 그중에서 검보라색을 으뜸으로 치지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희귀한 색깔이라 저도 실제로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흡, 흐읍!”
“딸꾹!”
“혹시 또 모르죠. 여러분 중에서 검보라색 사인화를 피우는 사람이 생길지도? 그 어린이는 화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여 목숨을 살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분발해서 예쁜 꽃을 피워보아요!”
아무도 솔깃해하지 않았다. 슬금슬금 머리 표면을 더듬는 뿌리 촉수의 감촉은 끔찍했다.
게다가 당장이야 괜찮아 보여도 시간 지날수록 사인화의 뿌리는 머리에 파고들어 살과 체액을 양분 삼을 터였다.
다 빨리고 나면 인형이 되어버릴 것은 뻔했다.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울먹임조차 참고 있었다.
“아참, 무식하고 용감한 친구가 있을까 봐 미리 알려줄게요. 억지로 사인화를 뽑거나 자르려고 했다간 뿌리가 두개골 안까지 순식간에 쑤욱 파고들 거랍니다. 주의하세요.”
이페일이 헤스티오의 뒤통수로 포크를 가져가던 손을 슬쩍 회수했다.
다른 계획이 필요했다.
“헤스티오, 이제 어쩌지?”
“뻔한 걸 왜 물어? 던전 나가서 추기경급 힐러한테 치료받아야지. 던전을 나가는 방법도 알려줘? 보스를 토벌하면 돼.”
“흐음, 그럼 일단 두더지하고 집사 놈부터 처리해야겠네.”
“그래, 맞아.”
대답한 헤스티오가 이페일의 등에 손을 댔다. 가호, 그러니까 버프를 걸어주기 위함이었다.
“이페일, 가서 물어!”
“……어, 응.”
떨떠름한 대답과 달리 움직임은 신속했다.
오른손에 포크를 쥔 이페일이 바닥을 박찼다. 순식간에 두더지 인형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
움찔!
이페일이 급제동을 걸고 멈춰 섰다. 두더지 인형의 단추 눈구멍과 시선이 마주쳤다.
“…….”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