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그들의 외침이 신에 대한 신앙과 나에 대한 신뢰로 느껴져 나도 약간 코끝이 시큰해졌을 때였다.
비안카와 힐데가 좌우에서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아이, 그러면 우리 교단의 신은…….”
“신명이 뭐예요……?”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앉았다.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진지한 표정과 낼 수 있는 경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를 보우하시는 신은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님입니다.”
띠링![ ‘언령 교주의 사명 7단계’의 진행 상태가 갱신됩니다.] [ ‘언령 교주의 사명 7단계 (16/1,000)’
달성 조건: 1,000명에게 당신의 신이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라는 사실을 천명하기
달성 상황: 16명/1,000명]오오, 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언령교! 그렇구나! 우리는 언령교였어!”
“신명을 들으니 왠지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저도 만성 편두통이 사라진 기분이네요.”
“신명만으로 이런 영험한 효과라니! 정말 엄청난 신이 분명합니다!”
“믿습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님!”
할아버지가 근엄하게 나섰다.
“언령교를 우리 히스펜릴 공국의 국교로 지정해야겠군.”
그렇게까지?
그때 에드가 보좌관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예리한 분석을 덧붙였다.
“엘펜하임 교국에 대항력을 가지려면 그게 최선 같습니다. 감히 이단 심판을 하려 한다면 히스펜릴 공국을 적으로 돌릴 생각을 해야 할 겁니다.”
할아버지, 엄마, 힐데가 눈을 형형하게 부릅떴다. 히스펜릴 공국의 대표적인 강자들이 내뿜는 투지는 몹시 강렬했다.
비안카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종교적, 군사적, 외교적으로 교국을 압박하도록 하죠. 언령교를 공식적으로 선포하기 전에 빈체스터 왕국과 라그네이프 마도 공화국을 포섭해야겠습니다. 공작 각하, 지금 바로 시간 되십니까?”
“물론이다, 비아. 아니, 길레트 소백작! 회의하러 가세.”
“힐데 부주교도 와주세요.”
“네, 소백작님!”
“레오날드 선생님과 엘테아 경께서도 함께해 주시고요. 두 분께서 각각 황금 상아탑과 라비오사 왕후 폐하 쪽을 맡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비장한 표정으로 비상 대책 회의를 준비했다. 이런 때에 교주인 내가 빠질 수는 없는 법이었다.
“좋아. 그럼 내가 공식 성명 작성을…….”
“괜찮아.”
부드럽지만 단호한 만류는 비안카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비아?”
“이런 문제 처리는 나와 힐데 부주교로 충분해.”
비안카와 힐데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결연한 눈빛을 교환했다.
외부의 적이 내부의 결속을 강화시켰나 보다.
나는 슬쩍 의견을 피력해 보았다.
“그래도 내가 신성경인데, 나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 너는.”
“응.”
“테실리드 경만 신경 써.”
“…….”
예상하지 못한 배려를 받았다.
비안카뿐만이 아니었다. 방 안의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척, 힘을 주고 있던 어깨가 그제야 조금 내려앉았다.
“다들 고마워요…….”
방 안의 공기가 다정하고 포근했다. 이곳이 내 세상 같아서, 왠지 지금 온 세상 모두가 내게 상냥하고 친절하다고 착각해 버릴 듯한 기분이 들었다.
테실리드, 너도 이곳에 같이 있으면 좋을 텐데.
너야말로 내 세상의 가장 큰 부분인데.
나는 울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테실리드를 마주할 준비를 하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우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요.”✠현재 이페일과 헤스티오가 있는 곳은 공왕성 4층의 손님방이었다.
그들의 격리와 구금은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가뿐히 제압하고도 남을 기사 둘이 방문을 지키고 있을 뿐인데도, 이페일과 헤스티오는 방 안에 칩거하듯 얌전했다.
실상 경비의 무력보다도 더 강력한 것이 그들을 구속하고 있었던 탓이다.-두 사람은 잠시 이곳에 머물러 주었으면 하네.정중하고도 근엄한 히스펜릴 공왕의 요구를 이페일과 헤스티오는 바로 받아들였다.
행보를 정하기에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생각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도 했다.
이페일은 긴 카우치에 늘어지듯 누워 있었고, 헤스티오는 의자에 새우처럼 등을 굽힌 채 앉아 있었다.
“…….”
“…….”
두 사람이 품위를 잃고 폐인 같은 자세로 망연히 있는 이유는 뻔했다.
어제 성황청에서 날아온 소식이 준 충격이 너무 컸다.
그들의 친구이자 동료인 아일렛 로델라인이 이단이라고 한다.
심지어 추기경 의회의 판결은 만장일치.
리트니엘 평원에서 열린 만신전의 문이 그녀를 확실한 이단으로 낙인찍었다.
그녀는 신성 강림을 사용할 수 있는 신성경이었다.
스스로가 신을 증거하는 존재였기에, 그녀의 신성이 반전되어 이단으로 판명된 순간의 충격은 흡사 신에 대한 반역과도 같았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500년 만에 나타난 신성경이, ‘엄격한 질서와 선’이 내린 신성경이 아니라 이단의 신이 내린 신성경일 줄이야.
본래 엘펜하임 교국에서는 이단에게는 개종의 기회를 주었지만, 아일렛 로델라인만은 예외였다. 어떠한 회유 과정도 없이 바로 척살령을 선포했다.
“야.”
“왜.”
헤스티오의 부름에 이페일이 얼굴을 덮은 책을 치워내고 반응했다.
하루 사이 퀭해진 눈과 눈이 마주했다.
서로의 꼴이 너무 볼품없다는 생각에 금세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헤스티오가 물었다.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생각…….”
“…….”
“그런 거 모르겠는데…….”
“……그래, 네가 생각이란 게 있을 리가.”
이페일의 시선이 천장의 문양을, 헤스티오의 시선이 정면의 허공을 배회한다.
한참 뒤에 이페일이 입을 열었다.
“그 뮤리엘이라는 성녀의 모함일 수도 있잖아……. 아일렛의 말도 들어봐야지…….”
“…….”
만신전의 문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뻔히 알면서도 이페일은 덧없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이 순간 헤스티오는 이페일을 어리석다고 할 수 없었다. 양쪽 말을 들어봐야 한다는 구태의연한 구실에 매달리는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으므로.
사실 지금 두 사람의 상황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신성경 아일렛 로델라인의 기사단에 배속되어 반년가량을 함께 해온 사이다. 심지어 어릴 때부터 이어진 인연도 있다.
교단으로 서둘러 귀환하지 않고 이대로 미적거리면 아일렛과 함께 이단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제 입지와 안위를 위해 떠날 수 없었다. 아일렛이 일어나 그들에게 직접 해주는 말을 들어야만 행보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말이 비록 뻔히 예상한 자백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유예된 끝을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였다.
부러 낸 듯한 걸음 소리가 복도 저편에서부터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금은 시녀가 식사를 가져다줄 시간도, 기사들이 교대할 시간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단자가 된 친구에 대한 생각으로 과포화된 머리에는 다른 의문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노크 직후 등장한 인물을 무방비하게 맞이해야 했다.
“안녕, 이교도들?”
“……!”
“……!”
두 청년이 뒤집어쓰고 있던 폐인의 껍데기가 단숨에 깨져 나갔다.
“아, 아일렛……!”
이페일이 급하게 일어나려다 카우치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사이 벌떡 일어난 헤스티오가 그녀에게 삿대질을 하며 입을 벙긋거렸다.
“너…… 너……!”
“잘 지냈어?”
“너어…… 진짜……!”
“응, 응. 걱정 많이 했고 건강한 모습 봐서 감동이라고? 내 얼굴이 너무 보고 싶었다고? 응, 응. 우리 헤스티오, 네 맘 다 알아.”
“야, 이……!”
헤스티오는 성질을 가까스로 눌렀다. 검지도 고이 접고 물었다.
“언제 눈 뜬 거야?”
“한 시간 전쯤.”
“몸은?”
“멀쩡하지.”
양팔로 불끈 근육을 자랑하는 시늉을 하는 아일렛이었다.
그 모습이 그들이 아는 활기차고 장난스럽고 선한 그녀다워서 헤스티오는 왠지 더 울컥해졌다.
“야, 아일렛.”
“응.”
“일어난 건 다행…… 정말 다행, 인데…….”
“…….”
목이 메는 듯한 음성에 아일렛의 표정도 진중해진다. 헤스티오는 긴 심호흡 후에 겨우 한 단어를 더 뱉어낼 수 있었다.
“소식은…….”
“들었지.”
“…….”
깔끔한 대답. 그제야 헤스티오와 이페일은 아일렛이 이 방 안에 들어오면서 꺼낸 인사말을 떠올렸다.
이교도. 그녀는 분명 헤스티오와 이페일을 이교도라 불렀다.
헤스티오가 뭔가를 억누르듯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진짜……야?”
“…….”
잠시간의 침묵은 서로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갖기 위함이었다.
곧 담담한 음성이 공기를 울렸다.
“맞아. 다른 신을 믿어.”
“……언제부터?”
“처음부터.”
“그럼 10살 때 우리가 만났을 때도……?”
“응.”
헤스티오의 어조에 조바심이 깃들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우, 우리가 오르슈 백작 앞에서 정신 잃은 사이에 성녀가 나타나서 신성 강림을 쓰고 이겼다며. 그 성녀, 너 아니었어? 그건, 그건 어떻게 된 건데?”
아일렛은 잠시간 질문의 의도를 곱씹어보았다.
신성 강림이 질서교 성인의 전유물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유일신 세계관하에 평생을 살아왔으니 그럴 수도.
납득한 아일렛은 차분히 설명했다.
“네가 알고 있는 그대로야. 다만, 내 신성 강림은 ‘엄격한 질서와 선’이 아니라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님께서 주신 능력이었을 뿐이지.”
“……!”[ ‘언령 교주의 사명 7단계’의 진행 상태가 갱신됩니다.] [ ‘언령 교주의 사명 7단계 (18/1,000)’]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