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283)
283화
그그그극!
마왕의 격이 통과하기에는 여전히 비좁은 구멍이었다.
두 세계의 계면이 비명을 지르며 각각 마왕의 탈출과 침범을 극렬히 거부했다.
“크윽.”
격이 높을수록, 힘이 클수록 강하게 작용하는 세계의 반발력.
이에 마계 서열 1위의 마왕은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때 고개를 조아리듯 숙인 어빅시니스의 눈앞으로 미남자의 손이 내밀어졌다.
어빅시니스는 황송해하며 양손을 모아 손끝만 가져다 대었다.
“다시없을 광영이옵니다.”
리드의 권능이 어빅시니스의 몸을 인세로 끌어냈다.
드드드득.
그의 권능에 의해 계면이 더욱 넓게 깨졌다. 파편의 비가 두 존재를 파묻을 듯이 쏟아져 내렸다.✠신성경을 처단하고자 페론사에 입성했으나 성검의 주인의 배교로 굴욕을 당한 엘펜하임 성기사단.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의 보고를 받은 성황청은 충격을 금치 못했으며, 그때부터 매일같이 비상 대책 회의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째.
아일렛의 정교한 스킬 운용으로 신벌을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맞은 마그람 웨릭스가 눈을 떴다.
“더러운 이단자들!”
병석에서 벌떡 일어난 다혈질 광신도는 제 흥분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한창 회의가 진행 중인 추기경 의회실에 쳐들어가듯 난입하고는, 제멋대로 증언대에 서서 열변을 토했다.
“테실리드 아르젠트를 고발합니다! 이단을 심판하러 가서는 도리어 이단 쪽에 붙어버리다니요! 성검의 주인이 마녀의 꾐에 빠져 신을 저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마그람 경, 교황 성하와 추기경 예하의 앞입니다. 흥분을 가라앉…….”
“저는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렉스 경! 흥분한 것으로 보였다면 제가 아니라 제 안의 충만한 신앙심이 분노한 것일 테지요!”
“…….”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들이 저지른 짓은 용서할 수 없는 배교와 이단 행위입니다! 두 이단자들을 파문하여 ‘엄격한 질서와 선’으로부터 지음받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하여야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돌팔매질 당하도록 하여 신앙의 본을 세우시죠! 그리고 마지막은 깔끔하게 화형이 좋겠습니다! 타락한 이단자들의 머리카락 한 올도 ‘엄격한 질서와 선’의 땅에 남겨둬서는 안 됩니다!”
전통적으로 이단을 심판해 온 방법을 읊은 것뿐이니 다들 찬동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어째 추기경들은 고개를 주억거리기는커녕 곤혹스럽다는 듯이 침음만 흘리고 있었다.
‘뭐지? 왜 이렇게 반응이 미적지근하지?’
이쯤 되자 마그람도 회의실 내부의 기류를 읽을 수 있었다.
당황하여 두리번거리는 그를 향해 데칼 추기경이 혀를 찼다.
“일주일 만에 병석에서 일어났으니 아무것도 모를 법하지. 누가 설명을 해주시오. 마그람 경은 상황에 대해 들을 자격이 충분히 있음이니.”
검사성부의 극단적인 신도들을 누르기 위해서라도 상황을 주기적으로 짚어줘야 했다.
데칼의 관대한 배려 아래에는 그런 계산이 깔려 있었다.
마그람과 제일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렉스가 귀찮은 ‘선생님’ 역할을 맡게 되었다.
물론 우직한 성품답게 불만은 없었다.
“마그람 경.”
“예, 렉스 경.”
“현재 우리 교단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아! 뭘 염려하시는지 압니다. 히스펜릴이 이단을 국교로 선언했다는 소식이라면 여기 오기 전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단자 아일렛 로델라인을 심판할 당시에도 성전은 각오했던 일이잖습니까!”
저도 알 만큼 안다는 듯이 말하는 마그람이 사방에서 한숨을 부른다.
렉스는 기초적인 것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국교 선언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성검의 주인이신 테실리드 아르젠트 경이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 교단으로 넘어간 것이 큽니다.”
“예?”
“……설마 잊으셨습니까? 애초에 이단 심판을 하려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은 성검의 주인이 우리 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테실리드가 가진 무력과 신성경과의 관계를 이용하려 했다.
사실 후자 쪽에 무게 중심이 있었지만, 미인계에 대해서는 눈 가리고 아웅 해야 했으므로 전자만 언급했다.
“그런데 지금은 성검의 주인이 우리 쪽이 아니라 상대 쪽 전력이 되었잖습니까. 히스펜릴 공국과 전쟁이 발발하면 우리에게 승산이 없습니다.”
마그람은 진심으로 놀라는 모습이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제정신이냐 싶은 반응이지만 질서교 교단에서는 새삼스럽지 않았다.
이제까지 워낙 테실리드가 순종적인 모습만 보여왔기에, 그가 ‘감히’ 교단을 적대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 하는 이들이 제법 있는 것이다.
양국의 전력 차만으로 이유는 충분했지만 아직 설명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테실리드 경은 라비오사 왕후의 친아들이잖습니까. 엊그제 빈체스터 왕국이 언령교에 대한 지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자칫하면 우리는 히스펜릴 공국뿐만 아니라 빈체스터 왕국까지 적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엘펜하임 교국은 라그네이프 마도 공화국과 수교를 단절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히스펜릴 공국에 이어 빈체스터 왕국과도 마찰을 빚는다면 교국은 대륙에서 고립될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민심이 좋지 않습니다.”
“민심?”
“성검의 주인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큽니다. 선악을 가르는 검이 그의 행동을 심판하죠.”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그래 봐야 이단자인 것을…….”
결국 렉스도 한숨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런데 개종을 하고도 테실리드 경은 타락하지 않은 모습으로 남았잖습니까. 세간의 상식으로는 ‘마검의 주인’이 되어야 마땅하건만 그는 여전히 ‘성검의 주인’입니다. 그 사실이 다수의 신도들을 동요시키고 있습니다.”
“……!”
그러잖아도 발푸르기스의 밤 동안 성지구축으로 수성전을 벌이며 버티느라 3할 이상의 시민들을 포기한 적 있는 성황청이다.
민심이 악화된 마당에 영웅인 신성경을 향한 질서교의 핍박, 마찬가지로 영웅인 성검의 주인의 개종이 기폭제로 작용했다.
그 결과 다수의 교국민들이 공국으로 망명을 신청했다.
질서교 교인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비안카가 물밑 작업을 하기는 했으나, 테실리드를 얻음으로써 계획은 더욱 순조롭게 진행되고 언령교의 앞날은 매우 창창해진 셈이다.
신성경과 성검의 주인은 상성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그, 그러고 보니……. 이, 이단자면 타, 타락해야 하는데, 왜, 왜…….”
마그람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 역시 마지막 이유에 동요하는 신도들 중 하나였다.
‘엄격한 질서와 선’을 등졌는데도 여전히 ‘성검의 주인’인 테실리드 아르젠트.
애초에 성마의 검이 신을 가리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유일신 세계관에 사고가 갇힌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광신도마저 저 꼴이니 다른 신도들은 오죽하랴.
의회석에 앉아 있던 몇몇 추기경들이 한탄했다.
“이러다간 우리가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소이다.”
“성검의 주인을 페론사로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맞습니다. 테실리드 경이라도 계속 우리 교단에 남도록 세뇌, 아니 세례를 퍼부었어야 했습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신성경을 처단하러 성검의 주인을 보내는 건 대체 누구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인지…….”
“그거 뮤리엘 성녀님이 강력히 주장하셔서 추진된 건데요…….”
“커흠, 커흠.”
“에휴…….”
짜증 섞인 한숨이 쏟아졌다.
정작 일을 책임져야 할 뮤리엘은 기도를 드린답시고 부재중인 상황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이단 심판은 무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오.”
중후한 음성이 한숨들을 갈랐다.
아들을 잃고 한 달 새 10년은 더 늙은 듯한 베잘리우스 추기경이었다.
“그럼 이단들을 내버려 두자는 말씀이십니까?!”
마그람이 배신이라도 당한 얼굴로 소리를 높였다.
늙고 지친 베잘리우스 추기경은 무례를 지적하는 대신 필요한 말만 이어나갔다.
“물론 우리 교단에 큰 위협이 될 인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어선 안 될 일이오. 다른 현실적인 방법을 찾자는 이야기요.”
“현실적인 방법이라.”
뇌까린 인물은 데칼 추기경이었다.
두 추기경들은 특징이 있었다.
바로 신성경과 성검의 주인이 관련된 문제에 한해서만큼은 의견 일치를 보는 때가 잦았다는 것이다.
데칼 추기경이 차가운 외알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그러고 보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둘이 교단을 배신한 것은 사실이지요.”
눈썹을 쓱 올린 베잘리우스 추기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특히 이단의 신성경 쪽은 정체를 숨김으로써 많은 신도들을 기만했소. 이것은 사람으로서 몹시 떳떳하지 못한 행위요.”
떳떳하게 밝혔으면 바로 이단이라며 처형했을 것이면서, 반박하기 힘든 보편적 미덕을 명분으로 들이민다.
합심한 두 추기경들은 아일렛과 테실리드에게 타격을 줄 만한 명분을 찾아냈다.
“그들의 배교 행위를 지탄하는 성명을 발표하도록 합시다.”
“그럽시다!”
“오오, 좋습니다!”
신성경과 성검의 주인의 명예를 끌어내리고 언령교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수단을 찾아낸 질서교단은 심기일전했다.
제법 의욕적인 공기가 성황청을 감쌌다.
그러나 인간 군상들이 알력 다툼이나 하고 있기엔, 이 세상은 생존만으로도 너무도 벅찬 곳이었다.
쿠우우웅!
“힉?”
“헉?”
머리 위로 거대한 진동이 느껴진다.
“처, 천장이……?!”
“아, 아니야! 하늘이다!”
이래 봬도 이곳에 모인 이들은 죄다 신성력 혹은 오러를 각성한 이들이다.
뛰어난 기감으로 진원지를 파악했다.
쿠르르르릉.
하늘이 울부짖듯 흔들리고 있었다. 천진(天震)은 원형 파문을 질주시키며 지상의 피조물들을 떨게 했다.
발푸르기스의 밤과 둠스데이.
두 재앙을 거치면서 겪어본 익숙한 감각을 모두가 알아챘다.
“더, 던전 버스트다!”
“이, 이 정도라면 설마……!”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