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331)
보너스 외전. 초차원 랜선을 뛰어넘어……
여느 때처럼 느긋한 아침이 시작되었다. 잠기운이 걷혀 나가고 의식이 천천히 깨어남에 따라 감각이 이어 붙여졌다.
기분 좋은 몽롱함 속을 파고드는 건 향긋한 베르가못 냄새, 그리고 몸을 감싸는 따스한 온기였다.
바로 일어나기엔 아쉬웠기에 조금만 버텨보기로 했다. 눈을 뜨지 않고 포근한 베개에 얼굴 반쪽을 파묻으며 뺨과 이마를 비볐다.
그러자 내 머리 위로 크고 따뜻한 손이 내려앉았다.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손길이 무척 기분 좋았다. 실컷 즐기는 동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자 귓가로 목을 낮게 울린 매력적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에 이끌려 나는 눈을 떴다.
아, 오늘도 참 예쁜 아침이다.
“깼어?”
지척에서 테실리드가 나를 다정히 지켜보고 있었다.
한 겹 새하얀 이불을 덮은 채 옆으로 길게 누운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조각상 같았다.
미소 짓는 잘생긴 얼굴뿐만 아니라 턱을 괸 손에도 눈길이 갔다.
힘줄이 돋아난 손목과 단단한 팔이 고스란히 맨살을 보이고 있었다. 상반신 역시 근육의 섬세한 굴곡을 확인할 수 있었고 말이다.
아아, 새삼 또 느낀다.
세상은 아름답고 인생은 행복하다.
“더 잘래, 일어날래?”
“일어날래.”
이불을 가슴 위로 끌어당긴 나는 상체만 일으켜 앉았다. 침대 옆 협탁에는 베르가못 향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찻잔이 있었다.
그가 날 위해 준비해 준 것을 양손으로 쥐고 호로록 들이켰다.
겨울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얼그레이 밀크티는 최고였다.
“아이, 밖에 눈이 와.”
“어? 정말이네.”
침대 옆은 퇴창이었다. 이불을 두른 상체를 길게 빼서 커튼을 젖혔다.
눈꽃이 날리는 하얀 세상이 펼쳐졌다. 눈구름 낀 하늘 아래 대지가 설백색으로 뒤덮였다.
돌담을 대신하는 구상나무들이 희게 치장한 덕분에 오너먼트 몇 개만 걸면 멋진 성탄절 장식이 될 듯했다.
눈이 소복이 쌓인 앞마당에는 손님이 와 있었다.
각양각색의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눈을 앞발로 잡으려 하고 있었다. 지난 계절에 치즈태비 고양이가 낳은 아가들이었다.
춥지 않을까 살짝 걱정하던 때였다. 등 뒤에 있던 테실리드가 내 어깨에 가볍게 턱을 얹고는 말했다.
“창고 문을 열어뒀어. 추우면 그쪽으로 들어갈 거야.”
“다행이다.”
내 대답의 마지막 음절은 선명하지 못했다. 테실리드가 먹어 치웠으니까.
뒤에서 허리를 감아오는 단단한 팔에 내 손을 겹치며 입맞춤에 호응했다. 일단은 인사처럼 가볍게, 새가 열매를 쪼듯이.
내가 그의 아랫입술에 장난을 치자 그가 간지러운 듯 목을 낮게 울린 웃음을 삼켰다.
그 역시 똑같이 나를 물다가 코끝을 가볍게 부비고는 떨어졌다. 달콤한 마무리였다.
“아이.”
“응, 테리.”
“눈 오는데, 계획 있어?”
“나는 항상 완벽한 계획이 있지.”
“뭔데?”
“너랑 침대 안에만 있기.”
도발적으로 대답한 즉시 나는 뒤돌아서 테실리드의 어깨를 밀었다. 무게중심을 잃은 그가 침대에 풀썩 안착했다.
짧은 은발을 시트 위에 흐트러뜨린 채 누운 테실리드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역시 그는 거절하는 법이 없다.
예술적으로 갈라진 복근 위로 내가 무게를 싣자 그가 담백한 신음을 흘렸다.
“엄살? 무겁지도 않으면서.”
“유혹의 신음이었습니다만.”
그런 귀여운 노력을 하다니.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그러자 내 허리를 쥔 그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우리는 서로를 유혹하는 데 충분히 성공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가슴팍을 짚고 상체를 기울였다.
성예술 조각상 같은 반라의 몸이 내 아래 무방비하게 누워 있다. 말갛게 나를 올려다보는 눈은 내게 모든 걸 허락하겠다는 듯했다.
유부남이 되어서도 성결한 분위기를 뿌려대는 미남자를 내려다보며 내가 성녀 출신이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랬으면 그를 타락시킨다는 죄책감에 못 견뎠을지도…….
그때 뜨겁고 커다란 손바닥이 내 한쪽 뺨을 감싸는 감각에 상념이 환기되었다. 조금 불만스러운 음성이 귓가를 울린 것은 그다음이었다.
“너무 애태우는 것 아닌가.”
“응?”
“빨리 안 덮칠 거면 내가 하고 싶은데.”
“앗!”
시야가 뒤집혔다. 어느새 내 몸 위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그가 나를 깊게 응시하고 있었다.
음영이 진 얼굴은 그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고는 했다.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그가 내게로 손을 뻗어왔다.
열감 어린 손바닥이 내 어깨를 감쌌다. 밀착한 채로 그가 주는 온기가 느릿하게 이동했다. 그의 손이 내 팔을 타고 손목으로 올라갔다가 손바닥에서 완전히 겹쳤다.
혼자서만 깍지를 낀 그가 내 손을 그의 입술로 끌고 갔다. 그리고 소지부터 시작해서 손끝 하나하나에 입을 맞췄다.
짜릿함에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곱아들었다. 반응을 느낀 그가 내 엄지를 가볍게 물고는 호선을 그리는 입술로 말했다.
“입 맞춰도 돼?”
새삼스러운 질문에 의아함을 담아 눈을 크게 뜨는데, 그가 의미를 구체화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과연 허락이 필요할 만했다.
머리보다 몸의 대답이 더 빨랐다. 벌써 숨이 가쁘고, 그의 목을 꽉 끌어안아 내게서 떨어지지 못하게 가두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나는 즉시 그의 뒷머리를 힘껏 감싸서 내게로 끌어당겼다. 일단 한번 입술을 먹어 치우고 말했다.
“어서.”
녹을 듯이 미소 짓는 남자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곧 부드러운 은발이 살랑이며 내 목덜미를 간질였다.
✠
온몸의 감각 수용체가 열심히 일한 뒤에 노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이번에 먼저 눈을 뜬 사람은 나였다. 덕분에 사랑스러운 남편이 곤히 잠든 황홀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실컷 감상한 후에, 그가 깨지 않도록 조심해서 침대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정오가 한참 지났으니까 그가 일어나면 배가 고플 것이다.
‘오늘 점심은 하얀 우유롤빵과 등심 스테이크가 좋겠어.’
맛있는 음식을 차려서 직접 한 입 한 입 먹여줘야지.
그렇게 완벽한 계획을 짰을 때였다.
[ 지금부터 ‘빙의자 서포트 시스템’ 대규모 컨텐츠 업데이트를 위한 점검이 진행됩니다.]“오?”
무척 오랜만에 보는 시스템 알림이다. 그러고 보면 시련의 탑과 빙의자 채팅창 이후 처음이지 않은가.
‘그동안은 업데이트랍시고 신규 상품만 주구장창 내시더니!’
[‘창조경제 관리자’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합니다.] [‘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신도가 없는 신들도 먹고살려면 헌금을 걷어야 한다고 말합니다.]‘네, 네. 제 캐시가 신성으로 환전된다고 하셨죠.’
아무튼. 시련의 탑은 이미 최상층까지 다 깨버렸고, 채팅창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는 기대가 컸다.
어떤 컨텐츠일까.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희망 사항을 떠올려 보았다.
‘시련의 탑 증축이라든가?’
[‘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공연히 버럭 화를 냅니다.]담당자님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닌 모양이었다. 유감이다.
업데이트에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듯해서 일단 먼저 씻고 나왔다.
장미 향이 폴폴 나는 머리카락을 다 말리고, 개운해진 몸 위에 가벼운 평복을 걸치자 시간이 딱 맞았다.
[ ‘빙의자 서포트 시스템’ 3차 대규모 컨텐츠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서 바로 업데이트 내역을 확인해 보았다.
늘 그렇듯이 처음은 매출을 내기 위한 신상품 광고로 시작했다.
[ ‘소울 펫(시련의 탑 전용)’시련의 탑에서 당신을 도와줄 애완동물, ‘소울 펫’을 입양하라.
알록달록한 알을 까면 다양한 종류의 귀엽고 깜찍한 펫이 랜덤으로 태어난다. 빙의자의 눈에만 보이는 이 펫은 시련의 탑에 입장했을 때 당신의 능력치를 대폭 상승시켜줄 것이다.
참고: SS급 빙의자에게 맞춘 밸런스 패치 때문에 극악한 난이도로 소문난 시련의 탑은 빙의자들에게 외면을 받아왔다. 컨텐츠를 어떻게든 다시 활성화시켜 보고자 빙의 관리국에서 출시한 상품이다. 많이 사주도록 하자.
가격: 1,000,000캐시 (무제한 구매 가능)]
참고란이 심금을 울렸으나…….
‘저는 300층까지 다 깼으니까 굳이 살 필요 없겠네요.’
돈을 허투루 쓸 수는 없지.
알을 까면 랜덤으로 나온다는 설명으로 보아 확률형 상품인 것 같고 말이다. 이런 건 손 안 대는 게 이득이다.
[‘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양심이 있으면 10개 정도는 구매하라고 말합니다.] [‘창조경제 관리자’가 귀여움과 깜찍함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판촉해 봅니다.]확실히 광고 페이지에 나온 동물들이 다 귀엽긴 했다. 구매하면 머리나 어깨에 올라타서 항상 졸졸 쫓아다니는 모양이었다.
‘저 새하얀 하늘다람쥐, 조금 탐나는데? 하나만 질러볼…… 아, 아니야. 이러면 안 되지.’
나는 사행성 상품에 넘어갈 뻔했던 정신을 추스르고 공지사항을 확인했다. 드디어 본격적인 업데이트 설명이 나왔다.
제목부터 범상찮았다.
[ ‘시련의 탑 서버 통합 업데이트’]응? 서버 통합?
1인 입장 지역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눈을 크게 뜨고 설명을 계속 읽었다.
[ ‘시련의 탑 서버 통합 업데이트’서버를 통합함으로써 싱글 플레이뿐만 아니라 파티 플레이까지 가능해졌다.
자신과 같은 층에 있는 빙의자들과 힘을 합쳐 시련의 탑을 빠르게 공략해 보자.]
내 입이 떡 벌어졌다.
‘시련의 탑 안에서 빙의자들을 만날 수 있다고?!’
이게 정말이라면, 여태껏 초차원 랜선을 통해서 친목질을 하던 빙의자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엄청난 격변이었다. 당연히 다른 빙의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 ‘전체 채팅 채널’에 입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