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350)
이벤트 외전 8화 (완)
“하아, 다른 곳도 아니고 마계에서 하다니 뿌듯하네.”
“뿌듯ㆍㆍㆍㆍㆍㆍ?”
“이게 하렘에서 선택받은 기분인가 싶어서. 악마들한테 동네방네 자랑해야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제발, 그만.”
반쯤 진심이었는데 테실리드가 머리를 감쌌다. 역시 흑역사를 꺼내는 건 좀 심했나 보다.
나는 반성하며 그의 어깨를 도닥였다.
“미안, 안 놀릴게. 그런데 테리.”
“응.”
“우리 왜 갇혀 있어?”
현재 우리는 천막이 씌인 나무 우리 같은 것에 갇혀 있었다. 심지어 어디론가 끌려가는 듯 수레 특유의 덜커덩거리는 승차감이 느껴졌다.
“아, 그게ㆍㆍㆍㆍㆍㆍ.”
테실리드가 표정을 심각하게 고쳤다.
“스탬프 여섯 개를 모두 모았더니 히든 미션이 열렸어. 그래서 지금 미션 장소로 이동하는 중이야.”
“미션 장소ㆍㆍㆍㆍㆍㆍ?”
마침 수레가 멈추고 나무 우리를 덮던 천막이 휙 하고 벗겨져 나갔다.
우와아아아!
군중의 소음이 해일처럼 덮쳐왔다. 우리는 거대한 원형 경기장 한복판에 구경거리처럼 놓여 있었다.
검은 토끼 인형, 래비카토가 사회자처럼 앞으로 나와서 외쳤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악마들이 환호했다.
“처형하라! 처형하라!”
“저 인간들을 태워 리드님께 제물로 바치자!”
“우오오! 리드님! 재림의 번제를 받으소서!”
“아아, 혼돈악이시여!”
“당신의 하렘이 여기 있나이다! 부디 다시금 광림을!”
옆에서 또 괴로워하는 테실리드의 어깨를 흔들며 내가 물었다.
“하네스를 착용했는데 왜 들킨 거야?”
“흥분해서 찢었더니 몽마 위장 효과가 풀렸어.”
“어머 어머, 테리도 참.”
“나만 그런 거 아니야. 너도 그랬어.”
“ㆍㆍㆍㆍㆍㆍ하하, 나도 참.”
시스템이 부랴부랴 상황을 정리했다.
[ ‘미션 스탬프 수집’이 완료되어 새로운 퀘스트로 갱신됩니다.] [ ‘던전의 주인을 찾아라! (난이도: S)’히든 미션을 발생시켜 던전의 주인을 처형장에 끌어내는 데 성공한 당신! 그러나 던전의 주인은 정체를 감추고 관중석에 숨어서 특정할 수 없다.
처형장의 모든 악마를 해치워서 던전 토벌에 성공하자.
성공 보상: +3강 몽마의 가죽 하네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 협찬)
실패 페널티: 퇴근 불가]
“보스가 관중석에 숨어 있대.”
“섬멸해야겠군.”
그때 래비카토가 씨익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든가 말든가 나와 테실리드는 공략 브리핑을 했다.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혼자 해치우기 어때?”
“그냥 내가 할게. 쉬고 있어, 아이.”
공략이 정해졌다.
우지끈!
테실리드가 신성 오러가 실린 손으로 나무 우리를 박살냈다.
“후우.”
기능을 잃은 하네스 탓에 본연의 위엄과 기품을 되찾은 그가 나무 우리를 빠져나갔다.
첫걸음을 내딛기 무섭게 그의 위압감이 처형장을 짓눌렀다. 마족들의 환호가 뚝 끊겨 심상찮은 침묵이 흘렀다.
“뭐, 뭐지? 저 인간 수컷?”
“뭔가 이상한데.”
작정하고 격을 드러낸 그에게 감히 대적할 의지를 품을 수 있는 마족은 없었다.
성검 리브라를 소환한 테실리드가 검 끝으로 성호를 그었다. 그동안 나는 나의 신께 기도했다.
“언령님, 지금 몽땅 올려보냅니다. 언멘.”
✠
“전원 구조가 완료되었습니다, 성하!”
“고생하셨어요, 렉스 경.”
증축된 성 아그네스 교회의 상층부는 꽤 높았다. 교황의 거처에서 창문을 통해 던전 싱크 장소가 한눈에 내다보였다.
페론사 도심 한복판. 느릿느릿 회전하는 게이트는 노을빛을 받아 더 사특하게 꾸물거렸다.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게이트가 천천히 반경을 줄여나갔다.
딱히 자원도 없는 던전을 남겨둘 이유가 없었다. 새로운 주인의 권한으로 던전을 클로징했다.
구조된 던전 싱크 피해자들은 치료를 받고 대부분 귀가했다. 붐비던 광장은 많이 한산해진 상태였다.
렉스가 감격에 겨운 듯 숨을 깊게 들이켰다.
“크흡, 교황 성하와 추기경 예하 두 분께서 활약해주신 덕분입니다.”
“별말씀을요.”
“증언을 들어보니 상당히 악랄한 규칙을 가진 던전이었던 것 같군요. 마족들이 시키는 일을 여섯 개나 해야 하셨다고요?”
“음, 뭐, 그랬죠.”
“크흑, 얼마나 굴욕적이셨을지ㆍㆍㆍㆍㆍㆍ.”
민망함을 감추고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마침 테실리드가 현 상황에 가장 적합한 대응을 해주었다.
“렉스 경, 늦은 시간까지 고생하셨습니다. 저희도 피곤해서 쉬고 싶군요.”
그래, 쫓아내 버리자.
“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단둘만 남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오랜만에 페론사에 온 김에 나와 테실리드는 성 아그네스 교회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로 했다.
전망 좋은 창문을 통해 미풍이 길게 불어왔고, 그 부드러운 감각에 숨어들어 다정한 손길이 내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음, 좋아.
더 만져달라고 머리를 가까이할 겸 슬쩍 기대었다. 테실리드는 기꺼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평온한 시간이다. 그래서 창밖을 내다보는 우리의 감상도 같은 결을 가졌다.
“다들 일상으로 돌아갔겠군.”
“네가 세상을 구해준 덕분이지. 영웅다운 행보야.”
박수를 작게 짝짝짝 치자 테실리드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대꾸했다.
“같이 구했는데.”
“아, 그러게. 같이, 몸으로 구했네.”
“ㆍㆍㆍㆍㆍㆍ.”
아직도 이런 농담에 내성이 없어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바다색 눈이 재밌었다. 하여간 그는 한결같았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언어 능욕에 약한 타입 같다고 말합니다.] [‘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29금 미션 카드를 떨어뜨린 것으로 보아 동의합니다.] [‘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하여간 멘탈이 약하다고 혀를 찹니다.] [‘천기누설 감찰관’이 캐릭터 해석에 고개를 끄덕입니다.]테실리드는 자기반성까지 했다.
“하아, 내일 일어나면 고해성사를 해야겠어ㆍㆍㆍㆍㆍㆍ.”
“그래? 내가 집전해 줘야겠네. 몇 시에 고해하러 갈 거야? 내가 먼저 들어가 있을게.”
“ㆍㆍㆍㆍㆍㆍ.”
“왜?”
“마음이 바뀌었어. 당분간 고해실은 좀ㆍㆍㆍㆍㆍㆍ.”
뭘 생각했는지 잘생긴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대체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할 만한 상상은 무엇일까.
추측하다 보니 내 안을 심연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내 얼굴 역시 붉어졌다.
“더, 덥네.”
“그러게.”
속이 뻔한 딴청을 부리다가 시선이 마주쳤다. 서로의 붉은 얼굴을 보고 무심결에 나온 웃음소리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아이, 페론사까지 나온 김에 내일은 이것저것 해볼까?”
“좋지. 친구들도 만나고 우리 엄마, 아빠, 할아버지도 만나 뵙고. 아참, 시장 들러서 식재료도 사가지고 가자!”
“그래.”
“테리, 너는 하고 싶은 거 있어? 뭐가 좋아?”
그는 조용히 입매를 휘어 곡선을 만들었다. 평소보다 깊이감 있는 미소와 함께 그가 말했다.
“너와 하면 다 좋아.”
‘아무거나’라는 무성의한 말도 미남이 하니까 다른 모양이다.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말인 양 가슴을 간질거리며 올라오는 설렘을 주체하기가 힘들다.
테실리드는 내 반응을 관찰하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덧붙였다.
“세상을 구하는 일도 즐거울 정도인데 뭐든.”
“어, 뭐, 그래도 특별히 더 좋은 게 있을 것 아니야? 생각해 봐.”
“세계 멸망?”
“ㆍㆍㆍㆍㆍㆍ.”
“농담이야.”
“ㆍㆍㆍㆍㆍㆍ.”
괜히 물어봤다. 그냥 아무거나 라는 대답에 만족했어야 했는데.
그때 테실리드가 목을 낮게 울려 웃었다.
“진짜 농담 맞아.”
“하아ㆍㆍㆍㆍㆍㆍ.”
나도 모르게 한숨을 길게 내뱉는데 입술이 도중에 막혔다. 눈을 동그랗게 뜨자 테실리드가 제 입술을 살짝 떼고는 장난스레 말했다.
“사실은, 너와 하는 일 중 이게 가장 좋은 것 같아.”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당신의 몸으로 세상을 구하자며 눈을 번뜩입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의 뒷덜미를 잡아서 끌고 나갑니다.]착한 고백은 칭찬해줘야 마땅했다. 나는 그의 뺨을 붙잡아 내게 끌어당겼다.
“그래? 좋으면 잔뜩 해야지.”
가벼운 키스를 나누었다. 장난스레 입술을 깨물고 달아나기를 번갈아가며 반복했다.
엇박자로 이루어지던 입맞춤은 어느 순간 박자가 맞춰져서 입술이 동시에 꾹 눌렸다.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를 향해 입을 벌려주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목을 울려 웃자 입술을 통해 진동이 느껴졌다. 심장까지 닿아 흔들 듯한 떨림이었다.
눈은 감지 않았다.
내가 온 세상의 중심인 듯 보는 바다색 눈이 가슴 아프도록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전에도 수십 수백 번이나 했던 다짐을 또 하게 되어버린다.
그를 행복하게 해줘야지.
✠
빛에 반질거리는 신록색 눈동자가 지척에서 그를 마주했다. 맞댄 입술보다 눈빛이 다디달아, 제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는 저 맑은 신록 안에 파묻히는 상상을 했다.
그의 온 세상이 봄의 대수해로 가득 채워지는 동안에도, 사랑스럽다는 듯이 저를 보는 구원자의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아.’
문득 테실리드는 실감했다.
눈이 아릿하도록 아름다운 이번 시간선에서, 온 세상이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이벤트 외전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