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37)
37화
백작 영애의 치명적인 유혹. 거절할 수 없었다.
“응!”
왜냐면 비안카의 침대 매트리스는 끝내주게 푹신하니까.
훈련하고 일찍이 씻고 온 터라 거리낄 게 없었다. 나는 곧장 비안카의 침대 위로 올라갔다.
사실 처음도 아니었다. 몇 번인가 몰래 비안카와 같이 잤다.
평민 놀이 친구가 백작 영애와 너무 허물없이 지내는 걸 들키면 사달이 날지도 모르지만, 비안카 방으로 허락 없이 들어오는 사용인들이 없어서 괜찮았다.
나는 이불을 들추고 옆자리를 탕탕 두드렸다.
“비아, 숙제 빨리 끝내고 들어와.”
“방금 끝났어. 갈게.”
나란히 마주 보고 누웠다. 많이 피곤했는지 비안카는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금방 새근새근 잠들었다.
내 목걸이에서 금빛이 반짝였다.
까는 듯 말하지만 아련한 음성이었다.
“물론이에요.”
작게 속삭인 나는 눈을 감았다. 보람찬 내일을 맞이하기 위한 숙면의 시간이었다.✠길레트 영지 남서부에 있는 C급 던전, ‘오염된 수정 동굴’.
수십 년 전에 보스가 토벌된 곳이지만, 각종 광물 자원이 산출되는 탓에 클로징되지 않은 던전이다.
오늘도 모험가들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지어 던전으로 출근했다.
웃통을 벗고 곡괭이를 든 것이 모험가라기보다는 베테랑 광부의 모습에 가깝다. 토벌된 C급 던전이란 일반 광산이나 다름없었다.
퉁! 탕! 퉁! 탕!
수정 동굴 여기저기에서 신명 나는 곡괭이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네는 처음 보는 얼굴이군.”
“여비 좀 벌려고 일용직 뛰고 있습니다. 영감님께서는 오래 일하셨나요?”
“그렇지. 난 보스가 토벌되었을 때부터 눌러앉았으니까 직업이 광부라 해도 될 정도야. 껄껄.”
“어쩐지, 이두박근이 예사롭지 않다 싶었습니다.”
“젊은 친구가 보는 눈이 있구만! 내 자랑일세!”
내부는 노동의 열기로 후끈했다. 생동감 있게 꿈틀대는 멋진 근육 위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다들 몸이 자산인지라 부단히 관리해 온 근육이 빛이 나는 듯했다.
보양식에 대한 정보를 나누거나 음료를 나눠 마시거나 하며 서로서로 사이좋게 곡괭이질을 할 때였다.
투우웅! 타아앙! 투우웅! 타아앙!
둔중한 진동이 동굴 전체를 울렸다.
“이, 이 소리는 대체 뭐죠?! 서, 설마 마수?!”
일용직 청년이 화들짝 놀랐다. 그는 오러도 각성하지 못한 초보 검사에 불과했다.
안전하다는 직업소개소의 말만 믿고 지원했는데 이게 무슨 낭패란 말인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베테랑 영감이 껄껄 웃었다.
“펜릴 형님께서 출근하셨군. 과연 곡괭이 소리의 울림부터가 다르다니까!”
“페, 펜릴 형님이라뇨?”
“저기, 저곳을 보게나.”
투우웅!
베테랑 영감이 가리킨 어두운 공간 안에서부터 다시금 진동이 울렸다.
그곳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약 한 달 전부터 이곳에서 묵묵히 곡괭이질을 하기 시작한 중년 남성으로, 일대에서 모르는 자가 없다.
그 이유는 바로…….
투우웅! 타아앙!
퍼석! 퍼서석! 와르르!
순수한 육체의 힘만으로 던전을 깨부수는 무지막지한 저력!
일용직 청년은 충격받았다.
‘허억! 근육만으로 오러 유저에 필적하는 힘을 내다니!’
과연 펜릴이라 불리는 중년인은 예사롭지 않은 근육의 소유자였다.
울끈불끈한 상완 이두근과 벽처럼 널찍한 대흉근과 방패같이 단단한 복직근.
그 근육들이 만들어낸 굴곡은 가히 예술이었으며 상반신의 형태 또한 기하학에서 찬양할 법한 균형 있는 역삼각형이었다.
밀빛 피부 위로 굴러 떨어지는 땀방울에 반사되는 빛이 눈이 부셨다.
그가 땀을 닦기 위해 앞머리를 쓸어 넘긴 순간.
‘헉.’
숨이 멎을 듯이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근육질 꽃중년의 표본이었다.
입을 헤벌렸던 일용직 청년이 정신을 차렸다. 그는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저분, 영감님보다 젊은데요?”
“시끄럽네! 나보다 세면 형이지 뭘!”
듣고 보니 맞는 말 같다고 일용직 청년은 생각했다.
동굴의 다른 모험가들도 펜릴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형님의 저 근육, 한 번만 만져봤으면…….”
“음식은 어떻게 드실까? 근육 보충용 환단은 뭘 드실까?”
“아아, 근육의 비결을 여쭤보고 싶다. 하지만 감히 다가갈 수 없어……!”
그사이에도 펜릴의 곡괭이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가 잘 빠진 허리를 틀어 온 힘을 다해 스윙하듯 벽을 치자…….
콰과과광!
없던 길이 생겨났다.
“흠!”
펜릴은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자신의 근육을 내려다보았다.
‘대흉근과 기립근은 기분이 아주 좋은 상태 같군. 삼각근과 광배근이 조금 삐친 것 같으니 오늘은 이쪽을 단련해서 달래줘야겠어.
……아차, 환단 먹을 시간이 지났다!’
펜릴은 다급하게 근육 보충용 환단을 입에 넣고 와그작 씹었다.
혀가 마비될 만큼 쓴맛이지만 근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면 미각쯤은 희생해도 상관없었다.
그때였다.
콰드드득! 콰득! 콰지직!
“처, 천장에 금이……?!”
“헉! 무너진다! 다들 피해!”
토벌된 C급 던전에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비상사태가 터졌다.
천장이 무너지더니 마수가 등장했다. 꿈틀거리는 육중한 거체, 이빨 달린 괄약근 같은 입, 줄줄 흘러 떨어지는 산성 체액.
누군가가 그것의 이름을 말했다.
“에, 엑시드 웜!”
“왜, 왜 아직도 대형 마수가……!”
취이이이익!
“끄, 끄아아악!”
엑시드 웜이 침을 분사하자 살 타는 냄새와 함께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저, 전투 가능한 사람을 불러야……!”
집채만 한 엑시드 웜은 C급 중보스였다. 해치우려면 최소 오러 비기너 한 명 이상은 와줘야 한다.
그러나 오러를 다룰 줄 아는 이가 토벌된 C급 던전에서 곡괭이질을 하고 있을 리 만무했다.
고작해야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전투력을 가진 이들은 혼비백산했다.
도망치려 했으나 엑시드 웜이 등장할 때 생긴 낙석이 출입구를 막아버린 상태였다.
“히, 히이익!”
“시, 신참!”
산성 시냇물에 고립된 일용직 청년이 위기에 몰렸다. 징그러운 입이 그를 덮치려던 그 순간.
뻐어억!
곡괭이가 날아와 웜의 안면부를 강타했다. 강냉이가 우수수 털린 엑시드 웜이 정신을 못 차릴 때였다.
“꺅!”
누군가가 일용직 청년을 공주님 안기로 구해냈다. 허공을 도약하며 그가 청년을 내려다보고 물었다.
“괜찮은가, 청년?”
“네? 네, 네!”
그제야 청년은 자신이 평원처럼 드넓은 대흉근에 안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페, 펜릴 형님이다!”
“펜릴 형님이 신참을 구해주셨다!”
모험가들이 기쁜 얼굴로 펜릴의 이름을 연호했다.
누군가는 일용직 청년의 한 손이 형님의 가슴 근육에 슬쩍 얹어진 것을 보며 부러움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기도 했다.
쿠오오오!
이빨이 몽땅 빠져 평생 죽만 먹게 생긴 엑시드 웜이 크게 분노했다. 산성 체액을 마구 내뿜으며 펜릴에게 달려들었다.
“페, 펜릴 형님! 위험합니다!”
“피하십시오, 형님!”
“…….”
펜릴은 자기보다 나이 많은 동생들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의 두 다리는 파도를 버텨내는 방파제처럼 제자리에 굳건히 섰다.
직선 경로로 달려드는 엑시드 웜의 모습에 다들 눈을 질끈 감은 그 순간.
펜릴은 고요히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빠아아악!
이마에 주먹이 꽂힌 채로 멈춘 엑시드 웜이 용수철처럼 줄어들었다.
순간 펜릴은 양손으로 엑시드 웜을 역기처럼 번쩍 들더니.
부우우욱!
찢어버렸다.
그 광경을 목도한 사람들의 입이 헤벌어졌다.
“우, 우리 형님이…… 오러 유저셨어?”
“아냐. 방금 그건…… 그냥 순수한 근육의 힘이야…….”
“헉…… 형님. 대박…….”
당사자는 별 감흥이 없는 듯 근육을 점검할 뿐이었다.
“흠! 수련의 효과가 없진 않군.”
그가 주변에 지시했다.
“어서 상처를 치료하게.”
“네, 네! 형님!”
큰 부상자는 없었다.
모험가들이 각자 소지하고 다니는 힐링 포션을 마시는 동안, 펜릴은 루팅을 마치고 출입구를 막은 낙석을 치웠다.
다시 묵묵히 제자리로 돌아가 곡괭이를 들려는 그 순간이었다. 웜 앞에서도 침착했던 그의 평정이 무너졌다.
“아니, 이런! 내 환단이! 30분마다 먹지 않으면 근손실이 나건만……!”
웜의 체액에 녹아버린 근육 보충용 환단을 보며 펜릴이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목숨을 빚진 일용직 청년이 수줍게 다가왔다.
“저…… 형님, 급하신 대로 이거라도…….”
곱게 포장된 환단. 길레트 영주 인증 마크와 ‘로델’이라는 라벨이 눈에 띄었다.
온갖 종류의 보약을 섭렵해 온 펜릴의 안목으로 보기에 그것은 왠지 보통의 환단보다 영험하게 느껴졌다.
“베풀어주신 은혜에는 못 미치지만 제 작은 마음입니다. 받아주십시오, 형님.”
“흠! 내가 원래 아무에게나 신세 지는 사람이 아닌데…….”
“알고 있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근손실 나시잖습니까!”
“흠! 그렇지! 성의 고맙게 받겠네.”
펜릴이 환단을 한입에 넣고 와그작 씹었다.
몸에 좋은 약이 으레 그렇듯 입에 쓰겠거니 하며 앞으로 느껴질 혀의 고통에 대비했다.
그런데.
“이, 이 맛은……?!”
입안 가득 기름지면서도 바삭한 돼지고기 튀김과 달콤한 소스의 맛이 퍼졌다.
어지간한 요리보다 맛있었으니, 이제껏 저탄고지를 준수해 온 그의 인생에서는 가히 충격과도 같았다.
환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했다. 그러나 그의 근육이 어느 때보다 기뻐하는 것으로 보아 근육 보충용 환단이 확실했다.
“더 드릴까요?”
“크, 크흠! 흠……! 사양하진 않겠…… 쿨럭!”
“체하십니다, 형님! 포션도 마셔가면서 드십시오!”
“흠! 건강해 보이는 시금치색이군. 고맙…… 아니, 어떻게 포션에서 주스 맛이?!”
유리병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번에도 로델이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금술사 로델……. 이런 엄청난 것을 만들다니…….”
미각을 구원받은 펜릴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펜릴 형님을 감동시켰어.”
“연금술사 로델이라고 했지?”
지켜보고 있던 모험가들이 로델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본의 아니게 인플루언서 효과 톡톡히 누리게 되었다.
아일렛과 레오날드의 합작품은 오염된 수정 동굴 던전을 중심으로 빠르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