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40)
40화
✠야명석에 의존하여 오솔길을 따라갔다. 꼬맹이 걸음으로 약 10분 정도. 상당히 가까운 곳에 목적지가 있었다.
넓게 함몰된 크레이터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주변 지형에 녹아들었다.
무릎 높이의 맑은 물이 잔잔하게 고인 거대한 웅덩이는 수중 식물의 터전이 되었다.
달빛 아래서 수초들이 물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습이 퍽 아름다웠다.
나는 남중한 보름달이 빛을 내리쬐는 곳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웅덩이 정중앙.
그곳에 이질적인 게이트가 느릿하게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던전이네요.”
그제야 ‘고향 탐방’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역시 S급이 가는 길에 던전이 빠질 수 없다고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신도를 일부러 위험천만한 곳에 인도한 것이냐며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에게 비난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보스 토벌이 완료된 C급 던전이니 고생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황급히 해명합니다.]아그네스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평했다. 훈련 중이 아니기에 상냥한 말투로.
“버스트요?”
깜짝 놀랐다. 던전에서 마수와 마물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는 ‘던전 버스트’.
제아무리 하급 던전이라도 버스트가 발생하면 난이도가 껑충 뛰어 최소 S급으로 격상되어 버린다.
던전 안에서만 날뛰던 마족과 마수가 현실에서 날뛰게 되면 그 피해는 엄청나다.
어떤 던전에서 발생했는지를 막론하고 막지 못하면 세렌트라 대륙이 멸망할지도 모르는 재앙.
그것이 바로 던전 버스트였다.
나는 재배 스킬 중 하나인 ‘식물 간파’로 수중 식물의 나이를 확인하고 말했다.
“여기 있는 수초들 중 가장 오래된 것도 6년생이 못 돼요. 6년 전에 버스트가 발생했다는 건데, 그랬다면 이 일대의 마을은 초토화되었을 거예요.”
말하고 보니까 소름 돋는다. 6년 전이면 우리 가족이 아직 여기 살았을 무렵 아닌가.
아그네스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아그네스의 말대로였다.
보통은 자원을 캐러 온 모험가들 때문에 밤낮으로 붐벼야 정상이지만, 이곳은 반대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마치 던전의 존재를 세상이 모르는 것처럼.
이런 경우라면 하나뿐이다.
“토벌대가 전멸해서,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군요.”
섣불리 대꾸할 수 없었다.
던전 버스트를 막기 위해 희생한 의인. 그건 아그네스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한참 동안 사자(死者)를 위한 묵상기도를 드리던 아그네스가 나를 돌아보았다.
“부탁이요?”
마침 언령님도 나의 던전 입장을 종용했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해당 던전에서 누구도 보스 아이템을 루팅한 기록이 없다고 슬쩍 알려줍니다.]S급 보스 아이템 날먹이라니, 고민할 필요도 없네.
“네, 그럴게요.”
“뭘요. 그럼 갈까요?”
신발을 벗고 잠옷 원피스 자락을 말아 올렸다. 얕지만 넓은 웅덩이 중심부로 가서 게이트를 들여다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같은 곳. 망설일 것 없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난이도 C급 던전 ‘검은 소금 사막’에 입장했습니다.]음, 정말 자원이라고는 소금뿐일 것 같은 던전이다. 그나마도 까매서 별로 먹고 싶진 않고.
‘어디쯤에서 보스를 잡았을까. 지도를 보자.’
거의 백지나 다름없는 황량한 지도에 딱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신전 모양의 건축물. 저기가 바로 보스존일 것이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쭉 가면 될 것 같아요. 20킬로미터쯤 되니까 쉬지 않고 걸으면…….”
다급한 목소리에 이끌려 뒤를 돌아보았다.
키르르륵!
호랑이만 한 거대 전갈이 내게로 일직선으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
숨을 멈추고 눈을 홉뜬 채 그것을 지켜보았다.
착실히 거리를 좁혀온 전갈이 마침내 내 얼굴로 그림자를 드리운 순간.
퍼석!
사첼백에서 목검을 꺼내 휘둘렀다. 전갈은 멀리 나가떨어졌다.
“어휴, 깜짝 놀랐네.”
전갈을 쿡쿡 찔러 봤지만 미동이 없었다. 즉사한 모양이었다.
이게 다 버프와 도핑의 힘이죠. 엣헴.
아그네스의 가르침을 받으며 수련한 지도 벌써 4주가 다 되어간다.
벌써 강체는 23레벨, 목검술은 21레벨에 도달한 상태였다.
레벨이 오를수록 레벨 업이 더뎌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대로는 신성력보다 오러 각성 요건을 먼저 만족할 것 같았다.
체력이나 무기술 둘 중 하나의 성취를 조절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정신을 차린 아그네스가 준엄한 음성으로 말했다.
“생도라니, 훈련 시간인가요?”
“잘됐네요.”
정말이었다. 심심해질라치면 여기저기서 덤벼드는 마수들 덕분에 실전 감각도 익히고 경험치도 올릴 수 있었다.[ 축하합니다! 강체 Lv.24를 달성했습니다.] [ 축하합니다! 기본 목검술 Lv.22를 달성했습니다.]일주일 만에 레벨 업도 했다.
물론 본래 목적도 잊지 않았다. 마수를 해치우면서도 걸음은 늦춰지지 않게 열심히 다리를 움직였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거대한 뼈로 이루어진 터널이 나타났다.
중보스였나 보다. 신전의 수호룡 같은 느낌으로.
“잠시만요.”
나는 즉시 시스템을 열었다. 시계가 가리키는 현실 시각은 내가 던전 입구에 도착했던 자정에서 몇 분 지나지 않았다.
“지금 확인해 봤는데 이 던전, 현실과의 시간 차이가 최소 20배 이상 나는 것 같아요.”
대체로 던전의 시간 흐름이 현실보다 빠른 편이라지만, 이곳 ‘검은 소금 사막’은 독보적인 듯했다.
‘현실에서 6년이 지났으니 던전 안에서는 최소 120년.’
백골이 진토될 시간이다. 유품이라도 수습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어서 가죠. 충분히 오래 기다리셨을 테니.”
마룡의 두개골로 들어가 등뼈와 갈비뼈로 이루어진 터널을 쭉 따라 걸었다. 그리고 꼬리뼈 끝으로 쏙 빠져나왔을 때였다.[ ‘검은 신전의 결계’에 진입했습니다.]휘오오오!
시야가 안개 낀 듯 흐려지며 모래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소금이 입안으로 마구 들어왔다.
아그네스가 당황했다.
“괜찮아요.”
지도를 보고 가면 된다.
몸이 날아갈 것 같은 폭풍을 뚫고 꿋꿋이 걸어갔다.
그때 뿌연 시야에서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비쳤다. 그것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그네스도 경고했다.
경로를 방해하는 마수는 바로 해치울 생각으로 목검을 준비했다.
마침내 다섯 걸음 정도까지 가까워졌을 때.
“으…… 으으…….”
“사, 사람?”
웬 근육질의 중년인이 좀비처럼 비틀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풀썩!
심지어 내 앞에서 쓰러졌다.
“정신 차리세요!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
내 육체 나이를 고려하여 호칭을 슬쩍 고쳤을 때였다.
“배, 배가…….”
“복부에 부상! ……은 없는데요?”
“배가 고프다……. 아, 안 돼. 이래서는 근손실이…….”
“근손실?”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근육질 중년 아저씨는 까무룩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나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잠시 쉬었다 가야겠어요, 아그네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