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43)
43화
비명 같은 외침이 홀에 메아리쳤다. 할아버지가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흡사 제단처럼 생긴 장소에 유일한 사람 형태의 소금 석상이 있었다.
마지막 공격과 함께 힘이 다해 무릎을 꿇은 듯한 여성이었다.
‘설마 혼자서 던전 버스트를 막은 거야?’
눈 씻고 봐도 사람 석상은 하나뿐이었다. 엄청 센 사람인가 보다.
아,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야.
“엘테아! 이럴 수가, 엘테아! 왜 이런 모습으로……! 크흐흑!”
석상을 붙잡고 오열하는 할아버지에게로 다가갔다.
작은 위로라도 될까 싶어 할아버지의 등을 쓰다듬었다.
“이분이 할아버지의 따님…… 어라?”
나는 눈을 끔뻑였다.
“어, 어어?”
“……크흡! 왜 그러느냐, 아가?”
“어…… 그게요…….”
가까이서 보게 된 석상의 모습이 석연찮았다.
수수한 린넨 원피스 차림의 여성은 마지막 순간까지 양손에서 무기를 놓지 않았다.
무려 S급 보스를 단신으로 해치우는 데 사용된 두 자루의 명검. 그것은 바로…….
호미! 그리고 쟁기!
문득 프린츠의 목격담이 떠올랐다.-마당에서 호미랑 쟁기를 챙겨서 숲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셨어요.주제도 모르는 검은 가축들이 우리 밖으로 나온 것 같으니까 좀 잡고 오겠다던 그분.
나와 완전히 똑같이 생긴 석상의 얼굴에 홀려, 나도 모르게 그분을 불러 버렸다.
“어, 엄마……?”
“뭐?!”
할아버지가 화들짝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거칠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나는 침착해지려 애썼다.
“저기, 그게……. 오빠가 말해준 저희 엄마의 마지막 인상착의랑 똑같은데요.”
“…….”
“저희 엄마가 호미랑 쟁기 들고, 웬 도망간 가축을 잡으러 갔다가 안 돌아왔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그, 그랬지……?”
“보세요. 여기 왼손에 호미, 오른손에 쟁기 그리고 저 위에 던전을 탈출할 뻔한 가축……의 눈깔?”
“…….”
“…….”
잠시 서먹한 기류가 흘렀다.
할아버지는 딸의 석상을 부둥켜안다 말고 나를 향해 똑바로 쭈그려 앉았다.
잠시 후, 깨달음을 얻은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럼 가출했다는 네 엄마가…….”
“그럼 할아버지가 서럽게 해서 가출했다는 따님이…….”
상습 가출자의 신원이 일치했다.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격하게 일렁였다.
조손이 해후한 기쁨을 나누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일단 소금 석상이 되어버린 분부터 해결해야 했다.
“치명적인 외상은 보이지 않아요. 석화를 풀면 다시 살아나실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 그렇지. 당장 성황청으로 가야겠다. 저주를 풀어달라고 해야……!”
난 할아버지를 진정시켰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응?”
“우선, 지금부터 보게 될 것을 비밀로 하겠다고 약속해 주시겠어요?”
“왜 그러는…… 그래, 알겠다.”
진지함을 읽은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작게 감사를 표한 뒤 엄마로 추정되는 소금 석상을 향해 똑바로 섰다.
“신성 강림!”
“아, 아가야?”
은발과 금안으로 색을 갈아입고 두 다리가 허공에 뜬다.
할아버지가 날아가려는 연을 붙잡듯 다급히 내 손목을 잡아당겼다.
“괜찮아요. 그렇게 높게 안 올라가요.”
“이, 이게 무슨……. 갑자기 이런 엄청난 신성력이라니……. 게다가 신성 강림이라고……?”
“제가 신앙생활을 깊게 하고 있어서요. 할아버지도 신 좀 믿어보실래요? 신도 절찬 모집 중인데.”
잊고 있었던 피라미드 사업을 떠올리고 은근슬쩍 포교 활동을 전개해 보았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당황하여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역시 말로만 해서 영업이 될 리 없는 거겠지.
“전지.”
신계 검색 엔진을 열어 소금 석상의 저주를 푸는 스킬을 알아보았다.
석상의 이마에 한 손을 살포시 얹었다. 긴장과 기대감을 가득 품은 할아버지를 향해 근엄히 말했다.
“신의 은총으로 석화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석화가 풀리면 남은 평생 신의 자비를 가슴에 새기셨으면 좋겠어요.”
“아, 알았다! 신의 은총 좀 제발 빨리!”
“네. 전능. 정화의 세례.”[ 상급 스킬 ‘정화의 세례 Lv.46(+10)’이 발동됩니다.]내 손에서 흘러나온 빛이 석상의 이마로 흡수되었다.
쩌적쩌적!
부화를 앞둔 알껍데기처럼 석상 표면이 갈라지더니.
“……푸하!”
석화가 풀린 여인이 비산하는 소금 가루 속에서 호흡을 터뜨렸다.
흐트러진 풍성한 머리카락은 예상대로 분홍색이었다.
퉤퉤 하고 입안의 소금을 뱉은 그녀가 짜증을 냈다.
“아, 진짜! 마지막에 실수해서 눈 떠버렸잖아! 시간 많이 흐른 거 아니겠…… 어? 아버지?”
“엘테아! 오오, 신이시여!”
저절로 신을 부르게 되는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무신론자를 개심시켜 신도로 만들었습니다.]계획대로, 언령님의 신성이 상승했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신앙 전파에 흡족해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부러움에 입술을 씹습니다.]신성 강림을 풀고 부녀 상봉을 지켜보았다. 할아버지는 13년 만에 찾은 따님, 그러니까 엄마를 꼭 끌어안아 자신의 대흉근 속에 가뒀다.
“엘테아! 흐흐흑! 엘테아!”
“아, 아버지가 왜 여기에…….”
동요는 잠시뿐이었다. 엄마는 곧 정색하더니 이를 악물고 모질게 외쳤다.
“저리 비키세요. 징그러우니까!”
“에, 엘테아!”
“아, 비키시라고요!”
“엘…… 끄헉!”
쿵!
나는 입을 헤벌렸다. 엄마가 할아버지를 냅다 메다꽂아버렸기 때문이다.
‘100킬로그램이 넘을 듯한 거구를……!’[‘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엄마 말 잘 들어야겠다고 속삭입니다.]그, 그러게요.
엄마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손을 탁탁 털었다. 그리고 머리를 쓸어 넘기다가.
“어? 너 설마 아일렛……?”
나를 발견했다.
“아…….”
이름이 불렸지만 영문 모를 얼떨떨함에 대답하지 못했다.
인사……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쉬운 ‘안녕하세요’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오도카니 서 있기만 하는 내게로 엄마가 다가왔다.
“아일렛! 아이! 우리 아이 맞지? 너 왜 이렇게 컸어! 아, 안 돼! 이럴 순 없어! 내 딸의 귀엽고 예쁜 유년 시절을 다 놓치다니!”
“…….”
“아니, 그보다 아이 네가 왜 던전에 있어? 여기 어딘 줄 알고 이런 위험한 곳에……. 혹시 다친 덴 없니? 어디 봐. 응?”
“…….”
그녀가 쪼그리고 앉아서 나와 시선 맞춰왔다. 내 팔다리며 얼굴을 훑는 눈빛에 걱정과 애정이 쏟아질 듯 가득했다.
왜일까. 숨이, 조금 답답하다.
이런 거 이상해.
“다친 덴 없는 것 같은데……. 괜찮니?”
끄덕.
“후우, 다행이다. 그나저나 진짜 미치겠네. 대체 몇 년이나 지난 건지……. 우리 아이 몇 살?”
조금 가증스러운 대답을 해야 할 때 같다.
“열…… 열 살.”
“아, 미친! 6년이나 지났어?! 앗, 나쁜 말 해서 미안해! 아, 아이는 어떻게 지냈어? 엄마 많이 보고 싶었어?”
“…….”
“호, 혹시 엄마 기억 안 나? 엄마야. 내가 엄만데……. 너 막 엄마 기억 못 하는 거 아니지? 응?”
“…….”
“아이, 왜 그래. 말 좀 해봐. 그런 얼굴 하지 말고…….”
……내 얼굴이 어떤 상태인 거지?
양손으로 얼굴을 더듬어보았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다 모르겠다.
쏟아지는 걱정과 애정이 너무도 달콤하고 따뜻하고 몽글몽글하다. 여자 어른으로부터 처음 받아보는 솜사탕 같은 다정함에 나는 내성이 없었다.
조금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왜?
대체 왜?
아일렛 로델라인의 삶을 인수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빙의체의 엄마의 존재에 나는 왜 이렇게 동요하는 거지?
이 순간에도 뭔가가 울컥하려는 것을 참으며 말을 꺼냈다.
“죄송……해요. 저 기억이 안 나서.”
“……그, 그래. 그럴 수 있어. 마지막으로 본 게 4살이니까.”
엄마는 눈에 띄게 시무룩해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들키기 싫었던 걸까. 엄마가 나를 다시 꼭 끌어안고 등을 어루만졌다.
토닥토닥…….
“…….”
석화가 완전히 풀린 몸에서 전달되어 오는 체온이 따뜻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어린아이가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일렛 로델라인의 삶을 받아들이고 가장 기뻤던 것은 아빠와 오빠의 존재였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가족은 생존 난이도 S급이라는 단점을 다 씹어먹고도 남았다.
그래, 솔직히 나는 빙의한 삶이 좋았다.
이곳의 아빠와 오빠에게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만약 전생의 가족이 다 함께 빙의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빙의해서도 엄마가 없는 게 얄궂기는 했지만, 어차피 익숙했으니 아빠와 오빠만으로 충분하다 여겼다.
맞아, 충분해. 어린애의 몸을 하고 있지만 내 정신연령이 몇인데. 난 다 컸어. 엄마가 필요할 나이는 진작 지났…….
아냐.
내게도 엄마가.
제발 있었으면.
‘내게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가 필요했다. 엄마가 있었으면 했다.
이 바람은 내가 전생의 나이로 돌아가도, 아니 나이가 들어 하얀 머리가 잔뜩 생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른에게도, 노인에게도 엄마는 엄마일 테니까.
인식하고 나자 이제껏 결핍으로 인해 자라나지 못한 마음속의 어린아이가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그때 울먹이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 그래도…… 엄마 이제 돌아왔어. 지금 아이 앞에 있어. 그러니까…… 엄마라고 불러주지 않을래……? 응……?”
“엄마…….”
“응응! 그래, 아이! 엄마야!”
정말 궁금한 게 있었다.
“엄마는…… 원래 이래요?”
“……응?”
“막 안아주는 거예요?”
“…….”
“저한테 정말…… 엄마가 생긴…… 거예요?”
“…….”
입이 결국 제멋대로 움직여, 실컷 애처럼 굴어버렸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포옹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
“엄마가, 엄마가 미안해. 아이랑 린츠랑 아빠 두고 너무 오래 집을 비웠지. 미안! 진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엄마가 없는데도, 이렇게 예쁘고 씩씩하게 커줘서.”
“…….”
“다신 안 떠날게. 이제 엄마랑 아이랑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야. 쭉 같이 살 거야. 행복하게. 응? 약속?”
“약속……하셨어요.”
줄곧 궁금했던 것의 답을 얻은 것 같다.
엄마는 이런 거구나.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