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45)
45화
✠엄마와 할아버지는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폐허가 된 신전에 천막을 치고 이틀간 머물며 나를 간호했다.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신열병 페널티가 풀리자마자 시야에 비친 것은 두 눈이 퉁퉁 부은 엄마의 얼굴이었다.
엄마는 날 부둥켜안고 한참을 엉엉 울다가, 내가 숨 막힌다고 토로하고 나서야 놔줬다.
여전히 코를 훌쩍이는 엄마에게 할아버지가 손수건을 건넸다.
엄마는 그것을 얌전히 받아서 코를 팽 풀고 다시 할아버지에게 돌려주었다.
퍽 자연스럽고 스스럼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눈 떴구나, 아가야. 몸은 괜찮고?”
“네.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내가 가진 능력, ‘신성 강림’에 대해 잘 설명해 주신 모양이다.
석화 저주를 바로 풀 수 있었던 비결과 내 신열병의 원인을 엄마에게 내가 따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졌다. 단, 엄마는 조금 불만이 있었다.
“강림을 쓰는 대가가 이렇게 아파야 하는 것이라면, 그냥 성황청에서 해결하지 그랬어.”
“엄마를 빨리 보고 싶었어요.”
“…….”
엄마가 또 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얼굴을 한 순간, 할아버지가 나섰다.
“흠흠! 일어났으면 아침식사 하거라. 먹고 나가자꾸나.”
던전의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현실은 새벽이겠지만, 내가 푹 자고 일어났다는 이유로 할아버지는 아침이라는 기준을 세웠다.
할아버지가 오리 미트볼 꼬치, 허브샐러드, 벌꿀 롤빵, 무화과잼으로 이루어진 아침상을 차려줬다.
물론 내 사첼백에 들어 있는 것을 꺼낸 것뿐이지만.
“우리 손녀는 요리도 참 잘하지!”
“레오 닮아서 그래요.”
엄마가 벌꿀 롤빵을 반으로 뜯으며 대꾸했다.
엄격한 교육을 받은 귀족 영애라는 말이 사실인지 식사 동작이 우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족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으니, 화기애애한 대화가 빠질 수 없다.
“아이, 엄마 없는 동안 너희 아빠 막 한눈팔고 그랬던 거 아니지?”
잼을 바르던 나이프가 서늘하게 빛났다. 오러 같은데, 저거.
“아빠는 지조 있게 엄마만 그리워하셨어요.”
“정말?”
“네. 오죽하면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마자 하고 싶은 일이 엄마랑 살았던 집에 찾아오는 것이겠어요?”
“어머, 어머! 레오도 참. 만나면 상을 줘야지. 찐하게.”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좋아하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훈훈해진다.
엄마는 길레트 영지에서 우리 가족이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몹시 궁금해했다.
내가 빙의하기 전의 삶은 잘 모르기도 하고 고구마 같은 내용이었으니 가급적 짧게 쳐내고, 빙의한 후의 이야기 위주로 풀어냈다.
엄마는 눈을 빛내며 집중해서 들었다.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6년의 세월을 전해 듣는 말로나마 채워 넣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한편 이곳에는 13년의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엄마가 가출한 후부터 소금 석상이 되기 전까지, 7년간의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엄마는 마지못한 듯 입을 열었다.
“별로 듣기 좋은 이야기도 아닐 텐데요……. 그 집 나온 직후에는 악에 받쳐 있어서 앞뒤 생각 안 하고 SS급 던전에 혼자 들어갔어요.”
“허윽! 그, 그런……!”
“근데 보스한테 좀 처맞, 맴매 당하고 보니까 정신이 들더라고요. 다행히 보스존이 개방형이고 보스도 지능 없는 마수형이라서 며칠 숨어 있다가 도망칠 수 있었어요.”
“휴우우…….”
“던전에서 빠져나온 뒤에 부상 치료가 급해서 도심으로 워프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전이석이 전투 중에 손상되었나 보더라고요. 엉뚱한 숲으로 워프되어서 쓰러져 있는 저를 지금의 남편이 발견하고 치료해 줬어요. 그 길로 얹혀살다가 눈 맞았죠.”
“흐읍…….”
“생활은 궁핍한 편이었어요. 얹혀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사냥감 잡아 오는 것 정도더라고요. 이름을 숨기고 용병 일이라도 해볼까 했는데, 금방 임신해 버리고 입덧이 심한 편이라 여의치 않았죠. 그 후로는 육아에 바빴고요.”
“그, 그래…….”
딸자식의 자유분방한 혼전 동거 이야기를 듣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할아버지에게 허브샐러드를 좀 더 챙겨 드렸다.
허브는 심신 안정에 좋으니까.
“……드레싱은 빼고 다오.”
“네.”
이젠 할아버지에 대해 물을 차례였다. 마침 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할아버지, 귀족이라고 하셨잖아요. 어떤 가문이에요?”
“크흠! 이 할애비가 어떤 사람이냐면 말이다……!”
“신경 쓸 거 없어. 그냥 쪼끄만 땅덩이에서 왕 노릇 하고 있으신 것뿐이니까.”
“크흡! 쪼끄맣다니! 작위에 비해서지, 그렇게 쪼끄맣지는 않아!”
두 사람의 주장이 상충되니 판단은 스스로 해야겠다.
“그래서 가문 명이 뭔데요?”
“들으면 놀랄걸!”
“안 놀랄 건데!”
의기양양하게 대흉근을 펴는 할아버지를 마주 보고 똑같이 따라 했을 때였다.
“히스펜릴이다.”
“……네?”
뭐? 어? 음?
잘못 들은 건가 싶었는데.
“이 할애비가 바로 아론제이크 히스펜릴이란다!”
“……헐.”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것은 주인공이 회귀를 40번쯤 반복할 때까지 부동의 1위를 차지하던 대륙 최강자의 이름이었으니까.
진짜?
확인을 위해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맘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미트볼 꼬치를 먹을 뿐이었다.
이렇게 되면 물어볼 수밖에 없다.
“엄마…… 공녀였어요……?”
“…….”
긍정의 침묵이었다.
펜던트 목걸이가 울렸다.
참고로 아론제이크 히스펜릴과 아그네스 아즐릿은 소싯적 기사 사관학교 동기이자 치열한 라이벌이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할아버지는 가문의 멋짐을 피력할 절호의 기회를 포착했다.
나를 보며 우쭈쭈하는 선생님 말투로 말했다.
“우리 아가, 똑똑하기도 하지요. 맞아요! 엄마는 공녀랍니다! 그럼 엄마가 공작위를 물려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우리 아이가 공녀가 되는 것이지요!”
“……!”
헉! 대박!
공녀! 밝혀진 출생의 비밀! 그리고 신분 상승!
‘유, 육아물의 정석……!’[‘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그놈의 육아물의 꿈은 아직도 못 버렸냐며 혀를 쯧쯧 찹니다.]이렇게 매번 희망을 주니까 그렇죠!
그러나 모든 건 희망 고문에 불과했다.
“돌아갈 생각 없어요.”
단호한 엄마의 음성. 나와 할아버지는 동시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육아물은 그만 포기하고 19금 역하렘 로판으로 가자고 살살 꼬십니다.]그새 천칭님의 취향에 역하렘 키워드가 추가됐다.[‘만상의 혼돈을 감시하는 눈동자’가 당신에게는 비안카가 있지 않냐고 다그칩니다.]아, 그만들 하시죠.
그때 할아버지가 나를 힐끗 곁눈질하더니 엄마의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
“아, 아이는 공작가로 오고 싶은 모양인데…….”
은근슬쩍 손녀 방패를 내세우시다니. 이런 건 곤란했다.
“할아버지.”
“응?”
“공녀 자리가 엄청, 몹시, 무지, 진심으로 탐나긴 하지만요. 저는 엄마의 결정을 존중해요. 엄마가 싫다면 저도 싫고, 엄마가 아니라고 하면 저도 아니에요.”
“…….”
할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선을 그었다.
엄마는 긴 시간 동안 할아버지에게 크게 상처 입고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은 상태이지 않은가.
할아버지의 가출한 딸이 엄마인 것을 모른 채로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할아버지를 맹비난했던 나였다.
이제 와서 공녀 자리에 눈이 멀어 얄팍한 태세 전환을 할 수는 없었다.
핏줄 문제에 관해서는, 엄마가 있어야 나와 할아버지가 연결되는 거다. 그러니까 엄마의 마음이 중요하고, 엄마의 선택과 행보에 따르는 것이 맞다.
“그, 그렇게 단호하게…….”
당황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엄마가 픽 웃었다.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애인지 모르겠네요. 손녀를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아시죠.”
“미, 미, 미안하다. 면목이 없구나…….”
할아버지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푹 떨궜다.
그사이 엄마는 나를 덥석 끌어안고 얼굴을 비볐다.
“으구, 예뻐라. 누가 나랑 레오 딸 아니랄까 봐.”
“헤헷.”
당장 벼락 신분 상승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가족이 곁에 있는 게 어디야.’
그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게다가 비안카가 있는 길레트 백작성에서의 삶도 좋았고, 다소 부족한 집안 살림도 포션 사업이 성공한 덕분에 차차 나아질 일만 남았다.
그러니까 굳이 공녀가 되지 않아도 돼.[‘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어차피 튜토리얼 기간 동안 길레트 백작성에서 못 나가니 좋은 자기 합리화라고 말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태생적으로 육아물이 불가능한 것이었냐며 깔깔 웃습니다.] [‘만상의 혼돈을 감시하는 눈동자’가 당신이 비안카 곁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는 설정에 만족해합니다.]“…….”
후우, 이거 차단 못 하나?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