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5)
5화
✠주방에서의 보람찬 일과를 마친 후, 나는 프린츠와 함께 연금술사님의 연구실로 갔다.
약초 상단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지 연금술사님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채였다.
세렌트라 대륙에서 힐러는 귀하다.
신성력은 오러와 마법보다 각성 난이도가 높은 편이라 능력자의 숫자가 적은데다, 교단이 인적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사설 고용이 불가능했다.
가문에 소속된 던전 토벌대가 있다면 교단에서 힐러를 파견해 주기는 하지만, 검술의 명맥이 끊기며 토벌을 그만둔 지 한참 된 길레트 가문에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다.
제아무리 돈이 넘쳐나는 길레트 백작가라도 힐러에게 치료를 받으려면 직접 대성당에 가야만 했다.
하지만 귀족씩이나 되는 이들이 다치거나 아플 때마다 대기열을 감수해 가며 치료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힐러의 치유술보다는 하위호환이지만 그럭저럭 대체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연금술사들이 만드는 힐링 포션이다.
돈 많은 귀족 가문은 주치의와 함께 연금술사를 전속으로 고용하고는 했다.
레오날드 로델라인도 그런 경우였다.
그는 상당한 고급 인력이었다.
10회차 주인공이 그가 만든 최상급 힐링 포션 덕택에 죽다 살아나서 성능에 놀라는 장면이 있는 걸 보면 확실했다.
“상처에 바르는 연고가 다 떨어진 것 같아.”
연고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나 대신 프린츠가 선반을 뒤졌다.
많이 만들어둘 법한 물건 같은데 이상하다 싶었다. 의문은 프린츠가 해결해 주었다.
“하녀장이 자주 훔쳐 가거든. 피부…… 보습용? 뭐 그런 이유랬어.”
“뭐? 집사에게 말 안 했어?”
“다 한통속이잖아. 집사, 하녀장, 의사 선생님까지…….”
난감한 상황이다.
연금술사님이 돌아오신 뒤에 부탁하는 수밖에 없으려나.
그런데 프린츠가 눈에 띄게 눈꼬리를 축 늘어뜨려서 신경 쓰였다.
“많이 아파?”
“아, 아니야. 그냥…….”
“그냥?”
“모처럼 네가 발라준다고 했는데.”
윽. 시무룩한 이유가 그거라면야 어쩔 수 없군.
나는 연구실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재료와 기구는 다 있는 듯했다.[ ‘전직 패키지(비전투)’를 구매했습니다.] [ ‘대연금술사의 연성진’을 선택하여 연금술 Lv.1을 각성합니다. 이제부터 ‘연금술 재료 간파’, ‘촉촉하고 매끈한 피부를 만들어주는 화장품 연성’, ‘뽀득뽀득 향기로운 천연 비누 연성’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끙. 레벨 올려야 하네.”
“어?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오빠.”
1레벨 해금 아이템이 화장품과 비누뿐이었다. 2레벨은 되어야 연고나 포션을 만들 수 있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잘됐어.’
재료는 넘쳐나는 듯했고 화장품과 비누는 쓸 데도 많았다.
나는 양 소매를 걷어붙이는 시늉을 했다.
“시작해 볼까.”✠“아이? 린츠?”
간신히 일을 해결하고 연구실에 돌아온 레오날드는 깜짝 놀랐다.
아일렛과 프린츠가 담요 한 장을 나누어 덮은 채 잠들어 있었고, 연구실은 자신이 나갈 때와 다르게 난장판이었다.
다만 책상 위만은 달랐다. 젤리 같은 내용물을 담은 유리병 수십 개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레오날드는 예쁘게 묶여 있는 리본을 유심히 보았다. 리본 꼬리에 제각각 적혀 있는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품이 잘 나는 물비누’, ‘보습 크림’, ‘미백 크림’, ‘촉촉 립밤’.
그가 화들짝 놀랐다.
‘설마 연금술을 했다고?’
작은 종이 메모도 있었다.‘미용 포션 선물! 이런 건 생각도 못 해봤는데!’
레오날드는 실력에 비해 요령이 없는 편이었다.
책만 읽고 산 학자답게 정석적인 포션 연구에만 열을 올릴 뿐, 요즘 연금술 업계에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미용 아이템 연구가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런 그가 고용주인 백작 부인에게 환심을 사는 요령을 알 턱이 없었다.
그런 건 전생에 온갖 화장품 광고에 노출된 데다 사회생활을 좀 해본 아일렛이 더 잘 아는 게 당연했다.
‘설마 내 딸이 천재……! 흠흠! 아니야, 많은 아빠들이 하는 실수를 해선 안 돼. 침착하자. 생각과 시도는 훌륭하지만 어린아이가 만든 거니까 질이 좋지 않을지도…….’
레오날드는 날뛰려는 팔불출의 자아에 애써 고삐를 채우며 품질 시험을 하고자 했다.
그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보습 크림의 유리병을 열었다. 그리고 피부에 발라 보았다.
“이럴 수가!”
효과는 엄청났다.
미용에 문외한인 그조차 피부에 탄력이 돌아오며 물광택이 나는 게 확실히 보일 정도였다.
‘우리 딸 천재 맞아!’
그는 마음 놓고 팔불출이 되기로 했다.
지금 보니 책상에는 미용 포션뿐만 아니라 연고도 있었다.
벌써 치유력이 깃든 물품까지 만들어내다니, 더 의심할 것도 없었다.
‘우리 아이는 대연금술사가 될 재목이야.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아이에게 연금술을 가르쳐야겠어.’
레오날드는 곤히 잠든 아일렛을 침대로 옮겨주기 위해 품에 안았다.
딸을 보는 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아빠 미소였다.✠울적한 꿈을 꿨다.
빙의하기 전의 내가 열 살 때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가족과 영영 외따로 떨어진 상태였다.
교통사고로 아빠와 오빠를 잃은 직후였기에 내 머리 위에만 먹구름이 떠나지 않는 것처럼 우울했다.
그러나 내 기분을 살피기 전에 남의 눈치 보는 법을 먼저 익혀야만 했다.
보육 시설로 갈 뻔했던 나를 맡아주기로 한 것은 큰집이었다.
큰집은 나를 키우기로 결정하자마자 방 세 칸짜리 아파트로 전세를 구해서 들어갔다.
기존에 그들이 살던 분리형 원룸보다 훨씬 넓고 좋은 집이었다.
그런데 툭 하면 부부싸움을 하기 일쑤인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각방을 쓰기로 했고, 두 살 터울의 사촌 여동생은 꼭 자기 혼자만의 공간을 가져야겠다며 나와 같이 방을 쓰는 것을 기를 쓰고 거부했다.
그래서 나는 거실에서 주로 생활해야 했다.
딱히 불만은 가지지 않았다. 도리어 죄송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인데도 나를 보육 시설에 보내지 않고 식구로 받아들여 준 것이 어디인가.
물론 순진하던 시절의 생각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 아파트 전세금이 아빠 오빠랑 살던 우리 집의 매매 대금으로 마련된 돈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몰랐기 때문에 나는 큰집에 잘하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안 계셨기에 아빠가 일하러 나가신 동안 집안일은 오빠가 많이 했었다.
오빠가 어떻게 했는지를 떠올리며 집안일을 조금씩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시키지 않아도 설거지며, 세탁이며, 청소를 알아서 해놓자 전업주부인 큰어머니는 기꺼워하는 눈치였다.
엄마가 없었던 나는 여자 어른의 칭찬에 약했기에 더욱 열심히 하려고 했다. 집안일은 자연히 내 몫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이었다. 점심 무렵에 일어났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다.
전날 쌓인 설거지와 집 안 청소를 하며 큰집 식구들이 돌아오면 같이 밥을 먹을 생각으로 기다렸다.
오후가 되도록 큰집 식구들이 귀가를 안 해서 걱정이 되었지만 전화할 생각은 못 했다.
집에는 전화기가 없었고 나는 휴대폰이 없었다.
그들이 돌아온 것은 해가 꼴딱 넘어가고 나서였다.
웃음소리와 함께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후다닥 달려 나갔다.
먼저 보인 것은 별이 달린 스프링이 흔들리는 머리띠를 쓰고 있는 사촌 여동생이었다.
더듬더듬 인사를 하고 식사하셨냐고 묻는 내게, 큰집 식구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밥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는 각자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럴 것 같긴 했다. 저녁 시간을 넘겨서 들어온 큰집 식구들의 몸에서는 삼겹살 냄새가 가득 풍겨 나왔다.
일어났을 때 아무도 없는 주말은 일상이 되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기다리지 않고 혼자 밥을 챙겨 먹게 되었다. 같은 식구가 아니니까 이해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은 있었다. 형편이 좋지 않은데 이렇게 매주 외식을 해도 괜찮은 것인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의 뱃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빠 오빠의 교통사고 보험금과 합의금이었다.
큰집이 아빠의 재산, 보험금, 합의금을 모조리 가로채 흥청망청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안 그래도 학원 한 군데만 보내달라고 처음으로 부탁드렸다가 한 소리를 들었던 게 며칠 전인 때였다.
사촌 여동생은 가기 싫다는 학원을 다섯 군데나 다니는 것과 비교되어서 더 서러웠다.
내 방이 없었기에 옆 동네 놀이터까지 가서 꺽꺽 울었다.
큰집은 사실이 드러나자 도리어 키워준 은혜가 있는데 돈 계산만 하고 있냐며 나를 배은망덕하다고 비난했다.
애초에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기에 자포자기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살았다.
반항하지 않는 내가 큰집 입장에서는 참 편했을 것이다.
하기야 나는 사춘기도 겪지 않았다. 겪을 수가 없었다. 어리광은 그것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나 부릴 수 있는 것이니까.
1년 반을 그 집에서 더 살면서 나는 내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나는 밤에 가위에 눌리듯 자주 끙끙거렸던 것 같다.
자다 깬 사촌 여동생이 거실로 나와서 너 정신병 있냐고 외치며 베개를 던지고 간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의식적으로 고쳐지는 부분이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엄마…… 아빠……. 저만 두고 가지 마세요…….”
“……아이?”
“오빠도…… 가지 마……. 이제 오빠 과자 안 훔쳐 먹을게……. 내 초코 우유도 반씩 줄게. 오빠, 오빠아…….”
“…….”
그때 내 손이 온기로 덮였다. 처음 있는 일이라서 나는 잠결에 끙끙거리면서도 조금 의아했던 것 같다.
자장가처럼 자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쉬이, 아이. 악몽을 꿨나 보구나. 괜찮아. 아빠 여기 있어.”
“아빠……?”
“응, 아빠야.”
“진짜 우리 아빠야……? 이상하다. 우리 아빠는…….”
뒷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아빠’가 말했다.
“진짜 아빠지. 아빠가 우리 아이 다시 잠들 때까지 여기 있어줄게.”
“약속……. 약속이에요.”
“응, 약속.”
손으로 전해 받은 온기가 가슴께까지 옮겨오는 기분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안도감 속에서 다시 스르륵 잠에 빠졌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