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57)
57화
✠아그네스와 아일렛이 사제의 연을 맺던 그 시각, 테실리드는 공동묘지처럼 십자가가 가득한 곳에 있었다.
“…….”
피 묻고 찢어진 흰 제복이 바람결에 흩날린다. 들숨을 쉴 때마다 잿가루가 섞인 공기가 폐부를 매캐하게 채운다.
타닥타닥, 불티가 곳곳에서 검푸른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A급 던전, ‘산제물의 처형터’.
빼곡하게 언덕을 채운 철십자가에는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실루엣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던전 싱크에 휘말려 들어온 사람들이 악마의 의식에 이용당한 흔적이었다.
희생된 건 이단자들이었다.
교단은 결코 ‘엄격한 질서와 선’의 세례를 받지 않은 채 죽은 이들의 장례를 치러주지 않는다.
철십자가에 매달린 희생자들의 시신은 던전이 클로징됨과 동시에 마계의 쓰레기장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사실 그들을 살릴 수도 있었다. 교황청이 하루만 더 일찍 던전 진입을 승인했더라면.
이제 와서는 부질없는 회한일 뿐이다.
테실리드는 눈을 감았다. 검을 내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진혼 기도뿐이었다.✠쿠구구궁!
하얀 거체가 쓰러지며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한참이 지나도록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지만 나는 수련용 사복검을 검집에 넣었다.
철컥, 쇠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떴다.[ 축하합니다! 시련의 탑 275층 보스, ‘백골 마룡 본-드라고스’를 해치웠습니다.]
“수월해야죠. 그동안 마룡만 열 마리를 잡았잖아요.”
오러 익스퍼트가 된 이후로 오른 열 개 층은 드래곤 슬레이어 특훈 구간이었다.
화마룡, 빙마룡, 광마룡, 암마룡, 독마룡, 산마룡 등등.
마룡을 속성별로 다 잡아봤으니 마룡의 약점이라면 다 꿰고 있다시피 했다.
내게 언데드 마룡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게요.”
건축가님도 참, 이렇게 보스를 열 마리나 우려먹다니 좀 너무한걸?[‘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헛기침을 합니다.]뭐, 죽은 마룡까지 살려내서 재활용할 정도면 이제 거의 끝이 보이는 것 아닐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차.”
마침 뼛가루와 먼지구름이 가라앉은 참이었다. 본-드라고스의 갈비뼈 속으로 들어가서 아이템을 주웠다.
“연금술 재료랑 스킬북 하나씩 있고……. 에이, 무기는 없네요.”
“하아, 왜 무기를 안 주죠? 벌써 275층이잖아요. 시련의 탑이 저한테 사복검 하나 줄 때 된 것 같은데.”
수련용 사복검 말고 쓸 만한 사복검을 갖고 싶었다.
투덜투덜대는 와중에 석연찮은 점을 깨달았다.
“어? 이 뼈 안 사라지네요.”
시련의 탑에서 보스를 잡고 나면 사체는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사라지고는 했다.
그런데 본-드라고스의 뼈다귀들은 주변 환경에 동화된 것처럼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짜리몽땅한 마룡의 앞발 뼈를 똑 부러뜨려 보았다. 물론 그래도 내 몸보다 크지만.
섬세한 손가락 관절을 자랑하는 앞발 뼈는 본체와 분리되었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우와, 이거 가져갈 수 있네요!”
“다 쓸 데가 있죠.”
득템의 기쁨을 만끽하며 사첼백에 뼈를 챙겨 넣었다.
워낙 커서 왼팔 한 짝과 꼬리 끝을 챙기는 게 고작이었지만, 이만하면 충분할 것 같다.
“276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잠깐만 바깥에 나갔다 올게요.”
퇴장 전용 게이트를 통해 나갔다. 공간 전이를 통해 도착하도록 설정해 둔 곳은 내 방이었다.
별관 건물을 나와서 본관으로 성큼성큼 걸어갈 때였다.
길 한가운데에서 굉장히 반가운 분홍 머리를 발견했다.
“엇, 오빠다. 오빠!”
“아이!”
사관학교에 재학 중인 프린츠가 오랜만에 백작성에 왔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매미가 고함을 치는 한여름이었다.
“오늘부터 여름 방학이구나.”
“응.”
“미리 연락하지. 맛있는 거 해놓고 기다렸을 텐데.”
“뭘. 전이석으로 바로 올 수 있는데.”
나는 사관생도 제복 차림의 프린츠를 뜯어보았다. 못 본 몇 달 사이 키도 더 크고, 얼굴도 더 잘생겨진 것 같았다.
이제 4학년. 열여덟 살인 프린츠는 훤칠한 미소년과 앳된 미청년 느낌을 동시에 뽐내게끔 자랐다.
“근데 망나…… 아니, 롬디오 도련님은? 같이 안 왔어?”
“도련님은 계절 보충 학습. 시험 성적이 안 좋으신가 봐.”
“작년에 낙제하더니 올해도 위태롭네.”
“그렇지.”
“오빠는 시험 잘 봤어? 롬디오 도련님처럼 유급당하면 안 되는데.”
“별걱정을 다 한다.”
장난스러운 놀림에 프린츠도 장난으로 응수했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엉망으로 만든 것이다.[‘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세상에 저런 다정한 오빠가 어디 있냐고 실소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훌륭한 로판형 오빠로 성장했다며 흡족해 합니다.] [‘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장르 변경권의 부당 적용을 의심합니다.] [‘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어차피 빙의자도 판무형 여동생은 아니라고 말합니다.]신님들이 남매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해 논하는 동안 나는 오빠와 마저 대화했다.
“근데 왜 성적 안 알려줘? 오빠를 뒷바라지하는 동생으로서 성적표를 볼 권리는 있다고 보는데.”
“부끄럽잖아. 그리고 장학금 항상 받고 있는데, 뭘.”
“하, 내가 매 학기 부쳐준 포션이랑 환단 토해내.”
“없어, 없어. 다 뼈가 되고 근육 됐어.”
우리는 한참 투닥거리다가 저녁 식사 후에 대련을 하기로 약속한 뒤 헤어졌다.
“서열정리라뇨. 회포를 검으로 푸는 거죠.”
오빠와 헤어진 이후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을 읽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도서관 구석에 바로 던전 농장의 출입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특정 제목의 책을 빼낸 곳에 던전의 게이트가 드러났다.
그 안으로 쑥 들어가자, 정원만큼이나 잘 정리되고 꾸며진 농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달그락달그락!
일하던 해골들이 날 발견하고 춤을 추며 턱관절을 부닥쳤다. 대충 어서 오라는 뜻인 듯했다.
알아들을 수 있게 환영해 주는 녀석도 있긴 했다.
잠에서 깬 헬베로스가 밭고랑을 따라 이동해서 내게 왔다.
폴짝폴짝 뛰는 헬베로스에게 약초 찌꺼기를 던져주자 화르륵 태우며 맛있게 먹어치웠다.
먹이에 길들여진 악마는 어쩐지 애완동물 같은 구석이 있었다.
“다들 안녕. 잘 지냈지?”
달그락!
“농장 상황은 어때?”
에피덴이 한참 손짓발짓을 하며 달그락거렸다. 나는 심각한 얼굴로 한참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미안. 비안카가 없어서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별문제는 없었다.
헬베로스의 통역 덕분이다.
“응. 키워도 돼. 일하는 데 힘든 점은 없고?”
달……그락…….
에피덴의 손짓발짓이 기운 없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헬베로스가 우울한 이야기를 전했다.
“뭐?”
나는 재빨리 작업 현장을 돌아보았다. 마침 히아스는 부목을 대고 삽질 중이었고 아가판은 다리뼈를 다시 맞추느라 낑낑대는 중이었다.
“어휴, 이럴 줄 알았지. 무리해서 일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잖아.”
여기 있는 해골들은 이래 봬도 나이가 몇백 살을 훌쩍 넘었다. 그것은 그들의 뼈가 그만큼 낡아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골절과 마모와 골다공증을 호소하던 게 어제오늘이 아니었던 상태. 기어코 두 녀석이 무리를 해서 사달을 낸 모양이다.
“너희들, 이리 와봐. 치료해 줄게.”
내가 히아스와 아가판을 향해 상냥히 손짓했다. 그런데.
덜덜덜더러러덜그러럵!
두 해골 녀석들이 서로를 꽉 부둥켜안은 채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응?”
뭐야, 지금 내 호의를 거절하는 거야?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내는데, 헬베로스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 참, 누가 힐 쓴댔어? 힐 안 써.”
“내가 악마야? 아니니까 안심하고 일단 와봐.”
그제야 히아스와 아가판이 마지못해 내 앞으로 왔다.
여전히 떨고 있긴 했지만.
“으쌰!”
쿠궁!
나는 사첼백에서 본-드라고스의 왼팔과 꼬리 일부분을 꺼내놓았다.
그것들을 열심히 살피다가 중지 뼈를 쑥 빼내고는, 히아스의 팔에 대보았다.
“좋아, 이게 딱이겠다.”
부러진 팔뼈 자리에 마룡의 중지 뼈를 맞춰 넣었다.
파츠 교환 완료!
달그락……!
히아스가 다시 잘 움직이는 팔을 보며 놀라워했다.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다음 환자로 넘어갔다.
“아가판, 너는 가공을 좀 해야겠네.”
관절이 마모된 다리를 빼내고 마룡 뼈를 예쁘게 오러로 깎아서 새로 끼워줬다.
“됐다. 움직여 봐.”
달그라아아악!
아가판이 엄청난 속도로 농장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먼저 치료해 준 히아스는 어느새 작업 현장으로 복귀해서 미친 듯이 삽질을 하고 있었다.
본의 아닌 스펙 업 효과까지 있었다. 좋은걸?
아그네스도 감탄했다.
“다른 해골들도 다 와봐. 너희도 수백 년째 그 몸이라 한 군데씩 삐걱댈 거 아냐.”
달그락! 달그락!
안 그래도 눈두덩을 빛내고 있던 해골들이 몰려들며 저마다 아픈 부위에 대해 달그락달그락 떠들어댔다.
헬베로스가 바로 통역에 들어갔다.
그렇게 한 녀석씩 뼈를 분해하고 새 파츠로 갈아 끼워서 조립해 주길 반복했다.
해골들의 주치의가 된 기분이었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언데드마저 고쳐주는 참된 힐러의 모습에 감동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자기 신도라고 무조건 함함하는 모습을 눈꼴셔 합니다.]달그락달그락달그락!
“그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 좋네.”
“응?”
별생각 없이 헬베로스를 돌아보았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