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97)
97화
그 순간 게드빌 단장을 포함한 찬영 기사단의 두 눈에 공포와 절망이 선명하게 번졌다.
“그, 금화…… 그, 그건…… 그건…….”
변명할 여지가 있을 리 없다.
벌벌 떨며 뒷말을 잇지 못하는 게드빌 단장.
그를 대신하여 단원들이 정직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제 머리털을 쥐어뜯고 뺨을 긁어내리기 시작했다.
“아, 아냐, 이러려고…… 난 이러려고 그랬던 게……. 아아, 아아아…….”
“아, 아, 안 돼…… 절대로 안 돼……. 이단, 이단 심문만큼은……!”
“시, 싫어……. 나, 난 고문당하고 싶지 않아…….”
“질서와 선이시여, 제발! 제발 용서를……!”
세 치 혀가 서로의 절망과 공포를 강화했다. 그들은 자해하고 절규했다.
마무리할 시간이다.
“그럼 다 함께 성황청으로 이동해야 하니 다리는 고쳐주도록 할까.”
“……!”
내 손에 신성력이 스몄다. 그룹 힐로 모두를 말끔히 치료해 주었을 때였다.
찬영 기사단의 눈에 광기 어린 빛이 감돌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다수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으아아아!”
기합과 함께 두 다리가 땅을 박찼다. 그들이 온 힘을 쥐어짜내 전속력으로 달려간 방향에 있는 것은…….
“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절벽이었다.
비명이 협곡 아래로 아스라이 멀어졌다. 십수 명의 찬영 기사단은 죽음으로 도피하는 것을 선택했다.[‘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이단 심문이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라고 혀를 쯧쯧 찹니다.]목걸이가 울렸다.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애초에 선택지를 준 것이니까. 사실상 방조에 가깝다.
내 앞에는 아직 여섯 명의 찬영 기사단이 남아 있었다.
폐인이 된 렉토 부단장을 제외하더라도, 도피할 용기조차 없어서 떨고 있는 다섯 명이면 재판정에 세울 증인은 충분했다.
나는 그중에 한 명을 보고 뇌까렸다.
“남을 죽음으로 떠밀었으면, 최소한 똑같이 스스로를 죽일 용기라도 있든가.”
“힉, 흡…… 나, 나는…….”
“됐어, 게드빌 단장. 어차피 당신은 죽게 안 뒀어. 가장 중요한 증인이니까.”
“끄으으…… 흐으으…….”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게드빌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때 기척이 가까워졌다. 검은 개선문에 상자를 끼워 넣기를 마친 테실리드가 내게 다가왔다.
“아일렛.”
예상했던 것보다 여상한 음성이었다.
그가 클로징을 하느라 손과 발이 묶인 사이, 내가 멋대로 일을 저지른 상황이다.
크게 화를 내진 않겠지만 잔소리 정도는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캐릭터 해석은 틀렸던 모양이다.
“클로징하고 왔어.”
“어, 음, 그래.”
“네 덕분이야. 금제가 풀리고 있으니 조금 있으면 힘도 더 회복할 것 같아.”
“다행이네.”
“그리고…….”
“응?”
그가 옅게 웃었다. 왠지 씁쓸한 소회가 느껴지는 미소였다.
“성녀님이라 그런가. 자비롭군. 편하게 생을 마감할 기회를 주다니.”
이런 오해를 할 줄이야.
“음,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아니라고?”
“응.”
“찬영에게는 고문 후 화형당하는 미래밖에 없으니까, 하다못해 죽음의 방식이라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해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그네스의 불퉁한 일침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테실리드가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변명조로.
“렉토 부단장은…… 나를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했고…….”
“어, 그건 맞아.”
본인의 말을 확인해 줬는데 바다색 눈이 커진다.
반신반의하던 걸 그냥 한번 말해 본 거였니?
변명 비슷한 것이 조금 더 이어졌다.
“아무튼, 아까도 딱히 널 비난하려던 건 아니었어. 날 위한 손속으로는 과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그래, 알았어.”
자기 대신 누가 나서주는 경험이 영 겸연쩍은 모양이다.
계속 듣고 있다간 나까지 어색해질 것 같아서 대화를 마무리했다.
고평가된 내 자비로움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지.
나는 사첼백에서 반질반질한 돌멩이 하나를 꺼내 보였다. 성황청이 있는 엘펜하임의 수도로 워프 시켜주는 공간 전이석이었다.
“이게 8인용이라서. 이제 인원 딱 맞아.”
“……그랬군.”
기대를 깨서 머쓱한 마음이 들었다.
공간 전이석을 도로 넣어놓는 김에 음식맛 환단을 하나 꺼냈다.
“먹을래?”
“네가 이럴 때마다 애 취급 하는 기분이 들어.”
그는 불평하면서도 거절하진 않았다. 그러나 바로 먹진 않고 품 어딘가에 집어넣었다.
아쉬운 일이다.
던전에서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여섯 명의 찬영 기사단원을 정령왕의 하프 현으로 꽁꽁 묶을 때였다. 테실리드가 넌지시 나를 불렀다.
“근데 아일렛.”
“응?”
“아까 말하려다 깜빡했는데 클로징 게이트를 열 수가 없어.”
“아, 맞다.”
“너도 뭔가 말하려던 걸 깜빡했어?”
“응.”
찬영 기사단원들이 투신하도록 방조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드드드드드……!
때맞춰 검은 개선문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경고. ‘10인 이상의 타락한 신자 제물’ 조건을 만족하여 A급 던전 ‘판도라의 밑바닥’의 봉인이 풀립니다.] [ 경고. 해당 던전의 난이도가 S급으로 격상됩니다.] [ 던전의 숨은 주인, 마계 서열 791위 ‘재앙 파수꾼 그렐리우스’가 출현했습니다.]협곡의 어둠이 뭉쳐서 거대한 형상을 이루었다.
낫을 든 거대한 사신. 그것이 검은 로브를 펄럭일 때마다 부식의 가루와 시뻘건 불티와 암록색 역병의 기운이 마구 흩날렸다.
재앙 파수꾼이라 이름 붙여진 보스는 그림 리퍼들의 로드였다.
나름 왕이랍시고 화려한 보석을 문신처럼 잔뜩 박아 넣은 해골이 턱관절을 부딪쳤다.
[‘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히든 보스의 등장에 기대를 표합니다.] [‘창조경제 관리자’가 확장팩을 구매도 없이 사용했다며 불만을 토로합니다.]“히이이익…….”S급 보스의 출현에 압도당한 찬영 기사단이 호흡 곤란을 일으켰다. 나는 별 긴장감 없이 테실리드에게 말했다.
“그냥 나가긴 아쉬워서 보스를 불러봤어.”
“넌 정말 모르는 게 없군. 대단해.”
“감탄할 것까지야. 후다닥 해치우고 루팅하고 나가자.”
내 손이 사복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때 테실리드가 한 손으로 부드럽게 발검을 막았다.
“아일렛, 물러나서 쉬고 있어.”
“응?”
“내가 할게.”
그는 내게 곧은 등을 보인 채 그림 리퍼 로드에게로 걸어갔다.
테실리드의 왼팔 언저리에서 검은 기운이 파사삭 흩어지는 게 보였다. 그와 함께 그가 내뿜는 기운이 달라졌다.
테실리드의 힘이 회복되었다.
사아아아.
걸음을 옮기는 동안 그의 오른손에 검이 소환되었다.
짙푸른 스퀘어 보석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심판의 성검, 리브라였다.
“오랜만인걸.”
절도 있는 걸음이 보스와 열 발자국의 거리를 남기고 멈췄다.
보스의 검은 로브가 휘날리며 만들어내는 잿가루, 불티, 병마의 영역 안이었다.
거대한 사신, 그렐리우스가 가까이 다가선 테실리드를 굽어보았다.
천천히 들어 올린 낫이 테실리드의 머리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진정한 안식이라면, 죽음 말입니까.”
“달콤한 말씀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곧게 뻗은 리브라의 검신에 신성 오러가 깃들었다.
오직 주인공만이 다룰 수 있는 특별한 오러가 세상에서 가장 순백한 빛을 발했다.
“당신의 낫으로는 제게 안식을 주지 못합니다.”
대응하듯 그렐리우스의 낫에 검고 사악한 기운이 맺혔다.
다음 순간, 성검과 사신의 낫이 격돌했다.
츠즈즈즛! 콰아아앙!
지반이 힘의 충돌을 버텨내지 못하고 퍼석퍼석 함몰되었다.
테실리드는 협곡이 무너지기 전에 몸을 빼내고 검을 연속적으로 휘둘렀다.
검의 궤적을 따라 오러가 수십 개의 빛의 칼날로 화하여 그렐리우스에게 쏘아졌다.
신성 오러에 폭격당한 그렐리우스의 검은 로브가 넝마가 되었다.
“오…….”
나와 아그네스는 감탄했다. 현재 익스퍼트 최상급 경지에 이른 주인공의 활약은 훌륭했다.
나는 내심 놀라기도 했다.
17회차 주인공은 내 생각보다 훨씬 세구나![‘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당신의 훌륭한 탱 셔틀이 될 것 같다며 흐뭇해합니다.]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S급 보스를 잡긴 잡을 것 같았다.
편안한 관람이 가능해서 아그네스와 잡담도 했다.
“몇 분 걸릴까요? 15분?”
교관의 눈으로 테실리드를 살피던 아그네스가 툭하니 말했다.
“뭐가요?”
“그거라면 괜찮아요. 오러 쪽의 성장은 계속될 거예요.”
테실리드의 신성력은 추기경급에서 멈추지만, 오러는 마스터의 경지까지 이를 예정이었다.
부능력이 주능력을 추월하는 현상은 그의 출신이 성흔양이라는 데서 납득이 간다.
“신성력이 성흔을 통해 강제 각성한 것이라 예외인가 봐요.”
그때였다.
“……쿨럭.”
멀리서 들려오는 나직한 기침 소리가 내 신경을 확 잡아끌었다.
테실리드가 입에서 선혈을 흘리고 있었다.
그렐리우스의 로브가 만들어내는 부식, 화상, 역병의 공기를 흡입하고 내상을 입은 듯했다.
치유력이 없는 성흔양은 이런 불가항력적인 육체 손상에 취약했다. 즉, 상성이 나빴다.
체내의 오러와 신성력을 운용해 버티는 것도 한계인 모양이다.
테실리드가 엄지로 입가를 훑더니 제 검 리브라를 힐끗 보고는 혼잣말을 했다.
“성검은 이럴 때 도움이 안 되는군.”
그럼 도움이 되는 내가 나설 때였다.
“치유.”
넓은 사정거리 이용해서 멀찍이 있는 테실리드에게 힐을 퍼부었다.
몸이 순식간에 회복된 테실리드가 놀란 듯 내 쪽을 돌아보았다.
“전투 중에 힐이라니, 이게 얼마 만인지.”
심지어 67레벨에 5배 증폭까지 된 사기적인 힐이다. 맘껏 감격하도록 하라고.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그렐리우스가 나를 향해 빈 눈두덩을 번뜩였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