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Football Survival RAW novel - Chapter (199)
프로축구생존기 프로축구 생존기-199화(199/242)
vétéran (1)
2017년 11월 14일
“···그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어요?”
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
“이렇게 경기력이 좋았는데, 이게 월드컵이 아니였다는 게 조금 아쉽네요. 하하.”
그래, 좀 아쉽다. 콜롬비아에 이어서 세르비아도 무실점으로 이겨버린 이 폼이면 진짜 16강 진출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수만 있으면 이 폼 그대로 월드컵에 나가고 싶다. 진짜.’
뭐, 하지만 그건 제쳐두고.
“그래도 이런 모습을 한 번 보여줬으니, 다음엔 더 잘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3월이랑 월드컵에도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뚝.
“예, 녹화 끝났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이준혁 선수.”
그렇게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민구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형님.”
“응, 왜?”
“그거 인사이드 캠이에요?”
“뭐, 그렇지?”
서울이나 마르세유에도 카메라 팀이 있는데, 대표팀에 카메라가 없을 리가 없다.
그리고, 대표팀에서 카메라 팀이 가장 많이 찍는 동영상은 Inside Cam 이라고 해가지고. 국가대표의 훈련 모습이나 인터뷰 같은 걸 한 5분 이내로 짧게 처리한 영상을 매번 우리가 소집할 때마다 3개씩은 올리는데.
그 중 소집해제 기념 인터뷰 영상을 내가 찍은 거였다.
“이야- 형 진짜 출세했네요, 출세했어. 이번 대표팀 해제 영상은 흥빈이랑 성룡이 형만 찍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리고, 이건 민구의 말대로 꽤나 의미가 있었다. 이것도 나름 방송이다 보니 조회수가 좀 나올 선수 위주로 인터뷰하기 마련인데, 내가 흥빈이랑 주장인 성룡 선배랑 같이 뽑힌 거니까.
‘아마 이번에 연속 어시 넣은 게 크겠지.’
하여튼, 기분 나쁜 건 아니다.
인지도 하나라도 더 쌓는 게 나쁠 건 없으니.
“이제 막 뭐 월드컵에서만 잘 하면 이영표 선배님처럼 광고도 찍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그건 너무 나갔고 임마.
“됐고, 민구 넌 빨리 군대 안 돌아가? 군바리 녀석이 후딱후딱 자대복귀 안 하고 뭐해?”
“···와. 선배 좀 너무하십니다. 선배도 작년까진 군바리였으면서.”
“엉, 어쨌던 지금은 사회인임.”
그렇게 전역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 군바리 놀려먹기나 좀 해주면서 짐을 챙기고 있었는데.
“저기, 형님. 바로 가야해요?”
“그래, 소속팀이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해서. 내일 새벽에 바로 짐 싸서 돌아가야 한다.”
“···그럼 혹시 가기 전에 잠깐도 시간 없어요?”
민구가 아까 전까지의 살짝 장난스런 말투와는 다르게, 조금 진지한 태도로 말했고.
“뭐, 못 할 건 없지, 왜?”
뭔가 진지한 이야기 같아서 나도 좀 진지하게 답해줬더니. 조금 놀랄 만한 답변이 돌아왔다.
“저 포함해서 몇몇이 형한테 해외진출 관련해서 질문 던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
“그러니까, 너네가 올해 유럽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데, 그거 관련해서 조언을 나한테 받고 싶다고?”
“예.”
이건 또 뭐시여.
“야, 민구만 물어보면 몰라도 니네가 왜 나한테 물어봐? 너희는 차라리 창운이한테 묻는 게 나을 텐데?”
현재 유럽 진출의 정상적인 테크를 타고 있는 선수는, 내가 아니라 창운이였다.
K리그에서의 안정적인 활약을 토대로, 벨기에라는 루키 리그에 가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고, 이를 통해 앞으로 빅 리그 진출이 확실시되는 루트.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세 선수.
이제성, 주민구, 김민제.
이 셋 중에서 민구야 솔직히 나보다 한 살밖에 안 어려서 나한테 조언받는 게 맞지만.
나머지 둘은 92년생, 96년생으로 나이가 어리니 창운이한테 조언 듣는 게 훨씬 나을텐데?
“당연히 창운이한테도 물어봤죠, 그런데 창운이는 좀 대접 잘 받고 갔잖아요, 형은 아니고.”
“예, 그래서 대접 못 받고 가면 어떤지 좀 궁금해서요.”
···에휴, 이 녀석들, 그러니까 유럽진출 절망편이 뭔지 보고 싶다는 거냐?
일단 궁금해하니 말해주긴 해야겠지.
“뭐, 일단 나는 너희가 유럽진출이야 다 알아봤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짧게 몇 마디만 할게.”
“예.”
“일단, 내가 보기엔 너희가 유럽 놈들하고 주전 경쟁 못할 것 같지는 않거든?”
그래, 이건 확실하다. K리그 상위권 실력이고,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 국대에 뽑힐 정도면 해외진출을 못 노려볼 실력과 재능은 아니다.
물론 유럽의 최상위권 팀을 막 노릴 재능인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유럽의 빅 리그 중하위권 팀에서 경쟁력이 없는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근데, 대우 못 받고 갈 생각은 하지 마라, 돈이고 나발이고, 이거 해결 안 되면 걍 포기해.”
“뭘요?”
“통역사.”
그래, 그렇지만 그와는 달리, 생활은 별개다.
“나 있잖아, 프랑스어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하고 있는지 아냐? 4시간이다. 4시간. 매일 4시간이야.”
그래, 이게 참 큰 스트레스다. 공부 안하던 놈이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공부하고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건 축구랑 일상회화 정도밖에 없을 정도여서 난 아직도 동료들하고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당장 나 거의 항상 두 사람하고만 사적인 대화 나눈다? 늬들도 알만한 파예, 그리고 세르티치란 친구 딱 두명.”
라미나 홀란두랑은 경기장에서 말 하긴 하지만. 그건 경기하니까 ‘의사소통한다’ 수준이지. 친하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고.
이번 시즌에 새로 들어온 오캄포스랑 스투아니랑은 조금씩 친해지고는 있지만··· 걔네도 스페인어 사용자라서 영어로 불편하게 대화해야 한다는 점이 참 커서 많이 대화는 못하고 있다.
언어의 장벽이 있는데도 이야기를 계속 나눌 친구를 얻는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더라.
‘입단식에서 나한테 호감을 표했던 선수들이라도 남아 있으면 좋았겠는데, 전부 여름에 어딘가로 가 버렸고···’
고미스는 터키로 이적, 펠레도 2부리그로 임대 가고··· 그나마 사카이 정도가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유대감 덕분에 이야기 좀 나누는 편이네.
“그러니까, 통역사 문제 해결 안 되면 유럽에서 뛸 생각은 좀 미뤄라.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 좀 외롭거든.”
그렇게 가장 중요한 점을 말하고, 이제 몇몇 기타 짜잘한 불편한 점들을 말하려던 찰나.
“선배님.”
“응?”
“그럼 선배님 에브라랑은 안 친해요?”
민제가 조금 민감한 주제를 찔러왔다.
“···뭐, 포지션 경쟁자다 보니까. 친해지기 힘들더라.”
그래, 에브라.
나는 그 선수와 정말 입단식에서 빼고.
사적인 대화는 정말 거의 한 마디도 안 했다.
‘나름 지성 선배와의 관계도 있는 만큼 나한테 나쁘게 대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좀 오산이었지.’
뭐 하여튼, 그렇다고 원망하거나 하진 않는다.
사람이란 게 자기 자리가 위협받고 있는데 경쟁자에게 친절한 손길을 내밀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럼 이 뉴스도 혹시 처음 보는 거예요?”
“뭘?”
그러자 민제가 불쑥 자기 휴대폰을 건냈는데, 거기에는 이런 기사가 떠 있었다.
–
“···뭐야 시발?”
에브라가 왜 마르세유랑 계약을 해지해?
-*-*-*-
보통 축구판에서 시즌 중에 1군 선수의 계약 해지라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게 일반적으로 축구판에서 계약 해지란
-남은 연봉 다 가불해줄 테니 제발 당장 이 팀에서 꺼져.
이런 소리이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클럽 입장에서는 하나도 이득보는 게 없는 행위다. 일단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선수를 팔아서 돈을 얻을 수도 없고, 스쿼드를 든든하게 채워줄 만한 선수를 또 새로 구해야 한다는 소리니까.
그렇기에 팀에서 선수를 계약 해지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첫째. 선수단 분위기를 엄청나게 박살내고 있다.
둘째, 뭔가 엄청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이 경우는-
“그러니까, 술집에서 팬이랑 싸움박질했다고?”
“그래, 그랬다고 하네.”
두 번째였다. 폭행 사고.
“아니 왜 그랬데 진짜?”
전혀 이해가 안 된다는 표현을 몸짓과 말투에 듬뿍 담아 표현하자, 세르티치는 조금 쓰게 웃으며 말했다.
“몇몇 강성 훌리건들이 에브라를 음··· 좀 모욕적인 표현들을 사용해서 욕하다가 싸움 터졌다는데.”
다행히, 나는 그 ‘모욕적인 표현들’ 이 무엇인지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머리가 굳어있진 않았고.
“인종차별?”
“그래.”
예상이 들어맞자, 나는 쓰게 웃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프랑스가 보통 예술의 나라, 패션의 나라, 문화 강국 그런 식으로 이미지메이킹 되어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보는 프랑스는 좀 많이 달랐다.
서류 처리가 사나흘 걸리면 빠른 편이고, 문 열때마다 열쇠 써야 하고, 밤 되면 길거리가 화장실로 변하는 90년대 우리나라같은 느낌에다가.
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쪽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아주 흔하게 보이는 다민족국가였고, 그에 따른 인종차별도 아주 빈번하게 보이는 곳이였다.
‘그리고, 요즘은 더 그걸 대놓고 드러내고 있는 편이라고 뉴스에도 몇 번 나왔지. 테러 사건이 몇 개 터진 영향으로.’
당장 멀리 갈 것도 없다. 이 마르세유에서 한 달 전에 테러 사건 하나 터졌는데 뭐.
그런 걸 보면, 인종차별이 일어났다는 것 따윈 그렇게 놀라운 건 아니고, 에브라가 거기에 화가 나서 싸움이 벌어진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다만.
“그 정도면 그렇게 큰 일은 아니잖아, 그런데 그걸 가지고 내쫓는다고?”
‘고작’ 그런 일로 구단이 계약 해지를 요청한 게 이해가 좀 가지 않았다.
‘솔직히 그 정도면 우리나라 축구계라면 몰라도 유럽 축구에서는 당장 내쫓아야 할 문제까진 아닌데.’
당장 레알 마드리드에서 협박범이 거의 확정된 상태로 재판받고 있는 벤제마를 계약 해지하지 않고 계속 잘 뛰게 만들고 있지 않나.
그 정도로 클럽은 계약 해지란 말을 정말로 싫어한다. 돈만 낭비하는 짓이기에.
게다가 에브라는 이 프랑스에서 정말 레전드 선수다. A매치 출장횟수가 그 지단보다 딱 1경기밖에 차이 안 날 정도의 레전드다.
그냥 닥치고 ‘미안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를 외치면 그냥 슥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인기 많다는 거다.
‘뭐 폭행 사건 저지르고도 막 언론에 팀원들이나 팀 쓰레기라고 저격하고 다니는 짓까지 겹치면 모르겠지만···’
지금 보니까 그것도 아니잖아. 그냥 순수 폭행인데.
“글쎄,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듣기로는 에브라가 먼저 요청했다는데.”
“······?”
이건 또 뭔 개소리야.
-*-*-*-
“···그래서, 그게 궁금하다고 나한테 찾아온 거냐?”
“예, 에브라. 당신 왜 떠나려는 거죠?”
내가 그렇게 묻자.
“내가 그걸 답변해줄 이유가 있나?”
에브라는 살짝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하기 싫다는 투로 내뱉었다.
“그리고 내가 나가면 너한텐 좋은 일일 텐데?”
···그래, 에브라가 나간다고 해서 나한테 나쁜 건 없다. 이제 내가 풀타임 주전 자리 먹게 된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그게 이런 식으로 되길 바라진 않았습니다.”
그래, 난 솔직히 이런 식으로 완전한 주전 자리를 차지하는 걸 원하진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주전을 차지한다는 건 곧 열릴 겨울 이적시장에 다른 선수가 영입될 거라는 소리나 다름없으니까.
게다가.
“지금 팀과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당신도 아실 텐데요.”
“······”
지금은 11월 중순, 지금 팀을 나간다면 2개월 동안 무직이다. 그리고, 그 2개월은 노장의 선수에게 있어서 엄청나게 치명타다.
잘못하면, 바로 은퇴를 해야 할 수도 있을 정도로.
“그러니, 제대로 대답해주세요. 에브라. 당신 뭐 때문에 마르세유를 떠나려는 겁니까?”
그 순간. 조금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왔다.
“하, 몰라서 묻는거냐? 너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