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Football Survival RAW novel - Chapter (200)
프로축구생존기 프로축구 생존기-200화(200/242)
vétéran (2)
-쪼르르.
“한 잔 받아라.”
“···이거 뭡니까?”
“방돌(Bandol)산 무흐베드르(Mourvèdre) 로제 와인이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이 빠게트 놈아.
난 와인 종류는 레드 와인이랑 화이트 와인 이렇게밖에 모르고. 와인 맛이라고는 달다, 시다, 떫다밖에 모른단 말이다.
“···뭔지 잘 모르는 표정인데, 모르면 됐다. 한 잔 해라.”
-쪼르르.
“···저 당신 나가게 되면 보르도 원정에 100% 출전일 텐데요.”
“그래봤자 아직 3일 남았잖아? 많이 먹일 생각도 없다. 딱 세 잔만 받아.”
“······”
···아, 이걸 마셔야 해?
“별로란 표정인데, 싫으면 마시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됩니까?”
“그래, 대신 대답은 안 해주겠지.”
“······”
···에휴 그래, 뭐 와인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마지막 가는 길인데 그냥 한 잔 받자. 뭐 내가 이거 먹는다고 덧날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뭣보다 병 보니깐 나름 비싸 보이는 술이니 맛은 있겠지.’
물론 내가 와인을 알아보는 건 아니다. 그냥 술병이 되게 고급스러워서 싼 와인은 아니라고 생각할 뿐.
‘신 맛만 아니면 된다. 신 맛만.’
그렇게 내가 머릿속으로 정말 나름대로는 진지한 고민을 끝내고 와인을 혀에 댄 순간, 나는 바로 내 결정을 후회했다.
‘···씹, 겁나 시다.’
아 망할, 핑크색이라서 달달한 맛일 줄 알았는데 뭐 이리 시냐?
‘그냥 좀 달달한 와인이나 좀 마시지 왜 이런 식초같은 걸 마시는 거야. 하··· 안주, 안주가 필요해.’
그렇게 생각한 내가 식탁에 놓여진 안주를 팍팍 집어들자, 에브라는 살짝 비웃는 표정이 되었다.
“역시 애구만. 이 로제 와인의 맛을 모르다니.”
“······”
그래, 와인 잘 알아서 좋겠다. 빠게트 새끼야.
“자, 그럼 이제 질문 받는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봐라.”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첫 질문을 이걸로 던졌다.
“이 와인 얼마에요?”
“···맛있게 먹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게 왜 궁금한진 모르겠지만. 나도 모른다.”
당신이 산 와인이면서 왜 몰-
“확실한 건, 내 주급보단 덜 비쌀 거다. 그 이상가는 와인은 가격을 기억하고 있거든.”
···와, 이건 정말 재수없다고 해야하는 거냐, 뭐라고 해야 하는 거냐. 한 500~600만원 이하는 가격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거잖아?
‘젠장, 갑자기 또 빈부격차 느끼네.’
···그래서,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신이 싸움 이후 구단에 계약 해지를 하겠다는 말을 했다는 게. 사실인 거죠?”
“그래.”
지금 에브라의 나이에, 그리고 지금 시점에 본인이 나서서 계약 해지를 하겠다고 하는 건.
“당신, 은퇴하려는 겁니까?”
“그래.”
은퇴하겠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이었으니까.
“왜 은퇴하려는 겁니까?”
“그건 이미 라커룸에서 말한 말일 텐데.”
그래, 그러니까 그게 이해 안 간다고.
나 때문이라는 건 그냥-
“저한테 주전 밀려서라는 거, 그거 하나뿐이란 겁니까?”
“···그래.”
···하, 슬슬 짜증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시죠. 고작 백업으로 밀려난 거 가지고 은퇴하겠다고 하다니, 에브라, 당신이 앱니까?”
솔직히 말해서 이번 시즌 내가 주전이긴 했지만, 에브라도 경기 아예 못 뛴 건 아니였다. 대략 내가 3경기 뛰면 최소 1경기는 뛰는 정도.
그래서 이해가 안 가는 거였다. 아직 경기를 뛸 수 있는데 저런다니.
‘베디모처럼 아예 2군가니 마니 하는 수준으로 밀려났다면 은퇴한다고 했을 때 별로 놀라지는 않았겠지.’
물론 이게 아주 많은 건 아니지만, 지금 우리는 유로파도 순항중이고, 겨울에 들어서부터는 이제 슬슬 리그컵이랑 FA컵 대회도 열릴 거라는 걸 생각하면···
우리가 모든 대회를 어느 정도까지는 올라간다는 가정하에, 에브라는 이번 시즌 한 12~14경기 정도는 선발 출전 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 정도면 내가 작년에 백업으로서 바랬던 출전시간. 그러니까-
“올해 당신 1,000분 정도는 뛸 수 있잖습니까.”
그래, 이 정도는 기회를 받는다. 상위권 백업의 출전시간이자, 주전을 호시탐탐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선수의 출전시간.
“그러니, 말해주시죠.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요?”
그렇게 내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투로 이야기하자, 천천히 와인을 음미하던 에브라는 툭하니 말을 던졌고.
“너에게는 그 1,000분이 귀중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아니야.”
“뭐라고요? 당신-”
“닥치고 일단 들어, 말 끊지 말고.”
“······”
하 그래, 들어나 보자.
“고작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자랑스런 뢰 블레(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일원이자, 세리에 A 챔피언, 유벤투스의 주전이었다.”
-쪼르르
“그래서 저번 시즌, 유벤투스에서 나를 주전에서 슬슬 밀어냈을 때까지만 해도 그냥 계약도 끝났으니 다른 팀 가야겠구나. 싶은 생각이였지. 아직은 실력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에브라는 와인 잔에 와인을 가득 채웠고.
“뭐, 그리고 실제로도 나한테 오퍼해오는 팀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이 곳이였지, 여기가 세리에보다는 하위 리그니까 주전을 차지하기도 좀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 말과 동시에 에브라가 잔을 가득 채운 와인을 한 방에 벌컥 원샷해버렸다.
‘저 인간은 도대체 혓바닥이 어떻게 된 거지.’
그렇게 내가 어떻게 이 식초같이 신 놈을 원샷하냐- 싶은 딴생각이 들려던 찰나.
“그런데, 지금 현실은 어떻지?”
저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모를 말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 마르세유에서도 주전이 밀리고 있군. 고작 1년 정도만에 말이야. 1년 만에 상황이 이렇게 변해버렸어.”
어···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 비유하자면, 내가 지금 국대랑 마르세유에서 월드컵에 뽑히고 잘 나가고 있었는데 마르세유에서 주전 밀려나고,
그래서 K리그로 복귀했더니 갑자기 한 태국 리그에서 영입해온 선수가 나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했을 때 느낄 감정이라고 봐야 하는 건가.
그렇게 내가 상황을 정리하자, 에브라가 왜 울분이 쌓여 있는지 정도는 이해가 갔다.
나라도 저런 상황이라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테니까.
‘···기분이 좋지는 않겠네.’
그렇게 내가 머릿속으로 대략적이나마 상황을 정리하자.
“자, 그러면 여기에서 질문이다. 너라면 여기에서 어떤 선택을 할 거지?”
에브라는 이번에는 분명히 나에게 질문을 던져왔고,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야 뭐, 어떻게든 팀에 아득바득 남거나, 다른 구단 알아보겠죠.”
그러자 에브라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정말로? 정말로 이런 순간이 찾아왔을 때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내가 알기로, 너는 이미 한 번 포기하려고 한 적이 있던 걸로 아는데?”
그 순간, 나는 정곡을 찔려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작 한국 2부리그에서 벽을 느끼고 은퇴하려고 하던 선수가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다니, 웃기는군.”
분명히, 나도 그랬었으니까.
나도 포기하려던 순간이 있었으니까.
“그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처음에는 널 내 경쟁상대보다는 어루고 달래줘야 할 백업으로 생각했거든. 그래서 좀 알아봤지.”
···아, 그러다가 위협 될 것 같으니 그냥 내버려두셨다?
“하여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고, 자 말해봐라. 그 때 왜 포기하려고 들었지?”
“······”
그 때, 내가 왜 포기하려고 들었더라?
아, 그래.
“···더 이상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습니다.”
“그래, 그런 거다.”
-쪼로록.
“내가 버티려고 든다면 올해는 어찌어찌 버티겠지, 하지만 계약이 끝나는 다음 시즌은? 그때는 내가 또 어떤 꼴을 당해야 할까? 그렇게 계속 구차하게 선수 생활을 연장해야 할까?”
“몸뚱아리는 늙어가고, 앞으로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내 자존심을 갈갈이 찢겨가며 그렇게라도 뛰어야 하느냔 말이다.”
그 순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축구를 보던 당시, 가장 뛰어났던 레프트백의 자존심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거대했다.
“그래서 더 구차해지기 전에, 차라리 그냥 폭행 사건이라는 계기가 생긴 지금 은퇴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폭행으로 은퇴하는 게 나은 겁니까?”
-쪼르르.
“실력이 부족해서 은퇴했다는 소리보단 낫지.”
“······”
“그래, 차라리 이게 나아.”
그 말과 함께, 에브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조용히 술을 따르고 마시고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나도, 그냥 조용히 나온 안주들을 깨작깨작 먹기 시작하자 얼마 안 있어서 음식과 술이 바닥났다.
“이런, 어느새 술이 다 떨어졌군. 한 잔 더 할래?”
“···아니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핫, 참 너도 지(Ji)처럼 재미없는 친구군. 좋아. 가겠다는데 말릴 수는 없지”
그렇게 내가 외투를 챙기며 나가려던 참에.
“아, 참, 이왕 은퇴하는 김에 마지막으로 조언 하나 해줄까?”
에브라가 술을 더 마시다가 말을 걸어왔다.
“···뭡니까.”
“풀백은 32살, 그 언저리가 되면 이제 슬슬 은퇴를 알아보거나 하부 리그로 내려가는 선수들이 나타난다.”
그건 알고 있다. 내가 EPL을 보던 때 리그 최고로 평가받던 당신이, 에쉴리 콜이 그 나이 정도가 되자 EPL에서 세리에로 갔으니까.
“그런데, 너처럼 피지컬이 키나 파워보다는 스피드에 집중되어 있는 유형이면 더더욱 수명이 짧지. 특히 현대 축구로 올수록 말이야.”
그 말은 명백했다.
“그러니까. 리, 너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다.”
“······”
“그러니 슬슬 생각해두는 게 좋을 거다.”
“뭘 말입니까.”
-쪼르륵.
“마지막 순간에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은지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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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나의 탓, 책임을 지기 위해 은퇴하겠다.’ 라고 말하며, 은퇴 사실 밝혀···>
“······”
빠르구만, 사흘 만에 은퇴 결정이라.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 내 머릿속에서 에브라가 한 말이 다시 들려왔다.
-마지막 순간에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은지는 정해 둬라.
‘하아- 젠장, 괜히 오늘 경기 잘 이겨놓고도 기분 찝찝하게 만드는구만.’
은퇴는 뭐, 솔직히 아직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30대 초반에 은퇴를 하게 되는 이유는 보통 부상 때문인데, 나는 부상 문제만큼은 굉장히 깔끔한 편이였으니까.
다만- 체력과 주력 면에서는, 나는 아마 2~3년 정도까지만 이러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꺼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물론 크로스랑 스로인이 있으니 바로 은퇴 수속 밟진 않겠지만···’
내 수비력은 키가 작아서 스피드와 체력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키가 작은 선수가 선수 생활 롱런에 불리한 건 구기종목 불변의 진리다.
그렇다는 건, 조금만 더 나이를 먹어도 지금처럼 활약할 수는 없을 것은 확실했다.
‘···그렇게 되면 뭐 K리그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글쎄, 이젠 모르겠다.
지금이야 매일 매일이 더 나아지고 있어서 즐겁게 뛸 수 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나는 추하지 않게 굴 수가 있을까? 사람이란 건 다 똑같은 법인데?
여기에 대답을 이제 하기가 힘들었다.
당장 내가 진짜로 축구에 미친 놈이였다면, 아무 리그에서든 간에 축구를 할 수만 있으면 만족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열정에 넘치는 선수였다면.
그냥 고양에서 쫓겨났다고 해서 은퇴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바로 군대부터 해결하게 K3 리그 빈 자리 찾아봤어야 했다. 군대 해결할 겸.
그리고는 어떻게든 동남아 리그나, 내셔널 리그, K리그 챌린지에서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 들었겠지.
그걸 생각해 보면, 나는 그냥··· 평범한 녀석에 불과했다.
그래서, 더더욱 고민되었다.
‘···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