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Football Survival RAW novel - Chapter (202)
프로축구생존기 프로축구 생존기-202화(202/242)
vétéran (4)
원래도 아는 사실이었지만 오늘자로 확실해졌다.
“리, 여기에서 뭐 하냐?”
“···좀 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파예가 살짝 예상했다는 듯이 웃는 얼굴로 와인을 하나 더 가져다 줬지만 나는 사양했다.
“아뇨, 아뇨, 됐어요, 이걸로 충분해요.”
“뭔 소리야, 파티에 여자가 없으면 술이라도 제대로 마셔야지. 가짜 와인 마시지 말고 진짜 와인을 마셔.”
뭔 소리야 이건 또, 가짜 와인 진짜 와인이 어디있어. 그냥 술이란 게 달달하니 맛있게 먹을 수 있거나 하면 장땡이지.
“그건 미국놈들 와인이라고, 진짜를 마셔.”
···에라이 씨, 프랑스식 신토불이냐?
“···예,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하, 그래. 그래.”
그렇게 먹은 와인은- 여전히 신 맛이 났다. 아니 오히려 더 신 맛이 나는 듯 했다.
“···이거 뭔 와인이야?”
“꼬뜨 로띠(Côte-Rotie)산 시라(Syrah)와인이지. 어때? 미국놈들의 깊이가 없는 와인들보단 훨씬 낫지 않아?”
“···하하, 예, 맛있네요.”
좋아, 결심했다. 앞으로 이 와인은 거른다.
그리고 앞으로 와인은 미국산만 마신다.
“그건 그렇고, 왜 파티에 와서 별로 말을 안 하고 있는 거야?”
“···뭔가 끼어들기가 애매해서요?”
“뭐가 애매한데?”
“저기 봐요.”
그 말과 함께, 나는 손가락으로 한 쪽 구석을 가르켰는데.
“!@#%~”
“@#!%!^!”
이 모습을 보던 파예는, 쓰게 웃었다.
“아, 그래서였어?”
“예, 뭔 말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진짜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가 그냥 막 섞여있으니 그냥 미치겠네.
축구 경기장에서야 영어 아니면 프랑스어만 서로 쓰지 않으면 뭔 말인지를 못 알아들으니 다들 그것만 쓰지만.
여긴 선수들이 각자 놀 마음으로 파트너들과 함께 모인 크리스마스 파티인 만큼, 다들 그냥 편하게 자기네 나라 말로 말을 하고 있었다.
-Oh Dios mío!
-Es un regalo de Navidad, cariño.
자기들이 끌고 온 파트너들이랑 떠들어야 하니 더더욱.
-Te amo cariño! Hmm-
···저건 또 뭐야. 시발. 뭔 공공장소에서 키스를 하고 있어.
‘···아 인생··· 세상 그냥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옆구리가 시려오는 것을 잊기 위해 신 맛의 포도주를 다시 들이키고 있자. 파예는 낄낄 웃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리. 웬만하면 파트너 끌고 오라고.”
시발.
“아 몰라요 몰라. 전 온 김에 저녁이나 잘 먹고 가렵니다.”
그렇게 나는 이렇게 된 이상 원래의 목적을 이루기는 글렀다고 생각하고 음식이나 많이 먹고 가려던 참에.
“······”
“뭐야, 왜 갑자기 나를 뻔히 쳐다보고 그래?”
내 앞에 있는 선수에게 갑자기 눈길이 갔다.
‘원래는 홀란두나 라미, 스투아니한테 물어 볼 생각이였는데···’
그건 글른 것 같고. 그럼 꿩 대신 닭이라고 언어가 통하는 이 인간 상대로나 물어봐야겠네. 떡국을 우리 팀에서 5번째로 많이 먹은 양반이니.
“···저기 파예.”
“응?”
“당신, 시즌 시작할 때 즈음에 마르세유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했잖아요.”
“···뭐, 그렇지? 그게 내 목표지.”
좋아.
“그럼 그 다음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내가 그렇게 묻자, 파예는 살짝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예상 외의 대답을 내놨고.
“우승 이후? 글쎄··· 갑자기 왜?”
“곧 신년이 찾아오니 괜히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원하는 저의 마지막 순간이 어떤 건지.”
그래서 물어보는 거다- 라는 말에, 파예는 잠깐 생각하는 듯 싶더니만.
“글쎄, 아직은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조금 허무한 대답을 내놓았다.
“···진짜로요?”
“그래, 우승한 지가··· 벌써 13년이 넘어서 우승 말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
그 말에 나는 입을 쩍 벌릴 뻔했다. 그럼 이 인간 그냥 고삐리때 우승하고 한 번도 우승 경험을 못 해봤다는 거잖아.
‘에휴, 그럼 뭐 현재를 바라볼 수밖에 없겠네. 돈도 벌 만큼 벌었으니 그런 생각 착실하게 해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진짜로 그냥 대충 밥이나 먹다가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뭐, 그래도 상상하기 어렵진 않네, 아마 뛸 수 있을 때까진 여기에서 뛰다가 적당히 한 서른 후반? 그 즈음엔 은퇴하겠지.”
고민도 하지 않았다는 인간이 그냥 바로 답이 튀어나왔다.
마치 답이야 뭐 정해져 있다는 것처럼.
그래서, 좀 신기했다.
“파예. 왜 하필 마르세유에요?”
“응?”
“그러니까. 파예 당신은 마르세유의 원 클럽 맨까진 아니잖아요.”
사실, 파예는 굳이 따지면 저니맨, 그러니까 여차하면 팀을 옮겨다니는 선수에 가깝다.
리그앙 데뷔를 낭트에서 했고, 거기에서 2년간 있다가. 셍테티엔으로 이적해서 4년 뛴 다음엔, 릴로 이적해서 또 3년 뛰고.
그러다가 이제야 마르세유로 와서 2년 뛰다가 또 웨스트햄에서 1년 반. 그리고 여기에서 또 이제 1년 정도 뛴 선수. 그게 디미트리 파예다.
한 마디로, 솔직히 말해서 친정팀이라고 할 만한 팀이 없는 선수라는 거다.
“그런데 왜 웨스트햄에서 프랑스로 돌아올 때 굳이 그 많은 팀 중에 마르세유를 콕 찝어서 돌아오고 싶다고 생각한 거예요? 주급까지 깎아가면서.”
나의 질문에 파예는 이번엔 좀 고민하는 얼굴이 되다가. 툭 한 마디 던졌다.
“뭐, 그냥.”
“···그냥이라고요?”
간단하다 못해 성의가 없는 대답에 살짝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지만.
“그래, 그냥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아.”
표정을 보면 그냥 나온 대답은 또 아닌 것 같았다.
“리, 난 말이지, 원래 저-기 레위니옹이라고, 인도양 쪽에 있는 섬에서 태어났어.”
“······?”
잠깐 이건 또 뭐야, 인도양 쪽 섬?
“어디에 있는 섬이예요?”
“하긴 넌 잘 모르겠구나, 마다가스카르에서 동쪽으로 좀 더 가면 있는 섬이야.”
···시발 그건 그냥 남부 아프리카잖아. 지중해쪽 북부 아프리카도 아니고 뭐 저렇게 멀리에서 왔어?
“그러다가 어찌어찌 낭트 쪽이 스카우트하고 거기에서 마누라 만나고··· 그래서 돈 벌어야 해서 셍테티엔으로 이적 하고··· 그리고 우승 한 번 하고 싶어서 릴로도 가 보고··· 참 많이 돌아다녔지.”
그렇게 파예는 추억을 떠올리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한 마디를 툭하니 던졌다.
“그러다가 느꼈지.”
“뭐를요?”
“좀, 지긋지긋하다고. 떠돌아다니는 생활은 끝내고 이제 그만 정착하고 싶다고.”
“······”
“그리고, 때마침 그 때 좋은 대우를 해가며 불러준 곳이 여기였고. 나름 생활도 만족스러웠거든.”
그런 말을 큰 고민도 안하고 턱턱 말하는 말에, 나는 조금··· 감탄했다.
“주급을 깎아가면서까지요?”
“그래, 솔직히 난 이미 평생 쓸 돈은 다 벌었어. 돈이야 별로 신경 안 쓴다. 최다 주급 받는 건 그냥 자존심인 거고.”
그리고.
“···그래봤자 제라드같은 완벽한 원 클럽 맨 취급은 못 받을 텐데요?”
“하, 그렇지. 그래서 내가 우승컵을 바라는 거야. 그래야 사람들이 마르세유의 전성기 시절에 이 파예라는 선수가 에이스였다! 고 기억해줄 테니까.”
···조금, 아니 많이 부러웠다.
-*-*-*-
-털썩.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사람이, 고생 끝에 제 2의 고향이라고 여길만한 곳을 찾아 여기에서 은퇴까지 결심하고 우승컵을 안겨주고 싶다··· 라.
“팬들에게서 절대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는 스토리네.”
정말이지, 낭만이 넘치는 말이다.
솔직히, 나도 따라할 수만 있으면 따라하고 싶다.
내가 가장 원하던, 팬들의 성원
그렇지만.
“나는 그게 힘들지이···”
나는 그게 불가능했다.
외국인이니까.
그래, 나는 외국인이다. 그리고 스포츠란 놈은, 생각보다 내셔널리즘이 꽤나 심하다.
물론 볼만 잘 차면 상관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차범근 감독님같은 경우엔 그딴 거 없이 골 많이 넣어서 그 팀 팬들의 사랑을 뜸뿍 받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정도가 아니고서는 사랑받고, 조명을 받기가 힘들다는 거다.
당장 우리나라 야구나 축구에서도 외국인 선수가 에이스인 팀은 수없이 많았고, 많지만.
그 선수가 모든 사람들을 제치고 팀에서 인기 1순위인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이게 현실이고, 이게 팩트다.
그래서 외국인이 한 클럽에서 기억에 남으려면 둘 중 하나는 충족해야 한다.
최대 발롱도르, 득점왕이나 도움왕같은 타이틀을 따서 리그 MVP 같은 걸 먹어서 그 팀 역사에 남을 만한 임팩트 있는 시즌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A급 선수의 기량을 굉장히 오랫동안··· 한 10년 넘게 한 팀에서 보여주거나.
‘그런데 나는 둘 다 불가능하지.’
일단, 나는 풀백이다. 그리고 풀백은 임팩트를 뽐내기가 쉽지 않다. 골을 넣는 포지션이 아니니까.
‘···그나마 내가 지금 스로인빨로 6어시스트니까 도움왕 정도가 그나마 임팩트 줄 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녀석인데.’
그것도 이번 시즌 네이마르 때문에 글렀다. 미친놈이 골도 넣으면서 어떻게 어시를 9개씩이나 쌓아대는 거야.
그럼 여기에서 10년간 뛴다?
솔직히, 그것도 글렀다. 내가 지금부터 정말로 정말로 몸 관리 잘 한다고 해도. 솔직히 이 폼을 5년 이상 유지하기는··· 불가능이다.
‘나는 스피드에 좀 많이 의존하는 선수니까.’
나는 일단 키가 작고 근육도 그리 많지 않아서 프레임, 그러니까 몸싸움이 엄청 좋은 선수는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피지컬의 부족이 아주 크게 느껴지지는 않고 어떻게든 버티는 이유가 단 하나다. 스피드. 음바페 빼고는 한 번도 내가 더 느리다고 느껴본적이 없는 스피드.
그게 있으니까 많은 신체적 단점들을 커버할 수가 있다.
그런데, 스피드는 노화의 영향을 가장 직격탄으로 쳐맞는 녀석이다. 아마도···
‘정말로 정말로 운이 좋으면 내가 2022 월드컵까지는 마르세유에서 버틸 수 있겠지만. 그 이후부터는 절대 노화를 막을 수 없겠지.’
그러니까. 앞으로 약 4년이다. 이 팬들의 박수와 함성을 내 것으로 만들기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다.
결국, 나는 여기에서도 스쳐지나가는 선수일 수밖에 없다.
메시같은 원 클럽 맨 프랜차이즈 스타가 태양이고, 파예같은 스타가 달 정도라고 한다면···
나는, 별이다. 별. 밤하늘에 수도 없이 놓여진, 한없이 지고 피는 존재 중 하나에 불과한 별.
“하, 젠장, 생각할수록 슬퍼지네, 슬퍼져. 안 되겠다. 빨리 씻고 디비져 자자···”
그렇게 중얼거리며 샤워를 하러 들어갔을 때, 나는 중대한 문제점을 하나 발견했다.
다름이 아닌- 씻고 나서 입을 옷이 없었다는 것.
“···아오 시발, 세탁기 좀 빨리빨리 돌릴 걸 그랬네.”
쉬기 전에 원정 2연전 들리고 홈 경기도 복귀 후 2일밖에 시간이 없어서 빨래를 미루고 미뤘더니 이런 사단이 났네. 하.
“···옷장에서 반팔 티 아무거나 좀 꺼내입자.”
그렇게 옷장을 뒤적거리던 도중, 하얀색 반팔 티셔츠가 하나 발견되긴 했는데.
‘···이거 왜 이래?’
조금 이상했다.
“···하얀색 반티 주제에, 비닐까지 쒸워서 말끔하게 보관되어 있네?”
이게 뭐길래 내가 이렇게 반티 주제에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거-
***
Champions
16
FC Seoul
***
“······”
그럴 만 했네.
“···하하, 이것도 벌써 참 추억 다 됐다.”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래도 이렇게 보니까 다시 다 생각나는구나.’
선제골도, 실점한 장면도, 전부 마치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뚜렷하게 기억났다.
“이 때 진짜 쾌감 쩔긴 했지, 원정이라 팬들이 엄청 적은 편이였는데도 막 온통 고함 지르고··· 참 다들 행복했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아? 아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나는, 정말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문제가 풀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그렇구나. 하하하하. 고민할 필요도 없었네.”
서울에서의 나는, 솔직히 들어갈 때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선택이였다.
서울은 에너지 넘치는 사이드백이 필요했고.
나도 3개월동안만 뛸 팀이 필요했기에 한 거래였으니까.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의 추억은, 모두 좋았던 기억으로만 덧붙여졌다.
단 하나.
“우승. 우승, 우승 때문이네···”
그랬다. 우승.
그것 하나 덕분에 나는 서울에서 고작 반 시즌도 안 뛰었지만. 난 팬들에게 있어서 환영받았고, 기억되는 선수로 자리잡았다.
“···그래, 그런 거구나.”
별들은, 대부분 기억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별들도 나름대로 기억되는 방법이 있다.
북두칠성이라던가. 황도 12궁 별자리라던가의 별들같이.
한없이 미약하고 어두운 별들이라 할지라도.
별자리라는 단체로서 기억될 수 있다.
그러니, 밤하늘을 밝게 빛나는 보름달은 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보름달과 함께 빛났다는 기록이라도 남기기 위하여.
이곳의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그리고-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비록 가능성은 희박할지라도- 도전해 보는 거다.
“뭐라도 하나, 진짜로 우승해야겠네.”
별자리가 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