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Football Survival RAW novel - Chapter (229)
프로축구생존기 프로축구 생존기-229화(229/242)
완벽따윈 없다 (2)
오른쪽, 앞에, 그리고-
“아!”
젠장-! 왼쪽. 막아야 한다.
-삐익!
[아, 이준혁 선수, 볼을 빼앗길 뻔했지만, 파울로 끊습니다. 오늘도 위태롭네요.]하, 망할.
‘확실히, 이제 난 미드필더라기보단 풀백 쪽에 훨씬 가깝구나. 어느새 오른쪽만 보는 습관이 들어 버렸어···’
축구 선수가 공을 받기 전에, 그리고 공을 받고 난 후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주위를 한번 쫙 훑어보는 거다. 당연한 게, 주위에 선수들이 어떻게 포진되어 있는가에 따라 패스인지, 드리블인지. 앞으로 갈지, 멈출지, 등을 돌릴지 등등.
고개를 까딱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단순한 이 행위야말로 선수가 앞으로 볼을 어떻게 전개할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운동선수라는 존재는 1초만에 3m는 가뿐하고, 조금 멀리서부터 달려와 가속이 붙은 경우라면 5m 정도도 눈 깜짝할 사이에 훅 다가올 수 있는 존재들이기에 되도록이면 이러한 주위를 확인하는 동작을 가급적 최소화해야 하는데.
그게 문제였다.
[지금 느린 화면으로 보시면 알겠지만, 왼쪽에서 달려드는 선수를 놓칠 뻔했습니다.]풀백, 그것도 왼쪽 풀백으로 뛴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본능적으로 왼쪽은 등지고 오른쪽으로 시선을 바라보는 이 스타일이 굳어져버렸던 거였다.
그리고 이렇게 명확한 습관이 있다는 건 아무리 그 패턴이 위력적일지라도 선수에게 있어서 절대로 좋은 현상이 아니다. 하물며 그게 약점이라면?
[오늘 보스니아 선수들이 중앙으로 나온 이준혁 선수를 집중적으로 강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그냥 미친 듯이 그 약점이 후벼파이게 된다. 그게 프로의 세계다.
‘하, 돌겠네 진짜.’
그럼에도 지금 내가 이 포지션에서 버티고 있는 이유는.
-지금, 볼 전개는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아닌데, 스피드 있게 미드필더에서 뛰어놀 선수가 너무 부족하다.
이것 단 하나뿐이였다.
-볼 전개는 성룡이가 아무리 컨디션이 나빠도 어느 정도는 될 거야, 그리고 정 안될 경우 영우랑 제성이 조합을 쓸 수도 있고. 그러면 좀 부족하게나마 커버가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23명의 인원을 뽑았을 때, 많은 활동량으로 어느 정도 중원을 장악하면서도 볼 전개, 수비에 보조적으로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라면.
그래, 내가 가장 적절하다.
하지만.
[신태영 감독은 무슨 생각인 걸까요? 왜 굳이 풀백으로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던 선수를 이렇게 중앙으로 굳이 돌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자신이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것, 더 잘 기여할 수 있는 것을 놔두고 보다 자신없는 것으로 기여한다는 것은.
[그렇습니다. 월드컵이 이제 정말 코앞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4년 전,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일을 되풀이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그리고 그 결과도 안 좋다는 것은
-삑, 삑, 삐이익-!
[아, 결국 오늘은 양 팀 모두 득점 없이 끝납니다.]···조금 힘들구나.
***
<2018년 5월 A매치 친선경기>
2018. 06. 01.(금) 20:00(UTC+9)
[경기 종료]대한민국 1 : 3 보스니아
[골]대한민국 : 이제성(30)
볼리비아 : 에딘 비슈차(28, 45+1, 79)
***
[왜 신 감독이 4-4-2를 버린 건지 모르겠습니다. 월드컵이 지금 코앞인 상황에서 굳이 잘 돌아가고 있던 시스템을 변경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그리고 그 순간, 각종 커뮤니티도 거기에 공감가는 댓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신감도 왜저러냐 국가대표가 실험하는 자리야? 증명하는 자리지. 23인도 지금 확정지어놓고 뭐하는건지 모르겠닼ㅋㅋ
ㄴ월클병 걸려서 그럼, 대한민국 꼬라지에 뭔 쓰리백이야 쓰리백은.
ㄴㅇㅈ. 그냥 전원수비로 가야지
ㄴ공감하는 1人
ㄴ2人
[이것으로 월드컵 전 연습경기는 끝나게 되는데. 그저, 월드컵에서는 조금 다른 장면이 나오질 않길 바랄 뿐입니다.]-*-*-*-
-나가뒤져라 이 ㅅㄲ야 그따위로 볼 차놓고 왜사냐?
-이딴 새끼가 프랑스 리그 베스트 11이라니 수준 ㅉㅉ
-어휴 ㅄ
-탁.
“······”
휘유. SNS가 난리 났네. 아주 그냥 난장판이 따로 없다.
“에휴, 노트북 괜히 봤다.”
확실히, 국가대표는 악플의 강도가 좀- 아니 많이 맵다. 아직 평가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반응이라니.
‘내가 옛날에 청년FC한테 좀 쓴소리 했을 때도 욕 좀 많이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그것하곤 비교가 안 된다. 안 돼. 두어 경기 꼬라박으니까 지금은 그냥 내가 죽일 놈이여, 죽일 놈.
“쯥, 마음같아선 확 다 말해버리고 싶네.”
일단 내부적으로 4-4-2는 완성되었다고 보기에 경기에서 후반전 체력이 떨어졌을 때의 대처법이라던지 그런 걸 기르기 위해서 후반전 위주로만 사용하는 거고.
다른 전술로서 쓰리백을 쓰는 건 중앙 미드필더 월드컵에서 1승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중앙 싸움을 어떻게든 약소 우위라도 가져가기 위함이며.
마지막으로 내가 굳이 미드필더로 나오는 건 성룡이 형님이 몸이 안 좋은 상태여서 빠지거나 컨디션이 월드컵 때까지 잘 안 올라올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볼 배급에 문제가 생기니까 그러는 거라고-참 마음만 같아서는 그렇게 다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걸 다 말할 수는 없겠지.’
이걸 다 언론에 말하면 속이야 시원하겠고, 당장의 오해야 풀리겠지만··· 막말로 그렇게 해서 얻는 이득은, 단지 그것뿐이다. 오해를 푸는 것.
우리 입으로 우리의 작전과 약점, 그리고 부상선수의 현황까지 모두에게 까발리면서 적들이 우리 성세를 훤히 알도록 만드는 것 치고는 전혀 수지타산이 안 맞는 행동이란 거다.
‘뭣보다, 말해도 오해가 풀릴지도 살짝 미지수고.’
애초에 이런 걸 해결하려면 좀 길게 말해야 하는데, 원래 사람들은 긴 해명에는 관심없다. 정치인들이 구구절절히 긴 해명을 하는 걸 봤나?
‘하물며 요즘 사람들은 뭔 말만 하면 좀 짧게 줄여서 말하라고 많잖아.’
사람들이 진지 엄격 근엄을 요구하는 정치가 되더라도 조금만 글이 길어져도 세 줄이상이면 안 읽는다느니 그러는 사람들이 꽤 많단 말이다. 하물며 가볍게 즐기려고 드는 사람들이 많은 스포츠에서 긴 해명을 받아들인다?
그런 걸 기대하느니, 차라리 메시가 바르셀로나를 떠난다는 소리를 믿는 게 더 나을 거다.
“에휴, 이대로는 잠도 안 올 것 같은데, 나가서 좀 걷다가 올까···?”
-딩동.
“예, 예, 나갑니다.”
에고, 이 시간에 누가 찾아온 거- 어라.
“요한이 형?”
“그래. 나다. 뭐 좋은 거 얺냐?”
갑자기 찾아와서 뭔 소리- 아 잠만, 저 카메라.
“방털기에요?”
“그래.”
방털기. 팀에서 가끔씩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국가대표 선수들 방을 방문해서 뭐 하나하나 팬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거.
“근데 그걸 왜 형이 찍어요, 서울이면 몰라도 여기에선 주장도 아니고 23인 말석으로 간신히 뽑히신 분- 워, 워, 형님. 저 이제 백억짜리 몸입니다. 손 내려-”
그러나 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악! 탭! 탭! 탭! 항복! 항복!”
선배님은 한 손으로 주저 없이 기술을 걸어 버리셨다. 시발. 축구실력보다 격투기 실력만 더 느신 것 같다 진짜. 역시 K리그 최강의 더티-
“아야아아! 왜 또 그래요!”
“눈 보아하니, 또 이상한 생각 하고 있는 게 뻔히 보인다. 너 방금 속으로 내 욕했지?”
···어떻게 알았지?
“하여튼 너 짐 좀 보자- 뭐야, 너 왜 이렇게 축구화가 많아?”
“아, 그거 쉽게 망가져서요.”
“···설마 너 아직도 브랜드 엄브로 쓰냐? 너희 팀 나이키나 아디다스에서 후원해주지 않아?”
“뭐··· 내구성 빼고는 만족스러워서요.”
애초에 후원받아서 쓰는 이상 축구화 값은 안 드니 내구성이야 별 문제 없는데다.
“그리고 이번 월드컵에서도 계속 쓸 경우 꽤 좋은 금액으로 후원해준다고 연락이 왔거든요.”
돈 준다는데 뭐.
“···쯧, 그럼 뭐, 딴 거는 없어? 좀 가격 나가는 걸로- 오, 유니폼 있네, 이걸로 하지 그러냐?”
그러나, 난 그 말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글쎄요. 제 유니폼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과연, 이렇게 여론이 안 좋은 상황에서 내 유니폼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내 말에, 요한이 형은 내 짐을 뒤적거리면서 한 마디 던졌다.
“어쩔 수 없다. 그게 멀티 포지션을 하는 선수들의 숙명이야.”
“······”
“원래 본 포지션 잘 하기도 바쁜데, 다른 곳 갔다가 잘 하면 본전이고, 못 할 경우 기존 선수에 비해 못한다면서 본래 포지션 평가도 깎아먹게 되거든.”
그래서, 원래도 나름 좋은 선수라고 생각했던, 저 사람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형은 어떻게 몇 년째 계속 멀티 포지션이 되는 거예요?”
어떻게 저 형은, 몇 년째 저게 되는 걸까. 오른쪽 측면, 왼쪽 측면, 중앙. 그야말로 미드필더 전 지역에서 모든 롤을 다 맡아보면서도···
당당히, 이 최종 월드컵 멤버에 뽑혔다.
“안 헷갈려요? 아니, 헷갈리는 것도 헷갈리는 거지만, 이런 생각 안 들었어요? 좀 더 나은 포지션 찾아서 정착하면 조금 더 나은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같은··· 그런 생각이요.”
사람은, 잘 할 수 있는 것 하나에만 집중했을 때 효율이 극한으로 올라가고,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당장 내가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고 난 후 3년간 정말 미친듯이 달라진 것만 봐도 알지 않는가.
그런데 저 형은 멀티 포지션을 하는 자라면 모두가 빠지게 되는 이 가불기에, 어떻게 무너지지 않은 거지?
“그냥.”
“···네?”
“그냥이라고. 그냥 이것도 하다 보니까 익숙해진 거다.”
“······”
너무나도 너무나도 허무한 답변이었지만.
“솔직히, 나라고 해서 멀티 포지션 좋아하는 건 아니였다. 물론 풀백으로 뛰는 것보다야 중앙 미드필더를 조금씩이나마 뛰는 게 대우가 더 좋은 편이긴 하지만, 솔직히 전문 멀티 요원이라는 건 신경 쓸 게 넘쳐나니까.”
그 허무한 대답은.
“그런데, 솔직히 우리가 그런 걸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냐?”
“···아니죠.”
“그래, 저어기 성룡이 정도면 몰라도, 난 좀 애매해가지고 그런 식으로라도 한 경기 더 뛸 수 있으면 만족이었고, 그러다 보니 굳어진 거였지.”
진실성이 넘쳐나는 대답이기도 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매번 최선을 다 하고, 그 결과가 좋길 바라는 수밖에 없어. 원래 사람이란 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다 결과가 안 좋으면 어쩌려고요.”
“그럼 뭐 욕 더럽게 쳐먹는 거지, 이제 와서 욕 먹는 게 두려워?”
두렵냐고? 그야-
“당연히 두렵죠.”
“···이럴 때는 안 두렵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리고 니는 악플같은 거 신경도 안 쓰는 스타일이잖아.”
“아니, 딴 거면 몰라도 월드컵이잖아. 안 두려울 수가 있어요?”
내가 상식적으로 반응하자, 형님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쯥, 너도 잃을 게 옛날에 비해서 많아져서 그런지, 좀 재게 됐구나.”
그렇게 한 마디를 툭 던지고, 내 가방에서 뭔가를 떡하니 꺼낸 요한이 형님은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얌마, 감독님이 빙신이냐? 아니면 우리가 빙다리 헛다리로 보여?
“······”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시킨거고,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 널 미드에 박는 걸 별 말 없이 따르는 거야.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면 전혀 동의 안 했어. 슈틸리케 때처럼 들이받았을껄.”
틀린 말은 아니였다. 대표팀에 들어오고 짬밥이 좀 쌓이면서 알게 되었던 거지만··· 슈틸리케 그 인간은 아시안컵 때부터 이미 선수들이 대놓고 항명했다고 했으니까.
“다들 동의한 거야. 니가 미드로 나가는 게 좋다고. 그래야, 운에만 기대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게임이 될 테니까. 너도 4-4-2만으론 우리 조별 통과하기 힘들다는 거 알잖아.”
“하지만-”
“그리고!”
아니 왜 말을 끊으시는-
“아직 시간은 열흘, 열흘 남있다. 어떻게든 세네갈전 때까지만 그 습관 고치든, 메꾸던 하면서 만들어 봐. 그 때 통하면 프랑스나 덴마크 얘들한테도 통한다는 소리잖아.”
“···그야 그렇지만···”
볼리비아야 월드컵 진출도 못하고 자국 리그 일정이 바쁜 탓에 평범하게 약팀이 올 가능성이 높지만, 세네갈은 좀 이야기가 다르다.
세네갈. 02년도 8강에 올랐던, 저력이 있는 팀이자. 현재도 리버풀의 사디오 마네, 나폴리의 쿨리발리가 에버튼의 게예가 각각 수비-미드-공격진에서 코어로 단단하게 버티고 있으며, 2포트에 배정받으며 다크호스로 분류되는 명백한 강팀.
“거기에서 통하면 가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야.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 말과 함께, 요한 형은.
“그건 그렇고, 니 암만 봐도 가장 좋은 건 이 아디다스 운동복 같은데, 이걸로 할래?”
“···아, 아? 예. 뭐 그러세요. 팀에서 나눠준 거라 그건 많거든요.”
“오케이, 그럼 이걸로 하고···.”
그렇게 운동복을 두어 벌 손에 든 요한이 형은, 나가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니가 가장 오래 있던 팀은 어디냐? 상무지?”
“···뭐, 제가 가장 오래 뛴 팀이 상무니까요.”
“그럼 군인 정신으로 해보라고. 안 되면?”
“···되게 하라.”
“그래, 그냥 그렇게 해라. 넌 그럴 능력도 있으니까. 그럼 이 아디다스 운동복 가져간다. 빠이.”
그 말과 함께 나가는 요한이 형님을 보고,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예, 그럴게요.”
휴.
그래, 어차피 낙장불입이다.
그리고, 뭐 내가 풀백 할 때도, 뭐 많은 준비를 하고 했었던 거였나?
‘도저히 하다가 하다가 벽에 부딪히는 순간에 억지로 변경한 거였지.’
그리고, 그 선택은 그 때는 그렇게 좋은 선택까지는 아니였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그냥.
그냥. 해보자.
이 선택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