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Football Survival RAW novel - Chapter (232)
프로축구생존기 프로축구 생존기-232화(232/242)
월드컵이라는 무대 (2)
“자, 일단 이거 하나 마시면서 말해라.”
“아, 차 감사합니다. 직접 끓이신 건가요?”
이거 좀 비싼 찬데?
“그래, 해외에 있다 보면 취미 하나쯤은 만들게 되거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너도 알지 않아?”
흠, 그런가? 하긴 그런 것 같긴 하다.
“예, 덕분에 팔자에도 없던 공부 좀 열심히 할 수 있었죠.”
내가 옛날에는 공부를 많이 안 해서 몰랐는데, 하면 할수록 느껴지더라. 이게 시간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거.
아마 내가 한국에 있어서 뭐 다른 할 일이나 놀거리가 많거나 했다면 절대로 이렇게까지 공부하진 못했을 거다.
“아, 하긴, 넌 벌써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데 별 문제 없다고 했지? 대단하네. 얼마나 공부한 거야?”
“그냥 프랑스 만화 보고, TV 보고 이것저것 했죠.”
그렇게 살짝 어색함을 풀어줄만한 가벼운 몇 마디를 나누다가.
“뭐, 우리가 엄청나게 친한 사이는 아니니, 이렇게 할 말이 있다는 건 좀 진지한 이야기를 하자는 거겠지? 무슨 일이야?”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선배님은 슬슬 국대 은퇴를 생각하고 있으시다고 했잖아요.”
“뭐, 웬만하면 아시안컵까진 뛸 예정이긴 한데, 그렇지.”
휴, 좋아.
“왜 벌써부터 은퇴를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다음 월드컵도 선배 정도면 불가능하진 않은데.”
빠른이라 선배고, 존댓말을 쓰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와 같은 89년생, 2018년 현재 30살이자 28~29세인 나이.
전성기의 끝자락인 이 나이에 팀의 핵심으로 꼽힐 정도의 기량이라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긴 하지만 큰 부상이 없다는 가정하엔 4년 후, 그러니까 다음 월드컵까진 어느 정도의 기량 유지는 가능한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
‘물론 그 때까지 팀의 코어로 버틸 수 있느냐는 좀 다른 문제지만.’
그래도, 현재 대한민국의 핵심이라고 할 만하고 그걸 넘어 역사상 최고의 중미라고 할 만한 저 선수가 국가대표를 이번 월드컵 이후 바로 은퇴한다고 말하기엔, 조금 이른 나이라는 거다.
“그게 궁금했던 거야?”
“예, 궁금합니다.”
“···흠,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뭐, 최대한 간략하게 말하자면 두 가지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렇게 말한 주장은, 먼저 첫 번째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몸이 안 좋다는 게 가장 기본적인 이유야. 10년 가까이 외국과 한국을 왔다갔다하며 뛰니까. 이제 슬슬 멀쩡한 곳이 없어지더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나도 모르게 끄덕이긴 했다.
유럽, 아니 해외에서 뛰면서 국가대표를 뛴다는 건, 두어달에 한번씩 비행기를 몇시간씩 타고 엄청난 시차를 극복하며 경기를 뛰고 나서, 풀 쉴 틈도 없이 다시 돌아가 훈련과 경기를 반복해야 하는 그런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이게 몸에 좋다는 소리는 ‘절대’ 못한다. 애초에 10시간 이상씩 한 장소에만 틀어박혀 있다보면 일반인도 컨디션이 다운되는 걸 느끼는데 운동선수는 오죽하겠는가.
물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도 그걸 알기에 선수들을 A매치에 소집할 때마다 비즈니스 클래스를 제공하고, 원정비를 지급하는 등 배려를 해주고는 있지만···
“국대와 소속팀을 왔다갔다하면서 버티려면 회복력이 빨라야 하는데, 이 생활을 이제 10년이 가깝게 해오다 보니 이제 슬슬··· 힘들긴 하더라고.”
솔직히, 개인의 몸 상태만 생각한다면 아시아나 남미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빠르게 국가대표를 은퇴하는 게 선수생활을 길게하는 데는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는 예상한 첫 번째 대답 이후.
“그리고 두 번째 이유도 있어.”
“두 번째요?”
그는, 조금 다른 이야기도 꺼냈다.
“그래, 이건 첫 번째 이유랑 연관되는 거기도 한데, 내가 너한테 말을 걸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었지? 거의 무관심에 가까웠잖아. 주장인데도.”
“······”
그러고 보니 그렇긴 하다. 당장 소속팀에서 주장이었던 파예는 나한테 가장 먼저 친근하게 굴었고, 맛집도 데려가는 등, 소위 친목 활동을 활발하게 했지만.
국가대표에서의 나는 주장에게 거의 무관심의 영역에 가까웠다.
“물론 기본적으로 나이가 좀 있다보니 알아서 잘 할 거라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원래 주장이라면 이런 거 하나하나 새심하게 챙겨야 하는데··· 그런 걸 하나도 못 해줬잖아. 주장임에도 말이야. 그러면 안 되는데도.”
그렇게 말한 후, 주장은 잠깐 뜸을 들인 후.
“그리고, 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제는 거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진 탓이고. 그래서 첫 번째랑 관련이 있다고 말한 거지.”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기성룡이란 선수는 점점 나이먹고 약해져만 가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어지고 있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어져만 갈 텐데 과연 내가 이 국가대표 주장이란 자리를 계속 지키는 게 맞을까?”
“······”
“그렇게 버틸 바에야, 아직 힘이 그래도 남아있을 때 깔끔하게 국가대표를 그만두고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
그 말을 듣자, 나는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은퇴 전, 에브라가 했던 말과 너무나도 비슷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얼마 남지 않을 거라곤 생각했고, 고민도 나름대로 해봤던 주제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조금은 시간이 남아있을 만한 고민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그를 비웃듯이, 어느새 그 질문은 내 또래에게도 적용되고 있었다.
“···그럼, 진짜 이번 월드컵 끝나고 은퇴하려고요?”
“···글쎄? 그래도 막상 그 상황이 오면, 번복 아예 못한다는 말까진 못 하겠다. 10년 가까이 해온 짓이니까. 아쉬운 마음에 번복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덤덤하게 말한 주장은, 오히려 나에게 질문을 걸어왔다.
“근데 말하다 보니, 나도 궁금해지네. 질문 하나 해도 되냐?”
“얘? 예, 얼마든지요.”
“너는, 대표팀 언제까지 버텨볼 생각이야?”
···어, 글쎄요? 진지하게 생각은 안 해 봤는데.
“···뭐ㅡ 아직은 건강하니 버텨볼 수 있을 때까진 버텨볼 생각인데요. 저야 유럽에서 생활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몸 상태가 아직은 부상병동은 아니니까···”
그렇게 내가 대충 생각나는 대로 말을 주워담는 모습을 보더니.
“생각을 안 했던 모양이네.”
“···그렇죠?”
“다행이네. 그럼.”
“네?”
좀 뜬금없어 보이는 소리가 나왔다.
“그야, 그런 마인드라면 다음 월드컵에 무슨 수를 써서든 참가하려고 들 꺼거든. 베테랑이 참가해준다니 마음이 놓이네.”
“···네?”
“응? 왜 놀라? 니 실력이면 이미 주축이긴 하잖아? 뭐 다음 주장은 실력으로 보나 위치로 보나 흥빈이가 될 것 같긴 하지만, 그 때쯤 되면 너도 대표팀 연차도 쌓였을 테니 베테랑 노릇하긴 충분하지 않겠어?”
아니 물론 나도 그 때까지 국대에서 뛴다면 내가 최고 베테랑이자, 주축 중 하나일 거라는 걸 막연히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제 말의 어디가 다음 월드컵에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걸로 들린 거죠?”
애초에 나와 출생년도가 같은 선수가 저렇게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 하고 있는데, 다음 월드컵에 베테랑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소리가 뭔 말이냐.
심지어 풀백은 수명도 짧디 짧아서, 오히려 저 사람이 더 길게 뛸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 현실인데 말이지.
“너는, 내가 보기엔 몸도 몸인데, 아직 덜 지쳐있거든. 이걸 뭐라고 해야하지··· 아, 그래. 넌 프로 선수들이 언제 가장 은퇴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뭐 뻔했다.
“더 이상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죠.”
은퇴하려고 마음먹었던 내가 그랬고, 에브라가 은퇴할 때 그러지 않았나.
“오, 생각 이상으로 꽤 핵심을 찌르는 말이네, 반은 정답이라고 말해줄게.”
···반만 정답이라고? 그럼 나머지 반은 또 뭔데?
“나는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어야 한다고 봐, 이 정도면, 그래도 많이 달려왔지. 할 수 있는 경우. 그것까지 겹쳐져야 완전한 정답이라고 본다.”
“······”
그 말에,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메시가 은퇴할 ‘뻔’ 하긴 했지만, 번복한 후 지금은 국대 은퇴하겠다는 소리가 안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월드컵에서 우승 못할 경우 ‘당연히’ 다음 월드컵까지 나올 거라고 예상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GOAT.
월드컵을 한 번이라도 따낸다면, 펠레와 마라도나를 뛰어넘어, 축구 역사상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자리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고.’
내가 은퇴하려고 결심했을 때, 왜 결국 은퇴하지 않고 풀백으로의 전환을 받아들였는가. 못 다 이룬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내가 선수로서 보여준 게 너무나도 없다는 울분과, 지푸라기라도 잡아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겠다는 마음이 지금의 이 결과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프로인 이상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말은 지겹게 듣고, 솔직히 나도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사람이란 게 영원히 열심히 살 수는 없잖아? 그런데, 솔직히 나는 이제 사실상 이뤄볼 만한 거 다 이뤄봤거든.”
더 이상, 큰 울분이 더 이상 없는.
“월드컵도 어릴 적에 16강 가 봤고, 대표팀 주장도 해 봤고, 세계 최고의 무대라고 할 만한 무대에서도 오래 뛰어 보고··· 그나마 챔스 정도가 좀 아쉽긴 한데, EPL에서 뛴 세월이 있다 보니 좀 아쉽다 정도지 후회되거나 하진 않아서.”
선수로서 이미 이룰 걸 다 이루는 자는.
“그래서, 선수생활에 솔직히 큰 미련이 없거든, 어딜 가도 괜찮고, 뭐 어떻게든 되겠지 같은 생각이야. 돈도 충분히 있으니까.”
프로로서의 책임감이라는 이 힘든 짐을, 약간은 내려놓고 뛰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나.
“근데, 너는 생각을 전혀 안 했다는 걸 보면, 아직 덜 지쳐있다는 거야. 아직은.”
“······”
···그런가. 아직은. 즐거운 건가?
‘···내 생각에는 옛날보다는 이런 감정이 좀 죽은 것 같은데 말이지.’
옛날이라면 여기에 그런 건 한 번도 생각도 안 했다고 말했을 테니 말이다.
‘뭐, 그래도 이런 건 나 자신도 자신이지만, 이런 길을 미리 걸어본 선배가 더 잘 알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그냥 무던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씀 감사합니다.”
“아냐, 큰 짐을 너희들한테 준다고 하는 건데, 오히려 미안하지. 더 궁금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찾아오고, 질문해라.”
“하하. 예.”
그렇게 약간의 찜찜함은 남았지만 나름대로의 궁금증을 풀은 나는, 떠나기 전에 문득 한 가지 의문이 하나 더 들었다.
“아, 그럼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뭔데?”
“그럼, 주장을 이때까지 버티게 한 건 뭡니까?”
나는 궁금했다. 저 선수가 국가대표를 곧 은퇴하려는 이유는 말해줬지만, 지금까지 버티게 한 그 열망은 무엇인지를.
그러자,
“그야, 뻔하지. 어릴 적, 선배들과 함께 이뤄냈던 그 때의 감정을. 영광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것. 그거 하나지, 그래서 몸 상태를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은 거고.”
어찌 보면, 뻔하고. 어찌 보면 굉장히 이해가 안 되는 답변이 돌아왔다.
“궁금한 건 다 풀렸냐?”
“예.”
“좋아, 그럼 난 이만 가봐야겠다. 물리 치료 받으러 갈 시간이 됐거든.”
“아, 그런가요, 그럼 차는 제가 치우겠습니다. 어디에 놓으면 될까요?”
“아니, 그럴 필욘 없어, 내가 나중에 치울 테니까 걍 가라. 그럼, 잘 가라.”
“예,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온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휴, 월드컵이란 무대가 뭐길래.’
뭐, 월드컵이란 무대가 얼마나 큰 무대인지는 잘 안다. 아주 잘 안다. 내가 어릴 적, 02 월드컵 시절 때 전 국민이 얼마나 축구에 미쳤었던가.
하지만, 직접 뛰는 선수로서의 생각으로는, 월드컵이란 무대가 축구인들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라고는 생각하지만. 솔직히 ‘최고로 수준이 높은 무대’ 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1년 내내 붙어다니면서 발 맞춘 클럽팀보다 2개월에 한 번씩 겨우겨우 발 맞추는 대표팀이 더 잘하는 그거야말로 이상한 것 아닌가?
옛날 스페인이나 지금 독일이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이유도 같은 클럽팀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가 많다는 것을 이유로 꼽기도 하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고.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도 소속팀의 우승을 꿈꾸던 위대한 선수도.
몸 상태가 거지같아서 국가대표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 선수도.
마약 빨아서 국가대표 은퇴했던 선수도 어떻게든 꼼수를 써서 뛰려고 하는.
모두가 열망하고, 갈망하는 무대.
그게 월드컵이다.
이 무대에서 뛴다는 게, 어떤 느낌이길래 그러는 걸까?
‘···뛰어보면 알 수 있으려나.’
그래, 일단은 머리를 비우고, 뛰어보자.
‘프랑스라는 거함에 비벼보기라도 하기 위해선, 이런 잡생각은 없어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