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Football Survival RAW novel - Chapter (238)
프로축구생존기 프로축구 생존기-238화(238/242)
1승의 무게 (3)
내가 가장 경기에서 이기고 싶었을 때는 언제였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 해본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한 3년 전. 상무에 있을 때 겪었던 FA컵 결승전을 말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도박수에 도박수를 던지는 플레이였지만 말이지.’
아니 뭐 기존에 상의도 없이 풀백이 중앙으로 마구 움직이고 전술적인 진형 깨트리는 걸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으니까.
미드필더로 호흡 맞춘 적이 몇 번 있었다곤 해도 잘못하면 진짜 완전히 힘 하나도 못 쓰고 말릴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그게 잘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그 경기를 이기기 위해서 정말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고,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내가 프로에서 우승컵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지금
-뻐어엉.
[아, ]페루의 선수들에게서, 웬지 그 때의 내가 느껴졌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최소한
과거에 내가 했던 눈빛을 내가 받는 입장이라는 건 뭐라고 해야할까. 참 묘하네.
‘···뭐 그런 것 치곤 아직 우리가 주도권을 어느 정도는 잡고 있지만.’
지금 페루가 우리의 중앙 허리를 끊어버리는 이 수비를 파훼하기 위한 100점짜리 답안이라면, 측면에 남는 선수가 빌드 업을 전담하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의 수비진형에서 벗어난 풀백이나 윙어가 주도적으로 빌드업을 전담할 수 있으면 된다는 소리인데.
‘애초에 그 정도로 패스를 잘 할 줄 아는 측면 자원은 드무니까.’
윙어는 그런 것보단 드리블 돌파가 훨씬 우대받는 중요한 자리고, 풀백은 필드 내 11명의 자리 중에서 가장 연봉이 낮아서 그런지 저게 가능한 선수면 대부분 미드필더로 빠진다.
그걸 수행하려면··· 글쎄. 최소한 컨디션 좋을 때의 나 정도는 되어야 할걸.
다만, 축구는 답이 하나만 있는 객관식이 아니기에 100점짜리 정답만 있는 게 아니라 50점, 60점짜리 정답도 있고, 저 친구들은 지금 충실하게 부분 점수는 받을 만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단 첫째로.
‘거친 것도 거친건데, 저 놈들이 전체적으로 활동량을 미친듯이 늘리고 있네.’
우리의 수비는 ‘중앙 미드필더에게 갈 수 있는 패스 경로를 막는 것’ 이기에, 상대방의 움직임에 맞추어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저 쪽이 이리저리 계속 위치를 바꾸면? 당연히 우리도 막으려고 들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봉쇄가 풀리는 경우가 조금 더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둘째, 이게 좀 치명타이자 예상 외였는데.
[아, 게레로 선수가 기성룡 선수를 마크하는군요! 이게 무슨 일이죠?]게레로, 저 인간까지 내려왔다.
물론, 스트라이커가 미드필더 싸움에 가담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애초에 요즘은 좋은 스트라이커를 평가하는 항목 중 아래로 내려와서 영향력을 뿌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다.
게다가 우리 수비의 핵심인 중앙의 미드필더 패스길을 원천봉쇄하는 움직임이 2명 봉쇄에서 3명을 봉쇄해야 하는 식으로 난이도가 엄청나게 올라가니, 저건 우리 수비를 파훼하는 방법으로만 생각하면 90점짜리는 되는 답이다.
그래, ‘우리 수비를 파훼하는 방법’ 만 생각하면 말이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했다.
파울로 게레로.
페루 국가대표팀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이자 주장.
우리나라로 치면 옛날 박주영 선배나 박지성 선배같은 존재에 가까운, 현재 가장 비슷한 존재를 찾자면 아마 흥빈이라고 할 수 있는, 팀이 전원 수비를 하더라도 한 방 정도는 먹일 수 있도록 공격을 위해 전방에 남겨두게 되는 선수이자.
[게레로 선수가 미드필더 쪽으로 많이 내려오고 있네요. 약속된 움직임일까요?] [글쎄요, 미드필더 싸움에서 밀리니 스트라이커가 내려오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만, 게레로 선수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좀 의외이긴 합니다.]35세의 노장.
그가 지금, 미드필더까지 계속 내려와 중원 싸움에 가담하고 있었다.
‘저거, 체력을 아예 생각 안 한다는 플레인데.’
젊은 선수와 나이 든 선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라고 문는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배점이 높은 답을 꼽으라면 체력이다.
온 세상의 아버지들이 아이들이 태어나면 효율적으로 오래 놀아주기 위하여 체력을 덜 쓰고 노는 법을 자연스레 익히게 되는 것처럼, 활동량이 아무리 많던 스트라이커라 할지라도 나이가 들면 점점 활동 범위를 줄이면서 골을 넣는 데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거다.
그리고, 저 선수도 소속팀에서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아, 뚫렸습니다. 게레로가! 슛-!]-떼에엥-!
[골대에 맞고!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민제 선수가 루즈볼을 밖으로 내보냅니다!] [휴우, 정말 큰일날 뻔 했습니다. 저게 들어갔으면 정말 경기가 어려워졌을 거예요.]오늘 보여주는 모습은, 체력 소진 따윈 생각에 없다는 듯이 굴고 있었다.
‘하, 마약 빨고 국대 자격 정지나 쳐먹었던 새끼가 이기고는 싶다는 거냐?’
하긴 뭐, 간절하지 않았으면 항소로 어찌어찌 시간을 끌며 국대 자격을 어찌어찌 월드컵 전까지는 지켜내려고 하지 않았겠지.
약이나 빨아댄 놈인데다, 나름 성공한 인간이 월드컵 간절해 봤자 얼마나 간절하겠냐는 생각은 버려야 하겠다.
과거에 뭔 짓을 했든 간에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팀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었고, 아무래도 그 마음 한 편을 빠르게 버리지 않으면 당하는 쪽은 우리가 될 것 같으니까.
일단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민구야! 내려와! 미드필더 라인까지! 쭉쭉”
우리도 저기에 맞춰 중앙 미드필더 라인의 숫자를 늘리는 거다.
우리가 생각한 수비 전술은 저 쪽의 중앙 미드필더를 봉쇄할 수 있어야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는 건데, 저 쪽이 공격형 미드필더뿐 아니라 스트라이커까지 내려와 중원 숫자 싸움에서 우위를 가져온다면 우리의 전술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결국, 우리도 어느 정도는 저 쪽에 맞춰서 살짝 작전의 수정을 하긴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게 100점짜리 해결책까진 되진 못한다. 이렇게 스트라이커가 내려올 경우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이 확연하게 줄어들어 버리니까.
‘하지만, 지금 그건 저 쪽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체력을 쥐어 짜낸다고 해도, 분신술을 쓰지 않는 이상 선수가 골대에서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은 골을 넣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우리 전술을 파훼하는 100점짜리 답은 측면 자원을 활용하는 거라고 한 거다. 저렇게 스트라이커를 내리는 게 아니라.
그런데 양 쪽 모두 스트라이커를 내렸으니, 결국.
-삐이익!
[또 파울이네요, 오늘따라 경기가 유독 거친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1승을 거두지 못하는 팀은 조별리그 탈락이 유력해지니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중앙에서, 엄청나게 볼을 뺏고 빼앗기는 현상이 벌어지지만 결국 골은 나오지 않는 현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나마나, 갈수록 거칠어지겠지.’
승리를 해야만 하는 경기에서, 공격이 안 풀린다?
죽도록 파울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하.
-지끈.
‘···버텨 줘야 할 텐데.’
나도.
[아, 기성룡 선수, 다시 한번 공격 전개를 시도합니다.]다른 사람들도.
-*-*-*-
-삐익!
-삐익!
.
.
.
-삐이익-!
[아, 이준혁 선수, 심판이 살짝 태클이 깊었다고 판단했나 보네요. 파울입니다.] [경기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전반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양 팀 모두 파울이 10개를 넘겼네요.]후, 후우.
‘···젠장, 진짜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엄청나게 힘드네.’
내가 중앙 미드필더를 힘들어했던 이유가 새록새록 생각나게 되는구나, 이거 진짜 거친 것도 거친 건데 템포까지 너무 빠르니까 정신이 없어.
“휴, 놓쳤으면 큰일날 뻔했는데 잘했다. 준혁아.”
“···끄응, 예. 그런데 파울 불려서 다음에는 주장이 막아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연수가 좀 더 올라오던가.”
같은 선수가 연이어서 계속 파울을 저지르면 심판이 옐로카드를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는데, 지난 경기에 이어서 오늘 또 옐로카드를 받는다? 옐로카드 누적으로 3차전에 못 나가게 되는 거다.
“음··· 연수야, 너 더 올라올 수 있겠냐?”
“···솔직히 불가능까진 아니라고 생각해도, 확신까진 못할 것 같습니다.”
“···씁. 하긴 지금 니가 수비수에서 커맨더 역할을 맡고 있으니, 쉽게 밖으로 나오기도 애매하구나.”
···에휴, 하긴 오프사이드 라인 조율까지 맡고 있는데 반쯤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도 맡아주길 바라는 건 너무 지나친 부담이다. 어쩔 수 없지, 적당히 수위를 조절해볼 수밖-
“그래, 그럼 니가 당분간 공격 작업에 들어가라. 내가 수비 쪽으로 내려간다.”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시발. 내가 이 상황에서 공격을 지휘하라고?’
그냥 공격 기점 중 하나가 되는 정도라면 몰라도, 아예 내가 주도하라는 거잖아.
“···주장, 그건-”
그래서 내가 바로 그건 힘들다고 말하려던 순간.
-절뚝.
보였다.
“···? 잠깐만, 주장 지금···?”
“왜? 아, 나도 모르게 절뚝였나 보구나. 괜찮아, 주사 맞아서 아프진 않거든.”
···이런 시발, 그냥 나처럼 진통제 복용하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주사 맞아야 될 정도였냐.
“뭐, 하여튼 그건 둘째치고, 가능하겠냐? 힘들 것 같으면 말해라. 내가 좀 더 범위를 늘-”
“아뇨, 해보겠습니다.”
휴, 그래, 둘 다를 못하는 거지. 둘 중 하나를 하는 거라면 못 할 것도 없지.
‘다만 그래도 나 혼자서 공격을 하는 건 어불성설이야.’
그러니.
“연수야, 내려가면 영건이한테 좀 올라오라고 해라. 영건이 올라가는 정도는 커버 가능하지?”
“예. 그건 가능합니다. 어차피 저 쪽도 스트라이커 내려가서 훨씬 부담 덜하거든요.”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명확하다.
어떻게든 동료를 최대한 활용해 보는 것.
‘드리블은 너무 중앙 숫자가 많아서 제쳐봤자 바로 달라붙을 가능성이 높고, 적이 등 뒤에 달라붙은 상태에서 템포를 유지하며 패스하는 것 역시 힘드니.’
그러니.
[김승구! 깜끔하게 잘 막아냈습니다. 한국의 골킥입니다.]역시 연계뿐이다.
-탁.
[그리고 바로 살짝 길게 차주는 김승구 선수입니다.]일단 왼쪽으로 올라온 영건이에게 패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쳇, 흥빈이는 항상 수비수가 붙어있네. 그럼 제성이, 민구 둘 중 하나다.’
그러면 이제 선택해야 한다.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상대편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기에 좀 더 기습적인 패스가 가능한 제성이냐, 아니면 조금 더 가까운 민구냐.
일반적으로 이럴 때 내 선택지는 달리고 있는 제성이에게 패스를 찔러주는 거지만, 이번엔 좀 다르게 가 본다.
[민구 선수에게!]그리고 그와 함께.
“바로 턴! 빽!”
‘내가’ 파고든다.
[그리고 민구 선수는 바로 이준혁 선수에게! 이준혁 선수가- 페드로를 제칩니다!]휴, 다행이다.
내가 높게, 중앙으로 올라오는 건 처음이니 살짝 마크에 혼선이 올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맞았다.
‘자, 그러면 이제 아까와는 같지만, 또 살짝 다른 선택지다.’
왼쪽에서 달려오지만 옆에 수비수를 달고 있는 흥빈이.
흥빈이와는 다르게 수비수가 살짝 등 뒤에 있어서 아마 제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진 않으나 아직 가속도가 붙지 않은 민구.
그리고, 현재 노마크에 달리고 있긴 하지만, 안쪽에 이미 제성이가 달려오는 경로를 가로막고 있어서 자칫하면 볼을 넘겨 줘 버릴 수도 있는 제성이.
‘···흠’
고민할 시간이 없는데, 다 하나씩은 하자가 있는 선택지다.
그러니- 일단 한 발짝 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립니다! 이준혁 선수!]두 발, 세 발.
자, 페널티박스가 코앞이다. 이제 한 발만 더 다가가면 내가 직접 슈팅을 날려도 이상하지 않은 위치. 어떤 선택이냐. 어떤 선택을 할 거냐!
[어느새 페널티박스 근처!]그 순간, 제성이 쪽에 있던 수비수가 살짝 몸을 돌렸다. 이러면-
[아, 그리고 이제성 선수에게! 이제성 선수! 달리고! 한번 접고! 슈우웃-!]제발, 제발!
-퍼억.
[아, 그러나 골키퍼가 몸으로 막습니다!]아 젠장, 완벽한 기회였는데. 이런 씨-
-휙.
어?
[아, 그런데 기성룡 선수가! 기성룡 선수! 슛! 슈우우우-웃!].
.
-떼에에엥-!
[아아아아아! 아, 너무 아쉽네요, 골대를 맞고 튕겨져 나가 버립니다.]“···허억, 허, 아, 시발! 존나 아깝네.”
···뭐야.
“언제 여기까지 올라와 있었어요?”
분명 아까 전 아래로 내려가서 수비에 조금 더 집중하겠다고 했었는데 여기까지 올라온 거라면, 진짜 내가 중앙선 넘어가서 연계 시작하자마자 위로 올라온 게 아니고서야-
“아, 니가 중앙선 넘어가서 찌르는 패스 한 번 넣은 순간 이건 최소한 슈팅은 간다- 생각해서 한 번 뛰어봤다. 아··· 진짜 너무 아깝네··· 하.”
···하하, 하.
“형, 지금 형 그렇게 전력질주 하면 안 되잖아요.”
진통제 주사 맞고 전력질주라니.
물론 진통제 주사 맞고 뛰는 선수는 꽤 흔해도, 저 상태로 전력질주 하면 허리에 미친듯이 부담 간다. 감각이 둔해져서 충격이 오는지 안 오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즉, 저런 짓이 선수 생명 팍팍 깎아먹는 짓인 걸 모르시지 않을, 아니 나보다 더 잘 알 인간이-
“야. 저 35살 먹은 아저씨도 저렇게 날뛰는데 내가 못할 건 없지.”
“······”
“그리고 부상이니 뭐니 이전에, 내가 뛰고 싶어서 뛰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라.”
그 말을 듣자,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아, 그나저나 이런 기회 쉽게 오지 않는데, 전반전이 이대로 끝나 버리면 너무 아쉬울 것 같··· 야, 너 왜 웃어?”
그래, 나보다 더 뛰어난 선수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이, 저렇게 부상과 고통을 참아가며 뛰고 있다.
“뭐, 그냥요. 그보단 빨리 돌아가죠, 잘못하면 저 쪽 역습 쳐맞겠어요.”
“···아, 그렇네. 시발, 쉴 틈이 없다.”
···그런데 내가 그냥 평범하게 열심히 뛰겠다는 마음으로 저 간절한 자들을 뛰어넘고 무언가를 이루려 들다니. 참 웃긴 일이지.
“후반전, 작전 변화 무조건 있겠죠?”
“그래, 지금 상황으론 계속 도돌이표니까. 저 쪽이든 우리 쪽이든 변화를 주겠지.”
물론, 이걸 깨달았다고 할지라도, 아직도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선 부족한 열의일 거다.
하지만 최소한.
“그렇겠네요, 그나저나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야, 무리 안 할 수가 있겠-”
“저도 있으니까요.”
최소한 간절히 원하는 자가 날뛸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데는 더 이상 몸을 아끼진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