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Football Survival RAW novel - Chapter (239)
프로축구생존기 프로축구 생존기-239화(239/242)
1승의 무게 (4)
꿀꺽, 꿀꺽.
“푸하아··· 아.”
“어. 야, 너 방금 그거 다 마신거야?”
“···아.”
나도 모르게 한 병을 다 마셔 버렸네. 젠장. 몸이 무거워지니까 음료수 절반은 마시고 절반은 뱉는 게 정석인데.
“하하, 오늘따라 너무 목이 타서요, 그래도 이 정도까진 괜찮지 않아요?”
“뭐 그렇긴 한데, 목마르다고 한 병 더 마시면 그 땐 좀 무리 가는 거 알지?”
“예, 예. 코치님, 전 이제 바나나나 먹을게요.”
“그래, 그래. 음료수는 이제 머금기만 하고 뱉어라.”
“예.”
휴우. 평소라면. 아니 평소가 아니더라도 이렇게는 안 굴었었는데.
‘···긴장해서 목이 탔던 건가?’
‘···휴으, 젠장, 긴장한 상태에서 생각 많이한다고 좋을 거 하나도 없다.. 긴장 풀자. 긴장. 머릿속 비우자고.’
그렇게 잠시 바나나를 우물거리며 머릿속을 천천히 비우다 보니.
-짝.
어느새 감독님이 들어와 전술판을 손대기 시작했다.
“자. 일단 전반전을 복기해보자면, 페루가 우리의 기본적인 전략을 잘 무너뜨리긴 했다. 우리의 계획대로 저 쪽의 패스 루트를 봉쇄한 시간은 굉장히 짧았고, 대부분은 완전히 개싸움으로 흘러갔지.”
그 말에 나를 포함한 전방의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것이, 그걸 온 몸으로 겪은 것이 우리들이니까.
“다만, 그렇다고 우리가 전반전을 헛되이 보낸 건 아니다. 저 쪽 공격의 핵심인 게레로가 좀 무리해야 했으니.”
그리고 그건,.
“후반 70분 정도를 넘어가면 교체 가능성이 높고 최소한, 정말 게레로가 제대로 각성을 해서 체력소모 따윈 잊어버린 듯이 뛴다고 해도 전반전처럼 미드필더 전역에 영향력을 뿌리긴 힘들 거다.”
즉, 가만히 있기만 하면, 우리가 약간이나마 더 유리하긴 하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건 너무 수동적인 대응이지. 다들 그걸 원하진 않겠지?”
감독님의 물음에 우리는.
““예.””
모두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대로 가면 아주 살짝 유리하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의해 뒤집힐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 약간의 우세가 잘 뒤집히지 않는 경기도 많지만
‘한 방만에 뒤집힐 수 있는 이런 상황에서 이 정도 약우세 가지고 안심하는 사람은 없지.’
이 경기는 월드컵이다. 4년마다 단 한 번 뿐인 대회. 여기에서 약우세 정도를 잡았다고 안심하고 자신의 기조를 유지한다?
그런 건 전력이 엄청나게 강력해서 자신들에 대한 믿음이 철철 흘러넘치는 프랑스, 브라질이나, 독일같은 놈들이나 하는 거다. 우리나라같이 최하위권에 속하는 팀은 본인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다만 페루가 우리보다 기본 체급이 우위인데도 우리가 약우세를 잡은 이 상황을 그대로 버린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탁, 탁.
“그러니, 일단 후반전 초반, 그러니까 한 5분에서 10분 정도는 3-5-2 진형, 정확히는 거의 5-3-2진형을 짜고 간을 본다.”
“그리고 확인 결과 만약에 저 쪽이 큰 변화 없이 중앙에 힘을 쏟는 기조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전반전에 사용했던 3-4-3으로 계속 간다. 다만, 수비형 3-4-3이 아니라.”
-탁, 탁.
“제성이가 빠지고 창운이가 들어가는. 기존에 우리가 B플랜으로 연습해온 역습형 3-4-3이다. 그 순간부터는 측면 기반으로 역습을 시도하는 싸움이 될 거야.”
“그리고 만일 저 쪽이 에메리식 4-2-3-1든 뭐든간에 측면 돌파에 힘을 싣는 방식으로 게임 플랜을 바꾸는 것으로 보인다면. 이 경우엔 변형 4-4-2로 간다.”
-탁, 탁.
“성룡이가 빠지니 기본적으로 조금 투박한 축구가 되겠지만, 전반전과 후반전 초반 아껴둔 체력을 기반으로 공격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둘 다 특별한 비책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팽팽한 상황에서는 준비를 철저하게 해온 포메이션을 내미는 것이 정석이었으니.
물론 더 좋은 대책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좀 더 좋을 것 같다며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전술을 들이미는 것은?
‘나 그냥 지고 싶어요’
하는 소리에 가까우니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반년동안 진행한 프로젝트의 주제를 제출 직전에 뒤엎자고 하는 것과 비슷한 주장처럼 여겨질 거라고 하면 되려나.
-탁.
“여기에서 선수가 더 교체되거나 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인 큰 틀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다. 그럼 전체적인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질문 있나?”
그러니 나 역시 이 전술에 대해 불만은 없다. 하지만.
“···저기 감독님, 잘못된 것 아닙니까?”
이건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4-4-2일때 중앙에 주장도 없는데 제가 풀백으로 가는 게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나는 풀백 겸 미드필더다.
그래, ‘겸’ 이다.
풀백으로서의 나는, 꽤 괜찮은 선수다.
수비적인 측면에서 비교를 불허할 수준까진 아니지만 빠른 발과 좋은 체력으로 충분히 수비수로서의 역할을 할 줄 알고, 공격에서는 빠르고, 정확한 크로스가 있으며, 스로인이라는 무기가 있으니 충분히 상위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드필더로서의 나는, ‘글쎄’ 라는 말부터 나오는, 제한사항이 많은 선수다.
일단 제공권이 없고, 패스를 꽤 줄 줄 아는 편이지만 정작 압박에 약해서 미드필더로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수비 말곤 제한되기에 아무리 좋게 평가해주려고 해도 조합을 좀 탄다.
대표팀 수준에서 내가 제대로 미드필더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성룡이 형님과 짝을 짓는 게 필수일 정도로.
그런데, 4-4-2에서 성룡이 형님이 빠지는데 내가 중앙 미드필더라? 이상하잖나. 게다가 빌드업해야 하는 성룡이 형님은 또 왜 빠지냐. 4-4-2를 하더라도 최소한의 빌드업은 하는 게 좋은데 이렇게 할 경우 진짜 측면싸움으로만 가야-
“···그건, 현재 성룡이의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기 때문이다.”
“······”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감독님, 뛸 수 있-”
“기성룡, 고집 부리지 마라. 솔직히 넌 조금만 더 부상이 악화되면 바로 월드컵에서 아웃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지금 네가 4-4-2에서는 뛸 수 없다는 걸.”
“······”
그래, 우리는 최선의 선택만을 할 수 있는 강팀이 아니다.
“현재 성룡이가 빠질 경우, 솔직히 우리 팀에서 단독으로 빌드업을 할 수 잇는 선수는 없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중앙 미드필더에 최대한 수비적인 성향의 선수들을 우겨넣고 버틴 다음, 측면을 이용한 역습이다.”
없는 살림에 있는 것 없는 것 전부를 끌어모아서 어떻게든 누더기라도 좋으니 승리라는 것을 가지고 싶어하고, 가지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하는.
“그래서 톱에 지철이, 너를 넣은 거기도 하다. 지철이. 너는 포메이션상 공격수로 분류되긴 하겠지만, 사실상 흥빈이가 뛸 수 있는 길을 제공하고 준혁이가 가끔씩 중앙에서 볼을 전개할 때 고립되지 않도록 미드필더 라인에서 논다고 생각해라. 알겠나?”
약자들이니까.
-꽈악.
‘···참, 어렵다. 어려워.’
1승을 따낸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가.
“···흠, 다들 아주 결심을 단단히 한 표정을 짓고 있구나, 좋아. 원래는 세부 전술을 말하고 난 후에 말하려고 했지만, 지금 말하는 게 좋아 보이는군.”
휴, 그래. 딱 좋게 달아오른 타이밍이다.
여기에서 감독님이 몇 마디 잘 던져주신다면. 이 열의를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
“져도 된다.”
···예?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려던 찰나.
“져도 된다고.”
감독님이 내 의문에 답변하듯이, 방금 한 말을 반복해주셨다.
“페루와는 달리, 우리는 오늘 진다고 해도 16강 진출히 막히는 건 아니야. 덴마크전 이기면 꽤나 높은 확률로 16강 진출이 가능하다.”
···아니 뭐, 프랑스가 페루를 이길 확률이 높으니까 틀린 말은 아닌데 그걸 지금 말해도 되는 건가. 그렇게 말하면 오늘 게임은 뭐가 되는 건데.
“물론, 사람이란 게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다고 하면 지금 잘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경향이 있긴 하니 원래대로라면 이 점을 지적할 생각은 없었지만··· 너희들의 표정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의 표정이? 표정이 어떻길···
“벼랑 끝에서 자신들을 채찍질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
“열의를 불태우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까지 긴장해서야 어불성설이지.”
···그래,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더 실력이 밑인데 그런 생각이라도 갖지 않으면 어떻게 하란 말씀입니까. 감독님.’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속으로 자조하던 찰나.
“그리고 너희들이 잊은 것 같아서 말하는 건데. 지금 내가 이렇게 져도 괜찮다고, 이번 경기를 져도 다음 기회가 있다는 소리를 할 수 있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근본적인 이유? 글쎄. 그냥 우리가 너무 긴장한 것 같아서 긴장 풀어드리려고 하신 말씀 아니셨···
“프랑스에게 무승부를 따내서다.”
“······!”
“브라질과 독일에 이어, 우승후보 3순위라고 할 수 있는 팀. 프랑스를 상대로 당당히 승점을 따냈기 때문이다.
감독님의 그 말씀에, 나는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 그렇구나.
“페루는 강하다. 강한 팀이다.”
그래, 페루는 강팀이다.
이 월드컵의 당당한 2포트 팀이니까.
“그러나, 우리 역시 충분히 강하다.”
하지만. 우리도, 이 월드컵이란 무대에서 당당히 우승후보 팀에게 어느 정도 유효타를 먹였고. 전반전 동안 약우세를 가져갈 수 있을 정도로 만만치 않음을 증명했고,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 당연한 사실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있었다.
“좋아, 이제야 다들 괜찮은 얼굴이 되었군.”
““······””
“그럼, 세부 전술을 듣을 준비는 되었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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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알아들었으리라 믿고, 이만 나가보겠다. 좀 있다가 보자.
-꽝.
“이이쿠, 문 좀 약하게 닫아라.”
그러나,
“감독님.”
“왜?”
“굳이 방금 전 말씀을 해야 했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코치의 지적에, 신 감독은 피식 웃었다.
“져도 괜찮다는 이야기?”
“예, 아무래도 그냥 선수들의 정신력을 좀 더 강조하는 말씀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딱 선수들이 열의를 불태우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는데.”
코치의 그 말에, 신 감독은 쓰게 웃었다.
“그래,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냐. 나도 눈 없는 게 아니니까.”
신 감독은 평소에 정신력은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는 유형은 아니였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지. 그럼에도 감독이 이 방향을. 그러니까 선수들의 부담감을 덜어주는 쪽을 선택한 이유는.
“하지만 그 열정이란 측면을 아무리 부추겨도 우리 쪽 선수들이 정신력 측면에서 페루를 압도한다는 건 힘들어.”
그렇지만, 감독의 생각은 그럼에도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열정의 면에서 페루 쪽을 압도하긴 힘들 거라는 생각이었다.
1982년의 월드컵에서의 조별리그 탈락에서 7전 8기를 넘어 8전 9기, 거진 40년의 도전 끝에 월드컵에 진출하는 데 성공한 팀이자 이번에 지면 틸락인 팀.
1986년 월드컵에서부터 9번 연속으로 월드컵에 연속 진출한데다 저번 경기를 무승부로 끝내서 아직은 한 번 기회가 남은 팀.
솔직히, 여기에서 후자의 팀에 속하는 선수가 전자에 속하는 선수보다 강한 열정을 내뿜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축구 감독을 하면 안 된다. 정치를 해야지.
“게다가 열정 넘치게 뛰었다가 여기에서 부상 선수 한 명 더 생겨버리는 순간 우린 끝장이란 걸 알고 있잖나.”
“······”
“열정, 좋지. 좋아.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갈망한다고 승리가 무조건 오는 건 아니야. 열정만으로 모든 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자네도, 저 친구들도 이미 잘 알고 있나.”
그러니.
“도박수를 던져 본 거지. 뭐.”
잘 안 먹힐 수도 있지만, 어차피 열정을 잘 부추긴다고 해 봤자 간신히 동률이다. 그렇다면 승부수를 아낌없이 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감독님, 그렇다고 도박수 너무 많이 던지다가는 망합니다.”
물론 코치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꼼수는 정수에 망한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편법으로는 결국 한계가 있다는 게 그런 거 아니겠는가.
“그게 맞는 말이긴 한데, 지금 우리가 도박수를 아낄 때냐?”
물론 신 감독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도박수 아꼈다간 도박수도 못 내는 법이야.”
“···아까는 우리도 강하다고 하셨으면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나도 솔직히 페루가 우리보다 더 강한 팀이라고는 생각 안 해.”
다만.
“저 녀석들이 생각했던 만큼의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지.”
-짝.
“자, 그럼 이제 가 보자고. 경기를 뛰는 저 놈들이 긴장을 푼 만큼, 우리가 저 녀석들 몫만큼은 긴장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