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to make a group of 1st group of mangos RAW novel - Chapter (277)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77화(277/528)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77화
노골적일 정도로 본인만을 쫓아오는 카메라들.
그 장소가 지상이든, 바닷속이든, 별 차이는 없었다.
모든 게 자신에게 포커싱되어 있었다.
의현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제작진들에게 생긋 미소 지으며 몸을 돌렸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애초에 제작진들이 원하는대로 응해준 건 성해온 때문이었다.
그러니 안 보이는 곳에선 굳이.
지겨울 정도로 달라붙는 카메라들 사이로 주변을 살핀 의현은 조금 아래쪽에서 성해온을 찾아낼 수 있었다.
곧바로 성해온에게 다가가던 의현의 동공이 확장됐다.
잠시 사고회로가 마비되는 듯한 착각까지 일었다.
……성해온이 이상했다.
의식을 잃은 모양인지, 몸에서 미동은 사라지고 있었고,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의현은 반사적으로 팔을 뻗었으나, 수압은 이 모든 행동에 커다란 제약을 줬다.
의현은 근처에 있는 제작진의 허리에 묶여 있는 납벨트를 풀어 낚아챘다.
갑작스러운 행위에 깜짝 놀란 제작진이 밧줄을 꽉 움켜쥐며 자신에게 수신호를 취하기 시작했다.
위급 상황이니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수신호였다.
제작진의 얼굴도 새하얘진 걸 보니, 성해온의 사라짐을 깨달은 것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면, 위로 올라가서 전문 인력의 구조를 기다리는 게 옳았다.
하지만.
성해온은 어쩔 건데?
제작진이 경악하며 달려들었으나, 의현은 밧줄에서 손을 떼냈다.
체격이 커다란 제작진의 것이어서 그런지, 훨씬 더 무거운 납벨트가 의현의 몸을 빠른 속도로 가라앉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의현의 시야에 성해온이 어렴풋이 들어왔다.
성해온은 이미 호흡 장비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지?
몇 분?
아니, 몇 초?
안 돼.
죽게 둘 수 없어.
그래.
더 이상 잃지 않을 것이다.
* * *
의식이 끊겨갈 무렵에, 희미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성좌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애초에 기억의 파편은 시스템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일종의 오류니까.
‘……그럼 그 목소리는 대체.’
의문투성이였다.
첫 번째 기억의 파편이 해금됐을 땐, 이해성이라는 열쇠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무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어렴풋이 겹쳐 들려왔던 내 어린 목소리뿐.
심지어 기억이 온전치 않을 시절의 것이라, 진위를 파악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목을 매만졌다.
모든 게 꿈이었던 것처럼,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뇌가 녹을 것 같던 두통이 사라졌고, 도저히 쉴 수 없었던 숨이 쉬어진다.
‘쉬어진다’라는 말도 조금 웃기지만.
지금 나는,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체니까.
생각을 이어가던 나는 고개를 털어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도, 뒷수습도.
모두 내가 이곳에서 벗어나야 할 수 있는 것이니.
‘한 번 겪어봐서 알잖아.’
이 기억의 파편은…… 내게 보여줄 장면을 모두 보여줘야만 끝이 난다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는 그 말을 믿어보는 수밖에.
“이해온 신났네?”
“응!”
이해성의 물음에, 어린 내가 고개를 훅훅 끄덕이며 가방에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겼다.
“뭘 이렇게 챙겨? 가방이 네 몸보다 크겠다.”
“아냐, 내 몸이 더 커!”
“아닌데? 완전 아닌데? 이해온 몸보다 큰데?”
이해성이 익숙하게 나를 놀리며 ‘역시 5살짜리 놀리는 게 제일 재밌다’라고 작게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그걸 들으며 음, 소리를 냈다.
지금이 5살인 모양이군.
그럼 나와 9살 터울인 이해성은 14살일 테고.
나는 어린 나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창밖의 계절은 저번과 같은 겨울이었다.
게다가 그때의 나와 키가 엇비슷한 걸 봤을 때, 비슷한 시간선인가 본데.
아이들은 해가 거듭될수록 쑥쑥 자라곤 하니,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드르륵-
안방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온 것이다.
과거의 기억이 없는 관계로, 앨범으로만 추억하던 얼굴이다.
첫 번째 기억의 파편에서도 보지 못했던 얼굴이니, 이번이 처음.
그런 남자가 어린 나를 안아들었다.
“우리 아들, 그렇게 좋아?”
“응! 엄마랑 처음으로 다 같이 가는 여행이니까!”
엄마의 몸이 좋지 않았다는 것.
이건 첫 번째 기억의 파편 속에서 알게 된 정보 중 하나다.
이해성은 기억이 없는 내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앨범에 엄마의 사진이 없었던 것도, 아마 병색이 완연한 얼굴을 숨기기 위함이었으리라.
“음.”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이건 이 네 가족이 함께하는 첫 여행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린 나의 들뜬 얼굴도 설명이 되고.
* * *
가족이 탄 차가 출발했다.
운전석엔 아빠.
조수석엔 이해성.
그리고 뒷좌석엔 아직 어린 나와 엄마.
……그리고 나.
어린 내 옆에 조용히 착석한 나는 차내를 둘러봤다.
‘아빠 차인가.’
당연히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 시절의 고급 차량이었다.
우리 집안은 금전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시선을 천천히 올린 나는 부모님을 응시했다.
……이분들은.
그러니까, 나의 부모님은 1년 뒤. 내가 6살이 되었을 해에 돌아가신다.
“이해온, 우리 내기로 끝말 잇기하자. 이기는 사람은 엄마랑 아빠가 소원 들어주기~”
“조아!”
나는 고개를 붕붕 끄덕이며 의지를 불태웠다.
“해온이가 먼저 해?”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가위바위보로 결정한다.”
곧바로 승부가 펼쳐졌으나, 결과는.
“내가 이겼어!”
“어쩐지 주먹이 내고 싶더라…….”
작게 중얼거린 이해성이 말을 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시작해 봐.”
“해질녘!”
“와아악, 이해온 이 땅콩만 한 게 어디서 이런 악랄한(?) 수를 배워 와선!”
“……해온이가 똑똑한데?”
“아빠! 이건 칭찬해 줄 게 아니지이이!”
“오! 사! 삼!”
“이해온 카운팅 하지마! 잠깐만! 생각할 시간은 줘야지! 얌마!”
“이! 일!”
“…….”
다섯 살 어린이에게 영혼이 털려 버린 이해성이 널브러졌고, 어린 나는 푸하하 웃었다.
“내가 이겼다! 그치, 엄마?”
“응, 해온이가 최고네. 엄마랑 아빠가 뭐 해줄까?”
“으으음~”
어린 내가 눈을 꼭 감고 짧은 다리를 달랑거렸다.
무언가를 고뇌하는 듯이.
* * *
“아~ 이해온 이거 어려 가지고, 겨우 이런 거나 말하고 말이야.”
“누나였으면 뭐 말하는데?”
“나였으면 일단 어? 일단 용돈 불렀지.”
“으응.”
고개를 끄덕인 내가 말을 이었다.
“그래두 난 이거 좋아. 완전 커!”
어린 내 손엔 휴게소에서 판매하는 핫도그가 들려 있었다.
끝말잇기 우승자로서 선택한 상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내 과거를 흐린 눈으로 바라봤다.
정말 순수했었군.
혀를 끌끌 찰 무렵이었다.
“……나두 용돈 할 걸 그랬나?”
……아닌가?
자본주의에 찌든 마음은 어린 시절부터 한편에 존재했던 걸지도.
“푸하하, 아! 이해온 후회한다! 후회한다! 그리고 쪼만한 게 용돈이 뭐가 필요해! 뭐 사먹으려고?”
“아냐! 그거 말구.”
“그럼 뭔데?”
이해성이 말해보라는 듯 무릎을 숙였고, 나는 까치발을 들어 ‘생일’ 두 글자를 속닥였다.
“으음? 엄마 아빠 생일 멀었는데?”
“해온이 생일!”
“으으응? 네 생일?”
“선생님이 그러는데, 생일엔 부모님한테 감사합니다! 해야 하는 거래.”
“……와.”
닭꼬치를 손에 든 이해성이 고개를 절레 저었다.
“쬐끄만 한 게 누나보다 효도하면 못 써! 어어? 자고로 네 나이엔 잘 먹고, 잘 자는 게 최고의 효도라고. 알아들었어?”
“그럼 누나는 최고의 효도 하고 있는 거다!”
“쿨럭…….”
악의라곤 한 티스푼도 담기지 않은 순수한 대답에 강력한 타격을 입은 이해성의 얼굴이 칙칙해졌다.
“얘는…… 입 터는 직업을 시켜야겠는데, 떡잎부터 남달라…….”
“입 터는 게 뭐야? 턴다? 입을 어뜨케 털지? 턴다는 이렇게 빨래를 탈탈 터는 건데?”
어린 내가 짧은 팔을 퍼덕이며 빨래 터는 시늉을 하자, 이해성이 경악했다.
“와아아! 그 작게 중얼거린 걸 또 들었어? 그거 엄마 아빠 앞에선 쉿이야, 쉿! 절대 말하면 안 돼! 그거 못된 말이야! 지지야!”
“지지 아냐! 나 애기 아냐!”
“애기 맞거든? 너 말도 못하고 기어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큭.”
“노, 놀리……!”
“어? 울어? 울려고? 이런 데서 울면 애긴데? 애기 아니면 울면 안 되는데? 이야~ 이해온 애기네, 애기!”
* * *
“……너네 싸웠니?”
운전대를 잡은 남자가 입이 잔뜩 튀어나온 이해온을 응시했다.
“하나도 안 싸웠는데!”
“이야~ 이해온 다 컸는데! 그래, 임마, 그게 어른이야.”
이해성이 히죽대며 한 말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모양인지, 이해온의 입이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달렸을까.
창밖의 풍경은 서울과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변해 있었다.
“와아아아아!”
바다로 가득 찬 풍경에 감탄사를 내뱉은 이해성이 창문을 살짝 열었다.
“막내 덕에 가는 여행~ 너무 좋네.”
……내 덕에?
평범한 가족 여행으로 보이는데, 무슨 사정이 있는 건가.
나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해온이는 섭섭하진 않고?”
“하나도 안 섭섭해! 진짜!”
엄마의 물음에, 어린 내가 작은 손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생일에 맞춰 갔어야 하는 건데, 엄마가 갑자기 병원에 가느라…….”
엄마가 어린 내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기대 많이 했을 텐데, 엄마가 미안해서 어쩌지?”
그러니까.
원래 이 여행은 2월 7일.
내 생일에 예정되어 있던 건데, 미뤄졌다는 거로군.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무렵, 어린 내가 입을 열었다.
“엄마가 맨날 그랬잖아. 내 생일은 일주일이라고!”
“후후, 그건 그렇지? 생일주간. 해성이랑 해온이는 너무 귀한 아이들이라, 생일이 하루로는 모자라거든.”
“그러니까! 아직 해온이 생일 안 끝나써!”
“엄마도 진짜 유난이다. 누가 생일을 일주일씩이나 챙겨~?”
이해성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생일 주간.
이해성이 매년 챙겨주던 것.
……이건 엄마로부터 시작됐던 거였나.
이해성은 자신이 받았던 애정을, 기억이 없는 나에게 보여준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매년을.
갑자기 울렁거리는 속에,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차 내에 라디오가 재생됐다.
[네, 여러분.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발렌타인데이입니다. 초콜릿으로 마음을 표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 그리고 2월 14일의 탄생화를 아시나요? 캐모마일. 꽃말은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이랍니다.]라디오 DJ가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용기가 넘치는 하루가 되길, 그리고 역경에 굴하지 않는 하루가 되길! 굿모닝 FM, 오늘의 추천곡 듣고 오겠습니다-]“……오늘이, 2월 14일이라고?”
작게 중얼거린 나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파편의 해금 조건 중 하나는 날짜였나.
이번 <렛츠트래블>의 일정은 2월 13일부터 15일이었다.
즉, 기억의 파편에 휘말린 오늘이 2월 14일이라는 거지.
‘우연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나는 시선을 바로 했다.
어쩐지 두 번째 기억의 파편의 열쇠가 되는 건.
……나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 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