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109
그와 동시에 교실에 설치되어 있는 방음 장치가 발동했다. 그것을 느낀 것은 나뿐인 듯했지만, 아이들은 모두 의아한 눈으로 민 선생님에게 집중했다.
“너희들, 혹시 학교 간 친선 교류 시합에 대해서 아니?”
민 선생님이 약간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오? 나는 그리운 단어에 눈을 크게 떴다. 그야 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무렵부터 알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구경한 적이 있다.
‘제현 오빠가 보여 줬던가? 1학년 때였지?’
그 순간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나는 표정을 싸하게 굳혔다.
“이건 말이지, 예전부터 계속 비밀리에 행해지던 친선 시합인데……다른 학교 아이들이랑 대련 시합을 하는 거야. 각 학교 학생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위해서. 그걸 위해 각 학교마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에서 제일 실력이 뛰어난 아이를 세 명 정도 뽑아서 내보내는데…….”
웅성웅성, 아까보다는 비교적 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허공을 떠돌았다. 그 목소리가 어느 순간 뚝 끊기더니──반 안의 모든 시선이 우리를 향해 돌아섰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우리 학교에서 이 친선 시합에 나갈 사람 말인데…….”
흠흠, 헛기침을 하던 민 선생님의 시선도 똑바로 우리를 향했다. 나는 표정을 싸악 굳혔다. 민 선생님이 나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미안해하며 웃었다. 잠시 후, 반 안에서 봇물 터지듯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은하 님요!”
“학교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가야 한다면 역시 은하랑 인하죠!”
“한수도 있잖아! 꺄아악!”
“근데 친선 시합이라니 그게 뭐야? 나 처음 들어!”
“뭐야! 너 느리다! 난 다 알고 있었는데!”
“선생님,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오냐. 오오냐.”
내가 질린 표정을 짓는 사이 민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학교 간 친선 시합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각 학교만이 아는 사실이라든가, 실력이 밝혀지지 않은 초등학생들의 실력만 은근슬쩍 서로 확인하기 위한 시합이라든가.
어쨌건 간에 교류하는 명문 학교 커뮤니티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시합이라는 건 틀림없다. 이번에 참가하는 학교는 항상 참가하는 10여 개의 학교. 전부 들어 본 적이 있는 명문 학교들이었고, 대현과 명문 학교 레벨 1, 2위를 다투는 부산의 유란 초등학교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민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을 더했다.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아이들의 의견은, 슬프게도 변함이 없었다.
“그럼 역시 은하 님밖에 없죠!”
“은하랑, 한수랑, 민희랑, 인하랑, 현호도 세다던데?”
“하지만 세 명이면 역시 은하 님이랑 한수랑 인하지!”
“민희도 만만치 않거든! 괜히 학생 회장이 아니라고!”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가운데 나는 창백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아……진짜 싫은데. 비밀리에 진행되는 시합이라는 건 들었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학교 안에서 이렇게 눈에 띄는 것만 해도 질색인데, 비밀 준수 교칙도 없을 다른 학교 아이들한테 실력을 드러낸다니…….
생각만 해도 싫다. 진짜 싫다. 중학생이 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내 실력이 드러나겠지. 그래도 비밀 준수 교칙이 지속되는 이상 어쩌면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 사이에 휩쓸려 내 소문이 점점 옅어질 가능성도 있다.
아니, 그것과 이건 별로 상관없다. 그냥 난 하기 싫다고! 소심한 나한테 이건 너무 큰 시련이다!
나는 울망울망한 눈으로 민 선생님을 보았다. 민 선생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흠칫하며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아니, 음……어쨌거나, 이 시합에 나갈 만한 후보들한테는 개별적으로 연락이 갈 테니까, 너희끼리 잘 의논해서 결정하렴.”
고의적으로 무시했겠다? 나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민 선생님을 흘기다가 바로 옆에 있는 인하를 돌아보았다.
“…….”
그 직후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게 인하가 매우 흥미로운, 눈부시게 빛나는 눈으로 민 선생님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차가운 눈동자가 호승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매우 아이다우면서도, 또한 아이답지 않은 호승심이었다.
나는 말문을 잃었다.
나와 인하는 다르다. 이럴 때에 그것을 느낀다.
나는 싸움을 싫어하지만, 인하는 싸우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인하는 나와는 달리 전투에서의 강함을 추구한다. 그러니 또래의 강한 애들과 대련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한수와 현호, 민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렇게 따진다면 나가고 싶어 할 아이는 또 있을 것 같다. 민희도 인하처럼 전형적인 전투 마법사다. 한수는 전투 마법사 지향이 아니지만 나이다운 치기가 있다. 자존심도 세다. 현호는……뭐든지 재밌어하겠지, 뭐든지.
그 외에 또 후보가 있을까? 그 외에 우리와 실력이 비등한 아이라면……그래, 아르델이 있다. 기준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강예슬과 윤시하도 제법 강하다.
‘시하라면 성격이 나랑 좀 닮았으니까 안 할 것 같고, 예슬이나 아르델이면 나가려고 할 것 같아.’
나는 생각에 잠기며 기숙사 입소 동의서를 곱게 접어 가방의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 넣기 전, 구겨지지 않도록 마력으로 코팅했다.
설마 연말이 되었다고 이렇게 갑자기 신경 쓸 게 많아질 줄이야. 곤란했다. 머리가 복잡했다.
‘기숙사……는 저녁에 엄마랑 아빠한테 말해 보기로 하고…….’
이어서 민 선생님은 기숙사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몇 개 늘어놓았다. 학교를 마치고 방과 후 시간 및 주말에 집에 돌아가는 것은 자유. 평일에는 수업이나 실습이 있지 않은 한 밤 10시까지는 기숙사로 돌아와 체크를 하고, 이후에는 학교 안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나머지 규칙은 학생증에 나와 있다고 한다. 나는 기숙사 규칙을 읽으며 한동안 침묵에 잠겼다.
수업 시간에도 생각이 딴 데 가 있었다. 필기를 하긴 했지만 나중에 다시 보니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많았다. 마법 실습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을 팔고 있다가 필요 이상으로 완벽하게 마법을 성공시키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리기도 했다. 덕분에 박수 세례라는 내가 미치도록 부끄러워하는 일을 또 겪었다.
나를 꽤 신경 쓰는 민 선생님은 내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오늘은 왠지 정신이 딴 데로 날아가 있네?”
점심시간, 부르기에 가 봤더니 그런 말을 들었다.
“무슨 일 있어? 아, 친선 시합 때문에 고민하는 거면……음, 미안.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민희나 인하, 현호는 분명 나가고 싶어 할걸? 그러니 너한테는 기회조차 안 오겠지.”
역시 민 선생님, 친구들의 성격을 잘 안다. 하지만 내가 고민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하하. 역시 그렇겠죠?”
“아무래도 고민하던 건 이게 아닌 모양이네. 그럼 무엇 때문에 정신이 딴 데 가 있을까?”
“…….”
민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살폈다. 나는 잠시 시선을 내렸다가, 입을 열었다.
“기숙사…….”
“응? 기숙사가 왜?”
“괜찮을까 싶어서요.”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쓴웃음을 지었다.
“저, 외동이니까.”
민 선생님이 순간 입을 벌린 채 침묵했다.
“엄마랑 아빠, 딸이라곤 저밖에 없는데. 아니 뭐, 우리 부모님은 연애결혼이고, 두 분 다 깨가 쏟아질 정도로 사이가 좋지만요. 바로 옆에는 선아 아줌마랑 정민 아저씨도 살고……. 하지만 그래도, 음, 좀 걱정이 돼서요.”
“…….”
우리 엄마와 아빠는 사실 참 바쁜 사람들이다. 유능한 마법사인 엄마가 나를 챙기기 위해 일부러 일을 줄이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없다면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유능하고 사랑받는 통신 계열 마법사다. 속해 있는 조직도 정부 직속으로, 제법 랭크가 높다. 심지어 공무원 계열이다.
사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내 전생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했다. 동생이 남아 있었으니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신경 쓰였다. 더욱이 나는 불치병에 걸려 일찍 목숨을 잃었지 않나. 게다가 부모의 마음도 조금은 아니까. 결혼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배 아파 낳은 딸 아들은 없다. 하지만 동물을 자식처럼 기르기도 했고, 또…….
이어 가려던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지직 막혔다. 문득 여신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이유를 알고 있어서, 나는 생각을 멈췄다.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조금 막막했다.
“그냥, 정말로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뿐이에요. 부모님한테 자식은 전부나 다름없다고들 하잖아요. 동생이 있었다면 이런 생각은 안 했으려나?”
아니, 아니다. 오히려 더 걱정했을 것이다. 이번엔 또 혼자가 된 동생이 외롭진 않을까 하고. 어릴 때는 부모님의 사랑을 깊게 느끼기 힘드니까.
나는 다정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민 선생님은 할 말을 잃은 듯 복잡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다가, 이내 다정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장하다.”
“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어른 중에서도 많지 않을 거야. 우리 은하는 가족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나는 민 선생님의 주변으로 떠오른 감정에 무심코 시선을 두다가 표정을 흐렸다. 민 선생님 주위로 흩뿌려진 감정은 바로 ‘부러움’이었다.
민 선생님은 분쟁 지역에서 자랐다고 한다. 부모님은, 당연히 없다. 누군지조차 모른다.
나는 어물어물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그래도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생겼다. 바로 준휘 선생님과 스승님이다. ……한때는 한재일도 그랬다.
“넌 잃어버린 후에 후회할 타입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나 역시 웃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고민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확정된 일이니 고민이라기보다는 걱정이라고 표현해야겠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니 나는 예외 없이 기숙사에 입소해야 한다. 나는 그 후로도 반복해서 생각이나 걱정에 잠겼다.
나와는 달리 친구들은 다른 아이들이 그랬듯이 신이 나 있었다. ‘기숙사’라는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는 게 꽤 특별하게 느껴지나 보다. 가장 기뻐한 것은 민희였다. 민희는 최근 제현 오빠가 바쁜 탓에 자주 혼자 집을 지켰다. 우리를 자주 초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족이 없는 집은 쓸쓸한 법이다. 유일한 가족이기에 빈자리를 더 크게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기숙사 입소를 더 달갑게 여기는 것 같았다. 확실히 집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는 기숙사 방을 배정받는 편이 덜 외로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제현 오빠는 학교에서 일한다. 근처에 오빠가 있다고 생각하면 적잖이 안심이 되지 않을까.
“너희 그 이야기 들었어? 친선 교류 시합!”
“아, 그거!”
현호가 민희를 향해 활짝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들었어! 재밌겠더라!”
“그렇지? 나 꼭 나가 보고 싶어! 흐흐흐. 뽑힌 애들은 그 학교에서 제일 강할 거 아냐!”
예상대로였다. 인하도 어느새 민희와 현호에게 동조하며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평소의 무표정과 다르게 흥분으로 붉어진 뺨이 무척, 매우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는 친구들을 보며 얼떨떨한 기분과 흐뭇한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다만 한수는 생각보다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거 난 별로.”
한수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머리 뒤로 깍지를 꼈다. 그러자 민희와 현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인하도 눈살을 애매하게 찌푸리며 의아해했다.
“싸우는 거엔 별로 관심 없어. 그야 강해지고 싶기는 하지만, 꼭 다른 학교 녀석들이랑 싸울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난 기숙사도 별로야.”
“어? 왜? 왜애?”
“아니, 왜 꼭 들어가야 하는 거야? 내가 없으면 우리 엄마랑 아빠는 집으로 돌아올 이유가 없다면서 줄창 나가서 싸움만 할걸?”
한수의 말을 들으며 나는 깜짝 놀랐다.
“또, 둘 다, 그래 봬도……외로움도 많이 타는 데다……. 어쨌거나 난 기숙사 싫다. 집에서 통학하는 게 더 좋아. 우리 집은 학교랑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왜 꼭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냐고.”
그러자 민희가 옆에서 한수를 손가락질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네가 외로운 게 아니고?”
“아니거든?!”
세상에. 나는 할 말을 잃고서 얼굴을 붉히며 민희와 티격대기 시작하는 한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설마 한수가 나랑 이렇게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올리려다 말고, 도로 내렸다.
얘가 대체 언제 이렇게 어른스러워졌지?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모르고 흘려보내는 사이 한수는 어느새 훌쩍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어릴 때만 해도 까칠하고 틱틱대기만 하던 꼬맹이였다. 속내는 다정했지만 그걸 드러낼 줄도 모르는 어린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저렇게 속 깊은 눈을 한다. 어린애인 주제에 나보다도 어른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마음만이 아니라 몸도 많이 자랐다. 민희보다 작았던 키는 어느새 나마저도 추월해 이제는 인하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한수도 따지고 보면 제법 내 취향에 부합하는 아이였지. 그렇다고 한수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미묘한 기분이었다.
진짜로, 미묘했다.
“뭐야? 왜 그래?”
한수가 내 기묘한 시선을 눈치채고 의문을 표했다. 나는 순간 깨달았다. 그래서 주먹을 들어 손바닥을 쳤다.
아, 그렇구나. 이게 아까 민 선생님이 느낀 심정이구나.
“뭐야, 대체?”
나는 성큼성큼 한수한테 다가가서는 양손을 뻗어 한수의 머리를 약간 거칠게 헤집었다. 으악! 야, 갑자기 뭐냐고! 나는 까치집이 된 한수의 머리를 톡톡 두드려 준 뒤 허리에 손을 짚고 가슴을 폈다.
“응, 많이 컸다.”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는 납득했다. 물론 한수는 전혀 납득하지 못한 듯,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나를 쏘아봤지만 그건 별로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구나. 민 선생님도 이런 기분이었구나. 가슴속으로 뿌듯함이 차올랐다.
뭐야? 뭐야? 민희가 한수의 어깨에 매달리며 의문스러워했고, 한수가 영문을 모른 채 엉망으로 흐트러진 제 머리를 다듬었다. 이어서 현호가 장난스럽게 한수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걸 기점으로 세 사람은 다시 장난치며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툭, 귓가에 날아든 작은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인하였다. 인하가 어쩐지 심란한 눈길로 돌을 발로 차 굴렸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붉히며 기뻐하지 않았던가? 인하는 심란하다 못해 우울해 보였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알 수 있다. 나는 인하 곁에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인하야?”
내 물음에 인하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인하는 날 보고는 어색하게 고개를 비틀었다. 마치 시선을 피하려다 그만둔 것처럼. 그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별로.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닌 것 같은데……. 얘가 왜 이러지? 그러나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니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우리는 평소처럼 즐겁게 떠들다가 교문 근처에서 헤어졌다. 나와 인하도 대문 앞에서 헤어졌다.
“그럼 인하야, 이따가 봐.”
“……응. 그래.”
인하가 엷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곱게 흩날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대문 앞에 마주 보고 선 나는 잠깐 고민했다. 가만히 집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괜히 긴장이 되었다. 이렇게 가족을 떠올리며 긴장하기는 참 오랜만이다.
집에 들어가면, 기숙사에 대한 것을 말해야 한다. 민 선생님은 일주일이란 기간을 주었지만 나는 오늘 바로 말할 생각이다. 이런 건 빨리 말할수록 좋다. 아마 인하도 나와는 다른 이유로 오늘 바로 선아 아줌마한테 말할 것이다. 인하는 기숙사 입소를 반기는 모양이었다. 부모님과 떨어져서 홀가분하다는 그런 이유는 아니다. 기숙사라는 새로운 경험에 대해 기대와 설렘을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 참으로 어린아이답게, 순수하게.
나는 심호흡을 하며 대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동 인식 열쇠로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안뜰을 지나 현관문 손잡이를 당겼다. 달깍, 잠금이 풀리는 소리 없이 현관문이 열리는 것을 보니 엄마는 예정대로 집에 있는 모양이다. 나는 쓸데없이 긴장하며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섰다. 그러나 신발장을 지나기도 전에 깜짝 놀랐다.
“헉!”
나는 당황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 바로 앞, 발을 옮기려던 장소에 조그마한 털 뭉치가 있었다. 그것은 나를 확인하더니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열린 입 사이로 자그마한 송곳니가 드러났다.
“야옹─.”
나는 그만 주저앉으며 속으로 꺄악 비명을 흘렸다. 긴장했던 것도 잊고 그 자그마한 모습에 홀려 버렸다. 그도 그럴 게, 세상에, 너무 귀엽잖아!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손을 뻗었다. 떨리는 손끝에 새하얀 털이 닿았다. 으아, 너무 보드라워! 동물을 만져 본 게 얼마 만이람? 전생의 일이 자꾸 떠올라서 동물을 키우는 건 엄두도 못 냈는데…….
작고 귀여운 새끼 고양이다. 크기를 재 보자 내 손바닥만 했다. 양손 안에 쏙 들어올 만큼 자그마했다.
‘꺄, 꺄악──!’
나는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자그마한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순한 애네. 경계도 안 하고. 다만 아직 어려서 발톱 조절이 잘 안 되는지 손등과 어깨를 살짝 긁혔다. 그래도 새끼라 그런지 요만큼도 아프지 않다. 나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서 계속 쓰다듬었다. 현관 앞에서 계속 고양이와 부비부비 하고 있자니 엄마가 다가왔다.
“어머, 은하야. 오늘은 좀 일찍 왔네?”
“엄마!”
나는 아까 하던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품에 안은 고양이를 가리켰다.
“얘 어디서 난 애야? 너무 귀엽다! 아, 그리고, 나이는 몇이고? 젖 뗐어? 아니 아니, 웬 아깽이야?”
나는 흥분해서 속사포로 질문했다. 내 드문 모습에 눈을 둥그렇게 뜨던 엄마가 이내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나는 그동안에도 고양이를 계속 쓰다듬었다. 고양이가 이내 내 품에서 벗어나려 했다. 안타까움에 붙잡으려 했지만, 너무 연약해서 차마 손에 힘을 줄 수 없었기 때문에, 고양이는 결국 내 품에서 벗어났다. 나는 무척 아쉬운 눈으로 바닥으로 내려가 걸음을 옮기는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으…….”
“동료가 키우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서, 곤란해하고 있길래 받아 왔어. 암컷이고, 이름은 라라.”
“라라? 귀엽기는 한데, 너무 흔하다.”
나는 불평을 하면서도 ‘라라, 라라.’ 반복해서 이름을 부르며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라라가 내 손을 피해 저리로 걸어갔다. 나는 다시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정말 웬일이야?”
후후, 엄마가 다정하게 웃었다.
“은하 너 동물 좋아하잖아? 엄마도 아빠도 동물을 좋아하니까 그냥 데려왔지. 어때, 좋니?”
“응! 응응응!”
나는 흥분해서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라라는 새끼인 주제에 제법 고양이답게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와, 정말 잘못 만지면 어디 한 군데 부러질 것 같아. 이게 새끼 고양이의 매력이지!
흐뭇하게 라라를 바라보다 말고 표정을 흐렸다. 방금 전까지 고민하고 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난 몇 달 후엔 라라와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 나는 잠시 후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근데, 있지……. 엄마, 나…….”
“응? 왜 그러니?”
“그게, 나…….”
나는 말하면서 계속 머뭇거렸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몇 번이고 망설였다. 그러나 결국, 말을 했다.
“나, 내년엔 기숙사에 들어가…….”
말하고서 푹 고개를 숙였다. 아쉬워할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괜히 미안했다. 그러나 엄마는 잠시의 침묵 후……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어머? 그래?”
걱정한 내가 우스울 정도로 가벼운 대답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엄마는 평온한 얼굴로 생긋 웃었다.
“그럼 라라를 데려오길 잘한 것 같네. 우리 은하가 떠나면 엄마랑 아빠가 많~이 섭섭할 텐데, 라라가 있으면 덜 외롭잖니.”
“…….”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러나 나는 곧 그것이 아님을 알았다.
“맞아, 대현은 기숙사제 학교였지. 중학교로 올라가면 당연히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잠시 잊고 있었어.”
엄마의 주변으로 선명한 감정이 흐트러졌다. 안개 같은 그 감정은 동요의 빛을 띠고 있었다. 놀람, 섭섭함, 외로움……나는 애써 표정을 찡그리지 않고 참았다.
“우리 은하는 좋겠네? 기숙사에도 들어가고. 엄마도 그 나이 땐 꼭 한번 기숙사에 들어가 보고 싶었어. 엄마는 계속 집에서 다녔지만.”
엄마는 평범하게 웃으며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잘거렸다. 나는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게. 기숙사라니 신기하다.”
엄마가 다시 한 번 생긋 웃었다.
밤에 집에 돌아온 아빠한테도 중학교로 올라가면 기숙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벌써 그런 시기가 되었냐며, 쓸쓸해지겠다고 말했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방에 들어갔다. 라라를 데리고 들어갔다. 모래를 담아 놓은 화장실과 밥그릇, 물그릇을 한곳에 두고 가만히 있으려 하지 않는 라라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라라의 꼬리가 툭툭 흔들렸다.
엄마가 말했지. 라라를 데려와서 다행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너 엄마랑 아빠한테 잘해 줘야 해? 알았지?”
라라는 내 기분도 모른 채 침대에 몸을 비볐다. 나는 라라의 발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
조례 시간, 나는 학생증으로 통지를 받고 불려 갔다. 어디로 불려 갔냐면, 바로 이사장님이 있는 이사장실이다. 호출을 받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인하, 한수, 현호, 민희, 거기에 아르델도 함께였다. 나는 우리가 불린 이유를 쉽게 예상했다. 다른 모두도 똑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으리라. 언제나 카리스마가 넘치는 이사장님을 떠올리며 나는 조금 긴장했다.
가는 길은 드물게도 조용했다. 민희나 현호가 때때로 속삭이는 정도였다. 아르델이 있었기 때문에 숨겨진 지름길은 쓰지 않았다. 워프 홀만 썼다. 때문에 이사장실까지 가는 데 20분이나 걸렸다.
우리는 천천히 이사장실 문을 노크했다.
똑똑.
“들어오너라.”
드르륵, 문이 소리 내며 열렸다. 안에는 이사장님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학생회 선배들도 함께 있었다. 얼굴만 알고 있을 뿐 딱히 친분은 없다.
“실례합니다.”
민희가 의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며 고등학교 선배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생각해 보니 민희, 한수, 현호, 아르델 네 사람은 학생회 일로 저 선배들과 여러 번 얼굴을 마주쳤을 것이다. 우리도 민희를 따라 목례했다. 이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으로 우리를 불렀다.
“너희들을 부른 이유는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각 반 담임이 통보를 했을 테니까.”
“네.”
민희가 대표로 대답을 했다. 선배들이 우리를 한 명 한 명 살폈다. 관찰하는 것 같은 시선이다. 특히 안면이 없는 나와 인하 위주로 살폈다. 콕콕 찌르는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구태여 눈을 돌려 그 시선을 마주 보지는 않았다.
“알다시피 얼마 후 학교 간에 친선 교류 시합이 있다. 그리고 너희는 현재 우리 초등학교에서 제일 강하다.”
고등학교 선배들의 눈빛이 좀 더 짙어진 것 같았다. 나는 모아 내린 양손에 살짝 힘을 줬다.
“시합에 나갈 멤버 세 명을 너희 여섯 사람 중에서 뽑으려고 한다. 누가 나가고 싶니? 너희끼리 의논해 결정하렴.”
우리는 서로를 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 중 누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르델이 손을 들며 말했다.
“난 패스.”
우리는 동시에 아르델을 돌아보았다.
“모르는 애들 앞에서 마법 쓰기 싫어.”
“그러냐. 그럼 은하 너도 패스겠네. 맞지?”
나는 한수를 향해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르델이 생긋 웃었다. 나는 약간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그럼 남은 건 인하와 한수, 현호, 민희, 네 사람인데……. 민희와 현호가 신이 나서 손을 들었다.
“나는 할래!”
“나도, 나도!”
“이제 남은 사람은 한 명이네! 인하야, 한수야! 너희 둘 중에서 누가 할래?”
응? 왜 저러지? 민희가 묻자마자 인하가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틀림없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다만 특유의 무표정 덕분에 그다지 티가 나지는 않았다. 인하가 머뭇거리며 한수를 흘끔거렸다.
‘아하…….’
왜 멍하니 있나 했더니. 그러나 그 예상은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다. 인하가 망설이는 것을 알았는지 한수가 의아해하며 인하를 돌아보았다.
“뭐야, 넌 왜 아무 말도 안 해? 제일 먼저 나가겠다고 할 줄 알았더니. 처음부터 나가고 싶어 했잖아.”
“……어?”
“설마 은하가 안 나간다고 너도 안 나가려는 건 아니겠지? 하고 싶으면, 해라.”
한수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와, 반사적으로 멋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엄청 매력적인 미소였다. 인하의 눈이 살짝 커졌다.
“어디 한번 멋있게 싸워 봐.”
오호라, 이거 이거…….
가슴이 간질간질거렸다. 나는 비실비실 올라가는 입꼬리를 손바닥으로 가렸다. 이거야 원, 여자애들이 한수에게 반하는 이유를 알겠다. 어린애인 주제에 남을 홀리는 방법을 잘 안다. 인하는 멍한 눈으로 한수를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그 무감정한 얼굴에 살짝 미소를 떠올렸다.
“그래, 좋아.”
그러며 머리카락을 손등으로 슬쩍 넘긴다. 이쪽도 만만치 않다. 머리카락을 넘기며 씩 웃는 인하는 누구나 홀릴 정도로 멋있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해 보지 뭐.”
멤버가 정해졌다. 민희가 맑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결정했어요! 저랑, 현호랑, 인하, 셋이서 나갈게요.”
이사장님은 활기차게 말하는 민희를 향해 옅게 미소 지어 보였다. 온화한 색을 지닌 감정이 그의 주위로 슬쩍 떠올랐다. 그는 우리를 보고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입꼬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입술을 가린 손바닥을 조금 움직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다. 용건은 그것뿐이니 이만 가도 좋다. 너희 세 사람에겐 시합 전날에 학생증으로 통지를 할 테니…….”
“아, 그런데 꼭 시합을 하는 게 아니라도 구경하러 가는 건 괜찮죠?”
한수가 묻자 이사장님이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 다행이다. 인하의 표정이 좀 더 밝아졌다. 내 옆에 붙어서는 꼭 보러 오라며, 자기랑 같이 가자며 수줍게 웃는다. 나는 인하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한수가 뚱한 눈으로 나와 인하를 번갈아 보았다. 킥킥 웃던 민희가 이사장님을 향해 인사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갈게요.”
“그래. 아, 가기 전에……잠깐 이리 와서 손을 내밀어 보렴.”
“……? 네.”
민희가 이사장님의 말에 따라 양손을 내밀자 이사장님이 주먹 쥔 손을 민희의 손 위에 올렸다. 그 순간 이사장님의 주먹 사이로 금색 마력이 스며들었다. 목소리가 들렸다. 보통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마음의 목소리다.
「소환.」
언령마법. 몸이 반사적으로 바짝 굳었다.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실제로 사용된 마력은 나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소량이었다. 그러나 마력이 밖으로 흘러나온 순간 그의 몸 안쪽에서 거대한 마력이 맥동하는 게 얼핏 보였다. 온몸이 굳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마력이.
깨달음과도 닮은 전율이 내 몸을 관통하듯이 내리꽂혔다. S랭크 마력을 제대로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아 아줌마의 마력은 감히 내가 감지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하가 의아한 눈으로 내 팔을 끌어안았다.
“왜 그래? 추워?”
“응? 아니, 아냐.”
그사이 이사장님이 민희의 손 위에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미니 초콜릿이다. 응? 웬 초콜릿? 그러나 민희는 익숙한 듯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