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117
“……!”
깜짝 놀랐지만 선생님 지명이니 어쩔 수 없다.
‘저번에 임시 반장으로 나를 찍으려 한 것도 그렇고, 혹시 나 찍혔나? 이래서 유명한 건 별로 안 좋다니까.’
다행히 지금은 정식 반장이 된 그 아이 덕분에 임시 반장은 안 해도 됐었지만. 나는 흘끗 인하와 이소영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별달리 긴장한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앞으로 나오렴.”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나는 그 이유를 쉽사리 짐작했다. 그래, 우리는 지금 학교에서 최고 이슈다. 한수와 사귀고 있는 인하, 두 미소년과 절친한 사이인 이소영, 그리고 엄청 강해서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는 소문이 난 나까지.
우리가 앞으로 나서자 곧바로 가상 시스템이 켜졌다. 담임 선생님은 규칙을 좀 더 상세히 설명했다.
“적은 인형 모습으로 등장할 거야. 화면에 떠오르는 조건을 지키면서 마법으로 적을 쓰러뜨리면 돼. 1레벨에서 10레벨까지 있어. 도중에 실패하면 거기서 중단, 알았니? 당연히 레벨이 올라갈수록 더 어려워져. 공격을 많이 받아서 충격 포인트가 꽉 차도 실패야. 혹은 제한 시간 안에 전부 클리어하지 못하거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실패. 괜찮니?”
“네.”
우리는 각자 작게 대답했다. 나는 전투에 대비해 내 몸 위에 가볍게 결계를 씌웠다. 그와 동시에 주위 광경이 바뀌었다. 선생님 역시 자리에서 몇 걸음 물러나 사라졌다. 역시 이 세계의 가상 시스템은 대단하다. 현실과 전혀 다름없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환각마법의 모델로 삼기에 딱 좋다.
우리는 어느새 폐허가 된 건물 사이에 서 있었다.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레벨 1
-5분 안에 적 20명을 쓰러뜨릴 것.
-한 번 사용한 마법(혹은 기술)은 사용 금지.』
글이 사라진 직후 우리를 향해 공격이 날아왔다. 나는 마력의 기척을 통해 공격을 피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후방 지원 타입이라 적과 정면으로 대치하는 건 좀 불편하다.
그런 나와는 달리 인하와 이소영은 정면에서 공격을 피하며 마법을 썼다. 그 결과 내가 무언가 행동하기도 전에 싸움이 끝났다. 두 사람은 양쪽에서 적이 밀려오는 걸 확인하고는 바로 등을 맞대고 공격마법을 날렸다. 두 사람은 단 한 번 마법을 휘둘러 모든 적을 뿌리쳤다.
『클리어!』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에 우리는 불타오르는 건물 사이에 있었다.
『레벨 2
-10분 안에 건물 안에 숨어 있는 적 20명을 쓰러뜨릴 것.
-한 번 사용한 마법(혹은 기술)은 사용 금지.』
아까와 거의 비슷한 방식이다. 다만 적들이 숨어 있다는 것이 다르다.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시야가 개방되며 마력의 색이 모든 물리적인 것들을 투과해 비쳤다.
“은하야!”
“그래.”
나는 문자마법 전용 펜을 꺼내 나와 두 사람 사이에 선을 이었다. 그 선을 따라 내가 본 광경이 이소영과 인하의 머릿속으로 전송되었다.
“헉! 이게 뭐야. 엄청 신기해!”
인하가 곧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이소영도 감탄하더니 금방 인하를 따라 공격했다. 두 사람은 자그마한 빛 공과 압축된 바람을 마치 탄환처럼 날렸다. 나도 뒤늦게 공격마법을 날리려고 했지만, 그 전에 두 사람이 적을 다 쓰러뜨려 버렸다.
곧바로 우리의 몸이 이동되었다. 창문 너머로 캄캄한 밤하늘이 보였다. 우리는 어느 건물 안에 있었다.
『레벨 3
-10분 안에 숨어 있는 적 10명을 숨어 있는 장소를 들키지 않고 쓰러뜨릴 것.
-한 번 사용한 마법(혹은 기술)은 사용 금지.』
그런 식의 훈련이 계속되었다. 조건은 점점 어려워졌다. 공격은 주로 두 사람이 맡았고, 나는 적의 위치를 알려 주거나 방어하는 등 서포터 역할을 맡았다. 레벨 5까지는 순조로웠다. 그러나 레벨 6, 이윽고 7까지 달하게 되자 제법 힘겨워졌다.
『레벨 7
-20분 안에 땅에 내려서지 않고 적 50명을 쓰러뜨릴 것.
-한 번 사용한 마법(혹은 기술)은 사용 금지.
-민간인 을 공격하지 않고 적의 공격에서도 지켜 낼 것.
-대규모 마법을 1번 이상 사용할 것. 단, 4번까지만 허용.』
적들 한가운데에 던져진 탓에 우리는 집중포화를 받았다. 민간인이 숨어 있는 곳은 주위 건물, 그들이 싸움에서 피해를 입지 않게끔 구해 내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갈라졌다. 나는 두 사람에게 결계마법을 친 후 민간인이 전투에 휩쓸리지 않도록 구해 냈다. 공격이 오면 결계로 막는 등 구해 낸 민간인들을 한곳에 모아 두고 지켰다. 실제 상황이라면 상관없는 장소에 던져 놨겠지만, 이건 가상 시뮬레이션이다. 손에 안 닿는 장소에 놓아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민간인의 안전이 확보되자 두 사람은 가리지 않고 마법을 사용했다. 나는 결계로 안전을 확보한 채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아다니는 두 사람을 가만히 감상했다. 두 사람은 내 결계를 믿고서 본인에게 오는 공격을 막지도 않고 거침없이 공격에 공격에 공격만 했다.
걸리는 게 있다면, 이번 적은 잘 피한다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레벨과 함께 적의 레벨도 올라간 것 같다. 막기도 하고, 마법을 쓰며 공격도 한다. 뭐, 대부분 기본적인 마법이고, 능력치도 쓰는 마법의 종류만 제외하고 똑같은 것 같지만. 그리고 그 마법도 10종류의 마법을 50명에게 똑같이 나눠 줬다는 느낌이다. 똑같은 마력 패턴이 5명씩 있다.
남은 시간은 5분, 약간 빠듯하다 느꼈을 때쯤 나도 적을 처리하는 데 힘을 보탰다. 나는 한쪽 눈만 떠 마력의 색을 보았다. 그리고 적의 마력들을 원근감을 무시한 채 선을 그려 이었다. 나는 선을 붙잡아 얼음속성 마력을 불어넣었다.
째재쟁!
한쪽 눈으로는 거리감이 잡히지 않는다. 멀리 있는 것이 손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런 눈의 거리감을 이용한 환각+문자복합마법이었다.
남아 있던 적들이 순식간에 전부 얼어붙었다. 대규모마법 카운트가 아직 하나 남아 있는 걸 알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클리어란 글자가 뜨고 또다시 풍경이 바뀌었다. 이번에도 하늘이었다.
『레벨 8
-20분 안에 비행선을 비롯하여 비행선 안에 있는 적 70명을 전부 쓰러뜨릴 것.
-마법 사용 횟수 50번으로 제한.
-대규모마법 10번으로 제한.
-포로 10명을 구출해 낼 것.』
헐? 마법을 50번으로 제한? 심지어 대규모 마법도 10번뿐?
“포로도 구출해야 하는데. 이건 어려운걸.”
“부유마법은 풀지 말아야겠다.”
“그럼 내가 웬만하면 한 번 만에 포로를 구출해 볼게.”
나는 옆에 떠 있는 카운트 중 마법 제한 카운트를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건 동시 텔레포트밖에 없는데. 아니면 결계를 쓸까? 그게 한 번으로 카운트될까?
비행선이 날아와 우리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래도 우리를 들이박을 생각인가 보다. 귓가에 날쌔게 울리는 파공음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나는 시야를 개방하며 포로를 찾아냈다. 아까 본 민간인들, 서로 마력 패턴이 똑같았다.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역시나 딱 10개, 똑같은 마력 패턴을 가진 인형들이 있었다. 서로 똑같을 뿐만 아니라 아까 구한 민간인들과도 똑같다.
“은하야, 너무 신경 쓰진 마. 그냥 10번 팍팍 써도 돼.”
나를 격려하는 이소영을 향해 슬쩍 웃어 보였다. 제트기와 비행선이 우리를 마구 들이박으려 하고, 혹은 미사일을 쏘기도 하고, 마법 탄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나는 질색하며 그것을 피하면서도 생각에 잠겼다. 대체 ‘한 번’의 기준이 뭐지? 여러 마법을 똑같은 타이밍에 쓰면 그걸 한 번으로 쳐 줄까?
망설임도 잠시, 나는 비행선들이 어느 정도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빠르게 마법을 썼다. 한쪽 눈을 감고 민간인들 사이에 선을 그렸다. 그 선을 내가 있는 곳까지 쭉 그었다. 그런 후 나와 이소영, 인하까지 덮을 만큼 커다란 네모를 그렸다.
내가 눈을 뜸과 동시에 마법이 발동되었다. 결계와 링크된 10명의 사람이 내 결계로 이동됐다. 나는 재빨리 카운터를 확인했다. 카운트는……‘48’!
‘대규모 마법 카운트도 하나 줄었네. 어쩔 수 없지. 이동하기 전부터 쓰고 있던 부유마법은 처음부터 제외됐었고, 2개가 줄어들었다는 건, 문자마법이랑 결계마법을 각기 다른 마법으로 판단해서 그런가? 아니면…….’
어쨌거나 인질은 구출했다. 우리는 재빨리 시선을 교환했다. 이제부터 무의미하게 마법을 소비해서는 안 된다.
“저 비행선, 한 번에 전부 부숴 버릴 수 있겠어? 난 그러려면 마력을 좀 많이 써야 할 것 같거든.”
“할 수 있어.”
“응. 기계니까 인하한테 맡기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
“그래?”
“대규모 마법 한 번 쓴다.”
“어쩔 수 없지.”
곧바로 인하가 마법을 썼다. 손안에서 지지직 소음을 내던 번개가 마치 채찍처럼 날아가더니 비행선의 몸체를 차례로 꿰뚫었다. 가상이란 걸 알고 있음에도 참혹한 광경에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번개에 감전된 비행선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여기서 전부 처리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30명가량 되어 보이는 적들이 비행선 안에서 탈출했다. 그래도 미사일과 마법 포가 사라졌으니 아까보다는 나은 상황이다.
우리는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공격을 개시했다. 두 사람은 지속마법을 쓰는 등 최대한 마법 사용 횟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끝이다. 나는 환각마법과 속성마법을 섞어 마지막 대규모마법을 사용했다. 반은 환각이었고, 반은 실체였다. 내 손에 뭉친 어둠 속에서 족히 수십 개는 되는 줄기가 뻗어져 나갔다. 그것은 거기에 걸린 환각으로 인해 피할 수 없는 공격이 되어 적들을 덮쳤다. 또한 저 마법에는 수면 효과도 걸려 있다. 적들이 마법 효과를 이겨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우와……굉장하다.”
나는 이소영의 말을 듣고 흠칫했다. 실험 정신에 가까운 기분으로 남은 적들을 전부 쓰러뜨렸는데, 생각해 보니 힘을 조금 과하게 사용한 것 같다. 나는 다시 몸을 움츠렸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기도 전에 배경이 바뀌었다.
『레벨 9
-10분 안에 목표물로부터 1km 떨어진 거리에서 비행선 30척을 전부 격추시킬 것.
-마법 사용 횟수 35번으로 제한.
-주위의 다른 건물이나 사람에게는 피해를 입히지 말 것.』
나는 비행선이 날아다니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비행선이 날아다니는 상공 아래에는 섬이 있었다. 건물이 잔뜩 서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많은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으아, 이건 또…….’
나는 속으로 신음 비슷한 것을 흘렸다.
“뭐어? 1km?”
“그래도 공격이 안 날아오는 만큼 편하…….”
인하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저 멀리에서 공격이 날아왔다. 미사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마른세수를 했다. 아니, 전혀 편하지 않다.
이번에 우리가 있는 장소는 바다 위였다. 바다 위라면 다행히 마법을 쓰지 않고도 서 있을 수 있다. 마력을 발밑에 얇게 펴 바르기만 하면 되니까. 우리는 각자 몸을 움직여 미사일을 피했다.
“비행선 잔해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완벽하게 격파해야 한다는 거네?”
“35번 제한이라…….”
조건을 되짚던 인하가 마법을 사용했다. 저 멀리에서 갑자기 커다란 에너지 공이 나타났다. 나는 힘겨워하는 인하의 얼굴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빛을 압축해서 만든 저 에너지 공은 태양과 닮은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즉 마력의 크기를 제외하고도 상당히 어려운 마법이라는 거다. 인하가 최근 맹렬하게 연습하고 있는 기술 중 하나였다. 그 공격에 휘말려 5개 정도의 비행선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지만, 이건 별로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인하는 마력 컨트롤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다. 그러므로 멀리 떨어진 거리에 마법을 생성하는 것은 그녀에게 맞지 않다. 마법을 던져서 격추시키는 쪽이 그녀에게 맞는 방식이다. 익숙하지 않은 기술에 장거리 활용까지, 효율이 낮았다.
이소영도 마법을 사용했다. 이소영은 비행선 주위로 공기 막을 만들더니 공기를 압축해 비행선을 짜부라뜨렸다. 이소영도 마력 컨트롤은 특기가 아닌지 좀 힘겨워하는 기색이었다. 역시 효율이 낮다.
나는 잠시 어떤 마법을 쓸지 고민했다. 그사이에 인하와 이소영은 이미 비행선을 20척이나 없앴다. 마력 소모가 제법 큰 것 같았다. 원래 익숙하지 않은 컨트롤을 하면 평소보다 많은 마력을 쓰게 되는 법이다. 차라리 그 공기 막과 에너지 공을 던졌다면 좋았을 것을. 그래 봤자 위력은 똑같을 텐데.
‘아니면 연습한다는 느낌으로 하고 있는 걸지도.’
곧 나는 남은 비행선을 어떻게 할지 정했다. 환각으로 비행선 사이에 선을 이었다. 날아다니는 물체를 펜으로 그려 잇기는 좀 귀찮았으므로 환각마법을 사용해 이었다. 보라색을 띤 환각 안개가 비행선을 전부 뒤덮었다. 나는 그 안개를 순식간에 얼음속성으로 변화시켰다. 결계마법으로 해도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면 마력이 더 많이 든다.
비행선이 순식간에 전부 꽁꽁 얼어붙었다. 얼음은 선을 타고 쭉 이어져 바다까지 뻗어져 나갔다. 비행선을 가둔 얼음 기둥은 곧 섬 위에 둥글게 선 아치가 되었다.
“헐! 저런 방법이!”
이소영이 깜짝 놀랐다. 나는 이번에도 흠칫했다. 역시 너무 나섰나……?
또 풍경이 바뀌었다. 우리는 이번엔 서양식 거리에 서 있었다. 타일처럼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돌이 끼워져 있는 바닥 사이사이로 잔디가 자라나 있다. 우리의 양옆은 텅 비어 있었다. 면적이 제법 넓다.
저 멀리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함성은 양쪽에서 들려오고 있다. 그 직후 조건문이 떴다.
『레벨 10
-5분 안에 적을 100명 쓰러뜨릴 것.
-전체 마법 사용 횟수 10번으로 제한.
-공격마법만 사용 가능(서포트마법 및 방어마법 사용 금지).
-건물이나 구조물에는 일절 피해를 주지 말 것(적의 공격은 제외).』
나는 조건을 확인하며 눈을 깜빡였다. 함성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마 우리가 쓰러뜨려야 하는 건 저 목소리의 주인들일 것이다.
“헐…….”
“이건 너무 어렵잖아.”
인하가 당황한 기색으로 문구를 반복해서 읽었다. 응? 어? 그런가? 내가 영문을 몰라 하는 사이 인하와 이소영이 혀를 차며 등을 맞대고 기댔다. 반사적인 행동 같았다. 두 사람은 각자 적을 향해 태세를 취했다.
“10번이라니! 적은 100명인데 마법은 고작 10번?”
“그것도 주위에는 절대 피해를 주지 말라니.”
“거기다 쓸 수 있는 마법은 공격뿐? 아니, 그럼 어떻게 공략하라는 거야! 건물에 보호막이라도 쳐야 건물에 피해를 주지 않고 공격하지! 타임 없어, 타임? 적어도 생각할 시간은 주라고!”
소리치던 이소영이 이내 이를 악물며 마법을 사용했다. 바람이 바닥에 깔리는 순간, 허공에 경고 표시가 떴다.
뿌뿌!
『X』
『직접 공격만 사용 가능.』
『데미지 pt 5.』
『남은 마법 횟수 9』
“헉! 카운트가 줄어든 데다가 데미지까지 먹었어! 으으으윽!”
확실히 까다롭긴 하네. 직접공격마법만 사용 가능하다니. 두 사람은 적을 노려보면서도 쉽사리 마법을 날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조금 까다로울 뿐, 조금만 신경 쓰면 금방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도 그럴 게 대규모마법을 몇 번 날리면 끝날 일이잖아? 두 사람은 강하니 몇 번이 아니라 한 번만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저렇게 곤란하다는 듯한, 방법이 없다는 얼굴로 적을 노려보는 것일까.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두 사람처럼 양쪽에서 달려오는 적을 경계하고 섰다. 두 사람은 적들이 가까이에 다가왔을 때쯤에 공격을 시작했다. 인하는 빛으로 방패를 만들어 다가오는 적을 감전시켰고, 이소영은 적들의 정면이 아니라 약간 텅 빈 허공에 바람을 날렸다.
‘왜?’
나는 당황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굳이 그런 불편한 방법으로 싸우는 거지?’
나는 그 사실이 걸려 제대로 마법을 쓰지 못했다. 두 사람은 잠시 후 마법이 아니라 무술로 상대를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가오는 상대의 공격을 피하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제시된 시간은 고작 5분, 이제 2분밖에 남지 않았다.
인하와 이소영은 몸에 마력을 두르고 상대를 가격해 쓰러뜨리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했다. 서툰 탓에 주먹이 아팠고, 헛손질도 했다. 발로 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남은 시간은 이제 1분 이하. 그 시점에서 나는 고민했다.
왜 대규모마법을 쓰지 않는 걸까. 레벨 10까지 왔는데, 그냥 이대로 친구들처럼 싸우다 질 것인가, 아니면 클리어할 것인가. 이것만 클리어하면 올 클리어다.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24, 23, 22.
‘에잇! 모르겠다!’
나는 결국 마법을 사용했다. 그것도 여기 있는 모든 적을 쓸어 버릴 만한 대규모마법을.
나는 싸움터의 정중앙에 선 채 양팔을 벌렸다. 고유 마력과 환각마법을 섞었다. 16, 15. 환각을 실체화! 그와 동시에 내 몸을 중심으로 손바닥을 따라 양쪽으로 넘실거리며 퍼져 나간 남색 파도가, 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마력 파도가 순식간에 주위를 덮쳤다. 내가 만들어 냈지만 매우 위협적인 모양새다.
“헉!”
“은하야!”
적은 양방향에서 한데 모여 다가오고 있었으니, 이걸로 틀림없이 100명 전부 쓰러뜨렸다. 내 환각마법은 기본적으로 맞으면 힘이 빠지고 잠이 드는 효과가 있다.
파도가 도시를 광범위하게 뒤덮었다. 눈앞에 글자가 떴다.
『클리어!』
동시에 주위 광경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
“…….”
낯선 서양식 거리가 사라지고 우리는 어느새 체육관에 서 있었다. 나는 가상 세계에서 나옴과 동시에 서툰 주먹질을 하느라 생겼던 붓기가 가라앉은 손등을 반대쪽 손바닥으로 쓸며 흐트러진 체육복을 정돈했다.
“……맞다.”
인하가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은하 마법은 원래 주변에 피해를 잘 끼치지 않았지. 조건 때문에 당황해서 깜빡했어. 하지만 그렇게 넓게 공격해도 물건 하나 부서지지 않을 정도일 줄은 몰랐어.”
“어? 은하 마법이 무슨 마법인데? 무슨 마법인데 대규모로 공격해도 적만 쓰러뜨리고 다른 건 다 멀쩡해?”
“그건 비밀.”
인하가 검지로 입술을 눌렀다. 응? 나는 당황하며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야?”
“아니, 깜짝 놀랐어.”
어째선지 주위가 조용했다. 많은 학생이 동요를 담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혹은 자랑스럽게 웃으며 동요하는 다른 이들을 둘러보는 학생도 있다. 침묵이 점점 무거워졌다. 나는 그러한 분위기를 약간 부담스럽게 느끼면서도 이소영을 향해 반문했다.
“뭐가?”
“그 정도 마력에 그 정도 규모잖아. 건물이 다 무너졌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그런데 클리어가 돼서 깜짝 놀랐지 뭐야. 그냥 은하 마법이 그런 거여서였구나. 진작 말하지! 그럼 금방 끝났잖아.”
“뭐? 무슨 소리야?”
나는 이번에야말로 당황했다. 이번에는 이소영이 반문했다.
“응?”
“아니……너도 가능하잖아?”
“응? 아니, 난…….”
정말 뭘까. 대화가 전혀 맞물리지 않고 있다.
“마법 효과라니, 별도로 사람만 공격하는 마법 효과를 넣을 필요가 어디 있어. 그런 건 그냥 마음먹기에 달린 거잖아?”
“어? 그거 마법 효과 아니었어?”
이번엔 인하도 당황했다. 아니, 얜 또 무슨 소리야.
“아니, 그러니까, 마법은 마법사의 마음에 영향을 받잖아. 시전자가 건물을 무너뜨릴 생각이 없으면, 안 무너지는 거고.”
“뭐?”
두 사람이 진심으로 놀라는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시 정말로 몰랐던 걸까? 당연히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 여겼는데, 아니었던 걸까?
“그, 그런 거야? 확실히 마법은 시전자의 의지에 따른다든가, 그런 말을 많이 듣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제어할 수 있는 거였어?”
“그러고 보니 은하는 예전부터 공격마법을 써도 주위가 부서지거나 무너지거나 하는 일이 별로 없었어. 메인마법의 특성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당황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니, 그, 인하도, 애들 공격할 때, 인하의 번개 때문에 애들이 화상을 입는 경우는 없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어? 그건 마법 반탄력 때문 아니었어?”
“그야 그것도 있겠지만…….”
나는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초조함만 삼켰다. 그때 짝짝 하고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그만. 은하 말이 맞아. 마법은 사용하는 사람의 의지에 영향을 많이 받아. 시전자가 마법을 쓰면서 상대를 다치게 할 생각이 없으면 크게 다치지 않을 거고, 바위를 향해 마법을 던져도 바위를 부수고 싶지 않으면, 부서지지 않아. 다만,”
“…….”
“그걸 100% 의도적으로 컨트롤해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이어진 말에 주위가 완전히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나는 그 긴장감에 어쩔 줄을 모르고 주먹을 세게 쥐었다.
“마음만이 아니라 컨트롤에도 영향을 많이 받아. 하지만 아까 그 정도는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 마법을 익히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마법사들이 자주 하는 착각이지. 공격마법은 위험하니까 무조건 피해가 나온다는. 마지막 레벨은 그런 제어 실력을 높이기 위한 스테이지였어. 그래서 공격마법만 가능했던 거고.”
선생님이 곧이어 덧붙였다.
“음, 다만……물리적인 형체가 있는 마법은 그게 좀 힘들지만. 특히 건물이나 바위 같은 경우에는 말이지……아무래도 무너질 수밖에 없지.”
학생들이 서로를 보며 수군거렸다. 나는 조금 전 침묵이나 저 소곤거리는 목소리나 다 불편했기에 그저 가만히 있었다. 이번엔 다른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하하. 설마 시범에서 다 깨 버릴 줄은 몰랐네. 보았다시피, 시뮬레이션 난이도는 저 정도다. 다만 랜덤으로 내용이나 배경이 조금씩 바뀐다. 그럼 다섯 조씩 앞으로 나와라. 선착순으로 시뮬레이션 훈련을 할 거다. 아, 너희는 이제 자습해도 된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