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12
“사실, 저희가 유은하 양의 실력을 알게 된 건 유리 식물원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입니다.”
“……!”
엄마도 서류를 읽다 말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유리 식물원의 사건을 해결한 건 저희 대현입니다.”
“네……. 확실히, 그렇다고 들었어요…….”
엄마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저도 모르게 초조해지는 기분을 눌러 참았다. 이제 대충 상황이 막바지라고 여겼을 때쯤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법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동요하게 되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궁금하긴 했다. 그들이 대체 어떻게 내 실력을 안 건지, 어떻게 나를 스카우트 대상으로 꼽은 건지. 나는 여태껏 내가 내 실력을 잘 숨겨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이 궁금했었다.
그런데……그 이유가 유리 식물원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걸 해결했던 게 대현이었다고?
“정확히는 제 옆에 앉아 있는 이 아이가 해결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이미 유능한 마법사로서 이름을 알려 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아이와 함께 현 고등학교 부회장이 같이 해결했습니다.”
나는 크게 뜬 눈으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의연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를 돌아보았다. 가슴께까지 닿는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푸른빛이 보였다. 무척 청량한 색이었다. 마치 햇볕 아래 물방울이 알알이 빛나고 있는 걸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보석 같은 마력이었다.
엄마도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중학생 때라면……아직 학생인 데다, 미성년인데요?”
“마법사니까요. 중학생 때부터 임무를 받는 건 자유 선택 사항입니다.”
그녀는 우리의 시선을 받으며 시원스럽게 씩 웃어 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은하의 마법을 본 건 마침 테러리스트들을 전부 구속했을 때였어요.”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들었다. 설마 내 마법이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랬겠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때 내가 얼마나 필사적인 기분이었는지, 얼마나 불안했는지…….
“제 마법을 사용하면 먼 곳의 광경을 볼 수 있도록 비추는 게 가능한데, 그걸로 사람들이 무사한지 확인하면서 마법을 풀고 있었거든요. 금속속성마법은 상성이 안 좋아서, 솔직히 난처해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부끄러워졌다. 부끄러워서 참을 수 없어졌다.
“마력도 아직 느끼지 못했을 것 같은 어린애가 갑자기 마법을 쓰는 거예요. 뭔가 글 같은 걸 써서 그걸 떠오르게 만들고, 그다음엔 그림을 그려서 출구를 만들려고 하고, 이건 실패하긴 했지만요. 그리고 마지막엔 철을 움직여서 출구를 만든 거 있죠? 손을 쓰기도 전에 혼자서 탈출했다고요. 세상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야 그렇다. 누가 볼 거라곤 생각도 안 했던 내 행동이 남의 입에서 줄줄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걸 말하는 건 나와는 달리 어엿한 성인 마법사. 부끄러운 것이 당연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니.
“보통 그 나이 때는 기껏해야 마력을 느끼는 게 전부잖아요. 그런데 이미 마법을 쓸 수 있다니. 게다가 척 보니까 고유마법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녀가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 갈수록 나는 죽을 맛이었다. 엄마의 표정도 어쩐지 복잡해졌다. 인하는 뚱한 표정이 되었고.
그때, 남자가 그런 여자의 행동을 막았다.
“어이, 적당히 해라.”
“윽……흠흠, 어쨌거나 본론은 그게 아니라…….”
그제야 여자가 우리의 분위기가 미묘해진 것을 느꼈는지 나를 칭찬하는 것 같은 언동을 멈추며 본론을 말했다.
“이 아이의 실력을 보고 저는 ‘이 아이는 보호 대상이다.’ 그렇게 확신을 하고 위쪽에 말씀을 드려 이렇게 찾아오게 된 겁니다. 우리 학교에 유치원이 없는 게 그때는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어요.”
보호 대상? 겨우 거북한 대화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있다 말고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 의문에 답하듯 남자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저희 대현의 또 다른 이름은 한 번쯤 들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남자의 말에 엄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야 대현이 학교 자체로 조직이기도 하다는 말은 들었다. 그런 학교는 세계적으로 적긴 하지만 있다.
“대현 마법사 보호 협회. 줄여서 DH 협회, 그것이 저희 조직의 진짜 이름입니다.”
“네, 들었어요. 각지에서 재능 있는 어린 마법사를 보호하며 돌아다닌다고…….”
“실은 학교 자체가 그 일환입니다. 재능 있는 어린 마법사는, 아시다시피 이런저런 위험한 사건에 휘말리기 쉬우니까요. 재능은 있지만 아직 어리고 약한 동안에 아이들을 보호하면서 그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키우기 위해 만든 곳이, 바로 저희 대현의 이름하에 있는 학교입니다.”
그 순간 엄마의 표정이 달라졌다. 엄마가 남자의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문에 대현은 철저한 비밀주의입니다. 정확히는 학생들에 대한 개인 정보를 철저히 보호합니다. 그래서 저희 학교에 대한 정보는 알기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모든 게 어린 마법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거니까요…….”
말을 이어 가던 그가 문득 생긋 웃었다. 솔직히 나는 조금 놀랐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는 어쩐지 잘 웃지 않는 성격 같았다. 실제로 지금 미소도 여기 와서 처음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저희의 보호 이념을 이해 못 하시는 분들께 설명부터 하고 시작하지만……은하 양의 어머님께서는 모르시진 않는 거 같군요.”
“네에. 제 친구가 겪은 걸 본 적이 있어서.”
“일찍 재능을 발견하면 좋은 학교에 간다고 좋아하는 부모가 많은데……조금만 더 강한 마법사라면 다들 알 겁니다. 그건 분명 대단한 일이지만, 좋은 일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
인하는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조금 의아한 기색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재능 있는 아이가 노려진다는 건 들었지만 실감은 나지 않았다. 내가 내 실력을 밝히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은 그에 대한 위험성보다는 단순히 부끄럽고 눈에 띄는 게 싫다는 이유가 크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여기 있는 이은희가 그 산증인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앉아 있던 여자를 가리켰다. 산증인이라고? 나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불쾌해하는 기색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가장 보편적인 케이스로 대현에 입학했어요. 일찍 마법을 깨우친 게 소문이 되어 퍼져서, 좀 여기저기 시달리다가, 중학교는 추천을 받아 대현으로 입학했어요. 대현은 좋더라고요. ‘비밀 준수 교칙’이라는 게 있어서.”
“비밀 준수 교칙요? 그게 뭐죠?”
“아!”
그녀는 당황한 기색으로 잠시 옆의 남자를 보았다. 옆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웃으며 대답을 했다.
“설명했다시피 대현의 가장 큰 이념이 바로 어린 마법사들의 보호잖아요.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말씀드렸던 것처럼 정보의 보호인데, 그걸 위한 중요한 교칙 중 하나가 자기 정보를 스스로 규제할 수 있는, ‘비밀 준수 교칙’이에요. 어렵게 말하면 그런데, 쉽게 말하자면 개인의 비밀을 보호해 주는 교칙이랄까요?”
“비밀 보호……라고요?”
“네. 그러니까 뭐냐면요, 아이들의 실력은 일단 학교 밖에선 무조건 비밀! 본인 허락 없이는 같은 학생들의 실력을 부모님이나 친한 사람에게조차 말하면 안 돼요. 자신의 실력을 밝히는 데는 자유를 줘요. 밝히고 싶은 사람은 밝히고 숨기는 사람은 숨기는 거죠.”
“실력을 꼭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요?”
“네. 중학교 때부턴 일을 나갈 수도 있으니까 좀 달라지지만, 하여간 초등학교 때는 웬만해선 그렇게 해요. 일단 실기 시험은 타인에게 공개하지 않고 치르고요, 성적에 관한 건 무조건 본인한테만 전해 주고요. 등수도 본인만 알 수 있게 통지하고, 원한다면 선생님에게도 실력을 밝히지 않아도 돼요. 내키지 않는다면 시험을 대충 쳐도 되고요. 다만 어느 정도 성적 유지는 필요하지만요.”
말이 이어질수록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엄마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긴 것이 뻔히 보였다. 그건 상당히……그래, 상당히 유혹적인 교칙이었다.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안 그래도 실력을 숨기려 할 테지만, 공공연히 숨겨도 된다고 승인을 받는 건 또 다른 일이니까. 나는 어쩐지 벅찬 기분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대현은 어디까지나 ‘재능 있는 학생을 키우기 위한 학교’이기 때문에, 학생을 키우기 위한 상황에서 약간 예외가 발생해요. 가장 큰 예외는 수준별 수업은 비슷한 실력의 학생들의 모아 그들의 실력에 맞춰 수업을 진행해요. 아무리 강한 재능이라도 키우지 않으면 소용이 없잖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서 수준별 수업은 학생의 실력을 알아보고 진행하게 되어 있어요. 다만 그 선생님은 학교든 어디에든 학생의 실력을 알리지 않게 되어있고요. 대현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재능 어린 학생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 ‘학생의 재능을 키운다’. 이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시면 돼요.”
“음…….”
“수준별 수업만 열심히 한다면 보통 공부는 기본 실기만 넘기면 터치하지 않아요. 수준별 수업에서도 마법을 전부 말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이후 마법사로서 잘 해나가려면 고등학생 때부터는 실력을 밝히는 게 좋아요. 그러니까, 정식으로 랭크 시험을 볼 수 있게 된 이후부터는요.”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때부턴 이 세계에선 이미 성인, 말하자면 자립할 수 있는 나이니까.
거기까지 듣고서 나는 흘끔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고민에 잠긴 채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유리 식물원에서 이 아이의 마법을 봤을 때, 이 아이는 이런 비밀 규제가 필요한 아이라고 직감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직접 스카우트하러 나선 거고요.”
두 사람은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탁상 앞에 있는 팸플릿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대현. 마법사 보호 협회. 비밀 준수…….’
두 사람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맴돌았다. 잠시의 침묵 후,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거나 이건 저 아이한테는 제법 유리한 조건일 거라 믿습니다. 잘 생각해 주세요. 입학 신청서는 여기에 두고 가겠습니다. 이건 제 연락처입니다.”
남자는 명함을 주며 일어났고, 여자도 그 뒤를 따라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물으실 거 있으면 선생님 쪽으로 전화 주시고요. 저희는 당분간 이 주변에 있을 거예요. 기왕 만난 거, 거기 옆에 있는 아가씨의 부모님도 찾아뵈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요. 으아……그렇게 생각하니까 엄청 떨리는걸?”
여자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인하를 향해 눈을 찡긋 했다. 아무래도 인하네 부모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럼 다음에 또.”
“은하야. 꼭 우리 학교 와! 내가 잘 봐줄게~.”
“자, 가자.”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분위기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남자는 차분했고, 여자는 활기찼다. 우리는 두 사람을 배웅했다. 아무래도 저 은희라는 언니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우리를 향해 반복해서 즐거운 듯이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상황을 곱씹으며 고민했다. 인하도 생각에 잠긴 기색이었다.
나는 그 두 사람이 간 이후 입학 신청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읽어 보았다. 계약서 형식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갑과 을을~이라는 식으로 되어 있지는 않았다.
『본교는 성인(만 15세) 이하 학생의 보호를 우선시할 것을 맹세한다.
그에 따라 학생 역시 아래의 규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이런 식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자신 이외 타인의 실력을 허락받지 않고 제삼자에게 말하지 말 것. 그게 같은 학교의 학생이나 선생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학교 이외, 외부에서의 발설을 금한다. 이에 관련한 금제를 거는 것에 대해 허락해 주길 바란다. 이는 입학 후부터 적용된다.
나는 몇 장으로 된 서류를 쭉 읽었다.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재능 있는 어린 마법사를 이런 식으로 전적으로 보호하는 학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어서 오늘 찾아온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고등부의 학생 회장과 꽤 얼굴이 알려진 사람인 듯했던 선생님.
두 사람 다 첫인상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중 한쪽은 알고 보니 나를 철의 방에서 구해 주려 했다고 한다. 그때 나는 혼자 탈출했다. 그래서 선생님이나 가족 외에 나를 구하려 했던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그 선생님은 결국 누구였던 거지? 엄마, 그분을 아는 것 같았는데…….’
그러나 사실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곧 거기에 대해서는 신경을 껐다. 일부러 조사해 보기는 좀 귀찮았다.
다음 날, 일을 나가 있던 선아 아줌마와 정민 아저씨가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선아 아줌마는 스카우트에 대해 전해 들은 것치곤 표정이 어쩐지 심각하게 물들어 있었다.
“은하야 들었어. 대현에서 스카우트가 왔다며.”
“어, 네, 네…….”
“어째서 말 안 한 거야?”
선아 아줌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왜 안 말했던 거야? 유리 식물원에서 있었던 일?”
나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한순간 무슨 이야기를 하나 싶었지만…….
‘아…….’
곧 눈치챘다. 내가 유리 식물원에서 일을 당했을 때 선아 아줌마는 아직 해외에 나가 돌아오지 않은 채였다. 인하가 미리 식물원에 대한 이야기를 알았던 건, 내가 인하에게는 금속조형마법을 보여 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대현에서 스카우트가 왔다길래 그런 데서 스카우트가 오다니 언제 실력을 들켰나 싶었다고. 인하는 뭐 내 딸이니까 스카우트가 와도 이상하지 않고, 실제로 다른 학교에서도 몇 번 스카우트 통지서가 왔지만.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정을 들어 봤더니, 뭐? 테러어?! 그 씹어 먹을 것들은 나중에 내가 아주……!”
“어, 음…….”
“금속조형마법은 또 뭐고? 정말이지! 임시라곤 해도 나는 네 마법 선생님이란 말이야! 마법에 대해서 하나라도 숨기고 있었다니!”
“아니, 숨긴 게 아니라…….”
“어쨌드은!”
선아 아줌마가 답지도 않게 어린애처럼 역정을 냈다.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지금 당장 보여 봐! 그 금속조형마법이란 거!”
나는 머뭇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내 금속조형마법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아주 조금이라도 ‘금속으로 된 물건’이 필요했다. 나는 몸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으음……금속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마법인데요, 지금 금속으로 된 게…….”
“그래?”
그렇다고 옆에 있는 물건에서 금속을 빼내 와 쓰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원래 형태로 확실하게 되돌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내 말에 선아 아줌마는 아공간을 열어 뒤지더니 곧 나에게 무언가를 휙 하고 던져 주었다. 확인해 보니 그건 그냥 짧은 쇠로 된 막대기였다. 은색인 것이 마치 진짜 은 같았다. 설마 진짜 은이라거나……?
나는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금속을 상상대로 꾸물꾸물 움직여 단검의 형태로 만들었다. 선아 아줌마가 그것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흠……원래 질량보다 어느 정도 불어나게 할 수 있는 모양이네?”
“네. 어쨌거나 금속이 없으면 못 하는 마법이지만요.”
“하지만 그건 금속 관련 다른 마법을 배워서 금속을 만들면 되는 일이잖아. 계속 사용하다 보면 꽤 편리한 마법일 것 같은데.”
“그럴……지도요?”
“하지만 너 이건 만들었다는 말도 안 하고 연습도 제대로 안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크게 관심이 없어서…….”
“왜?”
“제가 만든 마법은 전부 예전부터 열심히 생각해서, 제가 좋다고 생각해서 만든 것들이거든요. 근데 이 마법은, 진짜, 우연히,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거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 그때까지 내가 만들었던 마법들은 정말 내가 열심히 상상하고 고대해서 만들어 낸 것들이었다. 하지만 금속마법은 다르다. 전혀 내 희망 사항과 맞는 부분이 없다. 그래서 가끔 장난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건드리지도 않는 마법이었다.
“그래?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선아 아줌마는 내 말에 납득한 듯했다. 그리고 평소처럼 내 마법을 봐 줬다.
마법 연습은 꽤 늦게까지 이어져, 그날은 그냥 인하의 방에서 같이 자기로 했다. 우리는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심심하다는 이유로 침대 머리맡에서 마법을 연습하고 있는 나를 보며 인하가 졸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대현, 어떻게 생각해?”
“음,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는데. 인하는 어땠는데?”
“응……나도 너랑 같아. 그런데 비밀로 할 게 많은 거 같아서 좀 귀찮아 보였어.”
나는 태연하게 말하는 인하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하긴, 남의 시선 같은 건 아랑곳도 하지 않는 인하의 경우엔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대현의 비밀 준수 교칙은 나한테는 상당히 끌리는 종류의 것이었다. 사실 나는 대현에 대한 말을 듣고 대현이 제법 괜찮은 곳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 사람에 대한 첫인상이 별로 안 좋아서, 그게 약간 껄끄러웠다.
나는 새카만 천장을 향해 빛을 뿌렸다. 어두운 천장이 마치 별하늘처럼 반짝거리며 빛났다. 마법으로 만든 플라네타륨이었다. 단, 별자리 같은 건 찾으려야 찾을 수 없겠지만.
졸음이 몰려오는 눈빛으로 눈을 깜빡깜빡거리던 인하가 눈을 비비며 몸을 굴렸다. 그리고 내 옆에 딱 붙어 엎드린 채 거의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도……유치원 가지?”
“응.”
“빨리 졸업이란 거……했으면 좋겠어. 같이 학교 다니고, 그랬으면 좋겠어…….”
나는 조는 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중얼거리는 인하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래, 자.”
조금씩 흔들리던 머리가 곧 베개에 안착했다. 잠시 후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인하가 깊게 잠든 것을 확인한 뒤 머리에서 손을 뗐다.
“잘 자.”
나는 반쯤 엎드려 잠들어 있는 인하의 옆얼굴을 보았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같이 학교를 다니면? 그래, 분명 좋을 것이다. 같이 학교를 다니고, 같이 공부하고. 친한 친구랑 같은 학교에 다니며 함께 노는데, 그래, 분명 즐겁겠지.
그런 한편 불안하기도 하다. 나는 정말 소심한 아이니까, 너는 어쩌면 다른 친구들 사이에 있는 나를 보고 실망할지도 모른다. 또 나 이외의 친구가 생기면 너는 나 따위는 버리고 그 아이한테 가 버릴지도 모르지.
잠시 후 나는 마법을 껐다. 빛이 사라지고 주위가 어두워졌다. 나는 인하의 옆에 기대어 조용히 잠을 청했다.
☆
‘비밀 준수 교칙’, 그건 솔직히 나에게 있어선 무척 매력적인 교칙이었다. 그 두 사람은 오늘 내가 유치원에 간 사이 미리 말했던 것처럼 인하네 집에도 찾아간 듯했는데, 선아 아줌마는 그 두 사람의 말이 제법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대현, 제법 애들을 잘 키웠네.”
그런 말도 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원래 나는 고민을 오래 계속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조금 하다가 안 풀린다 싶으면 곧잘 딴짓을 했다. 전생이었다면 책을 읽는 것 정도로 그쳤겠지만, 지금은 혼자서 마법을 연습하곤 한다.
사실 난 최근에 엄마의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를 읽어 보고 있다. 아무래도 십몇 년 전의 교과서라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몇 권 되지 않지만, 어쨌거나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꽤 도움이 됐다.
특히 초등학교 교과서는 쉽게 풀어서 쓴 것이 많았다. 기초에 대한 설명도 제법 탄탄했고, 지금의 마력으로 익힐 수 있는 마법도 꽤 되었다. 마침 지금 내가 읽고 있는 부분은 ‘마력의 결정’에 대한 것이었다.
마력의 결정이라……관심이 많은 분야다. 마력을 그 자체로 형태로 남긴다는 게 딱 내 취향이었다. 나는 그 글에 시선을 고정했다.
『의지에 따라 마력이 고체 형태로 결정화된 것이라 마력의 결정이라 불린다. 그 사람의 마력의 색과 속성의 상성에 따라 결정의 색이나 모양이 달라진다.』
이 점도 마음에 들었다. 사람마다 결정의 색이나 모양이 다르다는 거. 그건 즉 그 사람의 마력의 특성에 따라 결정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이 눈으로 보던 마력을 고체화시켜 보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좀 들떴다. 나는 마력 결정에 대한 글을 쭉 읽어 갔다.
마력의 결정을 만드는 데 좀 더 익숙해지면 그 안에 주인의 고유마법을 담을 수도 있다. 연인, 친구끼리 마력의 결정을 교환하기도 한다. 마력 결정석으로 만든 커플 링 같은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다만 이것을 남에게 줄 경우에는 주의해야 한다. 자신의 정보가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만 줘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받는 것은 주로 절친, 연인, 부모님이다.
‘그렇구나. 헤에, 역시 재미있어 보이잖아. 만드는 방법은…….’
그 밑에는 그림과 함께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위(그림)와 같이 손을 포갠다. 눈을 감고 집중한다. 자신의 마력이 손안의 한 점에 모여 덩어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단단히 굳은 마력의 모습을 상상한다.
어쩌면 나한테는 쉬울지도 모르겠다. 환각을 만드는 것과 방법이 비슷하니까. 문자마법과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결정의 형태는 보통 그 사람의 마력 특성에 따라 나오지만 좀 더 익숙한 사람은 모양을 만들 수도 있다고 나와 있었다. 다만 그냥 결정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교과서에 적혀 있던 대로 행동했다. 손을 포개고 집중했다. 잠시 후 손을 떼어 내자 오른손 위에 아까는 보지 못했던 동그란 광석 같은 것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안으로 갈수록 진한 남색을, 밖으로 갈수록 광택과도 닮은 은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내 검지 손톱만 한 그 광석을 바라보았다. 성공……한 건가?
“와! 한 번에 성공했어!”
나는 물방울에 가까운 타원형을 띠고 있는 광석을 보며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다소 다급한 표정으로 방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약간 허둥대며 서랍을 당겼다. 처음으로 만들어 낸 결정석이다. 아무 데나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드르륵드르륵 서랍을 열고 닫으며 원하는 물건을 찾았다. 있다! 정확한 재질은 잘 모르겠지만 금속으로 된 작은 고리가 있었다.
나는 재빨리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사이트를 열고 검색창에 『목걸이 이음쇠』라고 친 다음 마음에 차는 목걸이 줄을 찾았다.
나는 그 모양 그대로 목걸이 줄을 조형했다. 잠시 후 그럴듯하게 완성된 목걸이 줄을 보며 기뻐했다. 약간 울퉁불퉁하기는 했지만 썩 마음에 드는 모양새였다.
이어서 약간 고르지 못하거나 울퉁불퉁한 부분을 문자마법으로 깔끔하게 다듬었다. 그리고 그 목걸이 줄의 가운데 부분을 변형시켜 장식 이음쇠를 만들고, 서랍에 있던 순간접착제를 꺼냈다. 장식의 이음쇠에 조심스럽게 접착제를 바르고 거기에 마력 결정석을 끼웠다. 마력 결정석 목걸이가 완성되었다!
나는 완성된 목걸이를 보며 환하게 웃으면서 땀을 닦았다. 역시 연습을 별로 하지 않은 만큼 금속마법은 좀 덜 익숙했다. 풀썩, 나는 침대 위로 쓰러졌다. 조명에 마력 결정석을 비추며 즐거워하다가 이걸 어쩌면 좋을까 싶어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이거 목걸이로 만들었는데 어쩌지? 내가 하고 다닐까?’
제법 내 취향에 가깝게 만들어졌으니 내가 하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문득 교과서에서 읽었던 ‘연인, 혹은 친구끼리 마력의 결정을 교환하기도 한다.’는 구절을 떠올렸다. 그러자 맨 먼저 떠오른 것은 당연하게도 인하의 얼굴이었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좋아할까?’
정말 결정석을 만든 후부터 계속 고민했던 것 같다. 결심을 내리지 못한 채 그저 고민만 되었다. 어울릴까? 어울릴 것 같다. 아무 일도 없는데 어떻게 선물로 주지? 무슨 선물이라고 하지? 그냥 주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짧지는 않은 전생을 다 합쳐, 인하는 나에게 있어 생에 첫 단짝 친구였다.
아니, 전에 단짝 친구가 확실히 몇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딱 한순간만 친했다가 멀어졌다. 그 정도의 사이였다.
선물을 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준 게 있다면 기껏해야 생일 선물? 선물을 받은 적도,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어떤 특별한 날에 사소한 물건을 주고받은 적은 있지만 아무 이유 없이 선물을 주고받은 적은…….
‘없지.’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
참, 뭐라고 할까……쓸데없는 고민이란 자각은 있다. 하지만 그럼 어떡해. 막상 앞에 서면 말도 안 떨어지고 고개를 숙인 채 우물쭈물거리게 되는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이 친구들이랑 재잘거리며 저마다 버스를 타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유치원 버스에 올라타는 대신 선생님의 소매를 끌었다.
“선생님. 저 오늘도 혼자 돌아갈게요.”
“뭐?”
선생님이 나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또? 은하야, 분명 너희 집이 여기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고 부모님이 가끔은 괜찮다고 해서 허락해 줬지만, 그래도 혼자서 자주 그러면 위험해. 요즘 위험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번 달은 이미 세 번이나 빠졌잖아. 더 이상은 안 돼.”
나는 단호한 선생님의 표정을 보며 우물쭈물했다. 평소에는 잔소리를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는데, 아무래도 오늘만은 허락해 주지 않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일단 유치원 버스를 타고 동네에 내려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뒤에서 의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은하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말 그대로 의외의 목소리였다. 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어느 정도 낯이 익은 얼굴이 보였다. 저번에 나를 찾아왔던 그 이은희란 언니였다.
그녀는 오늘은 교복이 아니라 사복을 입고 있었다. 추운 겨울인데도 짧은 검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고, 하얀 티셔츠 위에 푸른 후드 카디건을 걸친 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신발은 단정한 단화였다. 무심코 그녀의 차림새를 쭉 훑어보던 나는 잠시 그녀의 목 아래로 길게 늘어진 목걸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마력 결정석 혹은 마력석을 이어 만든 목걸이로 보였다.
“심심해서 잠깐 만나러 왔는데, 은하 너 어디 가니?”
아니, 그러는 회장 언니야말로 왜 여기에?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방금 심심해서 잠깐 보러 온 거랬지. 당분간 여기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으니 그리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다. 게다가 그 후에도 엄마와 몇 번 연락을 나눴다고 하고.
내가 당황한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선생님이 물었다.
“은하야. 아는 분이니?”
“네? 네. 아는 언니……예요.”
“그래?”
선생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러려니 하는 듯했다. 그 언니가 나를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으면 이 언니가 데려다줄까?”
그 말에 선생님이 반색했다.
“그래 주시겠어요? 다행이다. 은하가 평소에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불안해서 어쩔 수 있어야죠.”
“그래요? 은하 너, 어른 걱정시키는 거 아니다?”
떽.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낯선 감촉에 약간 거부감이 들었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그럼, 어디로 갈래? 은하야?”
나는 이번에야말로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랑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건……불편하다. 그것도 많이. 하지만 확실히 이 나이에 혼자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한 건 사실이다. 그리고 난 지금 어디든 막 돌아다니고 싶은 기분이고.
“저기, 그럼 이쪽…….”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앞장섰다. 어쨌거나 그냥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다.
나는 울타리를 돌아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것을 몇 번 반복하자 상가가 나왔다.
가까운 문방구에 들어가서 필요한 필기구를 샀다. 그러고 보면 지우개를 거의 다 썼다. 샤프심도 거의 다 떨어졌다. 온 김에 수첩도 하나 살까? 나는 끙끙대며 원하는 물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여기 문방구는 다 좋은데 물건이 너무 위에 있었다.
“자, 이러면 되니?”
내가 끙끙대는데 옆에 있던 회장이 나를 번쩍 안아 들어 올렸다. 과연 마법사, 힘이 셌다. 나는 감탄했다.
동시에 부끄러움도 느꼈지만 어린애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맘에 드는 샤프를 몇 개 빼냈다.
수첩은 가까운 데 있어서 고르기 쉬웠다. 귀여운 게 제법 많아서, 수첩을 고르는 데는 꽤 고심해야 했다.
“와, 이거 귀엽다. 나도 하나 살까?”
사야 할 것을 다 고르자 이번에는 귀여운 것에 시선이 갔다. 어릴 때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방울 머리끈에서부터 예쁜 리본이 묶인 좀 어른스러운 머리끈까지. 아직 귀를 뚫지 않아 꽂을 수 없는 귀걸이와 귀를 뚫지 않아도 귀를 장식할 수 있는 귀찌, 심플한 목걸이와 팔찌, 여기는 내 취향의 물건이 많아서 내가 즐겨 찾는 곳이었다.
이어서 머리띠에도 시선이 갔다. 전생에 내가 다 컸을 무렵엔 머리띠가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엄청 귀여운 것을 한 번쯤 써 보고 싶었다. 유미도 가끔 머리띠를 쓰는데, 그게 엄청 귀엽다. 인하도 가끔 쓰긴 하는데 이쪽은 또 엄청 청순하다.
무의식중에 입가가 느슨해졌다. 아직 젖살이 통통한 어린아이를 상대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하지만 유미도 인하도 정말 예쁘다. 아이들은 정말 뭘 해도 예쁘다니까.
나는 수첩과 필기구를 들고 먼저 계산을 했다. 평소에 받아서 모아 두던 용돈으로 값을 치렀다.
“오, 벌써 부모님한테 용돈 받나 봐?”
“네.”
“이 필기구 귀엽다~.”
나는 작게 웃었다.
그 후 나는 상가의 보도를 따라 산책을 했다. 음식점이나 카페도 많았지만 옷 가게도 많았다. 걸으면서 스치듯이 옷 가게를 돌아보며 약간 감상에 잠겼다. 저런 스타일의 옷 딱 내 취향인데……같은 식으로. 아직은 입을 수 없는 옷들이다. 저런 스타일의 구두를 좋아했지만, 역시 아직은 신을 수 없는 신발들이다.
“오, 맛있어 보이는 데가 잔뜩~. 여기도 제법 괜찮네. 얘, 얘, 우리 저기 가 보자! 저 카페 어쩐지 촉이 와! 내가 쏠게!”
“네, 네?”
살 건 다 샀으니 잠깐 구경만 하고 집에 돌아가려고 했었는데 당황스럽게도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끌었다. 나는 말릴 새도 없이 그녀의 손에 이끌려 카페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어서 오세요. 의례적으로 우리를 맞는 점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녀를 따라 카페의 내부로 들어섰다. 안에는 사람이 적당히 차 있었다. 난방을 틀고 있는지 내부가 제법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