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136
진동 소리에 나는 핸드폰을 열어 이력을 확인했다. 문자가 와 있었다. ……이성진한테서. 나는 수업 때문에 그러는 건가 싶어서 무심히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발신인: 이성진
내일 사자자리 유성우 날인데
카메라 빌려줘』
……시답잖은 내용이었다. 나는 약간 울컥해서 답장을 보냈다.
『수신인: 이성진
네카메라쓰면되잖아?』
그쪽에서도 답장이 금방 왔다.
『발신인: 이성진
디카는 없어. 그리고 작가면 맞춤법 좀 지키지?』
나는 또 한 번 울컥했다.
『수신인: 이성진
제 맘이니 신경 쓰지 마시죠』
『발신인: 이성진
ㅉㅉ……..하여간 카메라』
『수신인: 이성진
폰으로도 촬영가능』
『발신인: 이성진
화질구림. 이야기 길어질 것 같으니 이제 톡으로 하자』
『수신인: 이성진
이야기 끝. 네 여친한테 빌리셔』
얘는 그사이 다섯 번째 여친을 사귀고 있었다. 내가 속으로 혀를 차며 핸드폰을 닫으려는데 이번엔 이성진한테서 톡이 왔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톡을 열었다.
『이성진: 헤어진지가 언젠데.』
『나: ………..자랑 아님』
『이성진: 너 이번엔 유성우 안 볼거냐?』
『나: 몰라. 마음 내키면』
『이성진: 너 사진 잘 찍더라.』
『나: 이번엔 공유하기 싫은데……..』
『이성진: 그러니까 누가 괜히 카메라 좋은 거 가지고 있으래』
“이게 진짜…….”
나는 이를 갈았다. 애초에 난 왜 이 녀석이랑 이렇게 톡을 이어 가고 있는 거지? 아, 그렇다고 카메라를 주긴 싫은데. 그 카메라는 내가 엄청 아끼는 거다. 내 돈으로 산 거기도 하고, 적당한 가격에 화질도 괜찮고 내 손에 딱 맞아서 얼마나 아끼는 건데…….
“은하야, 누구랑 문자 하는 거야?”
나는 소영이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고민하다 물었다.
“소영아, 너 디카 있니?”
“어? 아니. 디카는 없어.”
“그래애…….”
나는 핸드폰으로 이번 유성우를 검색해 보았다. 시간당 30개……평범한 숫자다. 나는 고민했다. 3대 유성우인 쌍둥이자리가 좀 더 기대해 볼 만할 것 같은데…….
『나: 내 카메라는 좋은 만큼 비쌈. 빌려주긴 좀 그럼. 글고 난 12월 거 볼 거임.』
『이성진: ……..하긴 그게 더 나을지도. 그럼 나도 그 날 보러 갈 테니까 사진 공유』
『나: 되게 끈질기네. ok』
그러고 폰을 닫았다. 그런데 고개를 들자 인하와 소영이가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너, 너희, 개인적으로 톡을 보내는 사이였니? 나는 너희가 엄청 사이 안 좋은 줄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꽤 좋은 거야……?”
얘들이? 남 문자 하는 걸 막 훔쳐보네? 나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아니, 톡 나누는 걸 왜 훔쳐봐…….”
“조금밖에 못 봤어. 카메라 빌린다는 말에 누구랑 이야기하는 건가 싶어서 보다가 성진이 이름 보고 깜짝 놀라서……. 너 걔 번호를 알긴 했구나?”
“아, 응. 특수속성 수업 같이 들으면서 과제 몇 번 같이 한 거 알지? 그러면서 번호 교환했어.”
“걔가 아무한테나 뭘 빌려 달라고 부탁하는 성격이 아닌데. 너 성진이 맘에 든 거 아냐?”
나는 그에 인상을 팍 찡그렸다.
“뭐? 1학기 때 그 사달이었잖아?”
“그렇긴 한데, 그때는 몇 번 얼굴도 안 마주쳤었잖아. 걔가 처음 만나는 사람이랑 싸움 나는 건 매번 있었던 일이고.”
“…….”
“싸웠다가 친해졌다 할 수도 있지 뭐. 나랑 유미도 그랬는걸. 어렸을 때 성진이 독설에 상처받아서 많이 울었다니까? 그럴 때마다 인성이가 성진이한테 화내면서 혼내 줬고. 이젠 내성이 생겨서 받아치잖아.”
그랬던가. 하긴, 그 성격인데 온건히 친해질 수 있을 리가 없지. 나는 그런 녀석이랑은 절대 못 친해질 것 같은데. 하지만 그렇다. 그런 친구 사이도 있는 법이다.
‘……그래도 걔랑은 딱히 친해지고 싶지 않은데.’
나는 그렇게 피곤하게 친해져야 하는 사람이랑은 별로 어울리고 싶지 않다. 다만……마법에 한해서만 예외일 뿐. 진짜 거북스런 일이지만, 걔랑 하는 마법 훈련은 재미있다. 그것도 무척.
“그게 감히…….”
눈앞에서 들린 음산한 목소리에 나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 보니 인하가 무척 마음에 안 드는 기색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 음……. 나와 소영이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게 감히 이제 와서…….”
“……아하하하.”
소영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거야 원, 당장 이성진한테 달려가서 싸움을 걸 기세네. 인하가 내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난 다 봤어. 카메라는 왜 빌려? 사진 공유는 또 뭐야? 어딜 같이 보러 가는데? 같이 가는 거야? 둘이서만?”
연이은 질문 세례에 나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게, 전에 내가 유성우를 보러 갔었다고 했잖아. 새벽이라서 안 깨웠다고.”
“응.”
“그때 거기에 이성진도 있었거든.”
“……뭐?”
인하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당황하고 있던 소영이가 이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성진이 걔 별 좋아하거든. 유성우는 주기적으로 보러 가.”
주기적으로 보러 갈 정도였나.
“응. 그때 내가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걸 천문부 사람이랑 이성진한테까지 공유했거든. 그래서 그러는 거야. 다음 관측회도 와서 사진 찍을 거면 자기한테도 공유하라고.”
“그랬구나. 이제야 이해가 간다. 성진이 걔 별하늘 실사 엄청 좋아해.”
“응. 그런 것 같더라.”
나는 유성우가 내리던 밤 이성진이 한순간 입가에 띄웠던 미소를 떠올렸다. 응, 그럴 줄 알았다.
“그래도 보통 다른 사람한테 그런 부탁은 안 하는데. 역시 네가 맘에 든 걸지도.”
그러자 인하가 또 한 번 이를 빠드득 갈았다. 아차, 소영이가 당황하며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하하……. 나는 인하가 그 녀석한테 싸움만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책상 위에 엎드렸다.
얼굴을 책상에 기댄 채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랭크 시험 여파로 드물게 찾아온 자습 시간이었다. 교실을 나가 밖에서 시간을 때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부를 하거나 마법을 연습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책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않고 나른하게 책상 위에서 눈만 굴렸다.
과 안에서 또 한 번 세부 부로 나뉜다. 예술과를 예로 들면 장인부와 문화부다. 그에 따라 반도 나뉜다. 만약 예술과를 선택한다면 나는 문화부다. 작가니까 그야 문화부지. 작문 관련 수업이 있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그 수업은 굳이 전공이 아니라도 들을 수 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또 한 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핸드폰 갤러리를 뒤져 전에 찍었던 사진을 한 장씩 감상했다. 은하수와 유성, 라라, 인하와 한수의 뒷모습, 노을, 새벽하늘, 온갖 사진이 시야를 지나쳤다. 그중 몇 장은 동영상이었다.
사진을 찍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나는 자연스럽게 미소 지었다. 찍은 지 몇 달도 되지 않은 사진에서 그리움 같은 감정을 느낀다. 이럴 때 나는 사진을 찍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때 학생증을 뒤지던 소영이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놀란 얼굴로 우리 등을 탁탁 두드렸다.
“야, 야, 야! 유펠르시아에서 실습할 사람 구한대. 랭크 시험이랑 겹치는 것도 있어서 중학교 1학년 중에서 구한다는데?”
흥분한 목소리였다. 나와 인하는 조금 놀라 소영이를 바라보았다.
“뭐어?”
“보자, 보자. 음……『중앙 섬 북쪽 숲과 지하 동굴에서 새로운 마력석 채굴장이 발견되었습니다. 랭크 시험에 따른 인력 부족으로 협력 조직에서 채굴할 도우미 지원을 받으려 합니다. 미성년자라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마력석을 불법적으로 노리는 조직도 있으므로 신중하게 생각하고 지원해 주십시오.』 ……라는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력석 채굴이라…….
“재밌겠다…….”
“그렇지? 랭크 시험 기간이니만큼 교류가 있는 학교에서만, 미성년자 실습생 위주로 받는다나 봐. 우리 학교에서는 세 명 뽑는 것 같고.”
“세 명이라…….”
인하가 팔짱을 끼며 고민했다. 우리 주변에 있던 몇몇 학생들이 우리 이야기를 엿듣고 흥분한 얼굴을 했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 한 개 더 있어. 최근에 불법 조직이 검거되었는데, 그 사람들이 독을 전문으로 다뤘다나 봐. 지부가 발견되어서 그쪽도 검거하려고 하고 있고, 피해자들 뒤처리에 고생하고 있대. 그래서 잔당 처리를 도울 전투 마법사랑 조직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치료할 해독마법을 가진 의료 마법사를 뽑나 봐. 우리 학교에서는, 전투 마법사 다섯 명이랑 의료 마법사 두 명을 구한대.”
“생각보다 많이 뽑네.”
“코멘트란에 우리 학교랑 유펠르시아가 친해서 우리 학교만 특별히 더 많이 뽑는 거라고 적혀 있어.”
“그렇구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독이라, 말만 들어도 굉장히 위험할 것 같다. 정화마법으로 독을 해독할 수는 있지만 나는 의료 마법사도 전투 마법사도 아니다. 실습을 갈지 말지 여러 면에서 고민되었다.
“은하야, 갈 거지?”
“글쎄…….”
“나는 갈 거야. 전투 마법사 쪽으로.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그렇겠네…….”
불법 조직 잔당 처리에 독이라니, 미성년자 마법사를 뽑는 실습치고는 꽤나 위험하지 않나. 그러나 실습생을 뽑는 만큼 아주 위험한 일은 아닐 테지. 인하한테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나는 무심코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마정석이 달린 팔찌가 손목에서 빛나고 있었다. 작년 유펠르시아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산 팔찌다.
“마력석은……보고 싶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소영이가 키득 웃었다.
“그럼 결정 난 거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때아닌 실습에 지원했다. 나와 소영이, 인하뿐만이 아니라 한수랑 민희, 현호, 이성진, 최인성도 같이 지원했다. 우리 외에도 강미나란 동급생과 아르델이 참가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현재 소형 비행선을 타고 유펠르시아로 향하고 있다.
이번 지원에선 몇 가지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먼저 소영이, 인하, 민희, 최인성은 전투 마법사로 지원했다. 이건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현호가 의료 마법사로, 한수와 이성진이 나와 같은 마력석 실습에 지원했다. 이건 예상외였다.
설마 한수와 이성진이 마력석 실습에 지원할 줄이야. 현호는 또 어떻고. 확실히 현호가 치유마법에 소질을 보이기는 했지만…….
물어보니 현호의 대답은 이랬다.
“인원이 다 차 버렸는걸. 거기다 난 최근에 치유마법을 하나 개발했잖아. 그걸 시험해 보는 것도 괜찮겠더라고. 다행이지? 은하는 치유마법엔 소질이 없잖아.”
하긴, 이 중에서 실제로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처음부터 의료 마법사로 지원한 김미나와 중간에 지원을 바꾼 현호뿐이다. 민희와 한수, 인하는 소질은 있어도 개발은 하지 않았다. 나는 납득하며 다른 두 명을 돌아보았다.
“한수 넌?”
“유펠르시아 숲은 신기한 식물이 많으니까.”
“아하. 넌? 솔직히 의외다. 싸우는 걸 좋아하는 것 같던데.”
“남을 싸움광처럼 말하지 마.”
“아니라고?”
“어.”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나는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제일 가까이에 있던 민희의 귓가에 속삭였다.
“쟤 양심은 안녕하다니?”
“아닐걸.”
민희가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이성진이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실습이 거기서 거기지. 가 봤자 싸울 일은 별로 없을걸. 그렇다고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니.”
“너 해독은 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너는 정화할 수 있지, 아마?”
“난 이게 더 좋아서 고른 거고.”
“나도 이게 더 나아.”
그런 건가. 나는 대충 납득하며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현호와 소영이, 최인성은 멍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한수는 표정을 찌푸리고, 인하는 휘청거렸……인하야?!
“왜 그래? 어디 아파? 감기 한 번 안 걸리던 애가 갑자기 왜 이래?”
“세상에……내가 모르는 사이 저놈이 너한테 이렇게 꼬리를 쳤을 줄은…….”
“뭐어?”
나는 정색하며 인하의 이마에 손을 뻗었다.
“인하야. 너 정말 어디 아파? 괜찮아? 그리고 혹시 방금 휘청거린 거 연기였어?”
“아니,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나는 인하에게 열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고개를 젓는 인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최인성이 나를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아하하하……수준별 수업 때 대화를 나누는 게 보여서 사이가 좀 괜찮아졌구나 안심하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거 보니까, 생각보다……친해진 것 같다……?”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친해진 게 아니라 익숙해진 거야. 같은 수업을 두 개나 듣는 데다, 동아리도 같고, 과제 하느라 많이 싸웠거든. 그래서 얘 말투에도 익숙해졌고.”
“말투에 익숙해졌을 정도면 정말로 많이 익숙해진 거네…….”
어쩐지 최인성의 표정이 조금 흐렸다. 그사이 인하가 이성진의 멱살을 쥐었다. 헉! 인하 넌 또 왜 그래?
“과제를 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누가 친해지래? 너, 내가 은하한테 접근하지 말랬지?”
인하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이성진이 혀를 차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알 게 뭐야.”
진짜 귀찮다는 투였다. 어쩔 수 없이 상대해 준다는 것 같은 말투였다. 와, 재수 없어. 인하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찌푸린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너, 은하한테 뭐 빌려 달라고 하지 마.”
“그건 내 맘이지.”
“너 진짜 뻔뻔한 거 알아?”
“빌려줄지 말지는 쟤가 알아서 하겠지. 그런 것까지 참견하다니, 네가 쟤 엄마냐?”
그 대치 상태를 보다 못한 소영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안. 차라리 내가 디카 살게.”
이어서 한수도 인하를 말렸다.
“어차피 방학 때까진 못 마주치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시비 덜 거는 걸로 됐다 치자.”
“하지만…….”
인하가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이성진을 노려보았다.
나는 슬금슬금 그 대치에서 시선을 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른바 현실 도피다. 아래로 끝없이 바다가 펼쳐졌다. 이 비행선, 승차감이 제법 괜찮은걸? 이렇게 편하게 가는데 분위기도 편하면 얼마나 좋을까…….
“거기 꼬맹이들, 시끄럽다. 얼마 남지 않은 여행길, 좀 조용히 하고 가자.”
시끄럽긴 시끄러웠는지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이번 실습 인솔자 중 한 분이 우리를 꾸짖었다. 그러자 민희가 부루퉁한 얼굴로 항의했다.
“엥~. 아저씨 너무해요! 쪼잔하게 굴기 없기!”
“아저씨는 누가 아저씨야!”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옆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가 한 명 앉아 있다. 그녀 역시 인솔자다.
이번에 우리를 인솔하는 사람은 두 사람으로, 둘 다 우리는 잘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중 한 사람은 민희랑 친분이 있는 듯했다. 듣기로는 학교 방위 총책임자라고 한다.
“에이, 아저씨 50살 넘었잖아요! 오빠한테 들었거든요? 아저씨 맞지, 뭐!”
“아오……제현이 그 자식을 진짜.”
그가 골치 아픈 표정으로 앞머리를 쓸었다. 그는 A랭크 마법사고, 여자는 C랭크 마법사라고 한다. 남자는 민희네와 같이, 여자는 우리와 같이 움직일 예정이다.
당연하지만 이번에도 약간 변장을 했다. 인식 방해 아이템을 차고, 가발을 쓰고, 인상도 바꿨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는 사람은 알아볼 정도의 변장이다.
잠시 후 민희와 티격태격대던 남자가 우리를 향해 지시를 내렸다.
“어이, 너희들. 이제 거의 다 왔다. 나갈 준비 해라.”
그에 의자에 폭 파묻혀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 허리를 세웠다. 이번에 유펠르시아에서 대현에 요청한 실습 인원은 마력석 채굴에 세 명, 어느 조직의 뒤처리에 일곱 명으로 총 열 명이다. 마력석 채굴에는 나와 한수, 이성진이, 조직의 뒤처리에는 인하, 민희, 소영, 최인성, 현호, 아르델, 강미나가 간다. 몇 명만 빼고는 거의 친한 친구들이다. 그리고 다들 학년 상위를 차지할 정도로 쟁쟁한 실력의 소유자다.
“하아, 이제 곧 헤어져야겠네.”
“그러게…….”
대현은 유펠르시아 왕궁 마법사 협회와 동맹을 맺고 있다. 이는 꽤나 이례적인 일이다. 한 나라의 조직이 같은 국가 단위의 조직이 아니라 치외 법권을 형성하고 있다고는 해도 한국 내의 조직인 대현과 대등한 동맹을 맺다니.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건 전에 스승님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대현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린 마법사를 보호하고 있다. 한편, 유펠르시아 왕실은 왕녀가 한 명 실종 상태다. 실종된 왕녀를 제외하고, 현재 유펠르시아 왕의 슬하에는 아들이 한 명 있고, 그 역시 장래가 유망한 실력자다. 17살의 나이에 C랭크, 이미 유펠르시아 왕실 고유 혈족계승마법을 각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페일린 왕가는 대대로 가족애가 돈독하여, 실종된 왕녀를 계속해서 찾고 있다고 한다.
왕녀의 나이는 살아 있다면 나와 동갑이다. 대현은 어린 마법사를 보호하는 단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조직이다. 그렇기에 지속적으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비행선이 착륙할 때까지 우리는 어질러 놓은 물건을 정리하고 짐을 챙겼다. 나 역시 밖으로 꺼내 두었던 물건을 전부 아공간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남자 인솔자가 아직 착륙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비행선의 문을 열었다. 세찬 바람이 비행선 안을 휩쓸었다.
“앗, 눈 아파. 아저씨, 갑자기 뭐예요!”
“이 이상 꾸물대면 지각할라. 착륙하려면 괜히 시간 걸린다. 그냥 뛰어내려.”
“에이, 진짜.”
민희만 잠깐 투덜거렸다. 부유마법을 사용해 아래로 착지하는 건 매우 손쉬운 일이다. 옛날엔 고소 공포증이 있던 나에게조차. 나는 인하와 팔짱을 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로 왕성이 보였다.
“그런데 설마 성에서 모이는 거예요?”
“아니. 그 옆에 있는 황실 협회에서 모일 거야. 혹시 모르니까 지금 미리 번역마법 걸어 놔라. 외국어 듣고 당황하지 말고.”
“네, 네, 네.”
“네는 한 번만 해!”
“네에~.”
“길게 늘이지 마.”
“일일이 잔소리야!”
민희가 투덜거리며 제 머리에 번역마법을 걸었다. 번역마법은 통칭으로, 정확히는 내뱉은 언어가 마음으로 통하는 마법이다. 민희에 이어 우리도 번역마법을 걸었다. 우리는 이내 차례대로 아래를 향해 뛰어내렸다.
민희나 인하는 마법을 쓰지 않고 그냥 착지할 생각인 것 같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운동 신경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부유마법을 썼다.
그렇게 우리는 왕성과 약간 떨어진 건물 정원에 착지했다.
나는 고개를 움직여 주위를 살폈다. 정원은 매우 넓었다. 바닥에는 얕게 잔디가 깔려 있고, 울타리 근처에는 장미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눈앞에 있는 건물은 이곳의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하얀 상아 같은 것이 아니라 벽돌로 되어 있었다. 하얀 벽돌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마력에 나는 한순간 멍해졌다.
“보자. 그럼 마력석 채굴에 지원한 애들은 민영이를 따라가라.”
“은하에 한수, 성진이랬지?”
여자 인솔자의 목소리에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말고 다시 앞을 보았다. 그녀는 이성진과 눈이 마주치고는 잠시 동요했지만 자연스레 웃어 보였다. 처음 얼굴을 마주했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참 대단하다. 저 외모를 마주하고 저렇게 빨리 평정을 되찾다니……. 어쩌면 우리 학교에 있는 다른 미남들에 의해 내성이 생겨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제현 오빠나 성후 오빠, 민 선생님 같은 사람들 말이다.
“이쪽으로. 나를 따라오렴. 한눈팔면 안 돼.”
“너희는 이쪽이다.”
두 사람은 우리를 각자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넓은 정원과 그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왕성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쉬운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며칠 후에 보자~.”
마력석 채굴 일정은 오늘부터 시작해서 내일 오후까지다. 우리는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은 더 오래 걸린다고 들었다. 인하와 민희, 현호가 나와 한수를 향해 아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