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142
그런 와중에 대현이 그녀를 보호해 주었다. 여기에 와서 친한 친구들이 생겼다. 그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을 것이다. …약간 이해가 갔다.
“그래도, 그래도……부모님이랑 같이 있는 게 더 좋은 거잖아요. 그렇지요? 알긴 아는데……그래도 섭섭해서…….”
“아르델, 굉장히 슬퍼 보였어.”
“…….”
시하가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말을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예슬이가 이내 나를 향해 부탁을 했다.
“저기, 그래서, 우리 아르델한테 선물을 준비하려고 해요. 그래서, 그게, 우리는 같이 선물을 준비할 건데요, 은하 님이 따로 선물을 하나 준비해 줄 수 없나 싶어서요.”
“선물?”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모님을 만난 건 좋은 일인 데다, 헤어지는 거니까 무언가를 주고 싶거든요. 메일 주소도 알고 전화로 계속 연락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분명 많이 섭섭할 테니까. 그래서 은하 님께도 부탁하고 싶어서……안 될까요?”
나는 그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지만, 나 아르델이랑 그렇게 친하진 않은데…….”
“괜찮아요! 걔는 은하 님이 주는 거라면 뭐든지 기뻐할 거예요! 뭐든지 좋아할 거예요. 아르델 걔, 저처럼 은하 님을 엄청 좋아하니까…….”
설마.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딱히 그걸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나는 두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아르델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려 줄 수 있을까?”
그러자 예슬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어떤 거든! 아르델은 은하 님 선물이면 뭐든지 좋아할 거예요!”
……아니, 그건 좀. 그거 엄청 애매한데. 사람을 제일 곤란하게 만드는 대답인데.
“그래도 기왕이면 오래 남을 수 있을 물건이 좋을 것 같아요.”
“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또 한 번 물었다.
“혹시 언제 전학 가는지 알아?”
그러자 예슬이와 시하가 다시 풀이 죽어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번 주 토요일이에요. 이번 주 수업만 마치고 가야 한대요.”
“그래? 알았어. 그때까지 준비해서 전하면 되지?”
“네!”
강예슬이 양 주먹을 꽉 쥔 채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전학 선물이라고 하니, 내가 아르델과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거절할 이유가 없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며 반드시 선물을 주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전학 선물이라, 뭘 주면 좋을까? 그 아이가 부모님을 찾아서 참 다행이다…….
‘생각해 보면 걔도 참 불운하다. 아니, 불운했던 거구나.’
나는 기숙사로 돌아가 훈련도 소설 집필도 하지 않고 한동안 고민했다. 정말로 전학 가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좀 이상했다.
외부에서 우리 대현으로 들어온 일은 있어도 한번 입학한 아이가 나가는 일은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퇴학당했던 몇 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당연한 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처음 왔을 때부터 어쩐지 낯설었다. 외국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학교에는 그 전부터 많지는 않지만 외국인이 몇 명 있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아르델은 굉장히 낯설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왠지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좋지 않은 생각이지만…….’
진로 상담도 바로 지척으로 다가와 있다. 무엇을 선물할지 빨리 정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에 나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친구의 전학 선물로는 대체 어떤 걸 준비하는 게 좋을까? 이런 건 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친한 친구면 사진을 찍고 액자에 끼워 선물하기도 할 테지. 혹은 편지를 보내기도 할 터다. 하지만 나와 아르델은 그런 것을 보낼 사이는 아니다.
그럼 무난하게 필통이나 문구 세트? 그건 너무 애 취급 하는 것 같은 선물인가? 아님 내가 시나리오를 쓴 게임 CD라도 줄까? 증정용으로 온 것 중에 포장도 뜯지 않고 보관하고 있는 게 몇 개 있긴 하다. 그건 크게 나쁘지 않은 선택 같다.
‘그래도 그건 부끄러워. 응, 부끄러워.’
기왕이면 오래 남을 수 있는 선물이 좋겠다고 했었지. 나는 샤프를 끄적거리며 고민했다. 어……그럼, 그럼……기왕 주는 김에 시험 삼아 아이템이라도 만들어서 줘 볼까?
“…….”
제법 괜찮은 생각 같았다. 거창한 게 아니라도 좋다. 은근히 효과가 있으면서 곁에 두기 재미있는 물건이면 좋겠다. 예를 들어서……그래! 그 아이는 좀 불행한 일을 겪었으니까, 행운을 불러오는 물건은 어떨까? 그럼 액세서리가 좋겠지. 흔히 있지 않은가. 행운 부적 같은 거 말이다.
동기가 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지만 헤어지는 친구한테 행운 부적 같은 것을 주는 것은 흔한 일이다. 나는 씩 웃었다.
안 그래도 한동안 액세서리를 못 만들고 있었는데, 기분 전환으로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게다가 나도 아르델한테는 신세를 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실력 때문에 자주 얽히기도 했다. 도움을 받은 적도 몇 번 있다. 1학기 동안 같은 수준별 반이었던 데다가, 민희는 아르델과 어느 정도 친했다. 그러니 직접 만든 액세서리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액세서리를 만들기로 정하고, 이번엔 물건의 디자인을 고심했다. 전에 행운 부적을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봤던 건 팔찌였다. 그러니 팔찌로 만들어 보자. 기왕 만드는 거 신경 써서, 예쁘게 만들어 주자. 나는 교과서 귀퉁이에 대강 디자인을 구상하며 낙서를 했다.
저녁쯤에 친구들이 내가 윤시하, 강예슬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하며 내 방으로 찾아왔다. 민희는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납득했다.
“그렇구나. 그럼 나도 같이 준비해야겠다. 네 선물 받으면 아르델이 엄청 기뻐할 거야.”
“하하. 시하랑 예슬이도 그렇게 말하던데…….”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정말로 그럴까? 옆에서는 인하와 한수가 아르델이 정말로 전학을 가는구나 싶다며 심란해했다.
아마 덩달아 오게 된 것 같은 최인성이 우리의 대화를 듣다가 약간 어색해하며 말문을 열었다. 최인성은 다른 사람들 앞에선 안 그러는데 유독 내 앞에서만 낯가림을 하는 편이었다.
“아르델이 전학 간다고 말이 많더라. 우리 반 녀석들도 엄청 섭섭해하더라고. 오늘만 교실에 몇십 명이 찾아왔다니까? 걔 친구 많은가 봐…….”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최인성은 나에게는 아직 어색한 상대였다. 그러자 최인성 역시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 나와 최인성을 번갈아 보던 민희가 웃으며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야 초등학교 때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니까.”
“…어?”
그 말에 최인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민희를 돌아보았다.
“초등학교 때 말이야, 우리 학년은 특이할 정도로 단결력이 좋았어. 그래서 중학교로 올라온 지금도 초등학교 때부터 대현에 다녔던 애들끼리는 다 친하고 자주 인사하고 다녀. 거기에 아르델은 5학년 때 새로 들어온 편입생이긴 했지만, 6학년 때 학생회에 들었었거든. 또 우리 학교에서 은하나 나 다음으로 제일 친구가 많고 영향력이 높은 예슬이랑 친하기도 하고. 그리고 본인 성격도 장난 아니다?”
“응. 진짜 장난 아니더라.”
최인성이 이상할 정도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격이 장난 아니다라……확실히 그런 면이 있긴 하다. 이미지 관리도 하고, 적당히 연기를 하며 상황을 능숙하게 이끌어 갈 줄도 안다. 낯선 사람에게는 가식적인 면도 있다. 이제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한테는 안 그러는 모양이지만.
“그러니까 우린 친구가 100명쯤 있는 거라고. 초등학교 때 같은 학년이었던 사람 이름은 서로 다 알고 있고, 자주 인사하고 놀러 다니니까.”
그건 그렇지. 나도 인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서로 엄청 사이가 좋은 건 아니더라도 딱히 사이가 안 좋거나 겉도는 친구도 없다. 민희 말처럼 초등학교 때 같이 다녔던 친구들끼리는 상당히 단결력이 좋았다.
“그래서 아르델한테 선물 뭐 줄지 정했어?”
“아, 응. 팔찌를 만들어 줄 거야.”
소영이의 물음에 나는 손을 모으며 생긋 웃었다. 아직 디자인이 다 정해지지 않았지만, 가장 중앙에 끼우는 구슬은 마정석이 될 것이다.
“그럴 때는 손수 만든 선물을 주는 일이 많잖아.”
잠시 생각하던 친구들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은 것 같아.
“근데 왜 팔찌야?”
“그냥 문득…? 그리고 아르델 잘 꾸미고 다니잖아. 용돈을 다 액세서리 사는 데 쓰는 거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을 정도야.”
“은하 너만큼은 아닐걸.”
한수가 한숨 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찔려서 신음했다.
“나, 나는 직접 벌어서 사고 있고, 싼 거밖에 안 사.”
“재작년부터 자주 하고 다니는 팔찌.”
“윽……!”
갑자기 심하게 양심이 찔렸다. ……100만 원 단위였으니까 말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소영이와 최인성만이 머리 옆에 물음표를 띄웠다. 나는 한수의 시선을 피하며 작게 툴툴거렸다.
“그렇게 많이 사지 않는단 말이야……. 책을 더 사면 모를까…….”
그러자 이번엔 인하가 인상을 좁혔다.
“책도 이제 그만 사. 그거 기숙사에 꽂아 둘 데가 어디 있다고 그래.”
“그래서 아공간에 넣어 두잖아. 자료용 책만 밖에다 빼 놓고 다닌다고.”
“도서관에도 책 많은데 그 책을 왜 다 사고 그래.”
“중요한 책만 산 거란 말이야.”
정말 누가 커플 아니랄까 봐 잔소리도 똑같이 하네. 마치 엄마가 떠오르는 잔소리였다. 나는 인하의 시선을 회피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 이성진이 있었다면 나를 한심한 눈으로 보았을 것 같다. 그 녀석이 안 따라와서 참 다행이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나는 인터넷을 뒤지며 팔찌를 몇 개 살폈다.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참고하고 싶어서였다.
한동안 맘에 드는 디자인을 찾다가 종이를 하나 꺼내 거기다가 만들고 싶은 액세서리 모양을 대강 그렸다. 그런 후 서랍에서 액세서리용 재료를 꺼냈다. 액세서리 만드는 걸 본격적으로 취미로 삼은 순간부터 나는 항상 재료를 어느 정도 갖춰 두고는 했다.
자연스럽게 재료를 꺼내 팔찌를 만들던 나는 어쩐지 이런 나 자신에게 위화감을 느꼈다. 이걸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그러니까, 갑작스레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듯한, 그런 기묘한 감각이었다.
“…….”
나는 침묵하며 손을 움직였다. 팔찌에 끼워 넣을 마정석을 먼저 만들었다. 아르델의 마력 색과 패턴을 모태로 했다. 그러자 주황색과 금색이 섞인 금홍색 마정석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것을 압축시켜 손톱보다도 작은 크기로 새롭게 만들었다. 내가 세공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더 예쁜 모양을 만들 수 있을 테지만, 유감이다. 나는 구슬처럼 면이 매끄러운 것밖에는 만들지 못했다.
‘나중에 커팅 도구를 사든가 해야지.’
이 세계에는 그런 게 참 많다. 마법이 있다 보니 다이아몬드조차 커팅 도구로 예쁘게 세공할 수 있다. 물론 감정을 담아서 정말로 예쁘게 세공할 수 있는 건 그런 종류의 마법을 가진 마법사나 장인의 손이지만, 그래도 커팅기로도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출 수 있다. 이 세계에는 그런 작으면서도 편리한 도구가 참 많다.
생각해 보니 이제 나는 커팅 도구만 있으면 웬만한 액세서리는 크게 재료비를 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겠구나. 금속으로 된 장식도 내 금속조형마법으로 어떻게 할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틀로 찍어 내면 된다. 무엇보다 나는 마정석을 직접 만들어 낼 수 있다.
생각에 잠긴 채 손을 움직였다. 참고로 내가 마정석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나름 비밀이다. 그래서 나는 주제가 될 마정석 하나를 제외하고는 평범한 비즈와 큐빅을 사용했다. 도안을 고르고 재료를 고르는 것만으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음……나머지는 내일 할까? 아직 시간은 충분히 남았으니까.”
나는 기지개를 켜며 갖춘 재료를 다른 작은 상자에 모아 다시 서랍에 넣었다. 그 후에는 마력석 나무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 확인하고, 소설을 좀 끄적이다가 수면 모드를 세트했다.
팔찌 만들기는 수업과 훈련 짬짬이 계속되었다. 이틀째에는 금속으로 된 팔찌 줄 중간중간에 생각해 둔 도안대로 비즈를 채워 넣었다. 꼬아서 두 줄로 늘어뜨리는 모양의 팔찌였다. 또한 메인인 마정석을 꽂을 연결 쇠도 만들었다.
사흘째에는 메인 장식을 붙이고 어떻게 마법을 부여할지 고민했다. 행운을 마법으로 부여한다라. 생각보다 상상력이 필요한 부류였다. 불운한 일이 일어났다고 마음 깊이 느낄 때 행운을 불러올 수 있는 인력. 이는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었다. 불행은 계속되기 쉽고 사람은 행운을 발견하고 실감하기 힘들다. 나는 고민하다가, 마음을 담아 글을 썼다.
때문에 팔찌를 완성한 것은 목요일쯤이었다. 목요일 저녁에 완성했기 때문에 전해 주러 가는 건 전학 가는 날 전날인 금요일이 되었다.
나는 예슬이를 통해 아르델의 방을 알아냈다. 아르델의 방 문 앞에 도착한 후에야 미리 문자라도 보내고 올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뭐, 와 버린 이상 어쩔 수 없지. 나는 조금 긴장하며 아르델의 방 문을 노크했다.
잠시의 침묵 후,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저기, 나 은하인데.”
그러자 안에서 뭔가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덜컥하고 다급하게 문이 열렸다. 문 앞에 선 나를 본 아르델이 눈을 크게 떴다.
“어, 어……은하? 네가 웬일이야?”
“아, 응. 예슬이한테 들었는데…….”
나는 손에 든 작은 상자를 아르델에게 내밀었다.
“전학 간다면서? 다른 애들도 너한테 주려고 준비하고 있지만, 나는 따로 전해 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이거, 전학 선물이야.”
아르델이 멍하니 상자를 받았다. 잠시 멍한 눈으로 제 손 위에 있는 상자를 바라보던 아르델이 곧 울상을 지었다. 그녀의 초록빛 눈동자가 일렁일렁 차올랐다.
“고, 고마…….”
말을 잇던 아르델이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어뜨렸다. 아르델은 당황하며 얼굴을 가리고 자리에 쪼그려 앉는가 싶더니, 이내 울음을 쏟아 냈다. 나는 당황해서 아르델을 향해 팔을 뻗으며 몸을 숙였다.
“흐아아앙……! 어떡, 나, 어떡……흡…! 나, 정말로, 전학, 가고 싶지……흐윽……흐아아앙!”
아르델이 주저앉은 채 눈물을 쏟았다. 아니, 여기 밖인데, 이런 데서…….
나는 당황하다가, 이내 아르델의 어깨를 천천히 쓸었다. 그런 한편 걱정도 되었다. 얼마나 힘들면 이렇게 울까. 갑작스럽게 나타난 부모님, 갑작스러운 전학, 아직 성인도 안 된 아이에겐 전부 견디기 힘든 것이다.
아르델의 울음소리를 듣고 학생들이 하나둘 방문을 열었다. 나는 소란이 되기 전에 아르델을 부축하며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르델, 잠깐, 안에 들어가자. 자, 괜찮으니까.”
아르델은 차마 울음을 그치지 못하며 내 부축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아르델과 함께 방에 들어서며 재빨리 문을 닫았다. 아르델은 내 앞에서 계속해서 눈물을 쏟아 냈다. 나는 그런 아르델을 보며 어쩔 줄을 몰랐다.
“흑……흐윽! 흐아아아…….”
“……괜찮을 거야. 시하랑 예슬이는 좋은 애야. 편지도 하고 화상 전화도 하고…….”
나는 말을 이으면서도 착잡했다. 서로 멀리 떨어지면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졸업하고 몇 년 후 뒤돌아보면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하더라도 이미 가슴속에서 잊혀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나는 어쨌거나 아르델을 위로했다.
“부모님도, 지금까지 널 찾을 정도면 좋은 분일 거야.”
그러자 아르델은 더 울분이 솟은 듯 울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하지만 내 부모님은……! 그 사실을 알면 시하랑 예슬이도 날 멀리할지도 몰라……! 하지만……흐읍……은하 너도……! 흑…흐윽…!!”
나는 아르델을 달래면서도 의아해했다. 부모님? 부모님이 어떤 분이기에? 혹시 안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인 걸까? 아니면 오히려 반대인 걸까? 하지만 뭔가 안 좋은 일을 하는 분이라면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그 이사장님이 아르델을 이렇게 간단히 전학 보내 줄 것 같진 않았다.
“나, 싫어……. 싫어……! 전학 가기도 싫고, 그리고…….”
아르델은 한동안 울기만 했다. 아르델이 문 앞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모습이 그 잠깐 사이에 누구의 눈에 띄었는지 잠시 후 시하와 예슬이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이 이야기를 듣고 왔다며 이 아이의 방으로 찾아왔다. 나는 아르델을 그녀의 친구들에게 맡기고 방을 나서면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제일 친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울고 있는 친구를 보자니 가슴이 아팠다.
나는 아르델의 방을 말없이 나섰다.
후에 듣기로, 아르델은 토요일 오후에 짐을 챙기고 유펠르시아로 갔다고 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아르델의 부모님이 학교까지 마중을 왔다고 한다. 비행선을 타고 가족이 전부 모여 아르델을 마중하러 온 모습은 상당히 장관이었다던가. 심지어 그 비행선은 그냥 비행선이 아니었다. 유펠르시아의 문장이 새겨진 왕실의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르델은 실종됐던 유펠르시아의 공주님이었던 거예요! 세상에, 우리 친구가 공주님이었다니!”
그건 듣고 있던 나마저도 얼이 빠져 물건을 떨어뜨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잘 알던 친구가 실은 공주님이었다니, 그런 일이 바로 곁에서 일어날 거라고 세상에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세상에…….”
“그쵸? 그쵸? 엄청 놀랍죠? 벌써 유펠르시아에 신문으로 났어요! 아르델이 드레스 입고 나와 있는데, 이것 봐요! 엄청 예쁘죠?”
예슬이가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으로 뉴스 사진을 띄워 보여 주었다. 확실히,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르델은 굉장히 예뻤다. 본판부터 미인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슬이는 뿌듯하게 웃으며 핸드폰의 사진을 바라보더니,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야 원. 좀 있으면 학교에 소문 다 나겠네.’
아르델과 익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말하지 않더라도, 분명 신문 기사를 보고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던 나는 어떠한 사실에 생각이 미쳐 표정을 창백하게 굳혔다.
‘……잠깐, 아르델이 공주라는 건, 저번에 만났던 일렌은? 분명 아르델의 오빠라고…….’
헐? 잠깐, 설마……. 나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끼며 2차 충격을 받았다. 설마 그때 만났던 그 남자가……왕자님이었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아니, 오빠라는데 아닐 리가 없잖아. 그런 거잖아! 내가 경악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예슬이가 말을 이었다.
“걱정이 많이 돼요. 유펠르시아 왕족은 대대로 붉은 머리카락이잖아요. 너무 어릴 때 혈족능력을 각성해서 머리 색이 금발이 된 것 같다고 듣긴 했는데, 그래도 혹시……이상한 험담을 듣지나 않을까 걱정돼요.”
“아르델 성격에 그걸 듣고 가만히 있겠어?”
“그건 그렇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예슬이가 시하의 말에 작게 웃었다. 나는 그때쯤에서야 겨우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르델의 오빠에 대해서는 나중에 확인하든가 말든가……하하하. 아하하하…….
예슬이는 곧 무엇을 떠올렸는지 기쁜 표정으로 뺨을 붉게 물들이며 손을 마주 모았다.
“그래서요, 아르델이 은하 님이 준 선물 확인하고 엄청 기뻐했어요. 민희한테 들었는데, 그거 직접 만든 거라면서요? 그거 듣고 좋아서 울기까지 했다니까요.”
“응? 뭐? 그건 오버다….”
아직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러나 내 동요를 눈치채지 못한 예슬이는 그저 웃었다.
“진짜로요. 고맙다고 했어요.”
“……응.”
나는 수줍게 웃었다. 두 사람도 다정한 표정으로 웃었다.
나는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수업 시작할 시간이니까 난 이만 갈게. 소식 전해 줘서 고마워.”
“민희도 거기 있었지만, 민희한테 은하 님한테는 내가 얘기하겠다고, 당분간 다른 친구들한테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어쩐지 이야기를 안 한다 싶더라니, 그랬구나.”
나는 수업 준비실 뒷문으로 걸어갔다. 아침에 등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 말이 있다는 예슬이와 시하, 두 사람에 의해 교실 옆에 있던 수업 준비실로 끌려온 것이었다.
“저기요, 은하 님.”
문을 열기 위해 손을 올리는데, 예슬이가 또 한 번 말을 걸었다. 응? 나는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예슬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요, 실습으로 꼬박꼬박 돈 모아서 내년 방학 때 유펠르시아에 놀러 갈 거예요. 아르델이 초대해 준다고 말했으니까.”
나는 감정으로 넘쳐흐르는 다정한 미소를 보다가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르델도 좋아하겠다.”
우리는 준비실을 나서며 인사하고는 서로의 교실로 돌아갔다. 하여간 잘 끝난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 일렌이란 사람이 준 2차 충격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지만, 지금은 그 충격에 얼이 나갈 때가 아니었다. 응, 아니었다.
나는 교실로 돌아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자습 시간부터 2교시까지 진로 상담이 있는 날이다.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하는 건 그쪽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소영이와 인하가 잔뜩 궁금증이 어린 얼굴로 내 곁에 붙었다.
“그래서, 뭐래?”
“응. 잘 갔대.”
나는 순간 ‘아르델이 사실은 유펠르시아의 왕녀였다.’라는 누구나 놀랄 법한 이야기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일단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퍼질 소문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그 소문을 퍼트리는 당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설마 아르델이 공주님이었을 줄이야. 그런 일이 주변에서 생길 줄이야. 뭔가 충격이었다.
‘그렇게까지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알고 지내던 사람이 사실은 공주님이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건가 싶기도 하다. 친구들이 어쩌면 자기를 멀리할지도 모른다고…….
‘확실히 왕녀님이라고 알고 나니 기분이 좀 그렇긴 한데…….’
그리고 아르델의 오빠라는 그 일렌이란 남자도…….
어느새 충격을 되새기고 있던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친구가 한 명 전학 간 것은 분명 굉장히 쓸쓸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진로 쪽이 더 중요했다. 나는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내가 고를 과는 예술과다. 그건 마음속으로 확실히 정한 일이다. 결계부도 끌리지만 예술과로 간다고 결계부에 못 가는 건 아니니 상관없다. 예술과로 간다고 다른 과목 수업을 못 듣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건 관심 가는 직업에 대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사실 몇 주 전만 해도 예술과로 확실히 정할지 말지부터 고민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아니, 사실 마음이 어느 정도 정해진 것 같긴 하다.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내 마법이 그에 매우 걸맞다는 사실을 알아 버리고 말았으니까.
‘문자마법도, 마정석을 만들 수 있는 능력도, 마법을 복사할 수 있는 것도, 전부.’
해 보고 싶다. 이 마음은 전생에 내가 소설가를 꿈꿨을 때의 마음보다는 훨씬 불안정하다. 글은 내 삶이고, 꿈이었고, 목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법 세계에 환생했다. 몸에 익힌 마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고 싶었다. 나는 손을 꼭 모아 쥐었다.
곧 자습 시간이 되고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담임 선생님은 지금부터 2학년 진로 상담을 하겠다며 바로 옆에 있는 수업 준비실로 1번부터 한 사람씩 불렀다.
“시작이네.”
“인하는 2번이었지? 힘내.”
“응.”
내가 지금 막 손에 잡은 그 ‘꿈’이라고 불러도 될지 말지 모르는 것은 너무 작고 불안정해 입으로 내뱉기도 애처로웠다. 하지만 해 보고 싶다. 전투는 나에게 맞지 않고 연구는 나에게 너무 어려웠다. 그러니까 이것은 분명 내가 내 마법을 연구하면서 동시에 내 마법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일 것이다.
입으로 내뱉는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긴장이 되었다. 정말, 이렇게 생각도 해 보지 못한 도전을 해 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일지도.
곧 인하가 불려 갔다. 3번, 4번, 나는 나갔다가 돌아오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점점 더 긴장으로 젖어 들었다.
자습 시간이 끝나고 1교시가 중반으로 접어들었을 무렵, 드디어 내 번호가 불렸다.
“은하야, 네 차례야.”
“응.”
나는 내 전 번호인 학우에게 배턴을 터치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하와 소영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은하야. 잘 갔다 와.”
“……응.”
나는 손을 흔든 후 걸음을 옮겼다.
나는 지금껏 진로에 대해 혼자서 고민해 왔다. 이건 스스로 정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 내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들으면 친구들은 다들 놀랄지도 모르겠다. 이건 그 정도로 뜬금없는 것이니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냥 흥미 위주로 선택했다고 여길지도 모르지. 내가 초등학교 4년간 액세서리 만들기부에만 들었던 것처럼.
하지만 뜬금없는? 정말로 그럴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면 나는 어릴 때부터 그것의 기반이 될 만한 것을 조금씩 배워 왔으니까. 그리고 문자마법은 그야말로 그에 가장 걸맞은 마법이니까.
나는 준비실의 문을 열었다. 책상은 대부분 옆으로 밀려나 있고, 오직 중앙에만 교실용 책상보다는 좀 긴 책상 두 개가 겹쳐 서 있었다. 그 책상 앞에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선생님의 부름을 따라 선생님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제 은하 차례구나. 엄청난 기대주이니만큼 신중하게 해야겠는걸.”
나는 그 말에 긴장하다 말고 한순간 쑥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곧 다시 긴장의 끈을 잡으며 손을 무릎 위에 모아 올렸다. 손가락에서부터 싸한 느낌이 퍼져 나가며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잡은 손에 꾹 힘을 줬다.
“은하는……아무래도 전투 마법사 지망은 아닐 것 같은데. 하더라도 서포트나 방어 쪽으로 돌 것 같구나.”
“음……네.”
“혹시 어느 과로 가고 싶은지 정해 둔 게 있니?”
나는 선생님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망설였지만, 입을 열었다.
“네…….”
“그래? 있구나?”
“저기, 딱 정한 건 아닌데요……그냥 요즘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래? 학교에 있는 과니?”
“네.”
나는 작게 긍정하며, 이내 가만히 무릎 위에 얹은 손만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예술과로, 갈 거예요.”
“예술? 예술은 마법을 제외하고도 그에 관련된 재능이 필요한 과인데……. 은하 넌 어떤 걸 배우고 싶은 거니? 미술? 음악?”
선생님은 내 대답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것이다. 나도 이것을 선택하게 될 줄은 지금까지 생각도 못 했다.
“장인 일을 배우고 싶어요.”
선생님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의외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입을 천천히 움직였다.
──의외? 정말 그럴까?
만드는 걸 좋아했다. 어릴 적, 아마 인하한테 직접 목걸이를 만들어 준 그날부터. 아니, 실은 그 전부터.
다만 나는 인하한테 목걸이를 만들어 준 걸 계기로 초등학교 4년간 액세서리를 만드는 방법을 조금씩 공부하게 되었다. 중학교로 올라온 후부터는 유리 공예도 배우게 되었다.
내가 지금 붙잡게 된 이 일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종사한다. 그들은 다들 아주 다양한 것을 만든다. 도자기, 내가 배우는 유리 공예품, 금속 도구, 가구나 옷, 칠기 같은 것. 그리고 나는 액세서리를 만들 수 있다. 유리 공예, 비즈, 그 재료들을 이용해서. 내가 이것을 더 전문적으로 배운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거기에 문자마법이 더해진다면?
“저, 아이템을 만드는 장인이 되고 싶어요.”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춰져 있었다. 나는 마법을 부여할 물건을 만들 수 있고, 그 물건에 마법을 부여할 마법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서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마정석을 만들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이것은 분명 이끌림이었다.
##26. 시선이 맞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