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154
“거긴 괜찮아. 혼자서 밤중에 밖에 놀러 나가지는 않지? 당연히 오늘만 예외겠지?”
“네에…….”
나는 말을 흐렸다. 사실, 아니다. 밤에 밖에 빠져나간 적은 꽤 많다. 별을 보기 위해 천문대에 가서 그쪽 사람들이랑 밤을 새운 적이 몇 번이나 있다. 딱 한 번뿐이긴 하지만 이성진이랑 둘이서만 사진을 찍으러 천문대에 간 적도 있다. 기분은 굉장히 어색했지만 아름다운 하늘이 그러한 기분을 전부 날려 주었다.
내 떨떠름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제현 오빠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너 설마…….”
“혼자 간 건 아니었고요, 밤 모임으로 간 거예요! 별 관측회에만 몇 번 갔어요!”
나는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제현 오빠의 기세는 죽지 않았다.
“그것도 천문대 도착할 때까지는 혼자 갔을 거잖아.”
“아, 아닐 때도 있긴 있었는데…….”
“여럿이더라도 너무 늦게 가는 건 자제해.”
“네에…….”
혼이 나는 나를 최인성과 가드 아저씨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특히 아저씨는 화를 내는 제현 오빠를 보고 꽤나 놀란 듯했다. 응, 오빠가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이긴 하다. 본래 냉정 침착하니까.
잠시 나와, 이어서 최인성을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혼낸 제현 오빠는 도서관을 마법으로 정리하며 우리에게 나오라고 했다. 우리는 한숨을 내쉬며 물건을 챙기고 제현 오빠의 뒤를 따랐다. 최인성이 나에게 물었다.
“……별 관측회라면 이성진이랑 갔었지?”
“응? 응.”
“약속 잡아서 둘이서 가기도 했지……?”
“어……딱 한 번…….”
“뭐? 심지어 그것도 남자애랑 둘이서 간 거였어?”
이런, 또 제현 오빠의 역린을 건드렸구나. 소곤소곤 나누던 대화를 들었는지 제현 오빠가 또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최인성이 흠칫 입을 다물고, 제현 오빠는 나를 향해 다시 잔소리를 쏘아 댔다.
“몇 번을 말해. 넌 어린 여자애야! 어린! 재능이 뛰어난 건 알지만 아직 약한! 우리 은하가 순진한 건 알겠다. 하지만, 알겠니? 남자는 다 늑대야, 늑대. 절대, 그것도 사람이 별로 없는 한밤중이나 구석에서 단둘이 있으면 안 돼. 게다가 이성진이라면 바람둥이로 소문난 놈이잖아. 그런 놈이랑…….”
“아니, 걘 성격 나쁘긴 해도 불한당은 아니에요…….”
“그 녀석의 뭘 믿고!”
“그래도, 친구예요.”
나는 뺨을 긁적였다. 그러자 오빠는 굉장히 맘에 안 드는 눈초리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를 노려보는 제현 오빠와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피하는 나를 잠시 바라보던 가드 아저씨가 곧 제현 오빠를 만류했다.
“야, 야야, 적당히 해라. 네 팔불출은 네 동생만이 아니라 동생 친구한테도 적용되는 거였냐?”
“네.”
제현 오빠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언젠가부터 그랬었지.
“어……그랬냐. 그래도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애들 보내.”
“…….”
잠시 침묵하던 제현 오빠는 이내 내 어깨에 손을 짚고 나를 옆으로 끌어당겼다.
“걱정되니까 얘 바래다주고 올게요.”
“야. 지금 순찰 시간이거든? 네 일을 내팽개치고 어딜 가겠단 거냐, 이 자식이.”
“빨리 올게요.”
응? 어라? 나는 당황해서 고개를 들었다. 이건 절대로 잔소리 각인데? 틀림없이 가면서 잔소리 들을 각이다.
“오빠, 괜찮아요. 전 게이트로 돌아가면 돼요. 여기서 바로 기숙사로 돌아갈 수 있어요. 인성아, 너도…….”
그때, 머리가 아프기라도 한지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최인성이 내 손목을 잡으며 나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내 어깨를 감싸고 있는 제현 오빠의 손을 평소답지 않게 일그러진 눈으로 노려보았다.
“저기요, 근데 친한 오빠라고 해도 스킨십이 너무 과하지 않아요? 누가 보면 오해하겠어요.”
“……뭐?”
“당신 말마따나 얘 여자애거든요. 그것도 2년이면 성인이 되는 여자애. 너무 가깝다고 생각 안 하세요? 그냥 아는 오빠면서.”
나는 당황해서 최인성을 돌아보았다. 얘가 원래 이렇게 날카로운 애가 아닌데? 갑자기 왜 제현 오빠한테 시비를 걸지? 이어서 제현 오빠를 돌아보니, 어느새 제현 오빠도 맘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최인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하긴 제현 오빠는 처음부터 이 시간까지 나랑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최인성을 맘에 안 들어 하는 것 같기는 했다.
두 사람이 차가운 기세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제현 오빠는 걸어온 싸움을 받아 준 거라 쳐. 근데 최인성 얘는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선배한테 시비 걸 만큼 성질이 사나운 놈은 아니다. 이성진도 아니고…….
그 순간 나는 그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을 보고, 납득하고야 말았다. 아, 그랬구나. 정확히 무언가를 안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그의 날카로운 태도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눈치챘다.
“인성아. 너, 피곤하구나?”
“……뭐?”
최인성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가 멍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너, 지금 피곤해 보여. 돌아가자.”
“딱히 그렇게 피곤하지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마법 때문에 예민한 것 같은데. 아니야?”
순간 최인성이 흠칫 뒤로 물러섰다. 자연스레 내 손목을 쥐고 있던 손도 놓았다. 그가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눈동자에 두려운 감정이 섞인 것을 보며 나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정말로 자세히는 몰라. 무슨 일인지는 묻지 않을게. 그치만 네 마법, 오늘은 평소랑 좀 달라. 그래서 마법 때문에 예민한 게 아닌가 싶었어. 나도 그런 일이 있었거든.”
최인성이 울 것 같은 눈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그가 몇 걸음 더 물러서며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안 봤지?”
“응. 네 마법이 성장한 것밖엔 몰라.”
최인성은 몇 번 더 숨을 고르더니, 몸을 돌렸다.
“미안……네 말대로 마법 때문에 예민한 게 맞는 것 같아. 근데 이거 친구들한텐 말하지 말아 줘.”
“응.”
“말하고 싶지 않은……거거든.”
“나도 혹시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
나는 시선을 살짝 내리며 말을 이었다.
“이성진만 좀 피하면, 네가 마법을 제어할 때까지 말하지 않고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무리라고 생각한다. 수준별 수업이 있는 만큼 우리는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수업에서 마주친다. 이성진은 눈치가 무섭게 빨랐다. 과연 몇 주 안에 그가 상황을 수습할 수 있을까? 글쎄……정신적으로 피로해질 정도라면 안정되는 데 최저 한 달은 걸릴 거라고 보는데.
“……어. 그래.”
최인성은 작게 대답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명백히 감정을 억누른 목소리에 나는 그가 차마 못다 한 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그를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걸어가다가 달렸다. 어둠 속에서 그의 모습이 흐리게 사라져 갔다. 그림자가 되어 가고 있는 거다. 나는 그 뒤를 다급히 쫓으려 했지만 제현 오빠가 내 어깨를 잡으며 그것을 말렸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제현 오빠를 올려다본 뒤, 다시 다급한 표정으로 최인성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기척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어깨에서 힘을 빼며 중얼거렸다.
“내가 괜한 말을 한 건가…….”
기분이 이상했다. 친구지만 적당히 친할 뿐인 사람의 개인적인 사정을 너무 건드린 게 아닐까? 제현 오빠가 말없이 나를 보더니 이내 내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됐어. 저런 건 혼자서 극복하는 거야. 너도 그랬잖아.”
“네…….”
그야 그렇긴 하지만. 나는 옷소매를 꽉 쥐었다. 제현 오빠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깐 화내서 미안하다. 너무 걱정이 돼서…….”
“아, 아뇨. 괜찮아요. 오빠 입장에선 화낼 만도 하죠, 뭐.”
“하지만 너 내가 화내면 이상하게 무서워하잖아.”
“아, 음, 그…….”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 제현 오빠는 화를 내면 기세가 남다르다. 친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제현 오빠는 나에게 조금 어려운 상대였다.
“오빠 평소 모습이랑 화난 모습이랑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보니까…….”
나는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하긴, 네가 화내면 표정이 무섭긴 하지. 옆에 있던 아저씨가 약간 동조했다. 그, 그쵸? 저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죠…? 제현 오빠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듯이 아저씨를 잠시 노려보다가, 이내 다시 한숨을 내쉬며 내 머리를 툭 쓰다듬었다.
“됐다, 됐어. 그보다 너 다음부터 쟤랑 이성진이란 애랑은 절대 단둘이서 다니지 마. 차라리 민희랑 현호를 끌고 가.”
“에엥…….”
내가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말을 흐리는데 옆에서 말을 듣고 있던 아저씨가 제현 오빠의 머리를 한 대 쳤다.
“이 시스콤 녀석이. 동생이랑 동생 친구가 친구 사귀는 것까지 방해하지 마. 됐으니까 빨랑 걔나 바래다주고 와.”
“……네.”
제현 오빠는 명백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하……나는 그것을 보며 어정쩡한 미소만 지었다.
이성진이 그 녀석이라 확신할 수 있는 정보란 무엇일까?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을까?
이성진의 ‘그녀’는 그에게는 너무 민감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의 전생과 연관 지을 만한 건 ‘그녀’의 존재밖에 없다. 간격을 두고, 아주 조금씩,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어보자.
나와 그 녀석 사이에밖에 없을 추억. 뭐가 있을까?
전생의 그 녀석이 알고 지금의 이성진이 전생과 나를 이을 수 있을 만한 추억.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소설 제목. 전생의 그 녀석은 이성진과는 달리 소설을 별로 안 읽는 편이었다. 하지만 내 소설은 억지로나마 읽었다. 그중에는 나밖에 짓지 못할 법한 특이한 제목을 지닌 소설도 있었다.
문제는 그 소설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소설이라는 거다. 이것은 환생의 제약에 해당할 것인가, 해당하지 않을 것인가.
그건 사람 앞에서 입을 열려고 한 순간 알 수 있다. 말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외침이 나를 가로막는다.
『소설 제목 X』
그럼 뭐가 있지? 첫 데이트 장소? 내가 전생에 길렀던 애완동물? 아니다, 반대로 그 좋아하는 여자가 애완동물을 길렀냐고 물어보자. 그녀가 책을 좋아한다면 혹시 글을 썼냐고, 애완동물 이름이 무엇이었냐고.
가장 큰 고민은 그것이라 생각했는데, 요즘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그래서 그 고민에만 집중할 수가 없다. 그 고민거리라 함은 바로 최인성이었다.
나와 이성진은 수업 일정상 최인성과 일주일에 두 번씩 마주친다. 친구들도 두, 세 번 정도 마주치는 모양이다. 최인성은 우리와 만날 때마다 애써 멀쩡한 척 웃어 보였다. 넘실거리는 그림자의 감정이 진해져 가는 와중에도, 그는 애써 괜찮은 척만 했다.
그림자의 감정은 특히 나를 만날 때 진해지는 것 같았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던 건 처음뿐이다. 그것은 나에게 혹시나 했던 것을 확신으로 변하게끔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성진을 향할 때도 진해졌다. 특히 나와 이성진이 함께 있을 때 거세졌다. 그럴수록 최인성의 표정은 창백해졌다.
그 모습이 능력의 성장 때문에 괴로워하던 때의 나와 닮아 보여서,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답답하고 괴로웠다.
그래, 최근의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나와 어딘지 닮아 있었다. 피곤한 얼굴, 창백한 표정, 마력의 일렁거림마저도, 매우 많은 것이 닮았다.
최인성은 멀쩡한 척을 하면서 마법을 쓰는 일을 조금씩 피했다. 실기 때에도 다른 사람을 서포트할 뿐 직접적으로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수준별 수업 때는 이를 악물며 대련을 하더라. 그럴 때마다 마법의 상태는 이상해져 갔다.
최인성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이성진과 소영이는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인성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가만히 기다렸다.
이성진에게 질문을 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예민해져 있는 이성진을 건드려 봤자 불난 데 기름을 붓게 될 뿐이다. 나는 한동안 고민만 하며 걱정스럽게 최인성을 지켜보았다.
문자마법 레벨 2는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에도 순조롭게 성장하여 이제는 정령 알에 날개까지 달렸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럴수록 최인성이 했던 말이 신경 쓰였다.
나는 부단한 고민 끝에 그와 가장 친한 친구를 조금 흔들어 보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온 후, 옆자리에 앉는 이성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까.”
“어?”
“최인성……요즘 좀 이상하지?”
약간 망설이며 한 말에 이성진은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잠시 주춤했지만 곧 말을 이었다.
“요즘 우리를 좀 피하고 있지 않아? 점심시간 때도 본 적 없잖아. 다른 친구들도 바쁘거나 시간이 안 맞아서 점심을 같이 못 먹거나 못 만날 때가 있긴 하지만, 최인성은 그것만이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저번에 봤을 때 안색도 안 좋더라고. 피곤해 보여. 뭣보다 수준별 수업 때……너도 느꼈겠지만…….”
최인성은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결국 그의 상태에 대해 조금이나마 입에 담았다. 인상을 팍 쓴 채 나를 바라보던 이성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어. 그 녀석이 이상한 걸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그는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짜증이 듬뿍 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그 녀석, 털어놓기는커녕 나랑 소영이를 피하고 있잖아.”
“……피하고 있다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규 수업 시간 외에는 얼굴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어. 점심시간에도 안 나오고, 방에 가도 없거나 없는 척하고, 교실로 찾아가도 노골적으로 피하더란 말이지.”
“…….”
“그 자식,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지금은 참아 주고 있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성진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피하는 것도 재주지, 재주. 전화는 안 받고, 문자를 보내도, 한참 후에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고. 개소리잖아. 수행 평가는 이미 끝났는데.”
“음…….”
창백해진 안색이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그림자에서 느껴졌던 이상한 감정과 시선. 감정을 억누르는 눈동자로 나에게 친구들에겐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부탁했던 일. 역시 걱정이 되었다. 정말로 4학년 때의 나와 닮지 않았는가.
“조만간 억지로 붙잡아서라도 이유를 들어야겠어. 입을 다물고 괜찮은 척만 하면 다냐고. 몇 년을 알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상태가 이상한 것도 모를 것 같아? 하여간 그 녀석은 예전부터 무슨 일만 생기면 그렇게 틀어박혀서…….”
이성진이 답지 않게 말을 길게 하며 투덜거렸다. 정말로 무슨 일일까. 마법의 성장이 그에게 무슨 영향을 끼쳤기에 그렇게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던 걸까.
“…이유가 있겠지. 무작정 쳐들어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놈은 이 정도는 해야 순순히 털어놔. 평소엔 밝아 보여도 사실 속으로는 삽질하면서 마음을 꽁꽁 묻어 두는 녀석이거든. 그러다가 한 번씩 터지고.”
이성진은 그 후로도 최인성에 대해 뭐라 투덜거렸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화장실.”
친구들의 연락도 잘 받지 않는다고 하니 별로 기대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었다.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나는 최인성에게 톡을 보냈다.
『나: 안녕 지금 대화 괜찮아?』
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나는 다리를 꼬며 검지로 허벅지를 툭툭 두드렸다. 다행히 곧장 답장이 왔다.
『최인성: 어?안녕.왜…』
『나: 맘에 걸려서. 괜찮아? 요즘 우릴 피하고있잖아.』
『나: 마법….때문이지?』
한동안 최인성에게서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답을 기다렸다. 연신 시간을 확인했다. 1분, 2분, 3분. 나는 참지 못하고 글을 이었다.
『나: 이성진 눈치챘어.조만간 캐물으러 갈거야. 그 전에 조금이라도 사실을 말하는게 좋지 않을까?』
『나: 나도 특수능력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어서 조금은 아는데, 참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냐.』
이번엔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최인성: 안돼.걔네들한텐』
『최인성: 특히 이성진한테는…』
나는 침묵했다. 그래도 뭔가 하나라도 말해 주면 이성진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을 소영이도,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들이 과연 최인성이 스스로 입을 열기를 침묵한 채 기다려 줄까? 최인성의 상황은 나와 약간 비슷해 보이지만 이성진의 반응과 소영이의 반응은 분명 한수나 인하, 민희, 현호와는 다르리라. 그래서 망설여졌다.
『최인성: 미안해.말하지말아줘』
최인성의 글은 그것으로 끊겼다. 나는 답문을 보내지 않고 자리에 앉은 채 그저 고민했다.
이럴 때는 자기보다 강한, 마법을 잘 아는 누군가에게 상담하는 게 제일이다. 나에게는 스승님과 선생님이 있었다. 혹은 선아 아줌마와 정민 아저씨, 부모님도 나를 도와줬다. 하지만 최인성은 고아고, 원래 유란에 다니고 있다가 이곳으로 왔다. 그가 그런 것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은……친구들뿐이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의 도움을 제일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그래, 그때,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되었을 때 내가 보인 반응과 정말로 비슷하다.
그렇다면 친구들에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처럼 되면 어떡하지? 그렇게 되었을 때 그에게 그걸 도와줄 만한 사람이 있나? 이성진이 강하고 아는 것도 많다고는 하지만 그는 아직 학생이었다. 최인성과 그렇게까지 친하지는 않은 내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개인 사정을 이렇게까지 파헤쳐도 되나?
“…….”
잘 모르겠다고, 나는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기다려도 답문은 오지 않았고, 나도 그 이상 뭐라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교실로 돌아왔다. 변비냐고 직설적으로 물어 오는 이성진의 등짝을 크게 내리치며 친구와 톡을 하다 늦었다고 말했다.
그 후로는 평소처럼 수업을 듣고 마법 훈련을 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를 보냈다. 여전히 최인성이 걱정되었지만 한 번 거절당했는데 계속 연관되려 하는 건 나답지 않다.
밤늦게까지 공예 연습을 하다가 나는 잠시 한숨 돌릴 겸 창문을 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라보다가 아예 창가에 몸을 기댔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바람이 되어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내가 시야를 연 것은 묘한 마력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시야를 개방하고 나서 나는 그 마력의 주인이 최인성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마력을 보는 내 표정이 절로 심각해졌다.
괜히 걱정했던 게 아니다. 그의 마력은 점점 이질적인 빛깔로 변해 가고 있다. 며칠 전에 보았을 때와 비교해서 한층 더 심해졌다. 그만큼 마력도 강해졌지만, 그걸 좋은 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마력의 흐름도 많이 이상했다. 과도하게 그림자에 몰려 있다.
‘역시 심해졌잖아.’
나는 시야를 집중했다. 암녹빛의 마력이 점점 진해지고 깊어졌다. 그 순간, 그림자가 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노려봐? 나를?’
심상치 않다. 역시 이건 소영이나 이성진에게 알려야 한다. 하지만 최인성이 이미 못을 박았는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텔레포트로 몸을 이동했다. 최인성이 제 눈앞에 나타난 나를 보고는 당황해 물러났다. 나는 곧바로 몸을 숙이며 아래를 보았다. 짙게,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유동하는 그림자를.
「……다. 유은하다! 봐라! 그녀가 눈앞에 있어!」
「고민할 필요가 있나? 지켜보기만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다른 남자랑 있을 때마다 질투하는 게 더 한심한 짓 아냐?」
「친구한테 뺏기기 전에 뺏어 버려! 그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잖아!」
「분명 네 말대로 그 녀석이 그녀를 좋아할 리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녀는 어떨까? 그는 너보다 멋있고 강하지. 같은 반이고 바로 곁에 있는데 그녀가 과연 반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네 마음을 전부 알고도 그녀와 가까이 지내는 놈 따윈 신경 쓰지 말라고.」
「원한다면 손에 넣어라. 주저하지 말고 억지로라도 밀어붙여 눌러 버려.」
「너는 그림자다!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는 존재다.」
「필요 없어! 지금 네 심정도 눈치채지 못하는 친구 따위 다 필요 없어!」
바닥에 손을 짚자마자 아찔할 정도의 감정과 목소리가 밀려 들어왔다. 나는 비틀거리며 무릎을 땅에 완전히 붙였다. 짙고, 깊고, 암울하다. 시끄럽고, 짜증 나고, 마음을 몰아붙인다. 마음을 사로잡아 꽁꽁 묶어 놓으려는 것처럼 짜증 나는 목소리다.
나는 비로소 그가 왜 친구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이 그림자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 틀림없이 그가 만들었고 제 마음과 연결되어 성장했을 그림자가 이따위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최인성의 진심이 아니며, 그에게 있어선 부정하고 싶은 말일 테지.
이어서 나는 울컥했다.
‘짜증 나네, 이 자식.’
부추기는 목소리로,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을 가진 목소리로, 시끄럽기 그지없다. 나는 어느 순간 눈치채고 만 최인성의 마음이 부담스러워 그를 어색하게 대했지만, 그래도 1년 반이 넘게 그와 어울렸다. 시야를 뜰 때마다 보이는 그의 감정 중에 기분 나쁜 감정은 별로 없었다. 때때로 우울함에 감싸인 감정이 보이고는 했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도였다. 그는 언제나 순수하고 다정하고 착했다. 그래서 짜증 났다.
“너 거기서 숨어 있으면 모를 줄 알아?”
그림자는 어둠의 고위속성이라 불린다. 하지만 그건 결코 그림자가 어둠보다 레벨이 높은 속성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림자는 그저 어둠의 세부속성이다. 최인성이 인하와 대련할 때 항상 아슬아슬하게 지는 것은 그 탓이다. 인하의 빛속성이 좀 더 본질에 가까운 속성이니까.
그러나 그림자를 잡을 수 있는 것은 빛만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최인성과 대련을 하면서 고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림자로 하는 정신 공격도, 내 그림자를 향한 직접 공격도 나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의 그림자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물리적인 타격을 입히면서, 자신에게는 물리적인 타격이 소용없도록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소용없다. 마력을 파악하는 이 눈에는 어떻게 하면 유효 타격을 먹일 수 있을지 뻔히 보이니까.
그나마 내 그림자를 향한 물리적 공격은 통하지만, 정신 공격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내 메인마법은 환각마법이니까.
무엇보다, 내가 정화마법을 확실하게 익힌 후부터 최인성은 내 그림자 속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내 그림자를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는 최인성의 마법과 비교했을 때 확실하게 상성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 마력은 이미 마력 자체가 정화속성을 띠고 있다. 나는 발에 마력을 담아 그림자를 걷어찼다. 어쩌면 본체인 최인성에게도 그 타격이 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서.
쾅!
마력을 두른 가벼운 발차기만으로도 그림자는 타격을 입었다.
「컥…!」
그림자가 비명을 질렀다. 순간 그림자 사이에서 치켜뜬 눈꼬리와 눈동자가 보이는데, 살짝 소름이 끼치더라. 아무리 그래도 유령보다 소름 끼치는 건 아니니까 괜찮기는 한데, 그래도 좀 기분 나빴다.
“어……?”
제자리에 선 채 그저 놀라 식은땀만 흘리고 있던 최인성이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아마 저 목소리의 영향을 애써 눌러 참느라 굳어 있었던 것이리라. 나는 걱정스럽게 그를 올려다봤다.
“괜찮아?”
“어? 괘, 괜찮아.”
최인성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머뭇거리며 나를 보았다.
“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