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18
“2학년들은 벌써 와 있어. 이리 와서 서라, 1학년들.”
또래로 보였는데 선배들이었구나. 우리는 잠시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그 2학년생들처럼 적당히 선생님으로 보이는 남자 앞에 정렬해 섰다. 그는 우리를 한 명 한 명 유심히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나에게서 잠시 멈췄다.
“……?”
“흠……이건 물건이군.”
그러면서 인하를 보고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상한 기분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가 나를 보았을 때 나는 어쩐지 그에게 낱낱이 간파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 혹시 나처럼 감지능력이 있는 마법사인가?
나는 약간 경계하며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불안했다.
“뭐……이미 눈치챈 녀석도 있을지 모르겠군. 아니, 없나? 그럼 말해 두겠는데.”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훑어보며 입 안에 사탕을 하나 까 넣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전부 ‘자신의 마법을 개발한’ 사람들이다.”
“……!”
그 순간 우리는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 실력별이라고 하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그런가, 개발……까지인가. 인하 역시 같은 수준별 반에 속하게 된 아이들을 깜짝 놀란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서로의 눈동자가 새삼스럽게 얽혔다.
“그러니 이 수업은 너희들의 마법을 보다 발전시키기 위한 훈련을 중심으로 하게 될 거다. 이미 주의를 들었겠지만, 여기에서 받는 수업에 관련된 것은 어디에서도 말을 해선 안 된다. 너희들의 재능이 천재라고 불리는 것인 이상 더더욱 그래야 하지. 이곳을 나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것에 대해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하는 마법이 걸린다. 이의 없겠지? 다 알고 이 학교에 들어왔을 테니.”
우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엔 사실 마법을 한 개 이상 개발한 놈도 있다고 들었다만.”
나는 이어진 말에 한순간 뜨끔한 표정을 숨겼다.
“너희들이 개발한 고유마법 훈련을 돕기 위해서는 일단 너희들이 가장 개발에 힘쓰고 있을 메인마법에 대해 들어야 한다. 그래야 수업 계획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지금부터 차례대로 자신의 이름과 메인마법의 이름을 말해라.”
“……!”
“그걸 위해서 수업을 비밀리에 진행하는 거다.”
우리는 저마다의 감정을 품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극도의 긴장감에 나는 침을 삼켰다. 그는 손을 들어 나와는 정반대 쪽을 가리켰다.
“너부터 시작해라.”
“…….”
2학년이었다. 그 여자애는 슬금슬금 우리의 눈치를 보다가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이름은 한유정. 메인마법은……‘얼음마법’이에요.”
“다음.”
“청인호. 메인마법은 ‘환수 실체화’예요…….”
“환수 실체화? 뭐냐, 그건.”
“전설에 나오는 환수들을 만들어서 애완동물로 삼아서 불러내는 건데……한번 만들면 없앨 수 없고 보통 아기 때부터 성장시켜요.”
“사역마법인가……. 희귀한 마법이군. 다음.”
나는 긴장하다 말고 잠시 놀라 그 2학년을 바라보았다. 와아, 저런 마법도 있었구나. 흥미로운 마법이었다. 그리고 원래는 실존하지 않는 것을 실체화한다는 점이 내 마법과 원리가 조금 비슷했다.
“저는 김현호예요! 메인마법은 ‘물마법’이고요.”
“박한수. 메인마법은 ‘나무’입니다.”
이어서 말한 것은 아까 인하한테 시비 건 남자애의 친구랑 시비를 건 장본인이었다. 물과 나무라……그들의 마력 색과 잘 어울리는 마법이었다. 푸른색과 물, 고동색과 나무라.
그다음은 평소 우리 앞자리에 앉는 양 갈래 머리 여자애 차례였다.
“제 이름은 주민희고요, 메인마법은 ‘사격추적마법’이에요.”
“사격추적? 예를 들면 마법을 실행하고 던져서 맞추는 방식의 마법인가?”
“네? 네.”
“다음.”
……내 차례다.
나는 긴장을 애써 숨기며 입을 열었다.
“유은하……입니다. 메인마법은 ‘환각마법’이고요…….”
“환각……?”
“네? 네…….”
“……하지만 조사서에선……아니, 됐다. 다음.”
나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살짝 풀고는 인하를 바라보았다. 인하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강인하. 메인마법은 ‘빛’입니다.”
빛.
인하의 마력 색 그대로였다.
노란색 빛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마법. 얼마든지 성장시킬 여지가 있는 마법이다. 심지어 자연속성 그대로의 마법이다. 자연속성마법은 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한계가 없는 강력한 마법이다.
선생님은 우리를 다시 한 번 차례로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 한 명씩 대충 마법을 펼쳐 보도록 한다!”
“엑?”
그 말에 숨을 삼킨 건 나만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도 불안한 표정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개중엔 상관없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도 약 두 명 정도 섞여 있긴 했지만, 적어도 나와 인하, 박한수라는 남자애, 2학년 두 명은 불안한 기색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걱정 마라. 어차피 말 못 한다고 했지? 그래도 신경 쓰일 것 같아서 일부러 한 반에 몰아넣었지만.”
……어쩐지 이 정도의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다 한 반에 몰려 있었다 싶었더니, 그래서였나. 아니 뭐, 그 정도로 배려해 줄 필요는 없었지만.
“간단히 메인마법을 사용해 보면 된다. 그냥 실력만 보는 거니까. 내가 감지계 마법사라서 그걸로 너희들의 지금 실력을 간단히 측정할 수 있거든. 왜, 순위라도 매겨 주랴?”
““아뇨.””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뭐, 주민희라는 아이와 김현호라는 아이는 ‘재미있겠는데 왜!’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우리는 단호했다. 그런 쓸데없는 거 필요 없어! 성장 중에 방해만 될 뿐인 데다 안 그래도 실력을 보여야 해서 긴장되는 와중에 순위는 무슨…….
“그래서, 누구부터 하는데요?”
“내가 한 명씩 지명할 거다.”
박한수가 상당히 고까운 표정으로 묻자 선생님은 그렇게 답했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맨 먼저 2학년 남자애를 가리켰다. 먼저 거기 드문 마법을 가진 청인호 너.
“저요?”
“그래.”
“윽…….”
잠시 긴장한 표정을 짓던 그 남자애는 이내 눈을 감고 손을 벌려 마법을 펼쳤다. 바닥이 푸르게 빛나더니 벌린 손 사이에서 무언가가 휙 튀어나왔다. 작은……용?
“우와!”
“귀엽다!”
철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도 귀엽다며 청룡을 바라보는 쪽에 속했다. 그렇지만, 완전 귀엽잖아! 귀엽고 예뻐! 심지어 울음소리도 “뀨뀨─”다. 남자애는 다정한 표정으로 어린 청룡을 쓰다듬었다.
“그 환수는 뭘 할 수 있지?”
“자, 작지만 번개를 소환할 수 있어요…….”
“좋아, 다음은 박한수 너.”
“……체엣.”
잠시 투덜거린 그는 한쪽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곧 선생님의 뒤로 나무로 된 작은 울타리가 솟아올랐다. 바닥이 철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 좋다. 다음은 강인하.”
“……네.”
인하는 천천히 손을 들며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만 펼쳐 모았다. 손가락 앞에 빛의 덩어리 같은 게 모이더니, 순식간에 쏘아졌다.
쾅!
“야! 너 시위하냐? 그런 거냐?”
“…….”
“시끄럽긴.”
인하가 만든 빛이 박한수가 만든 나무 울타리를 관통하며 꿰뚫었다. 선생님은 박한수를 향해 시끄럽다고만 말하고 대충 넘기긴 했는데……인하야, 너 좀 과도한 거 아니니? 물론 속도에 따른 관통력은 빛의 특징이긴 하지만. 속도 하면 빛 아니겠는가.
“한유정.”
“네, 네!”
그녀는 옆으로 손바닥을 펼치더니 손바닥 위로 고드름같이 뾰족한 얼음 조각을 생성해 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현호.”
그 남자애는 손가락에서 물방울 같은 것을 만들더니 길게 이었다. 물이 길게 늘어나며 그의 몸을 나선으로 한 바퀴 돌았다. 뫼비우스의 띠 같았다.
“주민희.”
“아, 넵.”
주민희는 활기차게 웃으며 마력 탄을 생성하더니 손가락으로 튕겼다. 탄환이 휘며 노렸던 곳을 꿰뚫었다. 그것은 정확히 나무 울타리의 이음쇠에 적중했다.
“여자 둘이서 나란히 나한테 원수졌냐!”
“네가 저걸 치우면 문제없잖아.”
인하의 말에 박한수는 혀를 차더니 그제야 마력을 없애 나무를 치웠다. 호오, 저런 물리적인 종류의 마법은 없애는 게 꽤 어려울 텐데. 나는 살짝 감탄했다. 어라? 근데 그럼 내가 마지막인가?
“마지막으로 유은하.”
“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뭘 만드는 것이 좋을까? 환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주 많다. 그래서 고민되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두 손을 모아 펼쳤다. 잠시 후 손바닥에서 남색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일렁이는 모양새가 딱 봐도 환각이나 환영으로 보였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선생님이 고개를 저었다.
“유은하, 넌 좀 더 강한 걸로 해 봐라.”
“네?”
“마력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어. 너무 간단한 걸로 한 것 같다. 하나 더 해 봐.”
확실히……소량의 마력으로 만든 간단한 환영이긴 하지만…….
“네…….”
하지만 좀 더 강한 거라니, 뭘 해야 하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번엔 손바닥을 바닥으로 향했다. 손바닥에서부터 바닥을 거쳐 마력이 방 전체로 퍼져 나갔다.
“무슨……?!”
푸르스름한 색이 비치는 새까만 밤이 몰려왔다. 나는 거기에서 상상했다. 아직 미완성인 나의 환각 영역. 내 이름을 따온, 흐르는 별의 강. 발아래에 은하수가 펼쳐졌다. 컴퓨터로 사진을 막 찾아본 보람이 있다. 환각이란 건 알지만 무수히 수놓아진 은빛 탓인지 눈앞이 환해졌다.
“뭐, 뭐야 이거?!”
“흐음. 제법이군.”
“자, 잠깐. 왜 갑자기 풍경이 변한……우왁! 뭐야, 발밑에 뭔가 있나?”
아, 그건…….
나는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박한수를 바라보며 환각을 풀었다. 그러자 환각이 안개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환각 밑에 묻혀 있던 교실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박한수는 교실 내부에 있던 기둥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아직 뇌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닌가 보군. 꽤 대단했는데.”
그야 미완성이고……내 환각은 아직 발전의 여지가 수없이 많았다. 조금 전에 만든 그 영역은 내 ‘이름’에 가까웠기 때문에 가까스로 뇌에 영향을 미치기 직전의 경지에 이른 것일 터다.
내가 환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직은 정교하게 상상 속 풍경을 자아내거나 상대방을 혼동시키는 정도였다. 현재 내 환각마법이 뇌에 영향을 미치는 확률은 대충 6% 미만 정도였다.
“뇌에 영향을 미치게 만들 수는 있나?”
생각에 빠진 순간 그가 무심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나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네? 네. 작은 물건이라면 진짜로 있는 것처럼 할 수도 있기는……한데요.”
“흐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뭔가 묘한 감정이 담겼다. 나는 뻘쭘해져서 표정 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잠시 우리를 쭉 훑어보더니 확실히 천재는 천재들이라고 중얼거리곤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와 거의 비슷하게 밖에서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딱 시간이군. 15분 휴식. 나는 잠시 자료 좀 가지러 갔다 오마. 교사도 한 명 더 필요할 것 같고……. 내 친구 녀석이라 부려 먹긴 딱 좋거든.”
“아, 그러고 보니.”
몸을 돌리는 선생님을 보며 주민희는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물었다.
“선생님, 이름 안 들었어요!”
“아……그렇군. 내 이름은 정준휘다. 됐냐?”
“넹!”
주민희는 해맑은 표정으로 선생님을 배웅한 후 휙 우리들을 돌아보았다.
“그럼 우리 뭐 하고 놀고 있을래?”
“…….”
그 말 한마디로 단번에 알 수 있었을 만큼 주민희라는 아이는 생각 이상으로 굉장히 활발한 아이였다. 아니, 그냥 아이답다고 말해야 할까? 그녀는 당황스러워하는 우리의 분위기를 막무가내로 바꾸었다. 밝은 표정으로 친근하게 우리에게 접근해 왔다. 주민희는 2학년들과도 금세 친해져 대화를 주도했다. 주민희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근데 아까는 왜 마법에 대해 말하는 걸 꺼려 했어?”
그리고 주민희는 아까 전 느꼈던 것처럼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음……아니다. 보통 이 나이면 그런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쪽이 당연하겠지. 하지만 그런 것치곤 여기 있는 아이들 모두가 말하는 걸 꺼려 했다. 그러지 않은 건 주민희랑 김현호뿐이었다. 그 말에 2학년 여자애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야……엄마가 함부로 말하면 위험한 일을 겪게 된다고 말했거든.”
이어서 2학년 남자애도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난……3학년 중에 마법을 개발한 사람을 한 명 알거든? 근데 그걸 가지고 여기저기 떠들고 자랑하고 다니면서 사람을 몰고 다니는 걸 자주 보는데, 그게 싫더라고. 그냥 따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런 게 싫어서 말하기 싫었어.”
“아! 그런 사람 우리 반에도 있어. 기초마법 몇 개 쓴 거 가지고 잘난 척하는 거 보면 진짜 짜증 나.”
“우와, 그런 사람이 있어? 그렇구나. 오빠가 그래서 초등학교 다닐 땐 말하지 말라고 했던 거구나! 이제부턴 조심해야지. 나도 그런 거 싫거든.”
주민희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사역마법을 쓰는 남자애가 동의하며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저 두 사람 나보다 선배잖아? 갑자기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선배라고 부르면 되나? 아니, 초등학생일 땐 보통 주민희처럼 언니나 오빠라고 부르던가?
나와 인하는 그 사이에서 줄곧 침묵한 채 있었다.
20분 정도 후에 다시 돌아온 선생님은 말했던 대로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데리고 돌아왔다. 키가 크고 활짝 웃는 상쾌한 표정의 남자였다. 그는 우리들을 둘러보며 웃었다.
“안녕. 귀여운 아이들만 모였네. 내 이름은 유민이야.”
성을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두 글자 이름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와 성이 같구나. 나는 약간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 사람을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의 마법 이론 교과 전반을 담당하고 있지. 잘 부탁한다.”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그래, 그래.”
유민 선생님이 자기소개를 마치자 주민희가 활기차게 화답했다. 참 활기찬 아이라 생각하며 민희를 약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정준휘 선생님이 내게로 다가섰다. 그는 들고 있던 서류 다발과 얇은 책 따위를 내게 건넸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정준휘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
“환각은 다루기가 꽤나 어려운 마법이다. 공부를 많이 할수록 좋지. 자기소개란에 책을 좋아한다고 적었던데.”
아하, 학교 온 지 3일째에 적은 그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할 수 있는 만큼 공부하는 게 좋아. 뭐, 그래 봤자 가장 중요한 건 네 의지와 상상력이지만. 너는 어떤 식으로 환각을 쓰고 싶지?”
그 말에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것은 온갖 만화의 장면이었다. 기왕 메인마법을 환각으로 정했으니 반드시 실현해 보자고 의지를 불태웠었지. 그래, 나는 이미 각 마법에다가 목표를 어느 정도 정해 뒀다. 정하지 않은 것은 끝이 없다고 느껴지는 문자마법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환각을……실체화시키고 꿈을 넘나들고 상대에게 원하는 꿈을 보여 주는 것까지……요.”
“……쯧.”
혀를 찼어? 나는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었다. 내가 고개를 숙이며 불편해하는데 정준휘 선생님이 말했다.
“잘 들어, 유은하. 환영과 관련된 마법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상대의 정신세계를 조정하는 것과 현실에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 그 환상도 강하게 쓰면 시간과 현실의 감각마저 장악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환각’이지.”
“자, 자. 우리들은 저기에서 얘기하자. 우리들이 들어도 도움 안 돼.”
“…….”
이미 수업을 시작한 우리를 두고 유민 선생님이 인하네를 다른 쪽으로 이끌며 우리와 떨어뜨렸다. 나는 불편해하면서도 정준휘 선생님의 말에 집중했다.
“어려운 말이라 아직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는데……결국 하고 싶은 말은 말이다, 네가 지금 정한 목표란 게 굉장히 힘들다는 거다. 보통은 그 한쪽만 잡는 게 겨우……하긴, 네 재능이라면 못 할 것도 없긴 하지.”
네가 방금 보인 환각 실력, 중학생 정도 수준이라고 해도 좋으니까. 뭐, 어려서 마법의 레벨에 비해 마력은 부족하지만. 선생님은 입 안에 다시 사탕을 하나 까서 넣었다.
“방금 만든 환각은 현실 장악이었지. 너, 정신을 조종하는 환각을 쓸 수 있냐? 네가 말했던 대로 꿈을 조종하는 환각 말이다.”
“아뇨.”
“그래, 보통 그렇겠지.”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꿈이라……너 스스로 조작해서 자각몽을 꾸거나 한 적은 있냐?”
“아니요.”
“그럼 연습해라. 자각몽을 꾸는 건 자신의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첫걸음이다. 그러니까 일단 자각몽을 꿔서 네 정신세계 안으로 들어가 너만의 정신세계를 만드는 연습을 해라. 여기에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라는 건 거기까지 해낸 너라면 당연히 알겠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정신세계를 조작하려면 일단 마력과 감정에 어느 정도 민감해야 해. 이건 보통 타고나는 거다. 물론 훈련으로 되지 않을 건 없지만……어느 정도는 타고나야 해. 마력을 어느 정도 느끼냐.”
“…….”
“솔직하게 대답해. 어차피 나는 밖에 나가선 아무 말도 못 하니까. 제약은 나한테도 걸리거든.”
학생이라 해도 5번이면 정학 조치인데 성인인 그들은 더하리라. 나는 납득하며 작은 목소리로 내 재능이라 불리는 것의 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마력엔……민감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민감하다면, 어떤 식으로?”
“음, 그냥 평범한 마법 아이템을 보고……담겨 있는 마력의 크기와 속성을 대강 짐작할 수 있어요.”
“……생각보다 뛰어나군. 그리고? 또 있나?”
“‘마력의 색’을 봐요.”
“……!”
그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말문이 막힌 듯한 표정이었다.
“……그건 상당히 훈련이 필요한 건데. 이건 진짜로 타고났군. 어느 정도로 볼 수 있지?”
“나보다 강한 사람의 것은 뚜렷이 알 수 없지만, 일단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마력을 가졌는지 색의 농도와 크기, 혹은 느낌으로 잴 수 있고, 그 색을 통해 마법이나 마력의 속성을 대강 짐작할 수 있어요. 좀 더 집중하면 바람을 타고 흐르는 마력의 색도 보여요.”
“과연.”
그는 이내 나를 향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씩 웃었다.
“그에 대해선 좀 더 열심히 연습하도록 해라. 네 마법에 필요한 중요한 거니까. 감정에 대해선 느낀 적이 있나?”
“아뇨…….”
내가 고개를 젓자 그가 어느새 다시 무표정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넌 충분히 재능이 있어. 그런데 그런 걸 전혀 느낀 적이 없다는 건 네가 깊게 느끼고자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마력을 눈과 기척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 상상하라고. ‘감지’라고 하면 생각나는 모든 것을 직접 해 봐라. 그건 네가 정신세계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할 테니까.”
“…….”
나는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좀 더 집중하면, 조금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면.’
감지하면 생각나는 건 역시 느끼는 거다. 나는 마력의 흐름과 느낌으로 마법의 속성에 대한 건 대부분 맞힐 수 있다. 그러니까 좀 더 느낄 수 있게 되면 누군가가 마법을 쓰기도 전에 그 마법의 종류를 알아맞히고, 마력의 색을 보는 것만으로 상대가 쓰려는 마법의 종류를 다 간파하는 것도 언젠가는 가능할지 몰랐다.
분별하는 건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마력에 대해선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좋을 거다. 어린아이는 마력을 담는 그릇 자체가 크지 않거든. 원래 가장 크는 게 성장기 때야. 대체로 10살에서 20살 사이지. 그 이후에도 마력은 그 사람이 지닌 자질에 따라 성장해 가겠지만, 역시 성장기 때가 가장 중요하지. 그럼 난 이제 다른 애들을 보러 갈 테니, 넌 저기서 적당히 마법을 연습하거나 그거 읽어라.”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벽 쪽으로 향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정신계 마법 연습을 시작하고 싶었다. 상상은 많이 하면 할수록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이미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게 있다. 나는 벽에 기대어 앉은 후 정준휘 선생님께 받은 것 중에서 가장 얇은 책을 폈다. 환각의 기초에 대해 설명한 책이었다. 나는 눈을 반짝였다. 이 수업은 실로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정준휘 선생님이 준 자료를 다 읽은 후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환각을 펼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내 머릿속, 내 상상의 세계 속에.
만든다면 어떤 세계가 좋을까. 은하수? 약간 아쉬운데. 물론 발아래로 펼쳐진 별의 길은 무척 아름다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환각 세계로는 괜찮다 쳐도 꿈속 세계로는 너무 적막하고 쓸쓸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상상하다 말고 눈을 떴다.
‘뭐가 좋을까…….’
나는 흘끗 인하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마침 인하가 개인 교습을 받고 있었다. 멍하니 생각에 잠기다 보니 별 잡생각이 다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내 마력의 속성이나 상성 쪽으로 생각이 튀었다. 그래, 나의 정신세계니까 거기에 토대를 둬도 되겠지. 정신이나 특수는 상상하기 힘들다 쳐도, 어둠과 빛은 합쳐지면 뭐가 되지?
‘으음…….’
좀 더 간단하게 생각하자. 기본적으로 어둠의 상징은 밤, 빛의 상징은 낮. 그걸 합치면……석양?
아니, 뭔가 마음에 와닿지 않는데. 내 마력의 색만 봐도 황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
「새벽」
나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아름다운 새벽의 광경을 떠올렸다.
먼 밤하늘 위에는 은하수, 먼 수평선 너머에는 어스름한 새벽의 빛. 초현실적인 풍경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왠지 그 광경을 상상하며 마음을 빼앗겼다.
바다가 있으면 좋겠다. 넘실거리는 새까만 수평선 너머로 은빛의 선이 그려진다. 바다 위의 일출은 내가 정말로 멋있다고 생각하는 광경 중 하나지만, 태양은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는 별빛이 가려지지 않나. 게다가 저 너머에서 언젠가 태양이 떠오른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지 않을까?
바다 앞에는 모래사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새벽의 빛을 모래사장을 걸으면서 보고 싶다.
수평선 너머로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태양의 은빛 선 위로 보이는 어슴푸레한 밤의 어둠이 좋다. 그렇게 펼쳐지는 하늘이 좋다.
그러나 위를 향해 고개를 들면 새까만 하늘 사이로 눈부시게 빛나는 은하수가!
별을 구경하기에는 들판이 좋다. 스치는 바람과 새벽에 공원을 거닐 때 느끼는 풀 내음, 별빛을 받아 드문드문 빛나는 꽃. 들판에 누워서 언제까지고 별을 바라보고 싶다. 그러다 우연히 유성을 발견한다면, 그만큼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수평선 너머의 어슴푸레한 새벽과 머리 위에 보이는 쏟아질 듯한 별이 펼쳐진 은하수……. 나는 어느새 다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세계라면 너무나도…….
‘너무나도…….’
……어라?
나는 눈을 번쩍 뜨고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내가 언제 누워 있었지? 그것도 이런 들판에…….
“와아!”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에 반짝이는 빛 가루로 이루어진 은하수가 빛나고 있었다. 나는 은하수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아침 해……?”
멀리에 보이는 수평선의 끝, 밤의 색을 받아 새까맣게 출렁이는 바다의 너머에는 선을 그리는 은빛이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려면 한참이 걸릴 테지만 수평선을 따라 언젠가 태양이 모습을 드러낼 것을 증명하는 희미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