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193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과 나란히 걸었다.
이 방은 아마 휴게실인 것 같았다. 의자와 책이 있고, 꽃이 시든 화분이 있다. 창가에 기대어 있던 남자가 나를 보더니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나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기습을 했다.
이미지를 그리고, 완성한다! 남자가 있던 자리에 결정 형태를 지닌 커다란 결계가 생겼다. 그것이 남자의 온몸을 가두며 봉쇄했다.
“…….”
그러나 꽉 찬 결계 안에서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릿하게 팔을 움직였다. 어? 어? 당황하며 힘을 줬지만 남자는 유리라도 깨듯이 간단히 결계를 산산조각 냈다. 쨍그랑! 결계가 조각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으악! 하필이면 저 녀석이 지키고 있냐! 아가씨! 공격 절대 맞지 마! 한 대도 맞으면 안 돼! 무조건 피해!”
남자가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났다. 결계로 막아도 박살 낼 것 같았다. 피하는 수밖에 없다. 공격을 전부 피하라고? 나는 환각마법을 사용해 모습을 숨겼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남자의 주먹이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눈앞에 어둠마법을 일으켜, 그 폭발력을 이용해 뒤로 피했다.
“아가씨. 괜찮아?”
나는 손을 휘두르며 별 가루를 뿌렸다. 별 가루 하나하나가 환각을 뿌리자 풍경이 일그러진다. 내 기척도, 모습도, 소리도 완벽하게 숨겨 줄 터였다. 나는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몸을 바로 세웠다. 당연히 두 사람의 모습도 같이 숨겼다.
“네.”
“방금 네 마법에 맞았잖아!”
“저 제어력이 뛰어나거든요. 제 마법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충격도 주지 않아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좀비는 느릿하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모습을 숨겼는데도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가 방 안에 있는 것을 ‘방’ 자체가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여기는 다른 사람이 만든 이차원. 만든 자의 ‘영역’이다.
“저놈은 아가씨한텐 좀 까다롭겠는데.”
“아는 사이예요?”
나는 흘끗 좀비를 바라보았다. 파랗게 질린 창백한 안색, 초점이 흐린 눈동자. 겉모습이 멀쩡한 것이 참 다행이다.
“응. 저 녀석의 마법은 전부 신체 강화야.”
“신체 강화……?”
“쟤는 신체 개조를 해서 힘이 엄청 세. 마법이나 마력을 하나도 안 쓰고도 바위를 간단히 부술 정도라고. 그런데 거기에 신체강화마법까지 있는 거야. 괴력을 몇 배로 만들고, 그러니 속도도 엄청 빠르지. 그 힘으로 마법을 억지로 무효화해. 정말 힘으로 전부 부숴 버린다니까?”
과연. 마법으로 만든 방패는 막을 수 있는 마력과, 막을 수 있는 ‘힘’에 한계가 있다. 저 사람은 마력이 아니라 힘으로 마법을 전부 부순 거다.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으으윽…….”
경악스러운 상황에 신음을 흘리고 있는데 남자가 갑자기 주위의 물건을 막무가내로 던지기 시작했다. 던져진 꽃병, 탁자가 벽에 박혔다. 그중 두 개가 우리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결계로 우리 몸을 감쌌다. 피하려고 하는 두 사람의 손을 잡았다. 날아온 탁자가 우리를 ‘통과’하며 벽에 꽂혔다.
“으악…! 몸에 소름 돋았어! 그냥 막으면 안 돼…?”
“환각마법으로 모습을 숨기고 있는 거라서요. 위화감을 느끼면 곤란…….”
쨍!
그런데 일부러 통과시켰는데도 위화감을 느꼈나 보다. 아니면 감이 엄청 좋은 걸까. ‘통과’하도록 만든 결계조차 상대는 깨부쉈다.
‘저걸 그냥 힘으로만 깼다고? 미친!’
이차원을 힘으로 깨부술 수는 없다. ‘마법’이라서 가능한 것도 있겠지만……아마 저건 힘의 속성이 특수한 거다. 시공간 마력을 원동력으로 하거나, 그게 아니면 마법 무효화 효과가 있거나. 내가 보기에는 둘 다 섞인 것 같았다.
결계를 지우고 도약해서 자리를 피한 나는 낭패한 표정으로 남자를 보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 봉인……같은 건 나한텐 너무 고난도라고! 이성진 그 녀석은 왜 그런 걸 간단히 해내냐고! 으윽!’
저 좀비는 정말로 감이 좋은 것 같다. 물건을 던질 때마다 몇 개는 나, 혹은 아저씨들한테 날아간다.
나는 좀비와 시선이 가까워진 순간, 그를 환각 세계로 끌고 들어갔다.
기억을 훑었다. 그가 이 주변에서 가장 편하게 느끼는 공간을 반영해 냈다. 상대가 환각 세계에 빠진 즉시 현실 세계에도 마법을 썼다. 시간 봉인 같은 고위마법은 못 쓰지만, 당장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거라면 다이아몬드보다도 단단한, 선아 아줌마의 얼음마법으로…….
챙!!
“악……!”
그러나 얼음이 얼굴까지 다다른 그 찰나, 상대는 주먹을 들어 얼음을 깨부쉈다. 쾅! 쾅! 다이아몬드를 힘만으로 부수려면 어느 정도 힘이 필요하더라……. 아니 그야 내 얼음은 선아 아줌마처럼 완벽하지는 않지만서도. 그는 느릿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역……시, 내가 거기……있을 리가……없지…….”
와, 냉정하네? 환각 속에서 꿈 같은 기분에 젖어 들지 않고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환각을 깼다. 아무리 직접 조종을 하지 않았다고 한들 스스로 자각하고 깨다니,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아가씨! 30분 안에 못 하면 우리도 나설 거야!”
“주위……느낌……이상해…….”
나는 다가오는 좀비를 보며 다음 방법을 생각했다. 환각으로 재울 수 없다면, 역시 마법으로 제대로 공격할 수밖에 없나? 하지만 그래서는 제압이 아니라 쓰러뜨리는 게 되잖아. 고민하는 순간, 상대방의 모습이 흐려졌다.
“……!”
“여……기다…….”
──얼굴로 주먹이 날아왔다.
쾅!
팔을 교차해 공격을 막았다. 결계와 게이트는 공격을 반밖에 못 막은 채 깨부숴지고, 주먹이 팔에 닿았다. 나는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악……!”
“안……쓰러지네…….”
“우왓! 아가씨!”
두 번째 공격. 날아오는 주먹을 나는 버티어 냈다. 버티어 냈지만, 역시 아팠다. 이상한 소리가 안 나는 걸 보니 뼈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지만…….
“아……프잖아, 이 자식아!”
나는 울먹이며 주먹을 힘껏 내질렀다. 콰앙──! 그런데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어라?”
주먹을 내지른 직후, 나는 당황해서 눈을 깜빡였다. 홧김에 휘두른 내 주먹에 맞은 좀비가 가볍게 버티는 것이 아니라 벽으로 밀려나 처박혔다. 벽에 쩌저적 금이 갔다. 어라라……? 나는 당황하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좀비는 얼굴을 끼기긱 움직이며 일어서다가 주저앉았다.
“늑골……부러졌다…….”
“에엑?!”
나는 당황하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환각을 꿰뚫고 나한테 공격을 가한 것도 놀랍지만, 내 주먹에 밀려나 벽에 쓰러진 좀비의 모습도 당황스러웠다. 게, 게다가 벽에 금이 가다니…….
“아가씨! 이 틈에 빨리 가자!”
“네, 네? 네!”
“입구 어디야?”
“여기, 거울이다.”
“기다……려. 아, 못 일어나겠네…….”
나는 형일 아저씨의 재촉에 벽에 걸린 거울로 달려갔다. 좀비가 느릿느릿 나를 보았다. 나는 죄책감에 움찔했다. 좀비……죽은 자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키메라다. 그러나 사람과 비슷한 모습이며, 의지를 가지고 있고, 마법을 쓴다. 기분이 이상했다.
“……미안.”
나는 곧바로 고개를 돌리고 거울로 뛰어갔다. 하진 아저씨가 거울을 툭툭 손으로 두드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흐음. 분명 거기에서 느껴졌던 거울의 기척과 비슷한 걸 따라온 건데…….”
“어? 아저씨도 기둥의 기운을 느낄 수 있나요?”
“어렴풋이. 게다가 기둥은 그렇다 치고 기둥이 있는 곳의 파동은 다 비슷하거든.”
하진 아저씨는 그 ‘파동’이란 것을 통해 주위를 감지한다고 한다.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력만큼이나 많은 것에 깃들어 있다는 듯하다.
“잠깐만요. 열어 볼게요.”
분명 거울 안에서 기둥의 마력이 느껴진다. 이것은 시공간마법, 게이트와 비슷하다. 손을 대 보니 확실해졌다. 이 거울의 ‘길’은 기둥의 이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거울을 통해 게이트를 펼쳤다. 거울이 새까맣게 물들며 커졌다.
“연결됐어요!”
“좋았어. 가자.”
곧바로 형일 아저씨가 몸을 날렸다. 나는 하진 아저씨의 뒤를 따라 거울 안으로 들어섰다. 벽에 기대 쓰러져 있을 좀비가 조금 신경 쓰였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검은 공간을 몇 걸음 걷자 바로 계단이 나타났다. 이 계단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뻔했다. 우리는 다소 다급하게 계단을 달렸다.
“그런데 아가씨 엄청나던데? 체질 변화가 힘으로 갔나 봐? 그 녀석이 뼈가 부러질 정도라니.”
형일 아저씨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킥킥 웃었다. 나는 아찔해져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으, 말하지 마세요. 저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요…….”
“자기 힘이 그렇게 센지 몰랐던 거야?”
“네…….”
“무술 훈련 안 했어?”
“아뇨. 하죠. 하기는 하는데……음……실전에서 별로 안 쓰는 데다가, 주먹에 꽉 힘을 주고 전력으로 때린 적도 없으니까…….”
“이런, 그러면 안 돼.”
형일 아저씨가 검지를 세워 흔들며 쯧쯧 혀를 찼다.
“마법사라면 힘의 한계는 제대로 파악해 둬야 한다고. 아가씨, 무술 실력은 어때? 학교에서 상위권이야?”
“아뇨. 체력은 괜찮은 편이지만 무술 실력은……중하위……하위…….”
“엑. 그렇게 성적이 안 좋아? 마법 실력은 그렇게 좋은데?”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네. 운동 신경은 타고나지 않은 데다……음……무술에 흥미가 없어서……. 여태까지는 마법만으로 충분했거든요.”
“그렇군. 하긴, 또래 중에서는 견줄 자가 없었겠지.”
“그, 그렇지는 않은데…….”
나는 성진이나 인하의 얼굴을 떠올렸다. 실력으로는 성진을, 전투 센스로는 인하를 이길 수 없다. 아직은 내 실력이 인하보다 뛰어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전투로는 인하를 당해 내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지게 될 날이 머지않은 건 확실하고……. 아니다, 그래도……음……아직은…….
“그럼 그 힘을 몰랐단 말이야?”
“네. 방금 처음 알았어요. 저……힘이 엄청 강했나 봐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현실감이 없을 정도다. 내 힘이 전력으로 휘두르면 벽을 부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니. 학교에서든 어디에서든 힘을 필요 이상으로 쓸 일은 없었다. 무겁겠다 싶으면 마법을 썼다. 생각해 보면 여태까지 힘에 부쳐 버거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체력 훈련을 할 때도 친구들을 따라가는 걸로 만족한다. 정말이네. 마력도, 체력도, 요즘에는 한계까지 쓴 적이 없다. 이곳에 와서도 미숙함에 부상을 당했을 뿐이지 진정 마력을 한계까지 쓴 적은 없었다. 그것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툭, 내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느꼈는지 하진 아저씨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불편하지 않았다면 크게 신경 쓰지 마라. 그래도 힘은 나중에 확인해 보는 게 좋겠구나.”
“으……네. 그러네요.”
전력으로 쓴 적이 없다고는 해도 내 힘이 얼마나 강한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니. 그러고 보니 요즘엔 무게감을 느낀 일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힘이 세지면 원래 바로 감이 와야 하는 거 아냐? 조절 못 해서 컵을 맨손으로 깨트리거나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한숨을 내쉬며 걷다 보니 계단이 끝났다. 이공간이 펼쳐졌다. 우리는 시간을 확인했다.
“보자……2시간. 충분하네. 오늘 안에 끝내자.”
“그, 근데요……위에 두고 온 좀비 괜찮을까요? 어……그……쓰러지진 않을까요……?”
늑골이 부러졌다고 했던 것이 떠올라 양심이 욱신욱신 아팠다. 아니, 그 녀석도 똑같이 공격했잖아. 그러고 보니 바위를 부수는 주먹에 맞았음에도 내 팔은 멍만 들었을 뿐 멀쩡하다. 아무래도 그냥 힘이 세진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 몸 자체가 튼튼해진……어라?
“아, 일단 정신을 잃지만 않으면 괜찮아. 좀비라도 이쪽 녀석들은 정신을 잃거든. 늑골만 부러져서 못 일어날 앤 아니니까 아마 다른 뼈도 부러졌……읍, 아무것도 아냐.”
“아…….”
“쓸데없는 말은 왜 해 가지고.”
하진 아저씨가 형일 아저씨의 머리를 때렸다. 주먹 한 방에 그렇게 다치다니. 심지어 신체를 개조한 몸이라고? 아무리 전력으로 쳤다고 한들…….
나는 울먹거리며 어느새 멍이 사라진 팔을 손으로 쓸었다. 그것을 보자 죄책감이 쏙 들어갔다. 기이함이 다시금 내 머리를 사로잡았다.
‘그쪽도 내 뼈를 부러뜨리려 했으니까 쌤쌤이야. 어차피 내일이면 나을 테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기둥이 있는 곳에 진입하고 있었다. 마력이 전류처럼 흐르고, 중앙에 기둥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 결계에 감싸인 마정석이 갇혀……있……헐? 나는 눈을 크게 뜨며 깜빡거렸다.
“기둥 모양도 다르지만, 결계도 좀 다르네요?”
“어? 그래?”
“네. 전에 건 그냥 차단했다면, 이번에는 이중 결계예요. 겉에 있는 게 기척을 숨기는 결계, 그걸 깨뜨리면 안에 있는 결계가 다가오는 건 전부 갈아엎을 기세로 위험한 힘을 뿌릴 거예요.”
“전처럼 디스펠 할 수 있겠어? 안 되면 힘으로 부수면 되니까 부담 느끼지 말고.”
“음……네. 해 볼게요.”
이번 기둥은 평소보다 높은 곳에 있다. 아래위로 철로 된 기둥이 솟아나 있고, 그 사이에 이 세계의 기둥인 마정석이 있다.
나는 부유마법을 사용해 날아올라, 결계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나는 손이 닿기 전에 손을 멈췄다. 내 손이 다가갈수록 마법이 긴장하고 있다.
‘건드린 순간 공격할 각이네. 으……이번 마정석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는데…….’
잔해만이라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다가 평소와는 달리 입체 형태로 게이트를 펼쳤다. 평소에는 납작한 평면 원이었다면, 이번에는 새까만 입체 공이었다. 나는 손바닥 위에서 구를 압축하며 세계를 넓혔다. 압축하고, 넓히고, 그 안의 마력을 유동시켰다. 그사이 소환진이 열리며 보스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어딜!”
형일 아저씨가 활을 쏘고, 하진 아저씨가 파동을 날렸다. 주위가 한순간 일그러졌다. 나는 구체에 마력을 집중했다. 순간 하진 아저씨가 나를 올려다본 것 같았다.
나는 손에 모은 마력을 그대로 밀었다. 입체 게이트가 결계와 마정석을 단숨에 삼켜 버렸다.
쿠과과과과──
게이트가 커지고, 그것이 이내 내 몸마저 삼켰다. 주위로 마력이 일그러지며 휘몰아쳤다. 나는 순식간에 불어난 게이트를 마력으로 감싸며 더욱더 압축했다. 거기에서 어느 정도 힘을 준 순간, ‘쨍!’하고 모든 것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게이트의 영역을 작게 만들고 문이를 불러 게이트째로 문이에게 저장했다.
“김형일! 성공이다!”
“오케이!”
뒤로 물러나며 형일 아저씨가 활시위를 당겼다. 수십 발로 나뉘어 쏘아진 화살은 적과 접촉한 순간 둥근 구체로 변하더니 적들을 가뒀다.
“아가씨, 텔레포트!”
바로는 나가지 못한다. 정말로 이차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울로 길이 연결되어 있다. 나는 거울에 연결된 게이트를 불렀다. 건물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형일 아저씨와 하진 아저씨, 두 사람 다 내가 연 게이트를 향해 날아왔다.
게이트를 넘고 거울이 있는 방에서 바로 바깥으로 텔레포트 했다. 이 저택은 공간이 일그러져 있다. 하지만 바깥으로 나가는 것뿐이라면 어렵지 않다. 우리는 하늘 위에서 기괴한 저택이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
저택은 무너지며 아래로 가라앉았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하……드디어 끝났다.”
“그럼 이제 세 개밖에 안 남은 거네.”
나는 흠칫했다. 형일 아저씨가 손을 들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기 온 뒤부터 줄곧 풀고 다녔던 머리카락이 거칠게 출렁였다.
“자, 오늘은 그만 잘까? 한 2시간 정도 남았는데, 또다시 오늘이 올 때까지 휴식을 취해 두자고. 밥도 먹고.”
“앗, 네…….”
“그러는 게 좋겠군.”
우리는 석양으로 붉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평소에 휴식을 취할 때 이용하는 숲 구석으로 이동했다. 아공간이나 가방에서 식량을 꺼내 식사를 했다. 밥 없이 캔만 먹으려니 좀 퍽퍽한 느낌도 들었다. 다음에는 밥도 사야겠다. 밥, 밥이 먹고 싶다.
‘하, 먹고 싶다. 치킨, 피자, 우동, 비빔밥, 떡국, 만두, 햄버거, 불고기, 유부초밥, 김밥, 라면! 으으으……배 터지도록 먹고 싶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배 터지도록 먹어 본 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다기보다 많이 먹어도 그다지 배가 부르지 않았다. 나는 괴력을 깨달았을 때와 비슷한 위화감을 느꼈다. 목 안으로 꾸역꾸역 먹을 것을 집어넣었다.
“일단 가 본 적 없는 지하 던전부터 사전 조사하러 가 보려고 하는데, 어때?”
“네, 괜찮아요…….”
“그래. 그렇게 하지.”
밥을 먹고 나서 자리에 누웠다. 시간만으로 따지면 며칠이나 밤을 새웠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졸리지 않는다.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일까.
심장 고동이 귓가에서 점점 커졌다. 며칠인지 모를 시간 동안 계속 보지 못한 얼굴이 떠올랐다. 항상 나를 걱정하던 엄마랑 아빠, 선아 아줌마랑 정민 아저씨, 친구들의 웃는 얼굴, 나를 타박하던 스승님, 스승님 옆에서 애교를 부리던 백한 선생님이나, 민 선생님, 준휘 선생님……나를 웃으며 맞아 주던 선배들…….
‘라라도 보고 싶다. 라라…….’
울컥, 지금은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 가슴속에서 샘솟았다. 위험과 구원이 함께 다가오고 있다. 나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을 참으며, 결국 마법을 써서 잠이 들었다.
이 방은 아마 휴게실인 것 같았다. 의자와 책이 있고, 꽃이 시든 화분이 있다. 창가에 기대어 있던 남자가 나를 보더니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나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기습을 했다.
이미지를 그리고, 완성한다! 남자가 있던 자리에 결정 형태를 지닌 커다란 결계가 생겼다. 그것이 남자의 온몸을 가두며 봉쇄했다.
“…….”
그러나 꽉 찬 결계 안에서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릿하게 팔을 움직였다. 어? 어? 당황하며 힘을 줬지만 남자는 유리라도 깨듯이 간단히 결계를 산산조각 냈다. 쨍그랑! 결계가 조각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으악! 하필이면 저 녀석이 지키고 있냐! 아가씨! 공격 절대 맞지 마! 한 대도 맞으면 안 돼! 무조건 피해!”
남자가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났다. 결계로 막아도 박살 낼 것 같았다. 피하는 수밖에 없다. 공격을 전부 피하라고? 나는 환각마법을 사용해 모습을 숨겼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남자의 주먹이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눈앞에 어둠마법을 일으켜, 그 폭발력을 이용해 뒤로 피했다.
“아가씨. 괜찮아?”
나는 손을 휘두르며 별 가루를 뿌렸다. 별 가루 하나하나가 환각을 뿌리자 풍경이 일그러진다. 내 기척도, 모습도, 소리도 완벽하게 숨겨 줄 터였다. 나는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몸을 바로 세웠다. 당연히 두 사람의 모습도 같이 숨겼다.
“네.”
“방금 네 마법에 맞았잖아!”
“저 제어력이 뛰어나거든요. 제 마법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충격도 주지 않아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좀비는 느릿하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모습을 숨겼는데도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가 방 안에 있는 것을 ‘방’ 자체가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여기는 다른 사람이 만든 이차원. 만든 자의 ‘영역’이다.
“저놈은 아가씨한텐 좀 까다롭겠는데.”
“아는 사이예요?”
나는 흘끗 좀비를 바라보았다. 파랗게 질린 창백한 안색, 초점이 흐린 눈동자. 겉모습이 멀쩡한 것이 참 다행이다.
“응. 저 녀석의 마법은 전부 신체 강화야.”
“신체 강화……?”
“쟤는 신체 개조를 해서 힘이 엄청 세. 마법이나 마력을 하나도 안 쓰고도 바위를 간단히 부술 정도라고. 그런데 거기에 신체강화마법까지 있는 거야. 괴력을 몇 배로 만들고, 그러니 속도도 엄청 빠르지. 그 힘으로 마법을 억지로 무효화해. 정말 힘으로 전부 부숴 버린다니까?”
과연. 마법으로 만든 방패는 막을 수 있는 마력과, 막을 수 있는 ‘힘’에 한계가 있다. 저 사람은 마력이 아니라 힘으로 마법을 전부 부순 거다.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으으윽…….”
경악스러운 상황에 신음을 흘리고 있는데 남자가 갑자기 주위의 물건을 막무가내로 던지기 시작했다. 던져진 꽃병, 탁자가 벽에 박혔다. 그중 두 개가 우리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결계로 우리 몸을 감쌌다. 피하려고 하는 두 사람의 손을 잡았다. 날아온 탁자가 우리를 ‘통과’하며 벽에 꽂혔다.
“으악…! 몸에 소름 돋았어! 그냥 막으면 안 돼…?”
“환각마법으로 모습을 숨기고 있는 거라서요. 위화감을 느끼면 곤란…….”
쨍!
그런데 일부러 통과시켰는데도 위화감을 느꼈나 보다. 아니면 감이 엄청 좋은 걸까. ‘통과’하도록 만든 결계조차 상대는 깨부쉈다.
‘저걸 그냥 힘으로만 깼다고? 미친!’
이차원을 힘으로 깨부술 수는 없다. ‘마법’이라서 가능한 것도 있겠지만……아마 저건 힘의 속성이 특수한 거다. 시공간 마력을 원동력으로 하거나, 그게 아니면 마법 무효화 효과가 있거나. 내가 보기에는 둘 다 섞인 것 같았다.
결계를 지우고 도약해서 자리를 피한 나는 낭패한 표정으로 남자를 보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 봉인……같은 건 나한텐 너무 고난도라고! 이성진 그 녀석은 왜 그런 걸 간단히 해내냐고! 으윽!’
저 좀비는 정말로 감이 좋은 것 같다. 물건을 던질 때마다 몇 개는 나, 혹은 아저씨들한테 날아간다.
나는 좀비와 시선이 가까워진 순간, 그를 환각 세계로 끌고 들어갔다.
기억을 훑었다. 그가 이 주변에서 가장 편하게 느끼는 공간을 반영해 냈다. 상대가 환각 세계에 빠진 즉시 현실 세계에도 마법을 썼다. 시간 봉인 같은 고위마법은 못 쓰지만, 당장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거라면 다이아몬드보다도 단단한, 선아 아줌마의 얼음마법으로…….
챙!!
“악……!”
그러나 얼음이 얼굴까지 다다른 그 찰나, 상대는 주먹을 들어 얼음을 깨부쉈다. 쾅! 쾅! 다이아몬드를 힘만으로 부수려면 어느 정도 힘이 필요하더라……. 아니 그야 내 얼음은 선아 아줌마처럼 완벽하지는 않지만서도. 그는 느릿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역……시, 내가 거기……있을 리가……없지…….”
와, 냉정하네? 환각 속에서 꿈 같은 기분에 젖어 들지 않고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환각을 깼다. 아무리 직접 조종을 하지 않았다고 한들 스스로 자각하고 깨다니,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아가씨! 30분 안에 못 하면 우리도 나설 거야!”
“주위……느낌……이상해…….”
나는 다가오는 좀비를 보며 다음 방법을 생각했다. 환각으로 재울 수 없다면, 역시 마법으로 제대로 공격할 수밖에 없나? 하지만 그래서는 제압이 아니라 쓰러뜨리는 게 되잖아. 고민하는 순간, 상대방의 모습이 흐려졌다.
“……!”
“여……기다…….”
──얼굴로 주먹이 날아왔다.
쾅!
팔을 교차해 공격을 막았다. 결계와 게이트는 공격을 반밖에 못 막은 채 깨부숴지고, 주먹이 팔에 닿았다. 나는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악……!”
“안……쓰러지네…….”
“우왓! 아가씨!”
두 번째 공격. 날아오는 주먹을 나는 버티어 냈다. 버티어 냈지만, 역시 아팠다. 이상한 소리가 안 나는 걸 보니 뼈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지만…….
“아……프잖아, 이 자식아!”
나는 울먹이며 주먹을 힘껏 내질렀다. 콰앙──! 그런데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어라?”
주먹을 내지른 직후, 나는 당황해서 눈을 깜빡였다. 홧김에 휘두른 내 주먹에 맞은 좀비가 가볍게 버티는 것이 아니라 벽으로 밀려나 처박혔다. 벽에 쩌저적 금이 갔다. 어라라……? 나는 당황하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좀비는 얼굴을 끼기긱 움직이며 일어서다가 주저앉았다.
“늑골……부러졌다…….”
“에엑?!”
나는 당황하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환각을 꿰뚫고 나한테 공격을 가한 것도 놀랍지만, 내 주먹에 밀려나 벽에 쓰러진 좀비의 모습도 당황스러웠다. 게, 게다가 벽에 금이 가다니…….
“아가씨! 이 틈에 빨리 가자!”
“네, 네? 네!”
“입구 어디야?”
“여기, 거울이다.”
“기다……려. 아, 못 일어나겠네…….”
나는 형일 아저씨의 재촉에 벽에 걸린 거울로 달려갔다. 좀비가 느릿느릿 나를 보았다. 나는 죄책감에 움찔했다. 좀비……죽은 자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키메라다. 그러나 사람과 비슷한 모습이며, 의지를 가지고 있고, 마법을 쓴다. 기분이 이상했다.
“……미안.”
나는 곧바로 고개를 돌리고 거울로 뛰어갔다. 하진 아저씨가 거울을 툭툭 손으로 두드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흐음. 분명 거기에서 느껴졌던 거울의 기척과 비슷한 걸 따라온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