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198
“오늘은 20분 간격으로 시간을 정하자. 들어가서 10분째, 30분째, 50분째, 준비가 되면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자. 들어가자마자 바로 부술 수 있으면 편할 텐데…….”
그는 뭐라 더 말을 이으려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귀걸이를 건드려 형일 아저씨가 말한 대로 알람마법을 새로 걸었다.
“긴장하고 가자.”
“……네.”
“그래.”
시간이 된 것을 확인하고 텔레포트 아이템을 사용해 텔레포트 했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보자 답답한 기분부터 들었다. 나는 벽에 이마를 대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심장이 너무 다급하게 뛰어 곤란했다. 긴장부터 가라앉혀야 할 것 같다. 눈을 감고 천천히 심장 고동에 귀를 기울였다. 손을 축축하게 적시던 식은땀이 마르고, 두렵고 벅찬 이 심정이 가라앉도록.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발을 굴러 또 한 번 텔레포트 했다. 평소처럼 문 앞에 단단한 결계를 치고 안으로 들어가며 환각마법으로 모습을 감췄다. 소환진에 더디게 소환되도록 마법을 걸었다. 그래, 어쩌면 소환진이 차단된 이 시점이 나에게는 최고의 찬스였다. 나는 문을 막은 결계 역시 평소보다 단단히 밀봉했다.
소환진 위에 봉인의 사슬을 겹쳤다. 로딩을 끝내고 키메라가 소환되는 순간, 모든 키메라가 한순간 움직임이 봉인될 것이다. 나는 빠르게 달려 제단 위로 올라갔다. 이미 파악하고 있는 결계를 부수고, 분산한 환영 사이에서 본체를 찾아 결계로 묶었다. 영역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부서지지 않는 결계를 만들어 기둥을 둘러쌌다.
기둥 안에서 엄청난 마력의 파동이 뻗어졌다. 그러나 결계는 마정석을 감싼 채 부서지지 않았다. 마법을 막지도 않았다. 마법이 결계를 통과해 나를 위협했다.
시야 안에서 마력이 선을 그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 앞으로 다가온 마력을 정화해서 없앴다.
10분, 버티어 냈다. 알람이 울렸다. 그러나 아무런 신호도 오지 않았다. 나는 마법을 전부 없애고 제단 뒤에 숨었다.
“쿠오오오오오!!!”
환각으로 단단히 내 주위를 감싸 내 모습을 숨겼다. 마력을 꾹 억누르고, 다음 기회를 기다렸다. 웬만해선 소모전은 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내 마력이 소비될 뿐이니까.
그러나 그들은 환각으로 모습을 숨겨도 내가 아직 이 방에 있다는 사실만은 언제나 분명하게 알고 있다. 통과하는 마법이 내 몸마저 통과하도록 공간을 한순간 휘젓고, 공격 진로에 내가 있을 때는 공격을 막으며 벽에 직격하는 환각을 보여 줬다.
‘나는 보이지 않아. 찾을 수 없어.’
그러나 기둥은 언제나 나를 발견해 낸다. 그래서 이 숨바꼭질에서 내가 언제나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기둥이 얌전했다. 근처에서 느릿하게 빙빙 돌며 몇 번이나 방향을 바꿨다. 마치 있는 건 확신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설마?’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나와 멀리 떨어진 어느 방향에 마법을 생성했다. 그러자 기둥이 그곳으로 마법을 쐈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공중에 블랙홀 같은 중력을 지닌 원이 몇 개나 만들어졌다. 그 모습을 나는 순간 숨을 삼켰다.
‘키메라에게 보이지 않는 것처럼……환각으로 무생물의 감지를 속일 수 있게 되었어……?’
아니, 무생물이라도 다른 것이라면 속였을 터였다. 기계병이나 키메라라면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저 기둥의 힘만큼은 속일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젠 기둥마저 속고 있다.
내 마법 실력이 또 성장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런 상황이니만큼…….
작은 블랙홀 같은 원이 중심으로 빠르게 압축되더니 이내 폭발했다. 주위로 엄청난 마력파가 퍼졌다. 마력 덩어리가 산란하게 흩어졌다. 나는 환각마법을 굳건히 유지했다. 힘이 세진 지금은 특별히 마법을 쓰지 않아도 몸에 어느 정도 힘을 주는 것으로 날아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그래, 저들을 상대하는 동안 나는 강해졌다. 통과하는 탄환도 당황하지 않고 내 몸을 통과해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물건’으로 인식시키면 된다. 오직 살아 있는 것만 통과하지 못하는 탄환이니까. 혹은 같은 편도 통과한다. 무생물은 기본적으로 통과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벽에 부딪치는 걸 보면 통과 횟수에 제한이 있는 게 아닐까?
드래곤의 힘도 이젠 견딜 수 있다. 피할 수 있다. 막을 수 있다. 이곳에 와서 내 실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버티자.’
나는 기둥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자리에 선 채 버텼다. 기둥에게 몇 번 들켰지만, 그래도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기둥은 여지없이 나를 인식하지 못했다. 몸을 바닥과 벽 어디에도 닿지 않는 허공에 띄우면 가끔 이 이공간 자체마저 인식을 못 하는지 몬스터들이 역소환되려다 멈추고는 했다.
들키면 자리를 바꾸며 가만히 기회를 노렸다. 무차별로 공격하던 적들이 얌전해져 침묵했다. 정체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때 귓가에서 알람 소리가 들렸다.
삑──.
나는 곧바로 통신 기능을 켰다.
“형일 아저씨, 하진 아저씨, 지금 어때요?”
[오케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먼저 기둥을 깨면 연락하기야.]통신을 끊은 순간이었다. 위에서 느껴지는 압력에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피했다.
“……!”
마치 통신을 감지한 듯한 타이밍이었다. 드래곤만이 아니라 스켈레톤 대장도 나를 정확히 노려왔다. 알람 소리, 혹은 통신 소리를 들은 건가?
분명 나는 소리가 밖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차단했었다. 아마 그들은 내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난동을 그만두고, 입을 다물고, 오감을 예민하게 세우고 조용히 내가 무언가 흔적을 보이길 기다렸다.
나는 다시 환각으로 몸을 숨겼다. 환각을 사용해 내 모습을 다른 곳에 투영해 적에게 혼란을 줬다. 적들이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가는 내 환각을 쫓았다. 그사이 나는 위에서부터 기둥을 노리며 올라탔다. 기둥에서 엄청난 힘이 뿜어져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손에 ‘공간을 꿰뚫는 어둠의 검’이 실체화됐다.
어둠으로 만든, 거의 진짜와 다름없는 검이다. 환각으로 문자마법의 효과를 부여, 그것으로 공간을 가를 수 있게 되었다. 검이 마력의 파동 바로 위에 꽂혔다. 파동이 기둥을 지키는 방어 막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나는 검에 마력을 왕창 불어넣었다.
“하아아아앗──!!”
온몸에 힘을 줬다. 기둥의 강도는 엄청나다. 항상 마력을 엄청나게 쏟아부어야만 부서졌다. 검이 겨우 기둥의 표면을 파고들려는 순간, 눈앞에 거대한 손톱을 가진 손이 나타났다. 나는 바로 고개를 젖혔다.
촤악!
이마가 찢어졌다. 나는 이를 악물며 드래곤에게 마법을 쐈다. 드래곤은 내 공격을 텔레포트로 피하며 다시 내게 마법을 쏘아 보냈다. 수십 개의 창이 내가 방금 전까지 있었던 자리에 박힌다. 환각으로 다시 몸을 숨기려는 순간, 귓가에서 하진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둥 파괴 완료했다.]눈앞에 『04:54』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문이다.
‘제길.’
초조해졌다. 나는 문자를 공격마법으로 바꾸어 날렸다. 드래곤은 물러서지 않고 내게 계속 공격을 날렸다. 마법을 상쇄하며 공격했지만, 상대는 물러나지 않았고, 강한 공격은 텔레포트로 피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더불어 기둥을 향한 공격은 몸으로 막아 낸다.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형일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끝났어! 남은 건 은하 아가씨뿐이야!]“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나는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그래, 마지막이다.
나는 드래곤을 보며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마지막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쓰러뜨려도’ 된다.
“쿠오…….”
드래곤이 무언가를 느꼈는지 한순간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놓치지 않았다. 드래곤의 팔과 다리에 둥글고 검은 선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팔과 다리가 드래곤의 몸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스겅.
촤아악!
“크아아아아아악!!”
게이트를 이용해 절단, 나는 곧바로 기둥 앞으로 이동했다. 기둥은 아까에 비해 힘이 약해져 있었다. 하늘 던전과 지하 던전의 기둥이 부서졌기 때문이겠지. 이차원의 길을 통해 움직이는 마력의 속도가 느리다. 이대로라면 5분 만에 고쳐지지 않을지도.
나는 다시 기둥을 노려보며 기둥을 정확하게 꿰뚫은 창 그림을 그렸다. 그것을 실체화했다.
빠각
부서진 것은 창이었다. 기둥은 아주 조금 금이 갔을 뿐 멀쩡했다.
‘하지만 금이 갔어!’
다시 한번 공격을 가하려 하는데 드래곤의 꼬리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다리와 팔이 뜯겼는데도, 움직여? 드래곤이 포효를 내질렀다.
“우오오오오오오!”
입에서 발사한 브레스가 수십 가닥으로 갈라졌다. 그것이 다시 합쳐지며 나를 직선으로 노렸다. 강한 비틀림을 가진 마력을 일그러진 결계로 뜯어 없앴다. 나는 숨을 골랐다.
‘버서커 모드! 이럴 때…….’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남은 시간은 2분 이하. 입을 열어 주문을 외웠다.
“하늘의 그대, 천공을 가르고, 어둠에 표표하라. 성천광희(星天光熙)!”
드래곤의 주위를 어둠이 둘러싸고, 수십 개의 별이 빠르게 움직이며 드래곤과 스켈레톤, 그 외 모든 적의 몸을 내리눌렀다. 문이를 실체화해 불러내고 싶지만, 남은 마력은 그리 많지 않다. 기둥을 부수는 것에만 집중해도 벅찰 판이다.
나는 기둥이 뿜어내는 마력을 몸과 결계 갑옷으로 막아 버텨 내며 그 위를 주먹으로 두드렸다. 손가락으로 억지로 공간의 틈새를 벌려 그 안에 어둠의 마력과 빛의 마력을 욱여넣었다. 폭발해라, 부서져라, 제발…….
속성융합마법이 끝나고, 온몸에 상흔을 입은 드래곤과 스켈레톤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다른 적의 공격은 문이가 결계로 막아 주고 있다. 문이는 이제 소환하지 않은 상태로도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건 소환한 것보다 마력이 적게 든다.
‘부서져! 부서져!’
남은 시간은 1분 이하로 떨어졌다. 47초……41초…….
‘부서져야 돼!’
눈가에 힘이 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순간 ‘부서져 있는’ 기둥을 상상했다.
쩌적,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력이 기둥의 표면을 파고들기 전에 기둥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갈라졌다. 나는 숨을 삼키며 그것을 보았다. 그 경이로운 광경을…….
‘환각……실체화……?’
눈앞에 환각을 보여 주고 그를 통해 상해를 입히는 것이라면 몰라도, 나보다 강한 마력을 지닌 대상의 몸에 직접 환각을 실체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끔찍한 예지만, 원래 사지 멀쩡했던 사람에게 ‘사실 당신은 팔이 없어’라고 말한다고 한들 믿을 리가 없지 않는가. 그런 ‘환상’을 보여 줄 수는 있지만, 나보다 강한 힘을 지닌 자의 몸을 진짜로 환각대로 바꿀 수는 없다.
설령 기억을 조작해도 그가 나보다 강하다면 온몸의 마력을 활성화해 방출하는 것으로 그것을 풀 수 있다. 무엇보다 환각은 ‘의지가 있는 자’의 ‘믿음’으로 형성된다.
눈으로 보인 현상을 믿는 순간, 그것은 현실이 된다.
실체화한다고 해도 환각은 환각, 어디까지나 실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마법을 다른 현상으로 실체화할 때는 언제나 그 사람의 눈을 통해 환상을 보여 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즉 환각의 대상이 나와 기둥밖에 없는 상태에서 나보다 강한 힘을 지닌 기둥이 환각마법으로 인해 부서진다는 건, 내 암시를 통해 무생물 자체가 자신을 깨진 조각이라고 인지했다는 소리가 된다.
‘그건……!’
기둥이 쩌적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이윽고 바닥에 떨어진 것은 힘을 잃은 돌 부스러기였다. 나는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뒤로 물러섰다. 주위가 일그러지고, 어딘가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성공한 것이다!
남은 시간은 10초 이하, 현재 남은 세 개의 기둥이 전부 부서졌다. 나는 재빨리 통신구를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클리어! 끝났어요! 거기 기둥 혹시 고쳐진 거 아니죠?”
[아직 부서진 채야. 혹시 몰라서 계속 안에 남아 있었거든. 아가씨의 텔레포트 아이템도 있으니까. 이제 탈출할게.] [곧 만나자.]나는 그 말을 들으며 웃었다. 가슴이 벅찼다.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네……. 악……!”
그러나 그 직후, 나는 숨을 삼키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가씨?]들떠 있었기에 몰랐다. 아직 드래곤이 완전히 쓰러진 게 아니라는 사실도, 그의 몸이 기둥을 따라 아직 어딘가로 전송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아…….’
그때와 똑같았다. 아니, 다른가……? 그때는 가슴을 꿰뚫렸고…….
복부에 팔뚝보다도 커다란 손톱이 솟아올라 있었다. 울컥, 입에서 피를 뱉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 걸 느끼며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선명한 붉은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며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아가씨? 무슨 일 있어? 아가씨?!] [얘야! 유은하!]눈앞이 흐려졌다. 나는 비틀거리며 발을 내디뎠다. 한순간 머릿속에 그리운 인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아직…….
…….
아직…….
……죽을……수는…….
맨 처음 유은하가 없어진 사실을 눈치챈 것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었다. 다만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확신한 것은 이성진이었다.
유은하가 꿈을 꾸다 끔찍한 세계에 갇힌 다음 날, 강인하와 박한수는 언제나처럼 등교하기 위해 모이던 장소에서 유은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유은하는 나오지 않았고, 방에 가 보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깐 어디 간 걸까 싶어 핸드폰과 학생증에 메시지와 문자를 남기고 등교했다.
그러나 유은하는 등교하지 않았다. 같은 반인 이성진이 1교시를 마치고 기숙사로 가 보았지만, 그때도 유은하는 없었다. 그는 강인하와 박한수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그러나 강인하와 박한수는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왠지 오늘은 약속 시간에도 안 나와서…….”
김현호나 주민희, 이소영, 최인성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고 혹시 아는 것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몇 사람이 예전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정민아나 정준휘, 유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시나리오 건과는 관계가 없었던 모양이다.
집에 일이 있었나 싶어 유은하의 부모님께도 전화를 해 보았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듯했다.
그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전날 유은하가 무언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했었는지 고민했지만,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유은하는 언제나처럼 수업을 들었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고, 기숙사 방에서 책을 읽거나 일을 한 뒤 잠에 들었다. 자기 전에 문자로 대화를 나눴으니 틀림없다며 강인하가 대답했다.
그들은 의아해졌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예전에도 몇 번 비슷한 상황이 있었음에도 바로 사건이 일어났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들이 계속 학교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결계가 깨지지도, 소동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러니 유은하에게만 무슨 일이 생겼을 리 없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가 지나고 그다음 날에도 유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은 점차 불안해졌다. 어디 비밀 도서관에 들어가서 몰두하고 있거나, 정신없이 몰두하다가 깊게 잠든 것이 아니냐고 누군가가 걱정스럽게 속삭였다.
그러나 유은하가 실종되고 이틀째 날 오후 3교시 무렵, 갑자기 이성진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수업 도중 갑자기 교실을 박차고 나가 친구들을 단체 전화로 불러 모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불퉁한 태도로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뭐야. 수업 중이거든?]“정신 차리고, 실종이든 뭐든 이유를 붙여서 너희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다 불러.”
[뭐?]“유은하한테 무슨 일이 생겼어. 틀림없이 위험한 일에 휘말렸을 거야.”
[뭐라고?]이성진은 심각한 얼굴로 재촉했다.
“빨리. 그 녀석의 영혼이 안 보여.”
[……!]그 말에 이소영과 최인성이 당장 반응을 보이며 경악했다. 이성진의 영혼을 보는 능력은 유은하보다 훨씬 특별했다. 그는 한번 보고 기억한 영혼은 어디에 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능력으로도 안 보인다는 것은…….
이소영과 최인성까지 심각함을 느끼고 친구들을 재촉한 끝에, 유은하의 실종 사실이 학교에 전달되었다. 학교 안에서 쥐도 새도 없이 학생이 실종되었다 하면 중대한 사건이다. 무엇보다 전대미문이었다.
처음엔 그저 어딘가로 외출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지만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나자 다들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추적마법으로 위치가 잡히지 않는 데다, 무엇보다 기숙사 방으로 들어간 이후부터 움직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복도에 있는 CCTV를 통해 움직임을 추적해 보았지만 나간 흔적은 존재하지 않는 데다 학생증은 얌전히 유은하의 방에 놓여 있었다.
실종이 확실해지자 유은하의 결석은 병결로 처리되었고, 관계자는 전부 학교에 불려 왔다.
“대체 은하한테만 이게 몇 번째야!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죄송합니다. 정말 드릴 말씀이…….”
“결계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뚫린 흔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딸은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편성한 추적 팀의 일원인 정민아와 정준휘, 유민, 이백한, 거기에 유은하의 부모님과, 그들과 친한 강인하의 부모님까지 모였다. 정민아와 이백한이 학교의 시스템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이상 수치도 나타나지 않았군.”
“기숙사에서 나간 흔적이 없다고?”
“네. 기숙사에서 나가면 외출 기록이 남을 텐데, 그것조차…….”
“텔레포트 기록은?”
“없습니다.”
“다른 때는 기록됐는데 이날만 기록되지 않았다면……적어도 스스로 텔레포트를 사용해 나간 건 아니란 거군. 복도에서도 마력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고…….”
말을 잇는 이백한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이 학교 결계 A랭크랬지?”
김선아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물었다.
“은하한테는 몰래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어. 기숙사에 텔레포트 감지 시스템이 있는 것도 모를 테고. 게다가 은하의 실력으로는 A랭크 마법을 속일 수 없어. 적이 있다고 치자. 그럼 적은 A랭크 결계 안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들어올 정도의 실력자라는 거네? 그게 아니면 저번에 그놈처럼 해킹을 잘한다거나…….”
“프로그램이 흐트러진 기록은 없습니다.”
“기숙사는 프로그램이 흐트러져도 마정석을 사용해 자발적으로 결계를 유지합니다.”
“씨발, 미치겠네.”
안색이 창백해진 한미래와 유진한 옆에서 김선아가 험악한 얼굴로 욕을 내뱉었다. 정준휘가 감정을 꾹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일단 은하의 방부터 수색해 볼 생각입니다.”
“그래……. 인하는 어디 갔어? 그 아이의 다른 친구들은? 은하의 실종을 처음 눈치챈 건 그 아이들이라 들었는데…….”
“먼저 은하의 방에 가 있습니다. 같이 은하를 수색하고 싶다더군요.”
“그래? 먼저 아이들한테 상황을 좀 들어 봐야겠어.”
김선아가 강정민과 유진한, 한미래를 데리고 텔레포트 했다. 유민이 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김선아의 뒤를 따랐다. 유은하의 방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사장인 신창훈과 가드 임무를 유천호에게 맡기고 달려온 이은희와 주제현, 한성후의 부탁으로 온 감지계 능력자 연요운, 거기에 유은하의 친구들은 전부 있었다.
“엄마!”
“아줌마…….”
“인하야. 사정을 좀 설명해 봐. 정확히, 실종 전날, 실종 후에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강인하가 설명을 하는 동안 이성진은 방 안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유은하의 방 안은 보물 더미였다. 화분에 심어진 마력석이 자라는 나무 몇 그루, 책상 옆과 책꽂이에는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고, 서랍 안에는 온갖 마정석과 보석, 그것을 가공하기 위한 재료가 가득했다. 선반 한쪽에는 유리 종류 장식물이 잔뜩 쌓여 있고, 다른 한쪽에는 완성된 아이템 장식이 몇 개 장식되어 있다.
마력으로 가득찬 방은 시간의 흐름조차 달랐다. 방의 네 귀퉁이에 결계석이 붙어 있었고, 그 결계석에 의해 시간의 흐름을 달리하는 결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한미래는 흐린 눈으로 방을 둘러보며 서랍을 하나씩 열어 보았다. 학생증과 배지가 있다. 한미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위화감을 하나 발견했다.
“교복만 없어……. 혹시 등교할 준비를 하다가 당한 게…….”
“그건 아닙니다. 이걸 보시지요.”
이사장은 허공을 향해 명령했다.
“「9월 23일 오전 12시 20분에서 12시 30분까지의 상황을 허공에 비춰라.」”
언령과 함께 허공에 물결처럼 흔들리는 창이 떠올랐다. 창이 커지며 방 안 풍경과 겹쳐졌다. 창 바깥은 낮인데, 창 안은 밤이었다.
오전 12시 20분, 유은하는 잠들어 있었다. 잠깐 뒤척이는가 싶던 유은하의 모습이 갑자기 휙 사라졌다. 눈을 깜빡인 사이에, 책이 한 장 넘어가듯이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뭐지? 대체…….”
“이때 교복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대체 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침묵했다.
그사이 허공을 손으로 더듬고 있던 이성진이 어느 곳에서 꾹 주먹을 쥐었다. 강인하가 그걸 눈치채고는 김선아와 이야기하다 말고 물었다.
“뭔가 발견했어?”
“희미하게……‘선’이 연결됐던 느낌이 나.”
김선아가 이성진에게 다가갔다. 방학 때 곧잘 다른 친구와 함께 유은하의 집에 찾아온 만큼 김선아는 이성진과 어느 정도 안면이 있었다.
“너도 감지능력이 있니? 뭔가 느껴져?”
이성진은 김선아를 흘끔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 근처에서 ‘끊긴’ 흔적이 납니다. 영혼의 기척이…….”
“영혼…….”
김선아가 표정을 어둡게 가라앉혔다. 유은하의 보호자들은 이성진에게 영혼을 보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특수능력 건으로 유은하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갑자기 영혼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김선아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일을 겪었고, 끔찍한 장면을 셀 수 없이 많이 봐 왔다.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처음으로 떠올린 것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애초에 A랭크 방어를 뚫고 납치당한 상황인데 어떻게 낙관할 수 있으랴.
“은하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맨 처음 눈치챈 게 너라고 들었어.”
“네.”
“그럼,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영혼이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건……혹시…….”
김선아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한미래가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김선아의 팔을 붙잡았다.
“선아야!”
“…….”
김선아는 대답을 기다리며 침묵했다. 그러나 이성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죽었다면 영혼이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알 수 있으니까.”
“알 수 있다고……?”
모두가 불안한 눈으로 이성진을 바라보는 가운데 이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은 이미 사실을 전해 들었던지 그저 심각한 표정을 유지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삼가겠지만, 제 특수능력 중에 죽음과 관련된 것이 있습니다.”
“아, 전에 나도 들었어.”
‘종말’. 이은희가 올봄 수련회를 따라갔을 때 겪었던 충격적인 사건을 떠올리며 속으로 작게 그 특수능력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러니 죽었다면 알 수 있습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반드시입니다.”
“…….”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침묵했다. 죽었다면 알 수 있다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은연중에 그의 특수능력이 무척 뛰어나거나 독특하며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그래서 위험하단 걸 눈치챈 거기도 하지만.”
“무슨 뜻이지?”
주제현이 다급하게 물었다. 평소 두 사람은 마주치기만 하면 신경전을 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영혼을 찾을 수 없다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딱 한 번, 그 녀석이 사라지고 하루 반이 지나던 날, 그 녀석의 ‘죽음’이 눈앞에 보였습니다.”
“……!”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이성진은 경악하거나 기겁해 자신에게 다가서는 사람들을 손으로 가로막았다.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치명상을 입었던 건 확실합니다. 그것도 아주 멀리에서 느껴졌어요. 그 녀석은 그만큼 위험한 곳에 있는 겁니다. 빨리 구해 내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그럼 지금은 괜찮은 거니? 지금은, 은하는 괜찮은 거야?”
그곳에 모였던 모두가 극심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이성진이 한미래의 시선을 살짝 피했다. 미리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유은하의 친구들은 입을 꾹 다문 채 시선을 내렸다.
“……그 이후로 죽음이 보인 적은 없습니다.”
“아아…….”
한미래가 비틀거리며 이마를 부여잡더니 자리에서 쓰러졌다. 유진한이 다급하게 한미래를 붙잡았다. 혼절한 모양이다. 유진한이 불안한 얼굴로 한미래를 끌어안았다.
김선아는 창백한 얼굴로 혼절해 옮겨지는 한미래를 응시하다가 이사장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