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199
“추적마법, 소용 있었어?”
“……아니요.”
“당신 마법도?”
“제 언령마법은 먼 거리 추적에는 그다지…….”
“그래. 생성 계열 마법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
김선아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강정민과 함께 돌아섰다.
“할머니를 불러와야겠어. 이 사건, 심상치 않아.”
“…….”
아까부터 경험으로 갈고닦은 직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김선아는 그 말만 남긴 채 자리에서 텔레포트 해 사라졌다.
이성진은 유은하의 위험을 눈치챈 날부터 계속 유은하의 방에 머물고 있었다. 등교하지 않고 방에서 죽치고 앉은 채 가만히 무언가를 기다렸다. 유은하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은 장소다. 그는 뭔가 ‘틈’이 생겼을 때 바로 감지해 낼 수 있는 장소가 유은하의 방이라 여겼다.
이성진을 따라 다른 친구들도 자주 유은하의 방에 머물렀다. 그들은 기감을 곤두세우며 며칠이나 밤을 새웠다. 친구가 죽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데 잠이 올 리가 없다. 온다고 해도 오히려 그 사실에 자괴감이 든다.
“난 왜 추적마법을 안 만든 걸까. 납치당한 적도 있으면서…….”
“뭐? 민희 너 납치당한 적이 있어?”
“응. 초등학교 5학년 때. 은하한테 추적능력이 있어서 살았지만.”
“하필이면…….”
이소영이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하필이면 납치당한 본인에게 추적능력이 있다니.
“…….”
강인하는 가만히 이성진을 바라보았다. 유은하를 찾기 위해 가장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성진이었다. 특수능력을 이유로 대고 학교에 정식으로 허락받고 수업을 빠지며 유은하의 방에 죽치고 있다. 잠은 자는지, 밥은 먹는지, 그저 묵묵히 계속 자리를 지킨다.
다른 친구들도 사실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실종된 시간이 길어지고 있고, 더욱이 그들은 이번 사건에 도움이 될 만한 마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수업에 꼬박꼬박 나갔다. 몇 번 핑계를 대며 빠졌지만, 다른 학생들의 시선도 있어 계속 빠질 수는 없었다. 유은하가 학교 내에서 실종되었다는 사실은 비밀이었다.
강인하는 아주 약간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런 사이가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당연하게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며 찾기 위해 매달리는 이성진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은하야, 제발.’
모두의 바람은 똑같았다.
‘무사히 돌아오기를.’
한편, 이성진은 자리에 앉은 채 묵묵히 집중하고 있었다. 아주 가끔 희미하게 영혼의 기척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그 한순간은 위치를 확인하기에는 너무 짧고 기척도 희미했다.
‘차라리 「힘」을 사용할까?’
사실 이성진에게는 이 상황을 뒤엎을 만한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지금까지 그가 사람들 앞에 드러냈던 능력치의 규격을 벗어나는 힘이었으며, 본래 써서는 안 되는 힘이었다.
유은하 본인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그녀는 강하다. 싸움에 필요한 마음은 갖추지 못했지만 이 험한 세계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
첫 ‘죽음’ 이후로 유은하의 죽음과 관련된 무언가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첫 죽음이 방심 때문이었다고 가정해도 그녀가 위험한 곳에 있을 것임은 변함없다. 이성진은 무릎 위로 손을 모아 잡았다. 아마 그녀도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유은하는 무리를 할 성격이 아니다. 무모함과도 거리가 멀다. 구원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든가, 도망치며 탈출구를 찾든가, 둘 중 하나겠지.
그걸 알고 있지만 그는 초조했다. 고통을 등한시하는 만큼 험한 것을 보지 못하고 자라 온 녀석이니까.
그러나 막상 이성진이 「힘」을 사용했을 때, 힘이 튕겨 나갔다. 이성진은 이 저항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설마, 이게 운명이라고? 그 녀석이 운명의 흐름에 휘말려 있어?’
죽음이라는 운명 중 하나를 보는 그는 운명의 흐름에 제어된다. 이것은 세계의 법칙으로, 설령 그라고 할지라도 어길 수 없다.
‘죽지는 않는다는 건가…….’
이성진의 눈동자가 아무도 모를 정도로 미약하게 흐려졌다. 자수정보다 짙은 보라색 눈이 깊게 침잠했다.
김선아는 며칠 후 두 명의 협력자를 데려왔다. 김선아의 조모는 S랭크 마법사 중에서도 50위권 내에 드는 굴지의 마법사였다. 그러나 협력자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 온 지인이었다. 한국의 무속 신앙을 계승한 마법사로, 이름은 하해림이다. 추적에는 뒤따를 자가 없다.
하해림은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마법을 사용하여 유은하를 추적했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상을 찌푸렸다.
“힘들겠는데. 완전히 갇혀 있어. 그걸 뚫기에는 힘이 부족하군.”
하해림은 세계 랭킹 500위 안에 드는, 즉 A랭크 마법사 사이에서도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는 마법사다. 그런 그녀가 뚫지 못한다는 건……. 유민이 소리쳤다.
“그럼 지금 범인이 S랭크 마법사라는 겁니까!”
“그 말대로일세.”
“……?!”
눈을 홉뜨고 있던 김선아가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S랭크 마법사의 마법을 뚫기 위해서는 그보다 강한 S랭크 마법사가 필요하다. 김선아의 지인 중에 하해림만큼 추적에 능한 S랭크 마법사는 없다. 김선아는 이를 악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미치겠네…….”
“하지만, 이건…….”
하해림은 심각한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몇 번 겪은 적 있는 현상이로군.”
“……?!”
실망하거나 초조해하고 있던 모두가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겪었다니요?”
“어디에서요?”
하해림이 오른손으로 턱을 쓸었다.
“몇십 년 전부터 여기저기에서 본 현상일세. 전에도 이러한 실종 사건을 몇 번 맡았거든.”
“그래서요……?”
“40년 전에 한 번……찾아낸 적이 있네. 그때 범인은 ‘트라베리아’였어.”
“……!”
그곳에 있던 모두가 숨을 삼켰다. 트라베리아, 세계 최강의 마법 국가이자 마법의 시초인 나라. 다른 나라를 배척하는 폐쇄 국가이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이름이 거론된다. 한번 트라베리아의 마법사와 마주친 적이 있던 주민희와 강인하, 이소영이 작게 비명을 질렀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음에도 그들의 마음에는 트라베리아의 끔찍함이 마음 깊이 새겨져 있었다.
“원리는 모르지만 저주를 사용해 무작위로 사람을 불러들여서 자국 무기의 위력을 실험하기 위한 실험동물로 사용했던 모양이더군. 갇힌 자들에게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하는 게야. 기억을 통해 난이도를 확인해 보니 B랭크쯤이더군.”
“미친……!”
몇 사람이 욕을 내뱉었다. 하해림이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에도 비슷하게 실종된 자를 두 명 아는데……한국에 1년 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A랭크 마법사 두 명 있잖나. 김형일과 정하진. 그 두 사람도 비슷한 방법으로 실종되었네. 지금도 계속 추적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무 소식도 못 찾고 있지. 물론 그들이 같은 경우인지는 알 수 없네.”
“은하가 그런 곳에 있다고요?! A랭크 마법사도 못 빠져나오는 곳에?!”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 반드시 트라베리아의 실험장에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 트라베리아의 실험장이 한 곳뿐이라는 보장도 없고.”
아무도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절망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분노하거나, 걱정했다.
주민희가 울먹이며 이성진의 팔을 붙잡았다.
“안 죽었지? 그렇지? 안 죽었지…?”
“안 죽었어. 확실하니까 불길하게 말하지 마.”
“으……흐윽……!”
하해림은 안쓰러운 얼굴로 주민희를 바라보다가 흠칫했다. 이성진의 주위로 묘한 위압감이 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하지만 순수한 기운이었다.
“왜 그러나?”
김선아의 조모, 김미영이 물었다. 하해림이 작게 소곤거렸다.
“아니. 저 남아……기운이 독특하군.”
“아아. 나이치고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듯하더군.”
이소영이 김미영을 흘끔 바라보았다. 처음 만난 강인하의 증조할머니는 무척 아름답고 위압적이며, 무엇보다 강인하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선아와 인하의 부탁이니 당분간은 붙어서 추적해 보마. 하지만……상대는 트라베리아일지도 몰라. 그러니 각오 정도는 해 두게나, 다들.”
“그런!”
“제길…….”
분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상대가 트라베리아라면 그들로서는 손을 쓸 수가 없다.
나라가 어디에 존재하는지조차 불명, 세계 랭킹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마법사가 열을 넘는다. 그것조차 그들의 전력이 아니다. 실력을 공식적으로 드러낸 마법사는 전부 12명. 몇백 년간 그들의 손에 의해 몇십 명이 넘는 강자가 목숨을 잃었다.
“은하야, 제발……!”
간절한 바람이 짙고 깊게 자리 잡았다.
아무런 진전 없이 답답하게 날짜를 세기만 하던 어느 날, 이성진은 갑자기 눈앞이 흑백으로 물드는 느낌을 받았다. 잿빛 풍경 속에 흐릿하게 빛나는 익숙한 색채가 보였다. 멍하니 허공을 보는 눈빛 안에 남색과 은색이 섞인 영혼이 보였다. 한순간, 연결된, 끈이──!
“…안 돼!”
성진은 답지 않게 다급하게 소리 질렀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 멍한 눈으로 웃어 보이고는 천천히 멀어져만 갔다. 이윽고 그 모습이 훅 사라졌다.
뻗은 손에 무언가가 잡혔다. 그러나 그것마저 모래가 되어 사라졌다. 이성진은 영혼이 향하던 길을 똑바로 각인했다.
백일몽이라도 꾼 것 같았다. 이성진은 정신을 차리고 지도를 소환했다. 영혼이 향하던 곳, 똑바로 줄을 그었다. 북쪽……북서쪽…….
“분명 우리나라는 아니었어.”
이성진은 이를 악물고 바닥을 내리쳤다.
“제길! 붙잡았어야 했는데!”
혼의 본체는 아니었다. 아마 잔여나 잔상 같은 것이다. 위치를 확인하기엔 불확실하고 희미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아니, 잠깐.”
이성진은 제 손목 주위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잔여가 남았어. 저주가 튕겨 나간 듯한…….”
이성진은 저주가 통하지 않는 몸이다. 웬만한 마법이 그의 신체에 접촉하면 녹아 버리듯이, 저주는 그의 몸에서 튕겨 나가거나 혹은 마력에 녹아들었다. 저주는 작게는 괴롭힘, 크게는 죽이기 위해서 쓰이는 마법인데, 그는 죽음이라는 운명을 본다. 그러니 당연히 저주도 통하지 않는다.
“잠깐. 이게……저주를 내리는 방법인가?”
잠시 고민하던 이성진은 제 마력을 완전히 갈무리해 눌렀다. 남은 저주의 잔흔을 시간석에 봉인하고 곧바로 김선아에게 전화했다.
“김선아 씨, 하해림 씨를 잠깐 부를 수 없겠습니까?”
[여기에 있어. 왜?]“방금──‘링크’가 됐습니다. 아주 흐렸지만…….”
[뭣이라?]대답한 것은 김선아가 아니라 하해림이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그들이 텔레포트 하여 이성진의 앞에 내려섰다. 하해림이 이성진을 보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뭔가 튕겨 나간 듯한 흔적이 있구먼…….”
“저는 저주가 먹히지 않는 몸이라서……튕겨 나간 저주의 잔흔입니다.”
“저주가 듣지 않는 몸이라고? 허, A랭크도 얄짤없이 당한 마법인데. 참으로 귀한 힘을 지니고 있군.”
하해림은 이성진의 몸 주위로 일렁이던 기운이 완전히 모습을 감춘 것을 확인하고 속으로 감탄했다. 더불어 이성진이 내민 마정석을 보며 또 한 번 감탄했다. 시간석이었다. 시간을 다루는 마법사도 쉽게 만들어 내기 힘든, 시간을 굳힌 보석이다.
그 안에 저주의 잔흔이 갇혀 있었다. 틀림없는 ‘저주’였다.
하해림은 시간석을 통과해 손을 집어넣더니 저주를 문양으로 만들어 뽑아냈다. 문양이 종이에 갇혔다. 하해림은 부적에 갇힌 저주를 샅샅이 해석했다.
“좌표는 없고, 이어져 있지도 않아. 이건 그냥……찜해 둔 게군. 언젠가 데려가리라는 표식이야.”
“언젠가?”
“글쎄……. 자네, 연결되었다고 했지? 실종된 아이와 연결된 건가?”
“네. 꿈이랄지, 환영이랄지……아마 제게 SOS를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녀석, 꿈을 돌아다니는 마법사니까……. 하지만 제정신 같지는 않았습니다. 평소보다 흐리멍덩한 게, 자아가 없어 보였습니다. 무의식 속에 바람을 실은 듯한…….”
이성진은 말을 흐렸다. 그때 보인 유은하는 평소와 많이 달랐다. 이 세계에서 이성진은 유독 여러 가지 힘이 봉인됐다. 특히 유은하에 대한 것은 볼 수 없다. 영혼마저 흐릿하게 뭉그러질 정도다.
하해림이 신중한 기색으로 이성진의 말을 귀에 담았다.
“알 만하군. 그런 방식이었어.”
“그런 방식?”
“꿈이나 의식의 연결 통로를 통해 무작위로 흘러가는 거야. 강하게 생각하는 사람한테 갈 가능성도 있지만 보통은 무작위겠지. 무작위로 흘러가서, 점찍어 둔 후,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자와 연결된 자가 저주 안으로 이동되는 거지. 저주에 걸린 사람 수가 변하지 않도록, 저주를 이어 가는 게야.”
“…….”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성진은 곧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꿈에서 어떤 아이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와, 몇 번이나 꿈에서 만났다고.”
“그 여자아이가 죽었던 게군…….”
이성진이 인상을 찡그리며 이마를 짚었다.
“그 녀석, 안 그래도 마음이 여린데……. 제기랄…….”
그 말만 들어도 유은하가 지금 있는 장소가 어떤 곳일지 조금 예상이 갔다. 김선아도 이성진의 의견에 동의하며 안타까워했다. 유독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 그녀의 마음을 반영한 마법은 언제나 사람에게 상처 하나 주지 않았다. 어떤 마법을 써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에게 가해지는 것은 언제나 마력으로 인한 충격뿐이었다.
하해림은 이성진이 준 잔흔을 토대로 저주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추적은 전부 실패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저주와 비슷한 기운을 찾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이성진의 의견까지 더해져 어쩌면 저주의 근원은 한국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조금씩 모양새를 갖췄다.
그사이 이성진은 유은하가 일컫는 꿈속 세계에 직접 들어가 보는 도전을 했다. 이성진은 꿈과는 상성이 멀다. 하지만 또 하나의 세계라면, 영혼이 돌아다니는 개념의 세계라면 어떻게든 들어갈 수 있다.
성진은 며칠 동안 헤매다가 우연히 유은하의 ‘문’을 발견했다. 유은하가 몇 번 이끌어 주었기 때문인지 이성진이 보는 광경은 유은하와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그 문은 평소와는 달리 불길한 색에 잠식되어 있었고,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이 흐릿했다. 무엇보다 손에 잡히지 않았다.
“빌어먹게 견고한 마법이군. 어디지? 어디에 있는…….”
그곳에 있다기보다는 우연히 잔상이 잠깐 비친 듯한 느낌이었다. 1초, 2초, 3초, 기적적으로 나타났던 문이 다시 사라졌다.
“유은하!!!”
그들이 찾은 유은하의 단서는 전부 작디작은 조각이며 파편이었다. 몇 개 없는 데다가, 흐릿하고 멀다. 더욱이 대부분은 유은하 스스로 던진 단서였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꿈속을 헤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성진은 꿈속에 몇 번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아무래도 ‘꿈’은 그의 영역이 아니다.
실종 기간은 점점 길어졌다. 보름이 지났다. 유은하가 속한 수준별 반은 수련회에 가지 못했다. 같은 수준별 반 멤버인 강예슬과 윤시하에게도 유은하의 실종 사실이 알려졌다.
“그래서 너희들이 요즘 자주 학교를 빠졌던 거구나…….”
뒤늦게 소식을 알게 된 두 사람은 한동안 울며 말을 못 했다. 반드시 찾아내겠다며 의지에 가득 찼지만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다른 학생들에게는 말하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유명한 마법사에게는 이미 여러 방면으로 연락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유은하의 방을 찾아온 마법사 중 그 누구도 유은하의 흔적을 좇지 못했다.
이성진은 유은하가 실종된 동안 계속 학교에 가지 않고 진득하게 유은하의 방에 앉아 있다가, 랭크 시험 때문에 앞당겨진 2학기 고사 때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학교에 나왔다.
하루, 이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날이 길어졌다. 이성진 외에도 여러 사람이 유은하의 흔적을 추적하기 위해 노력하며 유은하의 방에 들렀다. 유은하의 부모는 유은하의 방을 조금 정리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유은하가 실종되고 한 달쯤 됐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평소처럼 가만히 침대 앞에 앉아 있던 이성진이 눈을 크게 뜨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찾았다.”
“뭐?”
마침 수색 멤버가 몇 명 모여 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이은희가 놀라 반문한 순간, 마력이 휘몰아치며 이성진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깐, 어? 뭐야? 방금, 뭐야?”
이은희와 마찬가지로 당황하던 유민이 곧 눈을 크게 떴다.
“은하를 찾았다는 거 아냐?”
“뭐? 앗, 그렇구나! 잠깐! 자기만 가면 다야?”
그들은 허둥지둥 사람을 불러 모았다.
갑자기 유은하가 있는 장소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예상대로 유은하가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었다. 중국 북단, 작은 산을 낀 평평한 산지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유은하는 그곳에 있었다.
낡은 마을이라 해도 폐허와 다름없는지라 사람은 없이 건물만이 어정쩡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가게가 몇 채, 집이 몇 채, 나머지는 전부 허허벌판이거나 숲이었다.
그중에서도 풀이 별로 없는 마른 평지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배를 감싼 채 흐린 눈으로 걸어가다가 이윽고 고꾸라졌다. 이성진이 유은하를 발견한 것은 마침 그 시점이었다.
“유은하!!”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 쓰러진 유은하의 상태를 살폈다. 팔다리에 난 상처에서는 이미 피가 멈췄지만,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내장까지 전부 꿰뚫렸는지 피와 함께 내장 조각이 떨어진다. 이성진이 심각한 얼굴로 유은하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야! 정신 차려! 아직 정신을 잃으면 안 돼! 그럼 죽어!”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김선아에게 연락을 하고 올 것을 그랬다. 그는 치유마법과는 상성이 안 좋다. 눈을 질끈 감는 순간,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죽어…….”
“……!”
“……파……흑……!”
유은하의 눈꼬리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의식이 있다. 이성진은 이를 악물며 유은하의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임시 조치다. 저번에 시간을 돌려서 상처를 치료했던 거 기억하지?”
“…….”
“기절하고 싶을 정도로 아플 거야. 참아.”
이성진은 손에 모은 마력을 곧바로 유은하의 복부에 밀어 넣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유은하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
이성진은 난동을 부리며 뒤엉키는 팔다리를 마법으로 내리눌렀다. 기력이 전부 사라졌을 정도의 부상에도 새로운 고통에 비명이 끝없이 이어졌다. 김선아와 강정민, 이사장, 정민아, 유민, 정준휘, 이백한, 주제현, 이은희……학교의 관계자가 이성진의 텔레포트 궤도를 쫓아 그 자리에 도착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들은 유은하가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나 바닥에서 부피를 늘리는 피 웅덩이를 보며 기겁했다.
“은하야!”
“너 지금 무슨 짓을…!”
“잠깐!”
그러나 의료 마법사인 강정민이 그들을 말렸다. 강정민은 이미 유은하의 복부에 난 상처와 바닥에 흐른 피나 살점을 통해 상황을 전부 이해한 상태였다.
“그런 게 아냐. 저건 응급조치야.”
“응급조치……? 무슨 소리야!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출혈만 막아선 소용이 없으니까.”
악! 아악!! 유은하가 배를 움켜쥐며 비명을 이어 갔다.
“내장이 반 이상 당했어. 응급조치가 늦으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강정민은 굳은 얼굴로 유은하를 향해 달려갔다. 복부에 난 상처가 점점 막혀 갔다. 이윽고 지혈이 될 정도로 상처가 막혔다.
“거기까지. 그 마법은 은하의 몸에도 부담이 너무 커.”
“압니다.”
그때 비로소 그들의 귀에 다른 목소리가 닿았다.
[은하 아가씨! 아가씨? 괜찮아? 무슨 일이야?]목소리는 유은하가 귀에 끼고 있는 귀걸이에서 나고 있었다. 통신기? 김선아가 달려와 유은하의 귀걸이를 다급히 빼냈다.
“너 누구야? 은하랑 무슨 사이야?”
“난 얘 보호자야! 너 누구야! 은하는 왜 이렇게 다쳤고?”
[네, 네? 보호자? 은하 아가씨랑은 동료인데……그보다 다쳤다고? 제기랄, 그때 당한 건가.]이어지는 말에 김선아가 성급하게 이를 갈았다.
“네가 은하한테 위험한 일을 시켰어?!”
[그건…….]“동료라고?”
“이쪽으로 부르는 게 어떻습니까. 상황 설명도 듣고 싶고…….”
이사장이 초조한 눈으로 치료받고 있는 유은하를 흘끔거렸다. 김선아가 잔뜩 분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 당장 달려와. 은하가 어디 있는지 동료라면 알고 있겠지?”
그러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알겠다. 곧 가겠다.]그들이 통신기를 향해 다급하게 구는 사이 이성진은 다른 이유로 성가셔 하고 있었다. 좀 더 정밀한 치료를 행하는 강정민의 옆에서 이성진은 유은하의 머리맡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꺼져. 신경 써 줄 틈 없어.”
유은하의 머리맡에 작은 여자아이 유령이 있었다. 그녀는 이상하게도 이성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마 저주에 갇혀 죽은 사람의 영혼이겠지. 노란 원피스를 보고 이성진은 그 여자아이가 유은하가 실종된 원인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무슨…….”
의아해하며 인상을 찌푸리던 강정민이 멈칫했다. 땅 아래에서 새까만 기운이 솟아오르더니 허공으로 모였다. 그것은 주위의 모든 것을 휘말리게 만들 정도로 거셌고, 위협적이었다. 모두가 당황하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저게 무슨…….”
“으……아…….”
기력을 잃은 채 흐린 눈만을 겨우 뜨고 있던 유은하가 반응을 보이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이성진이 유은하의 손을 잡아챘다.
“하지 마.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유은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눈꺼풀 위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떨어졌다.
텔레포트로 어떻게든 건물에서는 빠져나왔던 것 같다. 아프다, 아픈가? 뜨겁다, 뜨거운가? 통증도, 생각도, 아픔에서 느껴지는 고동도, 점점 멀어져 갔다. 온몸의 감각이 희미해져 갈 때, 목소리가 들렸다.
“……하! ──!!”
점점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아, 아아……. 눈물이 터져 흘렀다. 와 줬구나. 그냥 기뻤다. 살았구나.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성진이 내게 소리쳤다.
“──차려! 아직……으면……!”
아득해져 가는 정신 속, 희미하게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말이 제대로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희미했던 목소리가 아주 조금 선명해졌다.
“……기억하……? 저번에 시간을 돌려서 상처를……했던 거.”
“…….”
“기절하고 싶을……아플 거야. 참아.”
성진이 내 복부에 손을 가져갔다. 그는 치료마법을 쓸 수 없다. 순간, 나는 그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본능적으로 느꼈다. 나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손을 천천히 움직여 성진의 손 위에 겹쳤다.
“악──!”
그 순간, 몸 전체로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배를 감쌌다. 머리가 하얗게 셀 것 같은 고통에 생각도 말도 전부 날아가 버렸다.
“아아아아아아악──!!”
아파, 아파, 아파──!!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고통 속에서도, 온기와 마법의 감촉만은 선명했다. 상처를 중심으로 시간이 돌아갔다. 휘감기듯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