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20
나는 읽고 있던 책을 세우며 입가를 가렸다. 뭐어, 귀찮기도 하고 이것저것 불안하기도 하지만 하는 이상에는 끝까지 제대로 할 것이다. 그게 내 지론이니까.
“선생님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빨리 팀 확인하고, 연습하고, 또 집에 빨리 돌아가지! 팀 발표는 방과 후 말고 수업 중에 하지. 그럼 놀 수 있고 좋은데.”
“아직 시간 안 됐잖아. 좀 더 기다려야지 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종례 시간이 되면 선생님이 와서 우리가 어느 팀에 배정되었는지를 가르쳐 줄 것이다. 이제 종례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뭐, 난 기왕이면 은하랑 같은 팀 하고 싶네.”
시간을 확인하며 이번엔 빨리 돌아오지 않는 현호의 모습을 떠올리던 나는 한수가 한 말에 약간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저 까칠한 한수가 웬일이래? 인하가 불만스러운 눈으로 한수를 바라보자 한수가 그 이유에 대해서 간단히 말했다.
“편할 것 같거든.”
“아, 하긴. 은하는 아는 게 많으니까!”
“그거야, 그거.”
“…….”
나는 그 말에 어색하게 뺨을 긁적였다. 그야, 너희들과 비교하면 당연한 거 아니겠어. 나는 아이들보다 한발 빨리 시작했다. 뭐든지, 정말로 뭐든지였다. 전생의 기억이 있고 그 전생이 지금과 10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21세기의 것이었던 이상에야 어떤 것을 다루든 좀 더 빨리 잘 다루게 되는 것도 당연, 좀 더 아는 게 많은 것 역시 당연하다. 물론 같은 21세기라고는 해도 세계관이 다르기에 전생과 전혀 다른 문화를 발견할 때마다 좀 헤매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저런 말을 들으니 기분은 좋았다. 나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때 인하가 한수의 시선에서 나를 감싸는 것처럼 내 앞으로 끼어들며 말했다. 그 표정이 몹시 진지했다.
“한수 대신 나랑 같은 팀 됐으면 좋겠네.”
“아! 나도 인하랑 은하랑 같은 팀 하고 싶어!”
“너 따윈 확 은하랑 갈라져 버려라!”
“무슨 소리야! 은하랑 인하는 같은 팀 되는 게 당연하잖아!”
“당연할 리가 없잖냐!”
인하와 한수에 이어 민희도 끼어들었다. 나는 투닥거리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책을 덮고는 손에 턱을 괴었다.
인하와 한수는 사이가 나빴다. 그렇다 해도 서로를 정말 싫어하는 게 아니라 투닥투닥거리는 정도지만. 나는 투닥거리는 세 친구들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얼핏 웃었다. 그러네. 확실히 인하랑은 같은 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모두와 같은 팀이 되기는 힘들 테니까, 적어도 인하랑은.
“얘들아, 나 왔음!”
“늦었네? 어디 갔다 왔어?”
투닥거리고 있던 친구들을 대신해 묻자, 현호는 갈색 봉투 같은 것을 품에 안은 채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잠깐 먹을 거 사러. 너희들 또 그러고 있었어? 그런 너희들에게, 에헴! 자, 받아! 크로켓 사 왔어!”
그 말에 민희가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먹을래!”
“이 더운 날에 크로켓은 무슨…….”
나와 인하도 현호가 가져온 크로켓을 받았다. 한수도 말로만 투덜거릴 뿐이지 자연스럽게 자기 몫의 크로켓을 가져간다. 나는 작게 웃으며 크로켓을 베어 먹었다. 앗싸, 내가 좋아하는 카레크로켓이었다.
“시하도, 여기.”
“아, 고마워.”
민희의 옆자리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친구들을 구경하는 느낌으로 앉아 있던 시하 역시 웃으며 크로켓을 받았다. 역시 민희의 소꿉친구다 보니 이런 상황이 익숙한가 보다. 나는 크로켓을 입에 문 채 우물우물거렸다. 현호는 의외로 남을 챙겨 주는 걸 좋아하더란 말이야.
아닌 게 아니라 자기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이 있다고 한다. 엄마가 항상 바빠서 학교 안 가는 날에는 항상 챙겨 주고 있다던가……라는 말을 자기 집과는 거리도 멀면서 현호네 집을 자주 오가는 민희한테서 들었다.
“쌤은 언제 오려나?”
“점심시간 끝나려면 아직 10분 남았음.”
“에이, 빨리 팀 가르고 끝났으면 좋겠다.”
“그거 아까 나도 말했는데.”
민희의 말에 우리는 킥킥 웃었다. 그러게 말이야. 그런 우리를 보며, 시하가 문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 보면 참 이상하게 사이가 좋은 것 같아. 수준별 수업을 같이 들어서 그런가?”
“응. 그거야, 그거.”
“실력이 비슷해서?”
시하는 민희의 소꿉친구이기 때문에 민희의 마법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실력도 대강 감을 잡고 있는 모양이지만……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씩은 반드시 ‘비밀 준수’에 대한 세뇌 비스무리한 것을 받고 있다. 그 덕분인지, 시하가 우리에게 그것을 직접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민희의 소꿉친구란 것도 있고 평생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는 건 우리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난 이 녀석들과 안 친하거든?”
“친해 보이는데?”
“안 친해!”
……한수는 저렇게 말하면서 고집을 부린다니까. 그러나 결국 우리들이 티격태격대면서도 그럭저럭 사이가 이어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고독감과도 같은 동질감이었다. 서로 비슷할 정도의 재능을 가진 이가 있다는 사실에 어쩐지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괴로워졌다.
‘재능, 재능이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아이들 사이에서 제법 이질적인 아이였다. 지금 상황만으로 따지자면, 그래, 이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것은 바로 나다. 마력도, 마법 레벨도, 아이들에 비해서 차이 나게 뛰어났다.
그러나 사실 나는 이 아이들과는 전혀 다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마법을 만들어 낸 친구들과 나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나의 이것은 재능이라기보다는 좀 더 어른스럽고 자유로운 생각과 우연히 빨리 마법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이렇게 천재로 취급받을지 몰라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뒤집혀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다. 천재라기보다는 운이 좋은 범재, 그게 나였다.
누군가는 말하지. 운도 실력이고 재능이라고.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내가 전생을 기억하는 것도, 아공간을 가지게 된 것도, 전부 운이 재능으로서 끌어당겨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능은 엄연히 재능이었다. 특히 실력과 관련된 차이는 금세 눈으로 잴 수 있게 된다. 나는 언젠가 내가 모난 돌이 될 것임을 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천부적인 재능과는 달리 운과 경험에서 온 재능은 시간이 지나면 묻히게 된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 나는 평범한 마법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언젠가에 멋지고 강한 마법사가 되어 있을 이 아이들과는 달리.
그것이 괴로웠다.
심지어 이 아이들은 나를 대단하게 여기고 있다. 지금 당장 자기들 중에서 가장 마력이 많고 가장 마법을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이유 때문에. 친구로 지내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언젠가 이 아이들을 실망시키게 될 것이 두려웠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하고 있지만 그 사실은 가끔씩 내 가슴을 찔렀다. 나는 턱을 괸 채 눈빛을 가라앉혔다.
“은하가 고생이 많네.”
“……어? 나 말이야?”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시하의 말에 놀라서 스스로를 가리켰다.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갑자기 말을 건 것에도 놀랐지만 고생이라니, 무슨 고생?
“사이에 끼어서 보호자 역할 하는 거.”
“…….”
나는 그 말을 듣고서 미묘한 기분에 잠겼다.
나는 얘네들끼리 싸우는 걸 대부분 방치했다. 대개 말싸움으로 끝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마법을 쓰기라도 할라치면 결계로 휙 막아 버리면 끝이었다. 얘네들도 정신은 박혀 있어서 감시 카메라나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마법을 쓰지 않으니까.
이 학교에 오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우리들은 자기소개서에다 자신의 마법 실력을 솔직하게 밝혀 적어야 했다. 심지어 그 자기소개서가 거짓말을 파악하는 종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짜로 적는 것도 소용없었다. 그 자기소개서는 전부 이사장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외부에 유출될 일은 없다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적어도 마법을 만든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마법을 전부 적어 제출해야 했다.
그런 이유도 있고 어찌 되었건 비밀 준수를 믿었기 때문으로, 얘네들은 내 서브마법이 결계와 문자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것에 대해서는 I반 내에서만은 공개적으로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결계마법을 써서 모두를 막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시하는 그걸 모른다. 그래서 미묘한 기분이 든 것이다.
마법에 관련된 싸움을 막는 걸 제외하고 평소 내가 얘네들 사이에 끼어서 하는 일이 대체 뭐가 있지? 음……질문에 대답하거나 그냥 조용히 지켜보는 거? 나는 평소 얘네들 사이에서 그냥 조용히 책을 보며 지냈는데……다른 사람들 눈엔 그게 고생하는 걸로 보였던 걸까? 게다가 보호자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니.
“하긴, 우리도 은하가 있어서 한수와 인하가 싸우든 말든 방치하는 거니까.”
“가끔은 말리지만.”
“가끔은 싸움에 끼어들기도 하고.”
나는 민희와 현호가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런 거야? 으으응……?’
내가 그 말에 좀처럼 납득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종이 치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평소처럼 단정한 정장을 입고 있는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섰다. 선생님은 가지고 온 종이 다발을 정리하려는 듯 교탁 위에 툭툭 두드리고는 우리들을 쭉 둘러보았다.
“팀은 세 팀으로 나뉠 거야. 청 팀, 백 팀, 홍 팀.”
“…….”
“반이랑은 상관없이 평등하게 나누었으니까 같은 반이라고 같은 팀이 될 수는 없고, 연습을 할 때도 매일 수업 시간을 1시간에서 3시간씩 사용해서 팀끼리만 연습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다른 팀의 연습을 훔쳐보거나 하면 안 돼. 알았지?”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으, 으음……. 연습이든 뭐든 좀 적당히 해 주면 좋을 텐데.
나는 힐끗 인하를 바라보았다. 될 수 있으면 인하와 같은 팀이 되면 좋겠다. ‘평등’의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세 팀으로 나누었다고 하니 같은 팀이 될 확률은 약 3분의 1 정도다. 혹시 그 평등이란 게 실력별이라면, 일단 우리 다섯 명이 전부 같은 팀이 될 가능성은 없겠지. 음, 그것도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다. 학년끼리 맞추었나, 아니면 전체적으로 맞추었나. 그러니까 결국 어느 쪽이든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이윽고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다른 팀이 된다면 물론 아쉬울 테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래도 낮은 확률을 뒤집고 같은 팀이 된다면 무척 기쁠 것이란 사실만은 확실하다. 나는 조용히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게 바로……그 팀 배정!”
선생님이 말을 이으며 종이 다발을 휙 던졌다. 종이 다발이 흩어지며 공기 중에 녹아들더니 공중에 색을 가진 문자가 되어 떠올랐다. 청 팀, 백 팀, 홍 팀으로 나누기 위해 테두리 없이 가로줄이 한 줄, 세로줄이 두 줄 그어진 표에 우리들의 번호와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어디 어디?”
“나 청 팀이야!”
“난 홍 팀!”
“나도!”
“난 백 팀!”
반의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조금 긴장하며 공중에 떠오른 이름을 쭉 훑었다. 이름은 번호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난 백 팀이네. 은하는?”
“……잠깐만.”
인하는 앞 번호인 덕분에 바로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다. 나는 시선을 쭉 아래로 내리다가 내 이름의 위치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었다.
“나도 백 팀!”
“잘됐다!”
“응!”
인하가 나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며 활짝 웃었다. 진짜 여신 같은 미소였다. 나는 인하의 손바닥에 손바닥을 마주쳐 하이파이브를 했다. 민희와 시하가 우리를 돌아보다가 그것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인하랑 은하 같은 팀 된 거야? 잘됐다! 무슨 팀인데?”
“백 팀.”
“으으……아쉽다. 나랑은 다른 팀이네. 나는 홍 팀이고, 시하는 백 팀이야. 그럼 시하는 은하랑 인하랑 같은 팀이잖아! 좋겠다~.”
민희가 아쉽다는 듯 투덜댔다. 시하가 우리를 보며 수줍은 얼굴로 기뻐했다.
“정말, 같은 팀이네. 맞다, 현호랑 한수는?”
그 말에 마침 다시 한 번 표를 훑으며 이름을 확인하고 있던 내가 대답했다.
“현호는 청 팀, 한수는 홍 팀.”
“엑, 나 한수랑 같은 팀?! 투덜이 한수보단 인하랑 은하가 좋은데~. 근데 현호만 혼자 떨어졌네.”
그러네. 나와 인하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인하는 잠시 우리와는 좀 떨어진 장소에 있는 한수를 말없이 돌아보다가 다시 표로 시선을 돌렸다.
“운동회 연습은 내일부터 할 거야! 그럼 확인한 사람은 이만 돌아가도 좋아! 모두들 수고했어!”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곧바로 챙겨 두었던 가방을 들었다. 인하 역시 가방을 어깨에 메며 일어섰다.
“그럼 확인했으니까 우리는 먼저 가야겠다. 인하야, 나 책 먼저 반납하고 가려고 하는데. 저번에 빌린 만화책.”
“그래? 그다음엔 할 거 없지?”
“응. 반납하고 돌아가자.”
인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안녕~! 내일 봐! 우리들은 친구들과 인사하고 교실을 나섰다.
우리 반에서 학생증의 텔레포트 기능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우리 외엔 없었다. 때문에 우리는 상점가까지 워프 홀을 이용할 뿐 그냥 걸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뭐, 실력에 대한 귀찮음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더 낫지.
“어? 은하랑 인하 아냐?”
그렇게 워프 홀로 향하는 도중에 은희 언니와 맞닥뜨렸다. 은희 언니는 다소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아니, 얼굴 마주한 지 아직 일주일도 안 지났던가?”
은희 언니 덕분인지 주변 시선이 다 이쪽으로 쏠렸다. 그럴 만도 한 게, 은희 언니는 우리 학교 내에서 엄청 유명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회장인 데다, 무엇보다 대현 학생들 사이에서 마법 실력 3위로 꼽히는 실력자니까! 참고로 2위는 부회장이고, 1위는 어느 남자 선배다.
“안녕하세요.”
“…….”
인하가 말없이 고개만 꾸벅 숙이는 것을 바라보던 은희 언니의 눈동자가 감탄을 담아 빛났다.
“와, 인하는 진짜 언제 봐도 예쁘네! 머리카락도 진짜 예쁘고 부드러워 보여! 오늘은 머리 땋았구나? 땋은 것도 잘 어울린다.”
“……감사합니다.”
정말 그렇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나는 반복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은희 언니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아, 맞다. 마침 그게 있었지? 어디 보자, 그러니까……여기 있다! 인하야. 자, 이거.”
“……?”
은희 언니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이내 작은 스프레이 통을 꺼냈다. 인하는 말없이 스프레이 통을 바라보며 고개만 기울였다. 나 역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인하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 마법 약인데, 좀 독한 거니까 치한 퇴치용으로 쓰렴. 요즘 변태가 그렇게 극성이잖니. 인하는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아! 물론 은하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되지만!”
은희 언니의 말을 들으며 인하는 잠시 멈칫했다. 나는 그 말에 그저 납득했다.
필요하지, 그야 필요하고말고.
인하는 알다시피 귀엽고 예쁜 외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리 드물지 않게 변태와 마주친다. 인하와 자주 함께 놀러 다니는 나도 여태까지 몇 번이나 변태와 마주쳤다. 그때마다 우리는 몰래 마법을 써서 피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 인하에게 이런 물건은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매우 유용한 것이었다. 인하는 정말로 온갖 이성과 일부의 동성들에게 그런 의미로 인기가 많았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하는 순순히 감사 인사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희 언니가 인하를 향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천만에.
잠시 후 그녀가 우리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디 가니?”
“상점가요.”
“상점가?”
“책방에서 빌린 책을 반납하려고요.”
“그래? 뭐, 인하가 아무리 예뻐서 위험하다지만, 학교 안은 안심해도 좋을 거야. 하지만 가끔 고위급 마법사가 변태 짓 하고 돌아다니니까 항상 조심하고 다니렴. 어린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건 당연한 거지만 그런 놈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모르겠어. 귀엽고 예쁘지만! 그래서 난 그 녀석도 이해 못 하겠어. 우리 학교 최강은 말이지, 어린 남자아이만 좋아하거든. 여자아이는 싫어하고 어린 남자아이만 좋아한다니까? 앗,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얘는 순수한 의미로 좋아하는 거다? 오해하지 마?”
이 학교 최강은 그런 사람이었구나. 나는 약간 어색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 이해 못 하겠어. 왜 남자아이만 귀여워하냐고. 귀여우면 다 귀여워야지! 주제현 걔도 취향 참 이상하다니까? ……아, 그러고 보니.”
말을 이으며 어느 순간 역정을 내던 은희 언니가 문득 생각났다는 투로 말했다.
“제현이 동생도 8살이라 올해 이 학교에 입학했거든. 혹시 아니? 주민희라고 하는 여자아이인데.”
그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학교 최강이랑 우리 반에서도 월등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민희가……남매 사이.
정말로 실력이란 유전되는 것인가. 나는 그렇다 치고, 인하도 그렇지, 한수네 엄마도 세계 서열 500위 안에 드는 실력자고, 현호는 잘 모르겠지만 민희네 오빠도 그렇다고 하니…….
‘우와, 진짜로 유전되는 거 아냐?’
문득 든 생각에 놀라워하고 있는 나를 대신해 인하가 대답했다.
“민희라면 친구예요.”
“정말이니? 와아, 그랬구나. 하긴, 같은 학년이니까~.”
은희 언니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은 여자아이는 싫다고 말하면서 자기 동생은 엄청 좋아해. 환상이 깨질 정도로 시스콤이야! 하여간 그런 얼굴 하고 참……얼굴값도 못 하는 놈……은 아니지만 뭐……. 후, 은근히 성가신 놈이야. 아차, 너흰 시스콤의 뜻을 모르겠구나. 시스콤은 ‘여자 형제를 엄청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를 뜻해.”
“…….”
모르는 단어였는지 인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희 언니가 다시금 투덜거렸다.
“하여간 여자애한테는 무심한 표정만 지으면서 귀여운 남자애만 보면 표정을 바꾸는데, 가끔 의심스럽다니까? 여동생 자랑은 정말 귀에 못이 박일 것 같고. 왜 그런 애가 차기 회장이람. 물론 실력은 분통 터질 정도로 좋지만. 그리고 한수랑 현호랬나? 요즘 그 애들이 지 여동생이랑 친해서 불안한데 귀여워서 어떡할지 고민 중이라나 뭐라나. 아, 걔네들도 아니?”
“…….”
나는 고개만 끄덕이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끼는 모양이다. 나이 차가 나는 친구 오빠가 어린 자신들을 애지중지해 주는 건 어떤 기분이려나? 한수라면 어린애 취급 하지 말라며 질색할지도? 현호는 헤헤 웃으며 좋아할 것 같고, 시하는 부끄러워할 것 같다.
은희 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워프 홀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서로 갈 길이 달랐기 때문에, 우리는 워프 홀에 올라타며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인하는 아까 받았던 스프레이 통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우리는 곧 사람들로 복작거리고 있는 상점가에 도착했다.
워프 홀에서 내리며 인하가 질문했다.
“은하야, 아까 그 사람이 ‘순수한 의미로 좋아하는 거다’라고 했잖아. 좋아하는 거에 순수하지 않은 의미도 있어?”
“어…….”
인하의 순진한 눈망울을 보며 반사적으로 침을 삼킨 나는 이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은희 언니──! 폭탄만 투하하고 도망가면 나보고 어쩌라고!’
잠시 후 나는 상점가를 걸으며 인하에게 ‘순수하지 않은 의미’를 조심조심 설명해 줬다.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변태를 뜻하는 거라고. 그리고 인하는 예쁜 외모 탓에 그런 변태를 적지만 겪어 봤다.
“하지만 민희네 오빠는 남자잖아? 그 오빠가 좋아하는 건 남자아이고.”
아, 그렇구나. 인하는 순수하지 않은 사랑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남자 어른이 동성의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데 순수하지 않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 거다.
“남자 어른이 남자 어린아이를 좋아할 수도 있어.”
“그렇구나.”
인하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휴, 이런 건 좀 커서 알아야 하는데.’
나는 약간 자괴감에 젖었다. 경계는 필요하지만, 변태를 몸소 실감하기에 인하는 너무 어리다. 커서도 알아서 좋을 것 없는 이야기건만. 그런데 이어서 나온 질문이 가관이었다.
“그럼, 민희네 오빠는 변태인 거야?”
“아, 아니, 아니야. 순수한 의미로 좋아하는 거라고 했잖아.”
“아.”
인하는 납득했다. 나는 그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어휴, 은희 언니…….
그렇게 모든 설명을 마친 후에야 나는 인하와 평소처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근데 한수랑 민희 언제 그렇게 친해졌대? 민희네 오빠가 알 정도면 집에 놀러 갔던 거 아냐?”
“그러네.”
인하는 한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한수’라는 이름에 잠시 눈살을 찌푸리던 인하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엔 한수가 민희네 집까지 서로 놀러가고 그러는 게, 한수랑 민희 두 사람이 많이 친해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현호와 한수가 어릴 적부터 친구였으니까, 현호와 민희가 친해지니 자연스럽게 한수도 어울리게 된 게 아닐까 싶었다. 아, 그러고 보면 한수가 요즘에 시하랑도 자주 어울리는 걸 본 것 같다. 아니…….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우리들 전부가 다 그렇다. 우리들은 언제부터인가 자주 함께 있게 되었다.
은희 언니가 말했던 대로 재능을 타고나는 아이들은 천성적으로 어른스러운가 보다. 내가 소심한 것도 소심한 거지만, 전에 어른이었단 점도 있어 아이들과 진짜 친구로서 어울리긴 다소 어려운 편인데, 그들과는 왠지 마음이 잘 맞았고 함께 있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나는 학교에 들어가서도 친구라곤 인하 외엔 거의 사귀지도 못할 것 같았는데……정말 의외의 인연이었다. 마냥 활발하기만 할 것 같은 민희도 잘 보면 어른스러운 면이 보인다. 우리들 중에 가장 어린애 같은 것은 의외로 시하였다.
시하는 남자애치곤 약간 수줍은 면이 있을 뿐, 실제론 그 나이 또래의 정신 연령이었다.
“어라? 은하랑 인하네?”
책방에 향하면서 대화를 나누던 나와 인하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유정 언니와 인호 오빠가 나란히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유정 언니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반 양 갈래로 묶고 있었는데, 그게 무척 잘 어울렸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같이 수준별 수업을 받게 된 뒤 대화를 나누다가 들은 건데, 인호 오빠는 봄 방학에, 유정 언니는 작년 겨울에 마법을 개발했다고 한다. 그러니 두 사람도 서로가 마법을 개발했다는 걸 안 건 우리랑 같이 I반을 결성하게 된 올해가 처음이었다. 이른 재능의 개화에 대한 불안감 탓인가, 두 사람도 우리처럼 항상 같이 다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우리를 보더니 웃었다. 이 두 사람도 또래에 비하자면 어른스러운 편이었다.
“너희 둘은 이번 운동회 어느 팀이야?”
“두 사람은?”
그렇게 되물은 것은 인하였다. 인하도 I반의 모두에게는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반 아이들한테 냉정하게 대하는 것과는 상이할 정도였다. 아, 한수는 약간 예외다.
“나는 청 팀이고, 인호는 홍 팀이었지?”
“응.”
어디 보자, 그럼……나랑 인하랑 시하가 백 팀. 현호랑 유정 언니는 청 팀. 민희랑 한수랑 인호 오빠는 홍 팀. 아무래도 그렇게 되는 건가. 아차, 마주친 김에 은희 언니한테 팀 어디냐고 묻는 거 깜빡했다. 뭐, 될 대로 되려나? 우선 여기까지만 보면 꽤 잘 나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같은 팀이야? 부럽다. 딴 애들은 어떻게 됐어?”
나는 유정 언니에게 방금 전 마음속으로 정리했던 팀 내용을 그대로 읊어 주었다. 뭐야, 나랑 같은 팀은 현호뿐? 한 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인 건가. 유정 언니가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우리 한번 열심히 해 보자. 우리 학교 운동회 엄청 성대하거든. 작년에도 장난 아니었다니까? 그래서 나, 엄청 기대돼!”
유정 언니에 이어 인호 오빠도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것이, 두 사람 다 꽤나 기대되는 듯했다. 유정 언니가 힘차게 주먹을 쥐며 발을 굴렀다.
“빨리 어떤 행사를 하는지 알고 싶다! 우린 1학년 땐 그거 했어. 개막 행사라고 했던가? 어쨌거나 운동회 때 처음에 하는 거. 마력 구슬에 마력 넣어서 공을 맞히는 건데, 그러면 공이 열리거든. 공도 예쁘지만 마력 구슬도 예뻐. 구슬이 깨지기도 하는데, 다치지 않도록 깨지면 사라지더라고.”
“그거 운동회 때 항상 처음에 하는 거라더라. 1학년이 할 수 있을 만한 게 그거밖에 없잖아. 지금쯤이면 우리 학교 1학년 애들은 대부분 마력 움직일 수 있게 되니까.”
그 말에 나는 그동안 한 수업 내용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아무래도 막 입학한 1학년들 중에는 아직 마력을 못 움직이는 아이가 다수 섞여 있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마력을 움직이는 요령을 중점으로 배웠다. 수준별 수업도 하다 보니, 우리 반 아이들은 정도는 다르더라도 이제 전원 마력을 움직이는 것까진 가능하게 되었다. 이미 우리들 외에도 몸에 마력을 쌓은 아이들이 있다.
다만 아직까지 명상을 통해 스스로 체내에 마력을 쌓을 수 있을 정도까지 성장한 아이들은 없다. 그 단계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리려나 보다.
우리는 당연히 스스로 마력을 쌓을 수 있다. 그 외에도 마법을 쓸 때마다 마력이 점점점 늘어 가는 추세다. 이미 마법을 만들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 I반 가운데에서 가장 마력이 많고 실력이 좋았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려다 말았다.
“우린 지금 스펠마법 배우고 있어. 1학기 다 지나니까 우리 중에서 마법 제일 못 쓰는 애도 마법 두 개는 쓸 수 있게 됐어. 지금 배우는 건 대부분 스펠마법이지만, 그 스펠마법의 스펠을 사용해서 진을 그리는 거잖아.”
“그렇지.”
“진마법이 마법 중에선 제일 머리가 좋아야 하는 거잖아. 그래서…….”
운동회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던 유정 언니는 이내 수업에 대한 내용을 즐거운 표정으로 재잘재잘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는 사실은 깨닫고 있었지만 상기된 얼굴로 수업 때 배운 것에 대해 조잘거리는 유정 언니가 무척 귀엽기도 해서, 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유정 언니와 인호 오빠의 말을 들었다. 인하는 바로 위의 학년인 2학년 수업 내용이 무척 흥미로운 모양으로, 제법 진지하게 그 말을 들었다.
“……맞다, 그런데 두 사람은 상점가에 뭐 하러 왔어?”
“응? 아, 책 반납하러.”
“그래? 우린 친구들 사이에서 최근 화제가 되는 점 뽑기가 있는데, 그거 하러 왔어. 운세를 보고 싶어서.”
유정 언니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운세 시험이라……? 그런 것도 있단 말이야? 하여간 이 상점가에는 특이한 게 다 있다.
“난 그냥 유정이랑 같이 온 것뿐이야. 다른 거 사러 왔어. 유정아, 이제 가자. 빨리 사고 점도 뽑아야지.”
“응? 맞다, 그러네. 인하야, 은하야, 잘 가!”
“응. 언니랑 오빠도 잘 가.”
나와 인하는 손을 흔드는 두 사람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 주고서 다시 책방으로 향했다. 대현의 상점가에 있는 책방은 상당히 컸다. 나는 책을 반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하를 세워 둔 채 다음으로 읽을 책을 골랐다. 인하도 책을 조금 보긴 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선배들이었지만, 나는 꿀리지 않고 소설책을 하나 골라 대여한 후 밖으로 나왔다.
“운동회, 나도 좀 기대되기 시작했어.”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푸른 하늘이 무척 아름다웠다. 그러자 인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깐 귀찮다며.”
“그치만, 생각해 보니까 많은 마법을 볼 수 있는 기회잖아? 고등학교 선배들의 마법을 이렇게 볼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있겠어.”
“흐음……, 하긴.”
인하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나를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그럼 돌아가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