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208
“그분이라면 가능하겠군요. 최근에 랭킹이 또 오르셨다 들었습니다.”
“그래. 할머니는 서울에서 시험 치니까, 아마 곧 올 거야.”
“이런……. 오랜만에 사람이란 파도에 둘러싸이게 생겼군요. 우리 아이들도요.”
김선아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우리 아이들은 그런 게 없어도 주목받았을 텐데, 뭘.”
“하긴…….”
이유영이 옅게 웃었다. 옅은 걱정과 짙은 자부심이 담긴 미소였다. 김선아가 흘끔, 허공에 떠 있는 시간을 확인했다. 시험이 시작되고 시간이 얼마나 경과했는지 알려 주는 시계였다. 캡슐 내부에도 하나씩 내장되어 있다.
“오래 걸리겠네.”
“그렇지요.”
잠시 후 김선아의 남편인 강정민과 그녀의 절친한 친구인 한미래도 달려왔다. 한미래의 옆에는 드물게도 그녀의 남편 유진한이 함께 있었다. 비마법사 판정을 받아도 랭크 시험은 치를 수 있다. 그러나 유진한은 랭크 시험을 치지 않은 지 오래됐고, 이번엔 단지 유은하의 성적을 지켜보기 위해 보호자 자격으로 온 것이었다.
주제현, 유천호, 이은희, 한성후, 유민, 정준휘, 정민아, 이백한, 유은하와 친구들의 지인들이 하나둘 시험장에 몰려들었다. 첫 수험생 중에는 벌써 시험을 끝낸 사람도 제법 있었다. 그들은 대개 낮은 랭크를 받았다.
시험이 시작되고 두 시간 반이 지났다. 김선아와 한미래, 강정민이 시간을 확인하며 대화를 나눴다.
“은하 걔가 설마 강제 집행 모드에 걸리지는 않았겠지?”
“도망만 치다가?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음……싸우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많은 애잖아.”
“곧 있으면 진행 정지로 시험이 끝나는 녀석들이 생기겠는걸.”
시험은 기본적으로 세계관 안에서 죽음에 가까운 상태를 맞이할 때까지 계속되지만, 중간중간 예외가 있다.
첫째, 시험 참가자가 적극적이지 못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을 경우, 스토리를 다음 페이지로 넘겨 강제 집행한다. 강제로 싸우게 하는 것이다. 시험 개시 후 1시간이 지났을 때 이행하는 모드다.
둘째, 시험 참가자는 적극적이지만 실력과 경험이 부족해 이야기를 진행하지 못했을 경우다. 그럼에도 신중해서 공격을 잽싸게 피하고 숨는다. 그것을 반복한다. 그렇게 되면 죽지만 않았을 뿐이지 이야기의 진행은 멈춘다. 여태까지의 시험 내용을 토대로 그 이상 숨기고 있는 실력이 없다 판단되면, 시험을 종료하고 랭크를 매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행 중지로 인한 강제 시험 종료자가 다수 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첫 시험을 치르는 마법사의 랭크를 확인하러 오는 구경꾼들이 늘어났고, 시험을 끝내고 랭크가 매겨진 수험생들이 많아졌다. 세 시간쯤 되면 웬만한 수험생들의 시험은 전부 종료된다. 종료된 수험생들이 기계 안에서 나오고, 빈 기계 장치는 바닥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저 학생들이 올해의 천재군.”
“어이, 대부분 대현이잖아?”
“천재 학교는 건재하군.”
남아 있는 학생은 고작 13명. 그중 세 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D랭크를 받고 밖으로 나왔다. D랭크 중에서도 상위였다. 모두 박수를 쳤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그사이 대현의 관계자들은 전부 그 시험장으로 모였다. 넓은 공간에 시험을 치르고 있는 학생은 고작 10명, 몰려든 사람은 몇천 명을 가볍게 넘겼다.
“3시간 20분. 여태까지의 기록으로 볼 때 C랭크는 확정이군.”
“그래.”
정민아의 말에 이백한이 긍정했다. 그러고 10분 정도 더 기다렸을까, 두 개의 캡슐이 더 열렸다. 거의 동시였다. 강예슬이 조금 더 빨랐고, 윤시하가 그보다 조금 더 느렸다.
“열렸다!”
“예슬아! 위에!”
멍한 얼굴로 캡슐에서 나오던 두 사람의 앞, 혹은 기계 위로 글자가 떴다. 강예슬과 윤시하는 재빨리 밖으로 달려 나와 자신의 성적을 확인했다.
『수험 번호 AEJJI07885 강예슬
마법 활용 DDD 속도 DD+
공격 DD+ 방어 C-
마력 C+ 마법 레벨 C-
종합: C』
『수험 번호 AEJJI07779 윤시하
마법 활용 DDD+ 속도 C
공격 C 방어 DD+
마력 C- 마법 레벨 C+
종합: C+』
두 사람은 랭크를 확인하고는 잠시 멍해졌다. 자리에 붙박여 서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친구들이 달려들었다.
“꺅! 축하해!”
“예슬아, 시하야! 축하해!”
“C랭크래!”
멍하니 있던 윤시하와 강예슬은 곧이어 방방 뛰며 기뻐했다. 친구들과 기쁨의 포옹을 나누고, 호들갑을 떨며 웃었다. 그 모습을 누군가가 사진으로 찍었다. 어쩔 수 없다. 그들은 성인이고, 곧 신분증을 받을 마법사다. 이제 학교에서 꽁꽁 싸매며 보호해 줄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은? 은하 님은?”
“아직이야. 랭크가 높을수록 늦게 나오는 거 알잖아.”
두 사람은 친구들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선생님과 선배들의 축하를 받으며 계속 시험을 치르고 있는 8명의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강예슬이 이내 눈을 꽉 감으며 손을 모았다.
“은하 님이 B랭크! 아니! A랭크를 받을 수 있기를!”
일동은 긴장한 눈으로 캡슐을 주시했다.
위로 가는 길을 너무 못 찾겠다 싶으면 그냥 뚫었다. 막무가내로 무너뜨리지는 않았고, 바위를 매개체로 공간을 열어 쭉 터널을 만들었다. 계속 걸어가면 위층에 다다를 수 있다.
마지막 3층 정도를 그렇게 뚫어서 나아갔다. 중간에 게이트를 두드리는 소리가 난 건 아마 층 사이에 땅굴을 파고 살고 있는 몬스터가 있어서 그런 거겠지. 그러나 다행히 그들 중 내 게이트를 무너뜨릴 만큼 강한 놈은 없었다.
마지막 층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일단, 벽을 부술 수 없었다. 어떠한 힘이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견고히 막고 있었다. 바깥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막고 있는 마력의 정체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사람을 이 미궁에 봉인했다고 했지. 말 그대로 봉인이었던 건가?’
15층은 다른 층에 비해 몬스터가 굉장히 많았다. 나는 이곳까지 오며 많은 몬스터를 봤다. 정말 몬스터처럼 생긴 것들도 있는가 하면 사람과 닮은 놈들도 있었다. 5층에 있던 사람과 화합했던 몬스터가 그러했다.
아무래도 강할수록 이성이 있는 듯했다. 여기에는 이성이 있고 사람과 형상이 닮은 몬스터가 많았다. 당연히 실력도 아래층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곳의 몬스터는 아무래도 이성 없이 날뛰는 괴물이 아니다. 사람과는 다른 종족, 악마의 부하 종족, 그것을 몬스터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들에게는 삶이 있고 마음이 있고 사회가 있다.
나는 환각마법으로 모습을 바꾸고 다녔다. 민감한 놈도 환각마법을 좀 더 강하게 사용하자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리 민감해도 ‘그 세계’에 있던 놈들만큼 민감하진 않았다. 나는 없는 척을 하기보다는 몬스터인 척을 했다.
구석구석 찾아보았지만 사람은 없었다. 몬스터뿐이었다. 엄중히 주의하며 바깥으로 나갈 방법을 찾았다.
가상 시스템의 대단한 점은 현실과 다름없는 퀄리티다. 나는 몬스터의 기억을 읽어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출입구’가 있음을 발견했다. ‘기억’이라는 게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프로그램에 불과한 인물의 정신세계 안을 들락날락거릴 수 있다니.
하지만 출입구를 들락날락할 수 있는 건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몬스터뿐이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통해 바깥 세계에 대해 조금 알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바깥 세계에 살아서 저항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악마와, 그에 대적하는 마법사들. 이곳에 있는 몬스터는 그들에 비하자면 조무래기다.
‘그러니까 이런 스토리인 거구나. 탈출해서, 악마를 쓰러뜨린다. 악마의 손에서 세계를 구한다?’
이 세계의 악마는 또 어떠한 백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까.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졌다.
어쨌거나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출입구를 통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필요한 것이 있다. 출입구에는 마력 패턴을 읽는 마법이 설치되어 있다. 그걸 통과하기 위해서는 ‘표식’이 필요하다. 표식이란 몬스터가 악마 대군, 그중에서도 지위가 높은 악마에게서 받은 특별한 ‘마법’이었다. 부하로 인정한다는 증표니 당연히 지위 높은 몬스터만이 지니고 있다.
‘봉인을 풀면 소란이 너무 커질 것 같고. 이게 좋겠지? 환각마법으로 지위가 높으신 어느 몬스터로 완벽하게 변신한다. 우와, 이거 마법도 속여야 돼? 재미있겠는데──.’
표식도 마법으로 새기면 된다. 이 눈으로 복사해서 똑같은 마법을 환각마법으로 새긴다. 환각마법으로 새기면 지울 때 편리하다.
우선, 나는 어쩔 수 없이 표식을 지닌 어느 지위 높은 몬스터를 습격했다. 그를 재운 다음 기척과 모습을 없애기 위해 함께 결계에 들어갔다. 상대의 마력을 파악하고, 표식의 마력을 파악하고, 완벽하게 상대방과 똑같이 변장했다. 주위로 내뿜어지는 마력량, 내부에 소용돌이치는 마력의 느낌, 모든 것을 복사해 붙여 넣었다.
내 복사능력은 보통 능력이 아니다. 내가 상대방의 마법을 복사해서 사용하면, 마력 색마저 복사한 상대의 색과 똑같아진다. 인하의 마법을 사용하면 금색이 되고, 인성이의 마법을 사용하면 암녹색이 된다. 여태까지 예외는 이성진뿐이다.
마력이 흔들리다가 가라앉았다. 환각마법 효과로 내 모습은 그자와 완전히 똑같이 변했고, 몸 안의 마력 역시 똑같이 덧씌워졌다. 나는 놈의 소지품을 벗기고 전부 몸에 걸쳤다. 상대를 봉인한 다음 내가 그 상대인 양 밖으로 나왔다.
두근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미궁의 출구를 향해 걸었다. 인사해 오는 부하들에게 적당히 거만하게 대답했다. 출입구를 보면서도 긴장하지 않았다. 아니, 긴장했다. 마음 한편은 긴장하고 있었지만, 겉에 드러난 감정만은 평온하게 유지했다. 나는 원래 그였던 것처럼 당연한 얼굴로 출입구를 응시하고 있다.
출입구가 다가오고, 손, 발, 몸, 모든 것이 동시에 장치가 달려 있는 문 아래를 지나친다. 슥 하고 몸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는 동안 아무런 제지도 없었다. 내 몸은 이내 완전히 미궁을 빠져나왔다.
나는 문을 지키는 자들에게 거만하게 인사를 하고, 쭉 길을 걸어갔다. 숲길이 펼쳐졌다. 이 장소는 마을과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다.
며칠 만에 보는 하늘은 새파랬다. 그러나 결국에는 진짜 하늘이 아니다.
어느 정도 걷다가 우거진 나무 사이에 숨었다. 마법을 풀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바깥에서 확인해 보니 미궁의 정체는 바위산이었다.
나는 봉인마법을 면밀하게 살폈다. 잠시 고민했다. 가상 공간 속이건 어쨌건 간에 나는 자유 항쟁단이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과 안에 있는 사람을 자유롭게 해방하는 것이 목표다. 어떡하지? 저 봉인을 풀까, 아니면 내버려 둘까?
봉인이 풀렸을 때 일어날 여파를 상상해 보았다. 봉인이 깨지면 다른 악마들이 확인하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올 게 뻔했다. 저 안에 있는 실력자들은 다들 고만고만했다. 악마들이 그저 내버려 두고 있었던 것이든 어쨌든, 다른 악마들이 찾아오면 그들의 어느 정도 안정된 삶에 엄청난 풍파가 닥칠 것임은 자명했다.
해방된 것을 기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적이 없을 경우다. 내가 그들을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만두자.’
나는 게이트를 열었다. 봉인되었다고 한들 표식을 연결해 두면 얼마든지 공간을 열 수 있다. 나는 아까 기절시켜 두었던 상대의 봉인을 풀고, 옷가지와 물건을 전부 돌려놓고, 정신을 조작했다. 정신을 차리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할 것이다.
나는 이내 잠시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긴 여행이 될 것 같아 조금 초조해졌다.
악마의 모습을 가장하여 돌아다녔다. 이미 이 세계는 악마의 것이었다. 많은 악마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아갔다. 나라가 세워지고, 왕이 있고, 지방을 다스리는 귀족이 있다. 악마는 지위가 높을수록 강했다. 인간은 핍박당했다.
여행 초입에는 무엇부터 할지 잔뜩 고민했다. 나는 생각하는 동안 계속해서 움직였다. 체질 변화로 인해 생겨난 강철 체력 덕분에 하루 종일 걸어도 지치지 않았다.
그 하루 종일 동안 싸울 일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내가 악마의 모습을 가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모두 나를 평범한 악마로 여겼다.
마법을 계속 유지하며 돌아다니던 나는 우연히 사람이 숨어 사는 마을을 발견했다. 이미 한번 악마가 헤집고 지나갔는지 상당히 엉망이었다.
“어떻게……! 우리 딸…….”
“엄마, 아빠……!”
나는 우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뭐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내 모습에 흠칫하기 전에 마법을 풀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내 물음에 사람들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보고 잠시 흠칫했다.
“서, 설마……악마님……?”
“아뇨, 아니에요. 저는 사람이에요.”
“사람요?”
눈을 동그랗게 뜨던 그들은 이내 사정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악마의 눈을 피해 산속에 숨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을 이룬 지 1세기 정도가 되어 간다. 하지만 멋모르는 아이들이 산 밖으로 나갔다가 악마에게 들켰다. 악마들이 쳐들어와 몇 사람은 죽이고 몇 사람은 노예로 끌고 갔다.
‘헐, 노예라고?’
그래, 이 세계에는 노예가 있구나. 이 세계는 악마에게 지배당하고 있다. 그들에게 인간은 패배한 열등 종족이다. 그런 세계관이구나.
“음…….”
하지만 나는 사람이지. 나는 울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좋아. 기왕 하는 건데 목표를 정하는 게 좋겠지. 지나다니면서 마주친 사람 사는 마을을 보호하고 인간 노예를 해방하는 걸 목표로 할까?’
이것은 내 실력을 보기 위한 시험이다. 그럼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움직여야 한다. 무조건 싸우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나한테 맞았다.
목표를 정한 나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뭐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만뒀다. 너무 기대를 받으면 부담스럽고 민망하다. 나는 울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일으키고 그들을 도왔다. 리얼하게 죽어 있는 시체를 보며 입을 막고, 그들을 묻는 것을 도와줬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날카롭게 잘린 시체를 보고 토하지 않은 게 용했다. 그 이상한 세계에서 겪었던 경험 덕분일 것이다. 아니, 때문일 것이다. 시체를 보고 동요하지 않게 되다니…….
‘두 번이나 죽을 뻔했고, 좀비도 있었고.’
죽은 사람의 시체를 보는 건 처음이 아니다. 전생에는 장례식도 몇 번 경험했다. 하지만 살해당한 시체는 처음이다. 나는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시체를 묻었다.
‘이렇게 리얼해도 되냐고.’
한순간 가상 공간의 환상을 흩트려 버릴까 생각했을 정도였다.
나는 언젠가 했던 모의시험 때처럼 나무를 심고 호수를 만들고 사람들이 무사히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결계를 쳤다. 환각마법을 사용한 결계로, 웬만한 악마에게는 무너져 버린 마을의 잔해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다음 떠났다. 그들은 절망에 갇혀 나를 잡지 않았다. 나는 문자마법을 사용해 이곳을 덮친 악마가 어느 마을에 사는 악마인지를 찾아냈다. ‘악마들이 만든 마을을 무너뜨리고 인간을 해방하자!’──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싸우고 또 싸우는 건 나한테 안 맞는다고.
그냥 나는 노예가 된 사람을 구출했다. 우리를 부수고 강력한 마법이 걸려 있는 목줄을 깨부수고, 세뇌가 걸려 있으면 그것도 풀었다. 이미 차마 말로 하지 못할 일을 겪은 사람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들을 구출했다. 구출한 노예 중 몇 사람은 그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일단 그들을 모두 데리고 무너진 마을로 돌아갔다.
“엄마!”
“아빠!”
“아가야!”
감동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나는 무너진 마을의 재건을 도왔다. 물을 더 끌어오고 더 강력한 결계를 쳤다. 마을을 재건하는 데 필요한 많은 물품을 자연에서 가져왔다. 사람들은 기뻐했다. 나는 결계의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다섯 개의 마정석이 깨지지 않는 한 결계는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하나라도 깨지면 비밀 지하실이라도 만들어 둔 뒤 그곳으로 도망치라고.
마을 사람이 아니었던 노예 몇 명을 데리고 마을을 나섰다. 나는 그들이 살던 마을 좌표를 알아내 그들이 마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잃어버렸던 가족과 상봉한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다. 나는 그들의 마을에도 결계를 쳐 줬다. 물이 부족한 마을에는 호수를 만들고 음식이 부족한 마을에는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달린 나무를 심어 줬다.
나는 감사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길을 전전하며 이런 일들을 반복했다. 마을을 돕고 노예를 구출해서 보호하는 동안 여기저기에서 소동이 일어났지만 환각마법 덕분에 그런 일을 반복해도 한동안은 싸우는 일이 별로 없었다. 추적자도 없었다.
그러나 악마도 마법을 사용한다. 정신 계열 마법을 사용하는 악마도 있다. 그러다 보니 한번은 딱 걸렸다. 심지어 귀족급의, 제법 강한 악마에게 걸렸다.
“가소로운 년이군. 해방군의 일원이냐?”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기에 싸웠다. 상대는 정신 계열 마법을 공격에 사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어중간한 정신마법은 내게 먹히지 않는다.
나는 마법을 확실하게 조절했다. 상대의 마법은 건물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내 마법은 속성융합마법조차 주위에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그 남자를 쓰러뜨리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기분이 이상했다. 숨 하나 가쁘지 않다. 사용한 마력량도 그리 많지 않다. ……하긴, 그리 높은 지위의 귀족 같지는 않았지.
“당신입니까? 최근 인간 노예를 해방시키고 다니는 사람이.”
“…….”
“7계급 악마를 쓰러뜨릴 정도라니 굉장하군요. 우리 해방군의 동료로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그 악마 귀족의 곁에는 해방군 스파이가 숨어들어 있었다. 해방군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단체로 활동하는 건 내 체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필수 퀘스트가 아닌지 다행히 거절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노예를 해방하고 마을을 보호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는 동안 몇 명의 적을 더 만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한 상대와 마주치는 일이 많아졌다.
결국 규모가 큰 노예 경매와 맞닥뜨렸다. 이번에도 똑같이 노예를 탈출시켰다. 그러다가 어느 조직과 마주쳤다. 악마와 싸워 악마에게 빼앗긴 세계를 되찾기 위해 모인 생존자들.
“소문은 들었지만, 역시 굉장하군.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구출해 내다니.”
해방군을───.
윤시하와 강예슬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김현호였다. 그는 종합 CC+를 받았다.
“현호야, 수고했어!”
“축하해!”
“와……내가 C랭크란 건 친구들은…….”
김현호는 긴장을 삼키며 아직 잠에 빠져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몰려드는 인파가 점점 더 불어났다. 김선아의 조모인 김미영과 그녀의 친구 하해림, 그리고 저번 트라베리아 관련 실종 사건 때 유은하와 관계되었던 김형일과 정하진도 찾아왔다. 김선아는 그들을 마뜩잖은 눈으로 쏘아보았다.
곧 두 명이 더 일어섰다. 이소영과, 몇 분 차이로 주민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험 번호 AEJJI07799 이소영
마법 활용 C 속도 CCC+
공격 CCC 방어 CC+
마력 CCC 마법 레벨 CC+
종합: CCC』
『수험 번호 AEJJI07815 주민희
마법활용 CC 속도 CC+
공격 CCC+ 방어 C-
마력 B- 마법 레벨 CC-
종합: CCC+』
“마력이 B래!!”
“아깝게 C야!”
“대단하다!”
많은 사람이 박수를 쳤다. 지금 일어난 사람이 CCC라면, 그럼 남은 사람들은? 몇 사람은 그것에 생각이 미쳐 오싹해졌다. 이미 시험이 시작된 지 4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 기록을 깰 것 같네요.”
“알다시피 이번 세대는 진짜 천재잖아.”
“저도 나름 천재라고 불렸거든요.”
“넌 지금도 천재야.”
“선배가 할 말이에요, 그거?”
주제현과 이은희, 유민이 그런 대화를 나눴다. 이은희와 유천호, 한성후는 B의 벽을 도무지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은희는 최근에야 겨우 BB로 올랐고, 한성후는 A랭크까지 한 발을 앞두었지만 그 한 발을 디디지 못하고 있다. 그 한 발을 아무렇지 않게 디딘 주제현은 실로 천재가 맞았다.
하지만 지금 시험을 치르고 있는 아이들 역시 천재였다. 몇 년 만에 나타난, A랭크, 혹은 S랭크까지도 도달할 천재.
푸쉭….
4시간 15분이 넘었을 때, 박한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험 번호 AEJJI07895 박한수
마법 활용 B 속도 CC
공격 CCC+ 방어 B-
마력 B- 마법 레벨 CCC+
종합: B-』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드디어 B랭크에 도달한 사람이 나왔다.
“한수야!”
“아 씨……너무 길잖아. 마지막에 진짜…….”
“너 B랭크야! 대단하다!”
“진짜냐.”
박한수는 대단한 성적을 받고도 얼떨떨해하며 눈을 깜빡였다. 김현호와 주민희가 그를 얼싸안았다. 그는 두 사람을 떨구며 남은 사람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네 여친님이 너보다 한발 앞서겠는걸?”
“그렇겠지. 이젠 못 이기거든.”
“올…….”
주제현의 기록, ‘4시간 20분’은 간단히 넘어갔다. 50분이 되었을 때 최인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험 번호 AEJJI07899 최인성
마법 활용 B 속도 B-
공격 B+ 방어 B
마력 BB- 마법 레벨 B
종합: B+』
“헐…….”
최인성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성적을 보았다. 짝짝짝짝! 또 한 번 박수와 함성이 터졌다. 마찬가지로 당황하고 있던 다른 친구들은 곧바로 최인성을 에워쌌다.
“네 마법……헐, 전부 B잖아.”
“밸런스 봐라?”
“마력이 BB?”
“어……내 실력이 생각보다 대단했나 봐. 자주 인하한테 지고 은하한텐 무력하고 성진이한텐 상대도 안 돼서, 난 그냥…….”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건 걔들이 미친 거고. 실제로 아직도 저기 있잖아.”
박한수가 최인성의 팔을 꼬집고 주민희가 헤드록을 걸었다. 그때 강인하가 앉아 있던 캡슐이 열렸다.
“인하도 나왔다!”
“인하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김선아와 강정민, 한미래가 손을 흔들었다. 강인하의 성적은 최인성에 비하면 극단적이었다.
『수험 번호 AEJJI07829 강인하
마법 활용 CC 속도 BB+
공격 BB 방어 C+
마력 BB 마법 레벨 B
종합: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