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21
우리는 곧바로 배지의 텔레포트 기능을 시전해 집으로 돌아갔다.
☆
삑삑.
『떴다떴다^^』
나는 학생증에서 반투명하게 떠오른 창을 잠시 바라보다가 보낸 사람을 확인했다. 민희구나, 어쩐지.
떴다는 건 아마도 운동회 일정표겠지? 나는 풍선 모양의 결계를 팡 터트려 없애고는 학생증을 확인했다. 최근 공지 사항에, 확실히 『운동회 일람』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꾹 눌렀다. 그러자 창이 하나 더 뜨며 운동회 일정이 주르륵 적힌 표가 나왔다.
나는 운동회 일정을 쭉 읽었다. 맨 윗부분에 개회식에 이어서 『개막 행사』라 적힌 부분에 선명한 형광색 줄이 그어진 것이 보였다. 운동회에서 유일하게 1학년들만 참가하는 행사였다. 아무래도 학생증이 내가 나가는 부분을 자체적으로 표시한 것 같다.
나는 『개막 행사』를 꾹 눌러 자세한 개요를 확인했다. 개막 행사. 커다란 공을 마력 구슬로 터트려 행사의 시작을 알림. 그래, 초등학교 1학년이 할 수 있는 거라고 해 봤자 기껏해야 이 정도지. 이것조차 다른 초등학교 1학년은 못 한다.
그 외 1학년이 나가는 종목에도 형광색보다는 조금 연한 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전부 단체전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학년이 나가는 거 말이다. 학년별로 대표가 한 명씩 나와서 하는 릴레이나 물건 찾아오기 경주, 전 학년에서 뽑아서 하는 응원전, 그 정도가 1학년이 참가할 수 있는 종목의 전부였다.
그 외에 별표가 그려진 것도 있었다. 이건 학년 상관없이 중요하거나 인기 종목일 경우에만 그려 넣은 것 같았다. 가장 많이 별표가 그려진 것은 마지막 종목이었다. 공중 경주, 경기 라인 안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학생 중 누구라도 선수 방해 가능─이란다. 우와.
나는 곧 즐거운 표정으로 웃었다. 다행이다, 1학년이 참가하는 경기가 별로 없어서. 나는 경기 참가는 필요 없고 그냥 구경을 하고 싶었다. 정말 별게 다 있는걸. 마지막 경기 시간이 5시인 걸 보니 하루 안에 끝나기는 하나 보다.
운동회에 주로 참가하는 것은 재능을 활짝 개화한 중학교 선배들이었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전투 위주 행사는 고등학교 선배들이 맡고 있다. 문득 초등 5학년, 6학년의 이름으로 된 마법 공연 행사의 내용을 살펴보던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각 팀에서 특히 눈에 띄는 아이들을 꼽아 선별했습니다.』 ……으아, 싫다, 싫어.
나는 이런 건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진짜 최저 중학생이 될 때까지는 들키지 말아야겠다. 특히 내 메인마법인 환각마법은 생각과 활용 방법에 따라선 무진장 화려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공연 일에 굉장히 잘 맞는 마법인걸. 나는 행사에 대한 설명을 쭉 읽어 보다가 하품을 했다. 그때 눈앞에 작은 창이 하나 더 떠올랐다.
『발신인: 강인하
운동회일정 봤어?』
나는 웃으며 곧바로 답장 버튼을 누르고는, 답장을 썼다.
『수신인: 강인하
응 봤어^^ 재밌겠다』
진심이었다. 곧이어 인하에게서 긍정의 대답이 돌아왔다. 잠시 후 또 민희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발신인: 주민희
서열던보!』
……던보? 뭔 소리지? ……아, 오타구나, 이거.
『발신인: 주민희
울학교 서열1위 울오빠! 백팀이랭ㅠㅠㅠㅠㅠ』
그럼 저 ‘던보’는 ‘전보’ 혹은 ‘정보’인가? 백 팀이라니 아싸. 기왕 하는 거 이기면 좋으니까. 나는 입가를 올려 웃었다. 밑으로 글이 이어졌다.
『발신인: 주민희
2우ㅣ 고등학교부회장! 청팀
3위 고등학교회장! 쳐ㅇ팀
은하랑인하랑도아는사 이?욨지?
4위천호오빠홍팀
아,오빠강나머지써준댑』
아, 오타 많은 거 신경 쓰였는데 다행이다. 잠시 공백이 이어지고 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발신인: 주민희
학교서열
5위 인주열 백팀
6위 김주연 청팀
7위 선시현 홍팀
8위 김주한 홍팀
9위 연요운 청팀
10위 강서영 홍팀
11위 유서준 백팀
그이상은귀찮』
……민희네 오빠도 띄어쓰기 잘 안 하는구나. 뭐 어쨌건, 그렇단 말이지. 하하, 재밌겠네. 꽤 잘……나뉜 것도 같고.
그러다가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이 ‘학교 서열’이란 거 진짜 적응 안 된다……. 진짜 오글거리고 인소 같았다.
어색하게 웃던 나는 이내 학생증을 끄고 침대 위에 누워 이후의 일을 이것저것 상상해 보았다. 내 마법은 그게 어떤 것이든 간에 많이 볼수록 도움이 된다. 온갖 마법을 보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두근거리며 들떴다. 나는 자리에 누운 채 몸을 부르르 떨며 웃었다.
오늘 우리의 첫 수업은 고학년의 마법 시범이었다. 말 그대로 고학년 선배들이 한 명씩 마법을 선보이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다. 이 학교는 다른 학교에 비해 마법에 대한 배움이 월등히 빠르다. 3, 4학년 때부턴 꾸준히 고유마법 개발 수업을 하고 5학년에 접어들면 학생 중 반 정도는 마법을 개발한다. 즉,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다들 볼만한 마법 하나둘 정도는 쓸 수 있다는 소리다.
거기에서, 경험을 기른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고학년 선배들은 번갈아 가며 초등학교 저학년 후배들에게 마법 시범을 보이게 된다. ……라는 건, 우와 싫다. 그럼 언젠가 나도 이런 걸 해야 한다는 거잖아.
하지만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었다. 어차피 그런 건 몇 년 후에 일어날 일. 나는 곧 시작될 마법 시범이 굉장히 기대되어 웃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우리는 각기 제자리에 앉아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참고로 우리 자리 배치 말인데, 결국 처음 정했던 그대로 가고 있었다. 시하와 민희는 우리 앞자리였고, 한수와 현호도 분단만 다를 뿐 우리 옆자리였다. 사실 그래서 처음에 한수가 시비를 건 거였다. 쉬는 시간마다 옆자리로 아이들이 몰려드니 시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다면서.
그러니 우리는 결국 우연의 일치로 서로 옹기종기 모여 앉게 된 것이다. 학기 초부터 지금까지 쭈욱─. 우리가 생각보다 더 빨리 친해진 건 이 자리 배치에도 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덕분에 우리는 수업 중 몰래 이야기를 나누기가 참 편했다. 한수도, 다른 아이들한텐 까칠한 한수였지만 나한텐 그냥 귀여운 어린애로 보이다 보니 그 때문인가, 그의 태도에 별로 화를 내지 않는 나한텐 한수도 가끔 즐거운 듯 말을 걸어오곤 했다.
그리고 지금도, 한수는 아니지만 한수보다 나와 가까운 자리에 있는 현호가 나한테 소곤소곤 말을 걸어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아이들도 시범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떠드느라 바빴다. 그럴 만도 했다. 고학년 선배들의 마법 시범은 정말 언제 봐도 신기하고 즐거웠다.
“은하는 어떤 마법이 보고 싶어? 난 이번엔 꼭 물마법 나왔으면 좋겠어!”
“음……난 결계마법이 보고 싶어.”
“응응, 그렇구나. 그럼 인하는 빛?”
“아니. 그것도 보고 싶지만 오늘은 번개.”
“맞다……! 인하 요즘 서브마법 고민 중이랬지?”
“응.”
인하가 현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하는 요즘 서브마법을 구상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번개마법의 자료를 찾는 데 열심이었다. 마법의 기반을 쌓으려는 것이다. 사실 처음엔 그냥 무작정 만들려고 했는데, 나와 준휘 선생님이 그런 인하를 말렸다.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나의 경우, 나는 모든 마법을 만들기까지 상당한 고민과 생각을 거쳤다. 마법을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 갓난아기 때부터 고민했다.
고유마법은 한번 만들면 다시는 없앨 수 없다. 처음 만들었을 때의 심정과 생각은 후에 마법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나중에 가서 ‘사실은 이런 식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대도 이미 다른 식으로 성장한 마법의 방향을 바꾸려면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처음부터 아주 잘한 거였다. 아주 많이 고민했고, 마법을 어떻게 사용할지 수많은 생각을 했다. 많은 설정을 노트 한 권에 빽빽하게 적어 두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미래에는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성장하기를 바라며 마법을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내 마법에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듣고 그 준휘 선생님이 나를 칭찬했을 정도였다.
우리의 의지에 따라 성장하는 마법이니만큼, 고유마법을 만들 때는 무작정 만들어 내기보다는 많은 마음과 생각을 담아 둘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후에 우리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인하도 마찬가지였다. 무작정 만드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할 필요가 있었다. 직감으로 만드는 것도 아주 나쁜 방법은 아니다. 아니, 메인마법은 오히려 그 직감이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브마법은 그 메인마법을 보좌하는 형태의 마법이니만큼 많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하다. 성장함에 따라 그 생각이란 게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는 하지만 그때는 그때, 생각의 방향을 마법이 성장해서 따라붙으려면 어쨌거나 밑거름이 중요하다.
인하는 나와 선생님의 말을 듣고 일단 서브마법을 무작정 만드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마법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인하는 이미 방향을 잡은 상태였다. 빛에 번개를 더해서 쓸 거란다. 말 그대로 마법 그 자체를 보조하는 방식의 서브마법이었다. 다만 그렇게 하면 정말로 파괴적인 공격마법이 될 텐데, 그 때문에 약간 심란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뺨에 손을 가져갔다.
“인호 형처럼 희귀한 마법도 나오면 좋겠다.”
“아, 그건 그래.”
현호의 말에 한수가 동의했다. 인호 오빠의 마법만이 아니라 사역마법 전부가 희귀한 편에 속하는 마법이었다. 사역마법은 겉보기에는 귀여울지 몰라도 시간과 수고가 아주 많이 드는 마법이다. 그래서 그것에는 우리 모두가 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역시 나는 기왕이면 결계마법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몇 년 전에 써 놓았던 마법 설정들을 쉽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하나씩 연습해 가고 있는 지금, 가장 기본에서부터 막히고 있는 것은 역시 만드는 데도 상당한 고생을 했던 결계마법(시공간마법)이었다. 크기가, 크기가……크기를 키우기가 힘들었다. 게이트는 여전히 구멍 하나조차 열리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이 마법은 시공간마법이 아니라 말 그대로 결계마법이었다. 사실 시공간마법은 아직 허무맹랑해서 나로서도 이 마법을 지금은 결계마법이라 부르고 있는 실정이니까…….
그러나 나는 이번에도 90%를 넘는 확률로 결계마법을 보지 못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결계마법은 어린 나이에 사용하기에는 무척 어려운 마법이다. 엄연히 공간 계열 마법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몸에 익히기까지는 사역마법처럼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고유마법으로 만든 결계마법은 그 숫자가 제법 적다. 특히 결계마법을 메인마법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당연히 결계마법을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 내는 사람도 매우 드물었다.
쳇.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자, 그럼 기다렸지?”
그때쯤에서야, 밖에서 시범을 보이러 온 선배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던 선생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은 아직도 모두 떠들고 있었고, 떠들어 대는 목소리는 점점 커져 갔다.
“모두 이제 조용. 안 그러면 시범을 보이기가 힘들잖니.”
마력과 함께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묘한 강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천천히 잦아들었다. 우리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교탁 쪽을 바라보았다. 머지않아 앞문에서 선배들이 한 사람씩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일렬로 선 뒤 한 명씩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6학년 2반, 김성아입니다! 사용할 마법은 소환마법입니다!”
그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자기 이름과 선보일 마법을 소개하고 마법을 차례로 시전했다.
첫 번째 선배는 소환마법을 사용했다. 손등 위의 마법진이 빛나더니 그 선배의 앞에도 마법진이 그러졌다. 그리고 그 마법진에서 이런저런 물건들이 하나씩 튀어나왔다. 우와, 간단한 마법이었지만 아직 제대로 마법을 쓰지 못하는 모두는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두 번째 선배가 선보인 마법은 인하가 기대하던 번개마법이었다. 치지직, 은푸른 번개가 번뜩이며 창으로 변했다. 그는 퍼포먼스라도 하듯 작은 번개의 창을 우리에게 한 번 겨누고는 없앴다. 인하가 눈을 반짝였다.
세 번째로 눈앞에 선보여진 마법은 매우 희귀한 마법이었다. 이공간을 만드는 마법이었으니까. 아공간(我空間)도 아니고 ‘이공간(異空間)’이다. 비록 작다 할지라도 세계를 발아래에 두는 마법이다. 나는 입을 가리고 감탄했다.
아공간마법이란 본래 ‘개인에게 속한 공간’이라는 의미다. 나도 여신님에게 아공간을 받은 만큼 아공간에 아주 관심이 많아서 그에 관한 서적을 많이 찾아봤었다. 이게 설명하기 매우 난해한데, 아공간마법은 결국 어떠한 공간을 자신에게 속하게 만들거나, 자신에게 속한 허무의 공간을 만드는 마법이다. 결국 레벨 차이는 있지만 무간(無間)을 자신에게 속한 전용 공간으로 만드는 마법이란 뜻이다.
그중 가장 쉬운 아공간마법은 원래 있던 공간의 틈새를 열고 그 틈새를 넓혀 자신에게 속하게 하는 걸로 시작한다. 결국 공간계 마법과 상성이 안 맞으면 성공시킬 수 없는 고위마법이다. 그래도 자신의 공간을 창조해 귀속시키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더 쉽다.
모든 것에는 틈새가 있다. 그것은 물질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인 개념이다. 영혼, 허공, 그 틈새를 발견하는 마법이야말로 아공간마법이다.
이공간은 그것보다 훨씬 고유의 개념이다. 공간이 아니라 ‘차원’, 매우 작다 하더라도 ‘차원’을 귀속시키거나 조종하는 마법이다.
이공간을 발견하고, 그 이공간을 이용하는, 내가 전에 읽고 보았던 것에 따르면 그게 바로 이공간 마법이다.
세계라는 것은 사실 온갖 차원이 겹쳐져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그것은 모르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과 다름없지만, 그게 보이는 사람에게는 세계가 엄청 넓게 느껴진다고 한다. 차원마다 그 물리적인 법칙이 다르기 때문에, 보기에는 매우 얇아 보여도 사실 들어가 보면 매우 넓고, 시간의 감각도 다르다고 하니까.
그런데 저런 고위 마법을 어린애가 만들어 냈다고? 과연, 이 세계의 마법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하긴, 귀속시키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어쩌면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지. 작더라도 처음부터 내 세계를 창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내 결계마법과는 전혀 다를 테니까.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확실한 건, 저 마법이 내 마법과 연관성이 있는 마법이라는 것이다. 내 마법은 시공간마법, 저 마법은 공간마법.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며 그 마법을 바라보았다. 마력의 색을 면밀히 살폈다.
그것은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마치 안개 같은 공기 막 너머로 예쁘게 꾸며진 작은 방 같은 풍경이 보였다. 다만 저 공간에 속한 물건들은 아무래도 마법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물건을 안에 집어넣어 꾸민 것뿐으로 보였다.
하긴, 저 마법을 쓰는 선배는 아직 어리다. 아공간도 달리 말하자면 이공간의 하위 개념이라 할 수 있으니, 어쩌면 저건 아직 작은 공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녀는 어찌 되었건 차원을 소환했다. 저 나이에 저러한 마법을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 있다니, 어지간히 상성이 잘 맞나 보다. 솔직히 그녀의 주변에 흐트러지고 있는 마력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한순간 이차원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법을 시전한 선배가 곧바로 벅찬 숨을 몰아쉬었다.
‘저게 한계인가? 어쨌거나 대단하다. 이공간이라니…….’
이공간이 보인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 마법은 그만큼 희귀하고 어린아이가 만들어 내기에는 무척 어려운 마법이었다.
그런 식으로 7명이 시범을 보였다. 네 번째로 본 마법은 구름을 만드는 마법이었는데, 낮은 곳에 마치 물감으로 그린 그림처럼 생성된 그것은 작았으나 비와 번개를 뿌렸다. 사용하기에 따라 무척 유용할 것 같았다.
다섯 번째 마법은 불마법, 여섯 번째 마법은 식물을 키우는 식물마법(무척 부러웠다. 한수도 좋아했다.), 일곱 번째는, 물마법이었다. 현호는 물마법을 보는 내내 연신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자, 모두들 마법 시범을 보여 준 선배들한테 감사하다고 인사해야지?”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큰 소리로 인사했다. 그런 아이들 사이에서 우리 역시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이번 수업은 비록 선보이는 한 순간 한 순간은 매우 짧았지만 그 이상으로 보람찬 시간이었다.
곧 선배들이 교실 문을 통해 물러갔다. 선배들이 마법을 시전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사람당 기껏해야 3분에서 5분 정도, 수업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남은 수업 시간 동안 우리는 감상문을 쓴다. 마법을 보았을 때 느낀 점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감성을 통해 마법을 공부하는 것이다.
나는 뭔가를 쓰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감상문 쓰는 걸 지루해하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즐겁게 썼다. 우리는 마음을 사로잡은 마법의 두근거림에 대해 떠들며 감상문을 써 갔다. 가장 즐겁게 대화를 이끈 것은 역시 민희와 현호였다. 시하도 평소보다 더 말을 많이 했다.
나는─, 나 역시 이공간마법을 보아서 무척 기뻤다. 하지만 난 확실히 얘네들의 보호자가 맞는 모양이다.
“나도 빨리 저렇게 마법 써 보고 싶다!”
“응. 그러게.”
방금 본 마법을 떠올리며 들뜨다가도 정작 들떠서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진다.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2교시는 평상시처럼 이론 수업이었다. 이라는 과목인데, 마법과 일상생활의 접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관한 상식에 대해서 다룬 교과서였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마법 도구나 마법의 실생활과 관련이 많았기에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1학년 1학기에 우리가 배우는 마법 이론 수업 교과서는 사실 두 권뿐이다. 하나는 말했듯이 일상생활 관련이고, 또 하나는 마력의 기본 이념에 대한 교과서다. 실습과 암기 둘 다 필요한 과목으로 마력을 다루는 법, 명상하는 법 등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2학년이 되면 이거 대신에 마법 실습 공부를 하게 된다지?
그 외 과목은 국어, 과학, 수학, 체육과 같이 마법과 거의 관련이 없는 기본 교과목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실습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수준별 수업은 보통 이 시간에 이루어진다. 시험, 어떤 식으로 진행되려나. 문득 걱정이 들었다.
이윽고 대망의 3교시가 찾아왔다. 우리는 3교시부터 평소와는 다르게 수업이 아니라 운동회 연습을 했다. 3교시에는 일단 1학년 전부가 강당에 모여서 개막 행사 연습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설명은 매우 간단했다. 주먹보다 큰 마력 구슬에 마력을 넣고 커다란 공에 계속해서 던져 큰 공을 깨트린다. 매우 간단한 것이기 때문에 이 연습은 운동회 전에 딱 두 번만 연습한다고 한다.
그 매우 간단한 설명과 함께 운동회의 기타 교칙을 일러 준 선생님들은 그 후 3교시 남는 시간에 한 번 연습해 보라며 우리들에게 마력 구슬을 나누어 주었다. 시하를 포함한 우리 여섯 명은 끼리끼리 모여 마력 구슬에 마력을 주입해 보았다.
“……간단해서 연습할 것도 없네.”
“그러네.”
“음……나도 됐다!”
솔직히 말해서, 그건 마법을 개발한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간단했다. 시하 역시 금세 성공해 보였다.
나는 흘끔 시선을 돌려 시하의 마력 구슬을 바라보았다. 시하의 마력 구슬은 시하의 마력 색과 꼭 닮은 자줏빛에 가까운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다.
“역시 신기하다. 그거 알아? 은하처럼 마력 색이 두 개인 경우는 드물대.”
내가 시하의 마력 구슬을 돌아보는 사이 내 마력 구슬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민희가 그런 말을 했다.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내 마력 색은 제법 신기하고 신비로웠다.
내 구슬은, 구슬의 안쪽은 분명히 선명하고 신비한 남색인 것에 비해 구슬의 겉 부분은 움직일 때마다 은색의 광택을 띠었다. 덕분에 구슬의 가운데마저 빛을 받을 때마다 은빛으로 보이곤 했다. 명확히 내 마력의 색 그대로였다. 내 마력 색은 은색을 테두리로 둔 남색이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디서 봐도 마력의 색 전체는 남색이고 끝부분만 은색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실 속 남색 겉 은색 식인데 말이다. 비교하자면 마치 삶은 달걀처럼! 아, 삶은 계란보다는 겉이 훨~씬 얇지만서도.
그래서 나도 내 마력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또한 나는 내 마력 색을 엄청 좋아한다. 마력을 펼치면 은색이 내부에 마치 빛 가루처럼 뿌려지는데, 그걸 보면 마치 별을 뿌린 밤하늘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내 취향이라고.
마력 구슬을 가지고 놀다 보니 금세 3교시의 끝을 알리는 종이 쳤다. 3교시를 마치고 이어진 쉬는 시간에, 우리들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팀별로 다른 교실로 흩어졌다. 백 팀은 원래 우리 반인 1반에, 청 팀은 2반에, 홍 팀은 3반에 모이는 모양이었다. 나와 인하와 시하는 평소의 자리에 앉아 있었고, 민희나 한수, 현호는 다른 반으로 갔다.
아이들이 오고 가며 소란스럽게 떠들어 댔다. 어디에 앉을지 고민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무 데나 풀썩 앉는 아이도 있었다. 1학년 아이들 수가 적은 탓에 같은 반 다른 반 할 것 없이 다 아는 얼굴들이라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곧 4교시를 알리는 종이 쳤다. 종이 치자마자 무언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시간을 때우고자 책을 읽고 있는데 어느 순간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칠판 근처에서 커다란 화상이 하나 떠올랐다. 그 안에는 파란 넥타이와 붉은 넥타이를 한 선배들이 질서 정연하게 서 있었다. 화면의 맨 앞에는 고등학교 선배로 보이는 어느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무심코 고개를 갸웃했다. 뭔지 알 수 없는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 제현 형이다.”
시하가 그 사람을 보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는 사람인가? 나는 눈을 깜빡이며 시하를 향해 물었다. 누구라고? 민희네 오빠. 그 말에 나도 인하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이번 운동회에서 백 팀의 팀장을 맡은 주제현이다.]“우와, 우리 학교 마법 서열 1위야!”
민희네 오빠의 이름을 들은 주변 아이들이 소란스러워졌다. 헤에, 흐음, 민희네 오빠가 우리 학교 서열 1위……. 확실히 은희 언니한테 말은 들었지만, 그 서열 1위 선배의 이름이 주제현이란 것도 어렴풋이 들은 것 같지만…….
‘관심이 없으니 도무지 외워지질 않아서. 특히 사람 이름 같은 건 못 외우니까…….’
그래도 친구 오빠인데 너무했다. 반성, 반성. 이제 보니 민희네 오빠, 엄청 미남인걸?
나는 속으로 건조한 감상을 중얼거리며 손바닥에 턱을 괴었다. 그는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둘러보며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1학년부터 행사에 참여할 사람을 뽑는다. 초등학교 1학년은 전 학년이 나가는 종목만 나가게 되지만, 나갈 수 있는 종목은 일단 세 개. 릴레이, 물건 찾아오기, 응원전. 릴레이와 물건 찾아오기 경주에선 학년당 각각 한 명, 응원전에선 학년당 다섯 명씩 뽑는다. 빨리빨리 끝내고 싶으니 일단 지원해라.]그는 몹시도 귀찮다는 표정으로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러면서 자기를 보고 꺅꺅거리는 여자아이들을 보고는 시린 표정을 짓더니, 멋있다는 표정을 하는 남자아이들을 향해서는 약간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다. 맞다, 남자아이만 좋아한다고 했지.
하지만 실제로 보니 그냥 여자아이들에 대한 온도가 현저히 낮을 뿐인 것 같다. 물론, 한 번 본 것뿐이니 그저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일 뿐이지만.
아이들이 하나둘 손을 들며 지원했다. 릴레이에 12명, 물건 찾아오기에는 15명, 응원전에는 10명 정도. 매번 손을 드는 아이가 손을 드는 경우가 많았다. 왜, 있지 않은가. 반에서 매번 무슨 행사 할 때마다 활기차게 손을 드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발표할 때도 항상 맨 먼저 손을 들지, 아마?
[하나 고른 녀석은 또 들지 마. 하나만 골라서 들어라. 다시 든다.]민희네 오빠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그 말에 아이들이 고민했다. 그는 고민할 시간을 딱 30초만 주었다. 곧바로 다시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릴레이엔 6명, 물건 찾아오기에 10명, 응원전엔 4명.
[일단 응원전 한 명 더. 릴레이나 물건 찾아오기에서 빠지든가.]그 말에 눈치를 보던 아이 한 명이 응원전으로 바꾼다며 손을 들었다. 하지만 릴레이랑 물건 찾아오기는 여전히 인원 초과 상태였다.
[너희들 15명, 오늘 점심시간에 실력 시험 좀 하게 고등학교 제1 운동장으로 찾아와라. 이상이다.]그러더니 영상이 ‘삑’ 하고 끊기며 사라졌다. 시작된 지 20분도 지나지 않아 운동회 관련 회의는 끝나 버렸다.
“음, 쉬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나?”
“하하. 제현 형 여전히 막무가내…….”
시하가 어색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당황은 잠깐이었다. 우리들은 곧 웃으며 운동회와 관련한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였다. 사실 인하가 릴레이를 나간다면 절대로 이기겠지? 하지만 대놓고 마법을 쓸 생각이 없으니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거고. 내 경우에는 눈에 띄는 건 딱 질색이니까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나가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현호랑 민희랑 한수가 돌아왔다. 현호와 민희가 만면에 미소를 띤 반면 한수는 아주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 응원단 하게 됐어! 응원 부탁!”
“후하하하! 나는 릴레이 나간다! 한수는 물건 찾아오기 경주!”
“내가, 민희 저 녀석한테 휘말리는 바람에……제길, 누가 네 멋대로 내 손 들게 만들래!”
“당근! 내 맘이지!”
“우와, 한수 너 물건 빌리기 경주라고? 부럽다!”
“시끄럽다, 김현호!”
세 사람은 그런 식으로 투닥투닥 화기애애 목소리를 높였다. 휴, 백 팀이라 다행이다. 나는 한수와 민희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다가 나는 의문이 들어 물었다.
“어? 근데 너희들은 인원수가 바로 맞아떨어졌어? 우리는 과반수라서 손 든 애들끼리 나중에 직접 가서 시험 치고 뽑는다던데, 너희는 용케 바로 정해졌네?”
“아니. 인원 초과였는데……근데 거기에 좀 아는 선배가 있어서……그냥 나랑 민희 휙 넣어 버렸어. 아, 제길.”
“이히히히히. 천호 오빠랑 같은 팀 돼서 다행이지 뭐야!”
나는 그 말에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헤에, 아는 선배가 또 있었구나. 살짝 감탄하거나 그러려니 하는 나나 인하랑은 달리 현호나 시하는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도 아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아, 참고로 현호는 그런 거랑은 전혀 상관없는 경우였다.
“난 응원단은 딱 맞아서!”
흠, 과연~.
그 후에도 운동회 관련으로 수업을 빼게 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수업을 통째로 바꿀 때도 있었지만 뽑힌 아이만 불려 나갈 경우가 제일 많았다.
뭐, 응원전을 제외하고……1학년들은 기껏해야 마력 강화로 달리는 게 최선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운동회 관련 일에는 당일 전까지 관심을 끄……진 않았고 성심성의껏 같은 팀도 아닌 한수와 민희와 현호를 응원해 주었다. 사탕이나 초콜릿 등을 챙겨 주기도 했다. 기뻐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런 식으로 시간이 지나, 어느새 운동회 당일이 찾아왔다.
우리는 체육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교복도 그렇지만 체육복도 마찬가지로 크기와 색이 몸에 맞춰 변화하는 데다 방어마법까지 걸린 마법 옷이었다. 방어구로서의 기능으로 따지자면 교복보다 훨씬 뛰어났다.
나는 위에는 하얀 반팔 하복 체육복을 입고 아래는 감색의 긴 동복 체육 바지를 입었다. 혹시 몰라 얇은 카디건을 허리에 묶었다. 난 짧은 옷은 역시 별로였다.
텔레포트 배지를 상의 위에 단 채, 학교에 갈 준비를 마치고 텔레포트 하려는 우리들을 보며 두 부모님들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엄마라도 가야 하는데!”
“아냐, 괜찮아. 1학년들은 경기도 별로 없고 우리들도 경기 안 나가는걸.”
“……엄마는 바쁘니까, 일 열심히 해요.”
“인하야, 은하야. 정말로 미안해.”
진짜로 괜찮은데. 그런 거 가지고 풀 죽을 나이도 아니고. 그리고 우리 학교가 크다곤 해도 시합에 나가지도 않는 아이들의 어머니들까지 다 오면 얼마나 복잡하고 소란스럽겠어. 아무리 학생 수가 다른 학교에 비해 적은 편이라곤 하나, 초*중*고 학생 전부에 조직 사람들까지 모이는 장소였다. 어쩌면 관객 수가 줄수록 좋을지도 몰라.
우리는 바쁜 부모님을 단호하게 떨쳐 내고 학교로 텔레포트 했다. 교실로 걸어가면서 나는 인하에게 마지막 종목이 기대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왜?”
인하의 물음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치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방해를 하는 거잖아. 감지계 마법사가 아니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마력 쓰는 것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울 거라고. 게다가 내 마법 같은 경우엔 거의 전조가 없으니까 잘 먹힐 거고. 그 틈에 힘 밝히지 않은 아이들도 마구 방해하고 그런다던데?”
“흐음.”
“그리고 도시 전체를 경기장으로 삼는 거잖아? 각자 흩어져서 하는 것도, 몰래 숨어서 방해하는 것도 할 수 있다고. 마법 시험해 볼 기회잖아?”
조금 들떠서 그런지 말이 좀 정리되지 않은 채 나왔다. 인하는 내 마지막 말에서야 몹시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응, 그러네.
그 이후에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교실로 향했다. 인하가 왜 긴바지를 입었냐고 묻는 말에 나는 당당히 긴바지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인하는 그렇구나 하고 납득했다.
나는 교실에 들어서며 옆 반을 슬쩍 훔쳐보았다. 복도는 아직 텅 비어 있었다.
오늘은 반별이 아니라 팀별로 반에 모여 대운동장에 가게 된다. 1반은 백 팀, 2반은 청 팀, 3반은 홍 팀이 모인다. 개최 시간이 되면 정해진 객석으로 텔레포트시켜 준다더라.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역시 마법 학교란 신기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근데 학생증이 있으니까 핸드폰이 필요 없네.”
인하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보였다. 하얀 핸드폰에는 왕관 모양 장식이 매달린 핸드폰 줄이 달려 있었다. 나는 인하의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그건 그랬다.
“하지만 연락할 수 있는 건 학생들끼리뿐이잖아?”
“응. 그러니까 필요 없어. 엄마나 너희 아줌마한텐 메시지마법도 있고.”
“하긴.”
나도 인하도 이미 메시지마법을 쓸 수 있다. 원래 그렇게 어려운 마법도 아니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를 한 권 꺼냈다. 시험 기간이 얼마 남지 않기도 했으니까 짬을 내 조금이라도 공부를 해 둘 생각이었다. 빨리 아공간에다가 전부 들고 다니고 싶지만 아직 학생증의 아공간 기능을 쓸 수 있는 아이는 한 명도 없다. 내가 한동안 교과서를 읽는 사이 비었던 교실에 사람이 하나둘 차기 시작했다.
『발신인: 주민희
은하야학교왓서?인하는?니들맨날 함게자나』
시하가 온 직후, 민희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내 옆에서 엎드려 있던 인하도 몸을 일으키며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우와, 여전히 맞춤법 서툴러. 나는 가볍게 『응. 인하도 옆에』라고 써 보냈다.
『발신인: 박한수
아짜증 민히애심심하다고막 옆에서조르질안나』
……응, 아니구나. 민희가 특별히 글자를 못 쓰는 게 아니라, 1학년들이 아직 대부분 글자를 잘 못 쓰는 것뿐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국어 시간엔 꼭 일주일에 한 번씩 받아쓰기를 하지. 그리고 대부분이 만점을 못 받는다. 그래도 이름을 틀리는 건 너무하지 않나? 크면 나아지겠지만서도.
그런데 한수의 메시지, 이제 보니 나한테만 왔다. 인하가 자기 학생증을 확인하더니 내 앞에 뜬 메시지 창을 노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이 녀석은 꼭 너한테만 보내는 거야?”
“응? 그냥 인하랑 사이 나쁘니까 쑥스러워서 아닐까?”
“확실히 인하랑 한수는 사이 나쁘지.”
“흐음.”
나와 시하의 말에 인하가 표정을 조금 풀었다. 그러나 옆에서 그래도, 하긴, 하지만……하고 중얼거리는 걸 보면 여전히 앙금이 남았나 보다. 오호라, 이거 혹시 자기한테만 안 보냈다고 삐친 건가? 귀엽기도 하지.
……음, 아닌가. 나한테 보냈다고 한수한테 질투했다는 쪽이 좀 더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손가락으로 턱을 툭툭 두드렸다.
어느새 반에 아이들이 가득 찼다. 나는 적당히 앉아 떠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시계를 한 번 바라보았다. 전자시계의 시간은 9시 15분 35초, 36초. 나는 주위를 돌아보다가 문득 칠판 위에 글자가 떠올라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등학교 야외 훈련장(운동회 장소)으로 텔레포트 하기까지: 10분』
“어, 야!”
“저것 봐!”